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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으로 읽는 우리 근대문학

슬픔과 감상, 수탈의 담배

안서 김억

  • 소래섭 | 울산대 국어국문학부 교수 letsbe27@ulsan.ac.kr

슬픔과 감상, 수탈의 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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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과 감상, 수탈의 담배

1940년대 일제강점기 담배공장에서 포장 작업을 하는 광경.

가장 시적인 담배 예찬론자

또한 이 작품에서 여인의 죽음과 관련된 담배는 이승과 저승을 연결하는 매개이기도 하다. 리처드 클라인에 따르면, 북미 인디언들이 사용하는 긴 담뱃대의 깜부기불은 종족이 둥그렇게 둘러서 있는 원과 그들 조상의 영혼들을 결합시킨다. 시간으로부터 도피하고 과거와 미래를 소환하는 힘을 지닌 담배는 인디언과 그들의 죽은 조상들을 연결한다.

김소월은 ‘무덤’이라는 시에서 고구려의 거대한 고분이나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떠올리게 하는 성스러운 사원으로서의 무덤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다. 이 작품의 담배 역시 그러한 무덤의 이미지와 연결돼 있다.

이와 같이 김소월은 담배에 김억과 유사한 이미지를 부여하면서도 스승을 넘어선다. 김억이 외국의 시를 번안하거나 번안시를 흉내 내는 데 그친 반면 김소월은 담배에 얽힌 민간의 속설과 자신의 내면을 결합해 담배라는 대상을 자기 식으로 소화해내고 있다.

김억이나 김소월과는 달리 담배의 심미적 측면을 감각적 쾌락에서 찾은 것으로는 경성제대 의학부 박사 출신인 정근양의 ‘담배’라는 글이 있다. 당시에 발표된 담배 예찬론이 대부분 김동인의 글처럼 실용적인 측면을 언급하거나 외국 책을 인용해 기존의 견해를 반복하는 반면, 의학도였던 정근양은 담배를 후각, 시각, 청각, 미각 등 감각적 차원에서 논한다.



그는 담배와 가장 긴밀하게 연관된 감각으로 시각을 꼽는다. 고요한 방 안에서 상승하는 담배 연기를 보노라면 한없는 기쁨을 느낄 수 있으며, 따라서 앞을 볼 수 없다면 담배로 인한 쾌락의 절반은 날아가버린다고 그는 말한다. 또한 담배는 그 종류에 따라 독특한 향기로 후각을 자극한다. 따라서 향기만으로도 그 담배가 어떤 종류인지 구별할 수 있다. 또 정근양은 특이하게도 담배로 얻는 청각적 쾌락 또한 지대하다고 주장한다.

담배는 빨면 재가 앉는다. 그 재는 열이 있다. 이것을 물을 넣은 재떨이에 털 때 일어나는 소리, 뜨거운 물 속으로 들어갈 때 나는 잠복하는 그 소리를 나는 매우 좋아한다. 순간적인 그 소리, 곧 꺼지는 그 소리는 어떠한 영기(靈氣)를 가진 것도 같다. 뉴턴이 시사를 받았다고 하는 떨어지는 능금도 땅에 떨어져 어떠한 소리를 낼 적에 그의 머리 속에는 어떠한 영감이 떠올랐을 것이나 아닐까. 재떨이에는 반드시 물이 들어야 하고 물은 맑아야 한다. 아래로 가라앉아 내려가는 재 줄기를 바라봄도 또한 버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담뱃불을 죽일 때도 반드시 물 속에 던져야 한다. 화재예방도 되려니와 그윽한 그 소리가 버리기 아깝다.

담배를 물이 든 재떨이에 넣어 끌 때 나는 소리에도 깊은 매혹을 느끼고 있는 것을 보면, 정근양은 무척 섬세한 감각의 소유자였을 것이다. 담배로 얻을 수 있는 감각적 쾌락 중에 그가 가장 하위로 꼽은 것은 미각이다. 그는 담배의 맛은 미각을 통해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후각, 시각, 청각 등을 통해 일어나는 혼합 상태를 통해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만약 미각만으로 담배의 맛을 논한다면 니코틴으로 인해 담배는 항상 쓴맛만을 낼 것이다. 그러나 애연가는 결코 담배가 쓰다고 느끼지 않으며, 이는 담배의 감각적 쾌락 중에 미각이 가장 열등한 위치에 있다는 증거라는 것이다. 정근양의 글은 산문이지만 대상이 지닌 감각적 측면을 예리하게 포착한다는 점에서 당대의 어느 담배 예찬론보다 시적이고 미학적이다.

슬픔과 감상, 수탈의 담배

1930년대 후반, 인천의 중국인거리에 들어선 담뱃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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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래섭 | 울산대 국어국문학부 교수 letsbe27@ulsa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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