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정윤수의 힐링 healing 필링 feeling

好시절이 과연 있기나 했던가

감성팔이, 희망고문

  • 정윤수│문화평론가 prague@naver.com

好시절이 과연 있기나 했던가

3/5
好시절이 과연 있기나 했던가

경복궁에서 바라본 광화문 빌딩 숲.

이미 시간은 네 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꽤 넓은 경복궁이기에 남은 시간 동안 뭐라도 본다고 하면 빠른 걸음으로 돌아다녀야 할 형편이었다. 나는 경복궁 전체는 포기했다. 서울 한복판이니 언제든 다시 오기 쉬운 곳이다. 대신 근정전 하나만 목표로 했다. 멀리서, 가까이에서, 오른쪽에서, 왼쪽에서, 오른편에서, 다시 앞에서 그렇게 각도를 달리해 근정전만 한 시간이 넘도록 보고 또 보았다.

초겨울이지만 다행히 따스한 기운을 담은 햇살이 전의 내부로 스며들어 있었다. 노르스름한 겨울 햇살이 견고하게 시간을 머금고 있는 전의 내부를 쓰다듬으면서 조금씩 사위어갔다. 꽤 많은 사람이 저물어가는 시간을 아쉬워하며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나는, 다시, 근정전을 구경하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1815년 수립된 빈 체제는 프랑스혁명 이전의 왕정을 복위시키고 프랑스의 정복지들을 강대국들이 분할해 차지함으로써 유럽 사회의 모든 질서를 혁명 이전으로 돌려놓았다. 메테르니히가 주도한 1815년 이후의 이 경찰국가 시기를 문화사에서는 ‘비더마이어’라고 한다.

혁명의 시대 이후, 나폴레옹 시대 이후, 왕정복고 이후, 유럽 시민들은 거리의 소문에 귀를 기울이는 대신 거실과 카페의 교양 있는 중산층이 되려고 했다. 가정 음악회, 편지 쓰기, 취미용품 수집, 시낭송 등이 유행했다. 카를 슈피츠베크, 에드윈 랜드시어 등은 그 시대의 ‘아늑한 평화’를 보여준다. 화면 속의 인물들은 정원을 가꾸고 거실 인테리어를 바꾸고, 강아지를 기른다. 세상은 바꾸지 못했지만 거실은 바꾼다? 세상은 내 맘대로 되지 않지만 강아지는 내 마음을 알아준다?

혁명은 간 데 없고…



김수영은 혁명은 되지 않고 방만 바꿔버렸다고 썼다. 그는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 50원짜리 갈비가 기름 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 옹졸하게 욕을 하고” 그렇게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 자신을 질책했다.

사실 너무 오랫동안 피의 시대를 살았다. 왕의 목을 자르며 시작한 시민혁명, 기요틴의 칼날 밑에서 벌어지는 공포정치의 음모와 배신, ‘칼을 든 프랑스 혁명아’ 나폴레옹의 등장과 기나긴 전쟁, 그리고 1815년 왕정복고. 이 30년 가까운 세월은, 그 첫 문턱에 성장해 청년기를 보낸 40대 이후의 시민들을 지치게 만들었다. 게다가 경찰국가라니? 혹은 왕의 귀환? 그래서 그들은 음악, 연극, 가정음악회 등 조촐한 가족 중심 생활에 만족하기 시작했다. 가족이나 친구들이 아담한 거실이나 카페에 모여 술 한잔과 음악을 즐기는 일상에 몰입했다.

권선형의 ‘우수에 근거한 명랑성’에 따르면, 비더마이어는, 진부한 시민문화를 비판하기 위해 부정적 의미에서 착안됐으나 곧 “가정적인 작은 영역을 중시하면서 자기만족에 조용히 살아가는 인간 유형”으로 이해됐다. 19세기 중엽, 특히 독일의 ‘청년독일파’가 현실에 대한 강렬한 응전을 도모한 것과 달리 비더마이어 작가들은 “개인적인 작은 공간”에 머물고자 했다. “내면적인 힘, 소박함, 운명에 대한 말없는 순종, 작은 행복” 등이 주제가 됐고 ‘작고 귀여운’‘상냥한’‘부드러운’‘온화한’ 같은 단어들이 유행했다.

그들은 위로받고 싶었다. 이 강렬한 ‘자기에 대한 배려’! 낭만주의의 수세적 에토스가 내장된 감성이다. 고독 속에서 자신의 정신적 자율성과 예술적 자율성을 동시에 확보하고자 했던 정념들! 이를테면 결벽에 가까운 슈베르트와 그 친구들의 내면 집착과 유미주의는 외부로부터 차단된 하나의 영역, 즉 그 어떤 강제나 억압도 없이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영역을 지키고자 했다.

여기 또 하나의 유류품이 있다. 제인 오스틴의 ‘센스 앤 센서빌리티’. 언니 엘리너가 동생 매리앤에게 말한다. “그이가 그림을 직접 그리지 않는 건 사실이야. 그렇지만 다른 이들이 그리는 걸 보길 아주 좋아해. 그리고 키울 기회가 없었다 뿐이지 소질은 조금도 부족하지 않다고.” 그래도 매리앤이 걱정하자 덧붙인다. “그이와 나는 긴 시간을 보내게 된 적이 가끔 있었어. 그이를 볼 만큼 봤고, 감정을 면밀히 살폈지.”

3/5
정윤수│문화평론가 prague@naver.com
목록 닫기

好시절이 과연 있기나 했던가

댓글 창 닫기

2022/12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