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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배우 열전 ④

야만의 시대를 살아낸 여배우의 눈물

애틋한 ‘겨울 여자’ 장미희

  • 오승욱│영화감독 dookb@naver.com

야만의 시대를 살아낸 여배우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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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문화의 탄생

바로 전해인 1974년엔 이장호 감독의 두 번째 영화 ‘별들의 고향’이 만들어졌다. 이 영화의 원작자와 시나리오 작가 역시 최인호. 음악도 강근식과 이장희. 주연은 아역 배우 출신 안인숙과 중년에 접어든 신성일이었다. 영화를 보고난 사람들의 입에 영화 속 대사가 오르내렸다. 물론 1960년대에도 영화 속 대사가 유행어가 되기는 했다. “나가 전라도에서 올라온 용팔이란 말이시” 뭐 이런 정도였다. 하지만 ‘별들의 고향’이 상영된 후엔 달랐다. 여주인공 경아의 대사 “추워요. 꼭 껴안아주세요” 라든지, “내 입술은 작은 술잔이에요”와 신성일의 “경아, 오랜만에 같이 누워보는군” 같은 대사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게다가 영화 전편에 흐르는 이장희와 강근식의 음악은 또 어떤가. ‘한잔의 추억’‘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는 최고의 히트곡이 됐고, 한국 영화의 진정한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이라 할 앨범이 처음으로 발매됐다. 영화는 개봉되자마자 청춘남녀를 극장으로 불러 들였고, ‘미워도 다시 한 번’(정소영 감독, 1968)의 흥행 기록을 깨는 최고의 성과를 이뤄낸다.

새로운 감각과 생각을 지닌 새로운 세대의 등장이었다. 이 새로운 시대의 영화가 이전 시기의 영화와 다른 점은 감독과 시나리오 작가, 음악감독 모두 학생 시절 서로의 재능을 간파하고 영화를 만들기 전부터 끈끈한 유대감을 다져왔다는 점이다. 이장호의 경우 고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내던 최인호가 조선일보에 연재한 ‘별들의 고향’을 눈여겨보다 의기투합했고, 이장희 역시 고등학교 시절부터 서로의 재능을 눈여겨보던 사이였다. 그들은 서로의 유대감과 공감대를 바탕으로 작품을 만들어낸 첫 세대였고 그것을 ‘청년문화’라 불렀다. 하지만 곧이어 수없이 발동된 긴급조치와 대마초 파동이 청년문화를 초토화시켰다. 새로운 영화의 주역 대부분이 대마초 사건에 연루돼 곤욕을 치렀고, 영화에 사용돼 히트한 노래는 금지곡이 돼 들을 수 없게 됐다. 특히 ‘바보들의 행진’의 경우가 심했는데, 신촌 로터리 육교 위에서 주인공들이 경찰의 장발 단속에 걸려 도망치는 장면에서 사용된 ‘왜 불러’와 주인공 중 하나가 자살하는 장면에 사용된 ‘고래사냥’은 편협한 권력자들의 옹졸한 처사로 금지곡이 됐다. 어처구니없는 사건이었다. 게다가 1975년 베트남 패망은 대한민국에서 반공 히스테리와 북한의 남침 공포가 극에 달하도록 만들었다.

1978년 초. 중학교 2학년 겨울방학 중에 일어난 일이다. 소집일에 학교에 간 나는 몇몇 아이의 방학 중 무용담을 들어야 했다. 오로지 장미희의 가슴을 보기 위해 단성사에 ‘쌔벼들어갔다’는 이야기였다. ‘쌔벼들어간다’는 건 극장에 돈을 안내고 몰래 들어간다는 뜻으로, 미성년자 관람불가였던 ‘겨울 여자’(김호선 감독)를 돈도 안 내고 보고 왔다는 것이었다. 무용담의 주인공들은 영화에 장미희의 가슴 노출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를 놓고 옥신각신했다. 당시 나는 그러거나 말거나 했다. 내 관심은 오로지 무협 액션 영화였고, 여자가 주인공인 영화를 보러 가는 것은 남자가 할 짓이 아니라고 여겼다. 그래도 사춘기의 남자였으니 장미희의 가슴이 노출된다는 말에 약간 솔깃하기는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영화를 보러 갈 생각은 전혀 안 했다는 뜻이다.

그해 겨울 장미희 주연의 ‘겨울 여자’는 대단했었다. 당시 대학생이던 삼촌들이 연인들과 ‘겨울 여자’를 보고 와서 주부였던 이모를 부럽게 만든 일이 기억난다. 대학생 삼촌들과 반 아이들의 입에서 장미희의 이름이 오르내렸지만 당시 내가 좋아하던 여배우는 임예진이었다. 몇몇 용감한 아이가 ‘겨울 여자’가 상영되던 단성사에 모험을 하러 간 그 시간에 나는 동네 극장에서 임예진 주연의 영화를 보거나 한·홍 합작 무협 액션 영화를 보고 있었다. TV에서 방영되는 드라마 ‘결혼행진곡’(1976)을 보고 당시 유행어가 된 한진희의 “죽갔네” 라는 대사를 깔깔 웃으며 따라 하기도 했지만, 여주인공이던 장미희에 대해서는 기억이 없다. 오히려 당시 해태 브라보콘 CF에 출연하던 정윤희가 나의 가슴을 쿵쾅거리게 만들었다. 장미희는 당시 까까머리 중학생이던 나의 여성 외모에 대한 심미안, 즉 눈 크고 예쁜 여자만 좋아하는 수준에서는 도저히 이해 불가능한 면이 있었다.



입술 끝에 살짝 패는 미소

야만의 시대를 살아낸 여배우의 눈물

장미희는 학력 위조 파문 이후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를 통해 브라운관에서 부활했다.

내가 처음 본 장미희 주연 영화는 ‘속 별들의 고향’(하길종 감독, 1978)이다. 1978년 어느 날 밤, 라디오 영화음악 프로그램 ‘김세원의 영화 음악’에서 김세원 씨가 약간 흥분된 어조로 자신이 얼마 전에 본 영화에 대해 이야기했다. “모래 바람이 부는 황량한 사막에 빨간 우산이 굴러갑니다.” 라디오를 듣던 나는 그 강렬한 이미지에 상상의 나래를 펼쳤고, 곧 이어 김세원이 들려준 영화의 메인 테마와 영화에 사용된 노래 중 하나인 양희은의 ‘알캉달캉’에 마음을 빼앗겼다. 이 영화의 제목이 바로 ‘속 별들의 고향’이었다.

동네 동시상영관에 영화가 들어왔다. 보러 갔다. 황량한 사막에 바람이 불고 빨간 우산이 떼굴떼굴 굴러간다. 그 위로 음악이 흐른다. 사실 사막이 아니라 한강 백사장이었지만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정신병원에서 젊은 여자가 퇴원 수속을 밟는다. 병이 나아서 퇴원한다고는 하지만, 이 젊은 여자는 아직 불안한 것 같다. 병원 한쪽에서 환자들이 배구를 하고 있다. 그런데 공이 없다. 환자들은 안 보이는 공으로, 공 없이 배구를 하고 있는 것이다. 환자들이 전부 동작을 멈추고 지나가던 젊은 여자를 바라본다. 안 보이는 공이 젊은 여자 쪽으로 굴러온 것이다. 여자는 미소를 짓고 자기 발 앞에 굴러온 안 보이는 공을 집어 들고 멋지게 서브를 해 환자들 쪽으로 던진다. 안 보이는 공은 환자들 쪽으로 날아가고 환자들은 다시 배구를 시작한다. 나는 이 장면을 보고 망치로 가슴을 얻어맞은 것 같았다. “아! 이런 것이 영화구나.”

그 장면에서 커트 머리를 한 젊은 여자 장미희의 입술 양 끝이 살짝 패는 미소는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그 미소 속에 여러 감정이 들어 있는 것 같았다. 환자들에게 장난치듯 거짓으로 응해주는 것인지, 아니면 진심으로 그녀 역시 그들과 똑같이 공을 보고 있는지 모호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선의인 것만은 확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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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욱│영화감독 dook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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