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가 건강에 해롭다는 인식이 엷었기 때문에, 당시에는 담배에 대한 규제도 거의 없었다. 그래서 당시에는 담배에 ‘입문’하는 시기도 지금보다 훨씬 일렀다. 1949년 잡지 ‘신천지’는 저명인사들의 ‘애연지(愛煙志)’를 연재했다. 필자로 참여한 계용묵, 홍기문, 김용준, 김동명, 서천순, 손우성, 안종화 등이 고백한 바에 따르면, 그들이 처음 담배를 접한 것은 이르면 7~8세 때였고, 늦어도 중등학교 때를 넘지 않았다. 물론 그들은 어른들 몰래 숨어서 담배를 피웠다고 회고하지만, 당시에는 남성 대부분이 어릴 적부터 담배를 접했다.
소파 방정환이 1930년 신문지상에 발표한 ‘담배갑’이라는 동화에서도 그러한 사정을 엿볼 수 있다. 이 동화는 서울 어느 소학교에서 담배 피는 학생들을 찾아내기 위해 몸 검사를 실시하다 벌어진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학생들을 운동장에 집합시켜놓고 교사들이 담배를 소지한 학생들을 적발해낸다. 몇몇 학생이 적발되자 누군가 다급한 나머지 담뱃갑을 버렸고, 그것을 발견한 교장 선생은 그 범인이 자수할 때까지 두 시간 넘게 학생들을 운동장에 세워놓는다. 교장 선생의 지루한 훈화가 이어지고 쓰러져가는 학생들이 생겨날 때쯤 한 학생이 자신이 담뱃갑을 버린 범인이라고 나선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학생은 괴로워하는 동료들을 위해 일부러 거짓말을 한 것이었고, 사정을 알게 된 교장 선생은 그 학생의 희생정신을 치하했다는 이야기다. 결국 이 동화가 담고 있는 메시지는 희생정신을 길러야 한다는 것과 소학교 학생들은 담배를 피워서는 안 된다는 것, 두 가지인 셈이다.
1930년대 들어서는 담배가 특히 미성년자에게 해롭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미성년자들의 흡연을 금지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졌다. 그러자 총독부는 1938년에야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금주·금연법을 제정한다. 일본에서 이 법이 제정된 것은 1900년이었다. 이 법에 따라 미성년자의 흡연과 음주가 금지되었고, 흡연을 묵인한 부모나 판매자는 처벌을 받았다.
그러나 이 법에서 규정한 미성년자란 만 12세 미만을 의미했으므로 사실상 규제의 효과는 거의 없었다. 만 12세 이상인 경우에도 중학교 등에서는 흡연을 금지했지만, 지금처럼 학교 화장실은 항상 흡연자들로 북적였다고 한다. 이와 관련된 사정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 정지용의 ‘선취(船醉)’라는 시다.
배 난간에 기대서서 휘파람을 날리나니
새까만 등솔기에 팔월달 햇살이 따가워라.
금단추 다섯 개 달은 자랑스러움, 내처 시달품.
아리랑 쪼라도 찾어 볼가, 그 전날 부르던,
아리랑 쪼 그도 저도 다 잊었습네, 인제는 버얼서,
금단추 다섯 개를 삐우고 가자, 파아란 바다 우에.
담배도 못 피우는, 수탉 같은 머언 사랑을
홀로 피우며 가노니, 늬긋 늬긋 흔들 흔들리면서.
-정지용, ‘선취’
이 시는 조선과 일본을 오가는 선상에서, 일본 대학의 교복을 입은 식민지 청년의 자괴감을 담은 작품이다. 화자는 식민지 지식인의 상징인 ‘금단추 다섯 개’를 단 자신의 모습을 부끄러워하며 금단추를 뜯어 바다에 던져 버린다. 이어 화자는 식민지 조국에 대한 애정과 조국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자신의 모습을 “담배도 못 피우는, 수탉 같은 머언 사랑”이라는 말로 드러낸다.
청춘의 상징
당시 학생들은 어른들의 눈을 피해 어릴 적부터 담배를 피웠고, 그것은 모방심리의 소산이자 청소년기에 흔히 나타나는 반항심리의 표출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담배도 못 피운다는 한탄은 그만한 치기조차 없는 자신의 나약함에 대한 자조적 표현이다. 정지용은 유학길에 나서던 때의 모습을 담은 ‘다시 해협’이란 시에서도 “스물한 살 적 첫 항로에/ 연애보담 담배를 먼저 배웠다”라고 썼다. 이렇듯 정지용의 시에서 담배는 연애와 더불어 청춘의 상징으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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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와 연애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다.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에는 이런 노래가 나온다. “연인들의 달콤한 이야기, 달콤한 이야기/ 이 모든 것들은 담배연기라네!/ 그들의 희열, 그들의 희열, 그리고 그들의 맹세/ 이 모든 것들은 담배연기라네./ 담배연기가 허공으로 떠도는 것을 우린 바라본다네.” 담배와 연애 모두 농도 짙은 쾌락을 선사한 뒤에는 연기처럼 흩어진다. 또한 두 가지 모두 쾌락만큼이나 강렬한 고통을 수반하기도 한다.
그러나 청춘 시절에는 그러한 사실을 알기 어렵다. 정지용이 34세에 쓴 ‘다시 해협’에서야 비로소 담배와 연애를 동렬에 놓을 수 있었던 것도, 연애가 담배 연기와 같다는 사실을 깨달을 만큼 나이를 먹었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