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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승경의 ‘눈으로 듣는 음악’

‘대체 불가능 아티스트’ 영원한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

  • 황승경 | 국제오페라단 단장·공연예술학 박사 lunapiena7@naver.com

‘대체 불가능 아티스트’ 영원한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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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불가능 아티스트’ 영원한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

앤디 워홀의 작품 ‘마이클 잭슨’.

감성이 풍부했던 마이클은 화성이 감미롭게 전개되는 곡을 녹음할 때면 스스로 도취해 눈물을 흘리기 일쑤였다. 그럼에도 앨범 표지에는 말쑥하게 턱시도를 차려입고 하얀 치아를 내보이며 활짝 웃고 있다. 이 앨범 수록곡 중 4곡이 빌보드 순위 10위 안에 올랐다. 미국 내 앨범 순위 3위, 전 세계 600만 장 판매라는 기록을 낳기도 했다.

2003년의 인터뷰에서 마이클은 애증이 섞인 아버지의 푸른 눈에 대해 언급했다. 그러나 아버지 조지프의 눈동자는 녹색 계열이다. 마이클은 두려운 존재였던 아버지의 눈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했던 탓에 눈동자 색깔도 제대로 알지 못했던 것이다. 특히 형제들 중에서 가장 섬세하고 연약한 마이클은 조지프의 엄격한 훈육방식에 강한 불만을 품었고 이는 점점 증오로 변해가고 있었다.

마이클은 형제들 가운데 아버지를 가장 많이 닮아 코는 유난히 크고 넓었다. 그에게 이것은 끔찍한 콤플렉스였다. 1979년 무대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한 뒤 그는 첫 번째 성형수술을 했다. 마이클은 확연하게 작아진 자신의 코를 보면서 만족해했다.

하지만 수술 부작용으로 호흡이 불편해지자 그는 다시 2차 수술을 하게 된다. 그래도 외모에 만족하지 못한 마이클은 다시 코를 성형했고, 연속되는 성형으로 그의 콧날은 무너질 듯 얇고 낮게 변했다. 성형중독이라는 손가락질이 쏟아졌다. 더욱이 채식 위주의 식이요법으로 얼굴의 여드름과 젖살이 빠진 데다 눈썹을 손질하고 짙은 화장을 하면서 예전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날렵한 이미지로 변했다. 당시에는 영국의 여장 가수 보이 조지가 거의 유일하게 짙은 화장을 한 남자 가수였다. 대중은 마이클의 성 정체성을 의심했다.

화려함 뒤의 외로운 영웅



1982년 12월 발매된 앨범 ‘스릴러(Thriller)’의 성공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이 앨범은 37주 동안 빌보드 차트 1위에 올랐고 지금까지 1억 장 넘게 팔렸다. 에픽사는 이 한 장의 앨범으로 최소 6000만 달러 이상의 수익을 냈고 슈퍼스타 마이클은 앨범 1장당 2달러 10센트씩 1년치 4700만 달러의 수익금을 받았다. 이 음반은 음반시장의 판도를 바꿔놓았을 뿐 아니라 뮤직비디오라는 새로운 장르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빌리진(Billie Jean)’ ‘빗잇(Beat It)’ ‘스릴러’ 등의 뮤직비디오는 환상적인 역동성으로 팬들을 열광하게 만들었다. 뮤직비디오만 24시간 틀어주는 MTV 방송은 때아닌 호황에 비명을 질렀다. 마이클은 1984년 그래미상 12개 부문 중 8개를 휩쓰는 진기록을 세웠다.

일거수일투족이 언론의 관심거리가 된 25세의 마이클에게 아버지 조지프는 더 이상 거대한 산이 아니었다. 조지프의 바람기에 질린 어머니 캐서린은 이혼 신청을 했고, 마이클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아버지와의 매니지먼트 계약을 중단했다. 가족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상황이었다.

그러다 어머니 캐서린이 아버지를 용서하고 이혼 조정신청을 철회하면서 가족 사이엔 화해 분위기가 조성됐다. 장인의 음반회사를 위해 남았던 저메인까지 합류해 잭슨스의 재결합 투어공연이 기획되기도 했다. 이처럼 가족은 다시 뭉치게 됐지만 홀로 유명세를 치르던 마이클은 의도했건 아니건 가족 사이에서 물에 뜬 기름 같은 존재였다.

마이클은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독실한 여호와의 증인 신자였다. 가난했던 시절 캐서린은 가정을 지탱하기 위해 종교적 삶에 빠져들었다. 마이클은 사회적 지위가 상승한 뒤에도 1985년 무렵까지 1주일에 1시간씩 방문선교를 했다. 공연이 없을 때는 1주일에 4번 보는 예배에도 꼬박꼬박 참석했다. 마이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져가면서 그의 종교 생활도 가십 거리가 됐다. 또한 그가 사생활을 숨기며 신비주의적인 분위기를 조성하자 대중은 그를 동성연애자 혹은 소아성애자로 의심했다.

대중과의 소통 부재

마이클은 어려서부터 가수 활동을 하느라 학교를 제대로 다녀본 적이 없어 사회성이 뒤떨어졌다. 따로 홈스쿨링이나 과외를 받은 것도 아니어서 학습능력은 그저 읽고 쓰는 정도였고 논리적인 사고와 상식도 많이 부족했다. 어린 시절 그는 뛰어난 재능을 바탕으로 ‘해야만 하니까’ 했지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식은 없었다. 인터뷰나 무대 인사 때도 그는 뮤직비디오의 주인공처럼 인위적으로 행동했다. 그런 그에게 휴머니즘과 유머는 찾아보기 힘든 것처럼 비쳐졌다.

언론도 호의적이지 않았다. 그는 언론을 활용해 대중에게 진솔하게 접근할 줄 몰랐다. 대중은 그에 관한 괴상한 소문을 즐겼다. 평화를 사랑하고 기아(飢餓)와 난민 구호에 앞장섰던 선행은 잘 알려지지 않았고 그의 기이한 행동과 성숙하지 못한 화술, 독특한 성격은 과대 포장돼 대서특필됐다. 마이클은 세포파괴로 피부의 흰색 반점이 확대되는 난치성 질환인 백반증을 앓았다. 그의 피부는 치료 과정에서 밝게 변했지만, 세상엔 그가 백인이 되고 싶어 전신 박피를 했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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