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조건 | 고미카와 준페이 지음, 김대환 옮김, 잇북, 전 6권, 각권 1만3000원

이 작품의 배경은 1943년부터 1945년까지의 만주 일대다. 주인공 가지는 그곳에서 전쟁을 겪으며 태어나서 한 번도 경험해본 적이 없는 일을, 듣도 보도 못한 해괴한 사건들을 직접 눈앞에서 보고, 누군가의 입을 통해 들으며 경악한다. 때로는 그 사건들에 직접 연루되어 어쩔 수 없이 가해자가 되기도 하고, 피해자가 되기도 한다. 그것들은, 가지의 기준으로는,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 될 짓이고, 인간에게 해서는 안 될 짓이며,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들이었다. 다시 말해 인간으로서 갖춰야 할 최소한의 조건도 갖추지 못한 짐승들이나 하는 짓들이었다. 한 인간이 ‘인간의 조건’에서 완전히 벗어난 짓들을 보거나 듣거나 하거나 당하면서 과연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또 그런 것들은 한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고 결국엔 그 인간을 어떻게 바꿔놓을까. 어떤 이는 스스로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주변 환경에 맞춰가며 살 것이다. 어떤 이는 끝내 주변 환경에 굴복해 스스로 삶 자체를 마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지는 인간이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주변 환경에 굴복하지도 않고 끝까지 인간으로 살기 위해, 인간다운 인간으로 살기 위해 스스로를 다잡고 인간이 아닌 모든 것에 맞서 싸웠다.
나는 주인공 가지를 통해 인간이 인간으로서 갖춰야 할 최소한의 기본적인 조건이 무엇인지를 볼 수 있었다. 그 기본적인 조건을 갖춘 인간이 주변 환경에 의해 어떻게 흔들리고 방황하는지도 봤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이 ‘인간의 조건’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떤 희생을 감수해야 하고, 어떤 노력을 해야 하고, 어떤 마음가짐으로 있어야 하는지를 배웠다. 비록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해도 인간으로서의 도리와 양심을 버린 채 도둑질을 하고, 짐승처럼 폭력을 휘두르고, 잔인하게 누군가를 죽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너무도 낯선 가지. 그런 자신의 행동과 모습에 후회도 하고, 방황도 하고, 갈등도 했지만 끝끝내 인간이기를 포기하지 않았던 가지. 그에게서 인간이면 당연히 가져야 할 기본적인 ‘인간의 조건’을 배웠다. 그렇게 배운 인간의 조건을 나 역시 가지처럼 죽을 때까지 내 것으로 지키며 살려고 한다.
또 한 가지, 이 책을 통해 내가 배운 점을 이제는 세상 모든 사람에게도 전해주고 싶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 인간다운 인간을 보기 힘든 사회,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지키며 살 수 없는 사회, 인간이 아닌 것들에게 지배당하는 사회가 되지 않도록. 또 우리 자식에게는 적어도 인간으로서 인간다운 도리를 지키며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물려주기 위해….
김대환 | ‘고양이 모양을 한 행복’ ‘바바 호마레 1호점’ 등 번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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