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호

세상 모든 것 저마다 자리가 있다

제주의 숲, 바다, 바람, 예술가들

  • 정윤수│문화평론가 prague@naver.com

    입력2013-10-22 13: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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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 모든 것 저마다 자리가 있다

    제주 서귀포시 표선면에 터 잡은 게스트하우스 ‘물고기나무’

    다시, 제주도에 가기로 했다. 지난해 초겨울, 이 연재의 시작이 제주도의 오름이었다. 몇 개의 오름을 다녀와서 마치 제주도의 풍경에서 뭔가 ‘깨달은 듯’이 쓰긴 했는데, 내내 그게 마음에 걸렸다. 마침 1년 전에 그곳에 내려간 친구가 전화를 해왔다. 초봄에 터를 잡았고 땡볕에도 공사를 진행해 어느덧 가을이 되어 집 모양이 완성되었으니 구경 오라는 것이었다. 그걸 핑계로 삼자 내 마음은 곧장 제주도로 향발했다.

    가기 전에 작업실의 책들을 정리했다. 장정일의 책 중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이라는 기이한 제목의 책이 있는데, 내 작업실에도 장차 버려질, 그런 신세가 될 책들이 없지 않았다. 한두 해 묵혀두고 나면 정리해야 할 책이 쌓이게 된다. 대개는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구하거나 빌려왔다가 그만 작업실 구석에, 다른 책들 위에 얹혀 있다가, 또 다른 책의 받침이 된 책들, 그것부터 먼저 골라냈다.

    “책이나 있으면 좀 보내 줘”

    동네 편의점에 가서 종이 박스 4개를 들고 왔다. 먼저 골라낸 책들을 박스에 차곡차곡 넣고 두 번 세 번 테이프로 마감을 했다. 그래도 솎아낼 책들이 또 있다. 서가에 안착한 책들 중에서도 다시 방출당하는 신세가 되는 책들이다. 다시는 읽지 않게 되거나 어떤 이유로든 시의를 다 마친 책들이 운 좋게 서가의 빈틈을 차지한 셈인데, 애써 마음을 다스리며 엄선해보니 또 박스가 네댓 개는 필요할 듯해 다시 편의점으로 가서 종이 박스를 더 구해왔다.

    “뭐, 딴 건 필요한 거 없어. 안 보는 책이나 있으면 좀 보내줘.”



    친구와의 통화는 그렇게 끝이 났다. 낯선 제주도, 그 아랫마을 서귀포 표선면 삼달리에 정박하게 된 친구의 집을 위해, 어찌 하다보니 카페와 게스트하우스도 더불어 짓게 되었다는 친구의 소박한 ‘사업’을 위해, 나는 책을 부치기로 결심했다.

    모두 여덟 개의 박스로 책을 다 갈무리한 후, 책 먼지 묻은 손으로 담배 한 개비를 쥐고 나서 가만히 생각해보았다. 이 대도시를 떠나서, 작은 마을, 그곳이 농촌이든 어촌이든, 지리산이든 제주도든, 정말 훌쩍 떠날 수 있을까. 내가 말이다. 옛 마을 공동체의 서정이 깊이 남아 있는 소백산자락의 농촌에서 태어나 성장했으면서도 과연 내가 이 서울을 벗어나 외진 곳에서 삶을 꾸려나갈 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다. 그렇기도 하고, 또 사실 큰 흥미도 없다.

    친구는 감행했다. 모아놓은 돈도 별로 없는데, 결연히 서울을 떠났고, 궁하면 통한다는 평소의 지론대로 서귀포 표선면의 사람들 사이로 스며들더니, 결국 제 집을 짓고 말았다. 축하할 만한 일이다. 나는, 우선 여덟 개의 책 상자부터 내려보내고, 곧 그를 만나러 제주도로 떠났다.

    마침, 기나긴 추석 연휴가 시작될 무렵이었다. 며칠 제주도에 내려갔다가 올라와도 명절 준비에 지장이 없을 만큼 긴 연휴였다. 그래서 제주도에 도착하자마자 꼭 한번 소요하고 싶었던 몇 개의 숲부터 찾아다녔다.

    우선, 아차 하면 길을 잃을 수 있다는 서귀포시 안덕면의 화순 곶자왈. 이 일대가 요즘 크게 주목을 받으면서 곶자왈 하면 화순 쪽이 꼽힐 정도가 되었지만 곶자왈은 특정 지역명이 아니라 제주도의 독특한 숲이나 지형을 뜻한다.

    열대, 한대 섞인 곶자왈

    곶자왈은 열대 북방한계 식물과 한대 남방한계 식물이 공존하는 제주도의 숲과 지형을 가리킨다. 나무, 덩굴식물, 암석 등이 뒤섞여 조금은 어수선하게 형성된 지형 말이다. 숲을 뜻하는 ‘곶’과 수풀이 우거진 곳을 뜻하는 ‘자왈’이라는 제주도 말이 합쳐진 것이다. 이렇게 열대 북방한계 식물과 한대 남방한계 식물이 하나의 숲이 되고 그윽한 지형이 되어 혼거하는 형태는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다고 한다.

    이런 곶자왈이 제주도에 크게 4개 지역이 있다. 한경-안덕 곶자왈 지대, 애월 곶자왈 지대, 조천-함덕 곶자왈 지대, 구좌-성산 곶자왈 지대가 그것이다. 원래는 이보다 훨씬 많았다. 곶자왈뿐인가. 제주도 전체가 하나의 유기체로서 산이자 숲이자 나무였던 시절이 있었다. 사람은 사람이 살 만한 곳에서만 살았다.

    그런데 관광으로 길이 나고 개발로 건물이 들어서면서 크게 잡더라도 스무 개 이상이던 곶자왈 숲이 다 사라지고 큼직한 것으로만 쳐도 이제 겨우 네 개 남은 상태다. 나머지는 모두 확·포장된 도로가 되고 황량한 골프장이 되고 쓰레기 매립장이 되었다. 최근 들어 제주도는 ‘곶자왈 도립공원 2단계 조성사업’을 추진하고 있는데, 이것이 숲을 지키는 일이 될지 아니면 수많은 관광객의 등산화며 운동화에 훼손되는 일이 될지 의문이다.

    세상 모든 것 저마다 자리가 있다

    사려니 숲.

    숲으로 들어서자, 열대림과 냉대림이 혼거하는 양상이 펼쳐진다. 나무들끼리는 자연스러운 어울림이겠지만 사람의 눈으로 언뜻 보기에는 어수선하고 복잡해 보인다. 아마도 그래서 길을 잃게 되는 모양이다. 친절하게 안내된 길에서 조금 벗어나는 것은 허락되지만 많이 벗어나면 길을 잃는 수도 있다. 실제로 휴대전화 통화가 불가할 수 있으니 정해진 길에서 벗어나지 말라는 안내문까지 보인다.

    현빈과 하지원이 출연한 인기 드라마 ‘시크릿 가든’에서 주인공들이 자전거를 타고 다니다가 그만 부주의로 길을 잃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곳이 바로 곶자왈이다. 그 장면 때문에 관광객들이 자전거를 타고 곶자왈을 무슨 익스트림 스포츠 출전 선수들처럼 질주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지금은 모조리 금지되어 있다.

    드라마에서는 주인공들의 휴대전화가 터지지 않는다.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진다. 그래도 드라마의 주인공들 앞에 신비스러운 ‘시크릿 가든’이 펼쳐진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휴대전화는 터지지 않고 끝없이 수풀 속을 헤매게 된다. 그래서 현지 사람들은 정해진 코스대로 소박하게 걸으면서 숲의 청량함과 그윽함을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어떻게 한번 해보겠다고 숲 속으로 항진하는 것은 절대 금물이다. 깊은 밤에 만난 내 친구도 “거기 한번 잘못 들어가면 못 나와. 여기 사람들만 어찌어찌 해서 나올 수 있지, 육지 사람들은 큰일나는 거야”라고 말했다.

    여름에 가슴 아픈 영화 한 편을 보았다. 제주도의 끔찍했던 4·3 사건을 다룬 영화 ‘지슬’. 그 영화에 ‘큰넓궤’라는 곳이 나온다. 큰넓궤가 바로 이 일대 곶자왈이다. 크고 작은 오름과 또 그 사이로 수많은 나무가 우거져 깊은 숲을 형성하고, 다시 그 속으로 궤(작은 굴)와 동굴과 계곡과 습지가 형성된 곳이기 때문에 4·3 때 이곳 사람들은 곶자왈 속으로 피했다. 육지에서 온 군대와 경찰은 곶자왈에서 길을 잃었고 여기 사람들은 곶자왈 깊은 곳의 크고 작은 굴에서 목숨을 구하고자 했다. 다급한 상황이기에 곶자왈 속으로 피신을 했으나 보통 때에는 제주도 사람들도 곶자왈 깊숙이 들어가지 않는다고 한다.

    “육지 사람들은 큰일나는 거야”

    영화 ‘지슬’을 보고 나면 제주도를 ‘가벼운 마음’으로 왕래할 수는 없을 듯해 영화를 안 보든지 제주도를 안 오든지 하려고 했으나, 그런 사소한 결심은 다 사라지고 나는 ‘지슬’도 보았고, 또 영화가 슬프게 기록했던 곶자왈에도 오게 되었다. 그래서 더 깊이 들어가지 않고 다른 곳으로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하자 마음이 편해졌다.

    제주도의 남서쪽을 벗어나 동북방으로 향해 중산간 길을 따라 한 시간이 채 안 되도록 천천히 달려 사려니 숲으로 갔다. 여러 번 제주도에 와서 다닌 길이었으되 유독 사려니 숲과는 인연이 멀었다.

    살짝 열린 사려니 숲

    세상 모든 것 저마다 자리가 있다

    게스트하우스 ‘물고기나무’.

    이를테면 비자림은 세 번이나 들어가보았다. 이번에도 또 가보았다. 나지막한 평지를 따라 마치 물 흐르듯이 뻗어 있는 길, 그 양편의 높다란 나무들, 곧 나타나는 구좌읍 평대리의 비자림. 수령이 기본적으로 500년에서 800년까지 되는 오래된 비자나무 2800여 그루가 아예 하늘을 가릴 모양으로 그윽한 숲이다. 단일 수종의 숲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다. ‘천년의 비자나무’(실제 추정 수령은 820년가량)라고 불리는 높이 14m의 비자나무를 시작으로 그 숲 안으로 걷고 또 걸으면, 1시간 30분 정도가 가볍게 흘러간다. 걸음도 가볍고 호흡도 가뿐하다. 예닐곱 꼬마 아이도 아빠 엄마 손잡고 너끈히 걷는다.

    그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사려니 숲이 있다. 숲의 생태를 보존하기 위해 오랫동안 비공개로 보호해온 지역이다. 그래서 나도 몇 차례 제주도에 왔으면서도 그곳에 스며들지 못했다. 그러다가 ‘제주 올레 여행’을 시작으로 소박한 힐링과 그윽한 치유를 바라는 사람들이 찾게 되었고, 마침 숲의 생태를 보존하는 방식이 탄력적으로 변하면서, 마침내 사려니 숲길도 열리게 되었다. 시기를 조율하고 탐방 인원도 제어해가면서, 넓은 숲을 부분적으로 공개하는 방식이다. 사려니 숲은 ‘요존(要存)국유림’이다. ‘공익상 국유로 보존할 필요가 있는 산림’이라는 뜻이다. 큰 틀에서는 비공개로 통제해 보존하되 부분적으로는 산책하고 소요할 수 있도록 공개하는 방식이다.

    사려니 숲은, 우선 그 이름 때문에 평소부터 애틋했다. 뜻을 알고 나면 조금은 싱겁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한 게 제주도의 지역명이거니와, 일단 음운으로서 ‘사려니’는 다정다감하고 안온하게 느껴졌다. 실제로 뜻을 찾아보니 ‘산의 안’이라는 뜻의 ‘솔아니’가 변한 말이 ‘사려니’라는 설도 있고, ‘신성한’ 또는 ‘신령스러운’이라는 뜻의 ‘살’ 혹은 ‘솔’이 ‘사려니’로 굳어졌다는 설도 있다. 그 뜻을 알기 전부터 ‘사려니’라는 음운에서 미묘한 일렁거림을 느꼈던 것이 과한 일은 아니었던 셈이다. 한라산의 안쪽, 그 깊고 신성한 숲, 바로 사려니 숲이다.

    과연 사려니 숲은 그런 해석이 조금도 아깝지 않을 만큼 그윽하고 또 신성했다. 혹시라도 길을 잃지 않을까 하는 염려도 있었지만, 들어가지 말라는 곳을 절대 들어가지 않으면서, 정해진 길만 걷고 또 걷는데도, 신성했다. 아직 본격적인 추석 연휴가 시작되기 전이어선지 오가는 사람도 적었다. 그래서 더 그윽했다.

    살짝 길이 꺾이는 곳에서 껴안고 있는 연인도 있었다. 그들을 위해 걸음을 멈추었다. 인기척을 죽이며 사방의 나무를 보고 또 보았다. 하늘은 저 위에서 푸르렀다. 연인이 애틋한 포옹을 마치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나도 다시 걸었다. 사려니 숲은, 그렇게 숲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우리가 얼마나 세속의 먼지로부터 가볍게 벗어날 수 있는지를 순식간에 확인시켜주는, 그런 신성한 숲이었다.

    80%보다 힘들 20%

    초가을 저녁 어둑해질 무렵, 친구가 어렵사리 지어 올린 집을 찾았다. 지난해에, 이 연재의 시작을 위해 제주도를 찾았을 때, 친구는 나를 데리고 표선면 삼달리의 황량한 숲과 헐벗은 대지를 보여주었다.

    그때만 해도 나는 거친 돌과 메마른 흙 위에 무엇이 가능하겠는가, 그렇게 속으로 걱정했다. 그랬는데 그 돌을 치우고 흙을 고르면서 두 계절이 지난 지금 친구는 집을 거의 다 지었다고 연락해온 것이다.

    “이제 한 80%. 마당 고르고 다지고, 또 뭐 있나. 큰 틀만 80%야. 나머지 20%가 어쩌면 이제까지 한 일보다 더 많을지도 몰라.”

    집을 한번 짓다보면 한 10년은 훌쩍 늙어버린다는 말도 있거니와, 큼직한 형태를 다 지었다 해도 자잘한 것을 다 마무리하는 데는 갑절의 수고가 들게 마련이다.

    어디 그것뿐인가. 안팎으로 다 지었음에도 겨울 한번 나면서 집이 견고한지 살펴야 하고 여름 한번 나면서 습기와 비와 바람까지 견뎌내는지 또 살펴야 한다. 특히 제주도이니만큼 방습이며 방수는 사시사철의 일이 된다. 그러니 이제 80% 되었지만, 남은 20%가 그 80% 보다 더 힘들지도 모른다는 친구의 말은, 집 짓는 인부들한테 얻어들은 얘기인지는 몰라도, 사실에 기초한 진실일 것이다.

    대학에서 조소를 전공한, 친구의 아내가 집 안팎의 디테일을 확정하고 마감했다. 전문적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틀을 세웠지만 그것을 어루만지고 깎고 닦은 것은, 미대를 다니면서 다양한 공작 기계로 수많은 대리석을 깎고 강철을 자르고 나무를 후벼 팠던 친구 아내의 일이었다.

    “물고기나무…예쁘잖아, 이름이”

    세상 모든 것 저마다 자리가 있다

    서울을 떠나 제주에 정착한 책 디자이너 권순범(47·오른쪽), 조소 작가 조경아(41) 씨 부부.

    두 사람은 ㄷ자 형태로 공간을 구획했다. 한가운데 큼직한 건물이 이를테면 게스트하우스 본동으로 1층은 널찍한 식당과 거실이다. 그들의 책들이 서가를 가득 채우고 있는데, 곧 도착하게 될 나의 책들이 곳곳에 마련된 서가를 마저 채울 것이다. 누군가 여기에 온다면 ‘국산사자음미실’에 걸쳐 없는 게 없는 책더미에 파묻혀 지내게 될 것이다.

    2층은 이곳을 찾은 가족이나 연인이나 친구들이 묵는 방이다. 방들은, 여느 게스트하우스의 지나치게 ‘검소’해 자칫 허름하게 보이는 행색과 달리, 소박하면서 단정하게 정비되었다. 크게 구획한 8인용 2층 침대가 펼쳐져 있는데 그 각각이 이동식 문과 칸막이 작은 책상과 또 그만큼 작은 스탠드로 나뉘어 있어서 전체로서 하나이면서도 각자가 다락방에 들어가서 책도 읽고 잠도 잘 수 있는 방식이다. 본동의 양옆으로는, 이미 완비된 친구 아내의 조소 작업실동과 곧 완비될 카페동이 있다.

    “물고기나무. 일단 이름을 그렇게 지었어. 예쁘잖아, 이름이. 아무튼 하루이틀 머물다 갈 곳도 아니고, 이제 여기가 내 집이야. 물고기나무. 서울 일들은, 뭐 다 잊기는 힘들어도, 점점 희미해지고 있지. 한참 일하다가, 아 내가 결국 제주도에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는데, 그때 잠깐 서울에서 겪었던 일들, 사람들, 그런 거 생각하는데, 그것도 잠시뿐이지. 일이 많아. 일하다보면 하루가 금방 가. 그렇게 벌써 1년이 훌쩍 지났어. 여기가 내 집이고 여기가 내가 사는 곳이야.”

    서울에서 하던 일들이 뜻대로 안 된 것도 있지만, 원래 친구는 서울을 벗어나려고 했다. 섬세하기보다는 투박하게 생겼으면서도 그 누구보다 섬세하게 출판 디자인을 했던 친구다. 깔끔하기보다는 거칠게 생긴 손으로 그 누구보다 깔끔하게 책을 만들고 포스터를 만들고 도록을 만들어냈던 친구다. 그렇게 일을 솜씨 있게 잘하던 때에도 친구는 언젠가 서울을 떠나서 제주도에 가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했고, 하던 일이 뜻대로 되지 않자 미련 없이 서울을 떠난 것이다.

    우리는 표선의 밤바다로 가서, 그곳의 빨간 등대 근처에 서서, 한참 동안 밤바다를 보면서 담배를 피웠다.

    젊은 작가들의 손길

    다음 날 밝은 빛 아래에 모습을 드러낸 집을 보니, 제법 근사해 보였다. 빛깔도 곱고, 모양새도 단정했다. 호사스럽지 않아서 좋았고 단단해 보여서 좋았다. 물론 큰 틀의 외형이 그렇다는 것이고 앞으로 수많은 일을 겪게 될 집이었다.

    우리는 늦은 아침을 먹고 나서 월정리로 향했다. 친구 말에 의하면 요즘 제주도에서 월정리가 가장 ‘핫’한 곳이라고 했다. 그곳에 젊은 친구들이 어울려 만든 ‘고래가 될’이라는 카페가 있는데, 그 가게 하나로 월정리가 바뀌었고 제주도의 문화 지형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면서 ‘누군가 근사한 커피 전문점을 경치 좋은 곳에 차렸나보다’ 하고 생각했는데, 가보니, 아니었다.

    카페 ‘고래가 될’은, 그 옥호만큼이나 무슨 임시 가설물처럼 보였다. 허름한 집을 있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담이며 벽이며 마당을 자유분방하게 고쳤을 뿐이었다. 과연 ‘핫’하다는 소문대로 꽤 많은 관광객이 몰려들었다. 그 옆으로는 카페며 음식점들이 해변을 따라 들어섰다. 대체로 서울의 홍대 앞이나 신사동 가로수길에서 언뜻 보았음직한 양상이었다. 그런 이유로 ‘고래가 될’을 사람들이 찾는지도 모른다. 대도시의 화려함에 지쳐서 제주도로 피정을 떠나온 사람들이 홍대 앞이나 신사동에서 봄직한 카페를 또 찾을 까닭이 없는 것이다. 허름한 듯하면서도 잔손길이 많이 간 ‘고래가 될’은 그런 이들이 편안하게 찾는 곳이 되었다.

    “그런데, 그게 전부가 아냐. 여기, 꽤 재미있어. 의미 있는 일도 많이 하고. 제주도에 온 젊은 예술가들이 이곳에서 여러 가지 일을 하거든. 그게 여기의 진짜 매력이지.”

    친구의 말에 따라 이리저리 살펴보니 카페 ‘고래가 될’은 그저 독특한 차림을 한 카페가 아니라 일종의 문화 아지트로 작동하고 있었다. 봄에는 반핵 퍼포먼스로 유명한 행위예술가 신주욱 작가가 이 카페에서 전시를 했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별과 달 지구까지, 세상 모든 것 저마다 자리가 있다’는 주제였다. 여름에는 ‘고래가 될’ 카페를 중심으로 ‘월정리 블루스 - 같이 살자 지구, 우리…’라는 작은 축제가 펼쳐졌다. 서귀포의 ‘이중섭미술관’이 주관하는 창작스튜디오 입주 작가 출신인 이두원 작가가 파키스탄에서 보내온 귀한 물건들이 전시되기도 했다.

    10월에는 김유지 작가의 의미 있는 전시회가 지속된다. 4년 전 어느 봄날에 아무런 연고도 없는 제주도에 무작정 상륙한 김유지 작가는 1년 넘도록 제주도 구석구석을 다녔는데, 이를 ‘치유의 시간’으로 기억한다.

    곶자왈, 올레길, 월정리 바다 등에서 힐링과 치유의 영감을 얻은 김유지 작가는 바로 그 신성한 곳들을 풍경화와 일러스트로 표현했고 이를 ‘맨도롱유지차展’이라는 제목으로 10월에 ‘고래가 될’ 카페에서 전시한다 ‘맨도롱’은 ‘따뜻하다’는 뜻의 제주도 말이다. 여기서 전시를 마친 후, 제주도 내 곳곳의 카페를 옮겨 다니며 전시가 진행된다. 10월에는 월정리의 ‘고래가 될’ 카페, 11월에는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의 ‘레이지박스’, 12월에는 제주시 일도동 ‘왓집’ 등이 그 순서다.

    세상 모든 것 저마다 자리가 있다

    제주시 구좌읍 월정리 카페 ‘고래가 될’.

    문화 바이러스

    이렇게 지금 제주도는 의미 있게 진화하고 있다. 물론 큰 흐름은 제주도의 ‘관광’이요 ‘개발’이 주도한다. 중국의 큰손들이 중산간 일대를 사들여 호텔과 골프장과 위락시설을 짓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 제주도를 ‘발전’시키자는 행정 개념도 결국 개발과 직결된다.

    이 큰 흐름에 휘말리지 않으면서, 오히려 역행하면서, 부분적으로 저항하면서, 젊은 사람들이 속속 제주도에 정착하고 있다. 작은 집을 짓고, 소박한 카페를 열고, 의미 있는 예술을 펼치면서, 그들은 서로를 문화적으로 감염시키고 있다.

    그 의미 있는 문화적 바이러스는 전염성이 강해서 한번 ‘창궐’하면 화순 곶자왈이나 사려니 숲처럼 서로 엉키면서 더 번져간다. 내 친구도 그런 꿈을 함께 꾸고 있다. 진정한 힐링이란 이렇게 새로운 삶을 가꿔가는 것은 아닐까. 나는 짙푸른 월정리 바다를 보며 한동안 생각했다. 바람이, 새로운 바람이 불어오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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