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맛으로 읽는 우리 근대문학 <마지막 회>

근대는 초콜릿 냄새가 난다

이상

  • 소래섭 | 울산대 국어국문학부 교수 letsbe27@ulsan.ac.kr

근대는 초콜릿 냄새가 난다

3/3
근대는 초콜릿 냄새가 난다

이상의 일어 친필 원고 ‘수인(囚人)이 만든 갇힌 마당’이라는 시의 일부.

日曆은쵸콜레이트를늘인(增)다.

여자는쵸콜레이트로化粧하는것이다.

여자는트렁크속에흙탕투성이가된즈로오스와함께엎드러져운다.여자는트렁크를運搬한다.

여자의트렁크는蓄音機다.

蓄音機는喇叭과같이紅도깨비靑도깨비를불러들였다.



紅도깨비靑도깨비는펜긴이다.사루마다밖에입지않은펜긴은水腫이다.

여자는코끼리의눈과頭蓋骨크기만큼한水晶눈을縱橫으로굴리어秋波를濫發하였다.

여자는滿月을잘게잘게씹어서饗宴을베푼다.사람들은그것을먹고돼지같이肥滿하는쵸콜레이트 냄새를放散하는 것이다.

- ‘興行物天使’, 부분

이상의 작품답게 내용 파악은커녕 읽어 내려가기도 어려운 작품이다. 당시 초콜릿은 가장 ‘모던한 과자’로 소개되면서 ‘사랑을 낚는 미끼’로 쓰였다. 서구에서 수입된 빙수, 초콜릿, 커피, 맥주 등은 감각적 쾌락을 충족시키기 위한 기호품에 머물지 않고 계층적 지위를 구별 짓거나 연애에 성공하기 위한 수단이 되었다. 서구에서 수입된 새로운 유행에 비판적이었던 어떤 이는 현대 여성의 악취미로 ‘활동사진, 머리 지지기, 입술 칠하기’와 함께 ‘초콜릿’을 꼽았을 정도로 초콜릿은 첨단의 유행을 상징했다.

인용한 두 작품에서 ‘여자’는 초콜릿을 먹고 그 냄새를 발산하며, 그 ‘여자’에 매혹당한 사람들 또한 “돼지같이 비만하는 초콜릿 냄새”를 발산한다. 두 작품에서 에로틱하고 그로테스크하게 묘사된 ‘여자’의 이미지는 당대 카페의 여급이나 영화 속 여배우가 발산하는 ‘에로 그로’의 이미지와 겹쳐 있다. 1920년대 후반 처음 등장해 1930년대에 들어서 번성했던 카페는 에로틱한 실내 분위기를 갖추고 짙은 화장에 요염한 의상을 걸친 여급들을 고용함으로써 수많은 남자에게 동경의 대상이 되었다. 실업가, 점원, 학생, 교사, 기자, 부랑자 등 거의 모든 계층의 남자가 카페에 몰려들었다. 서양 여배우를 비롯해 영화의 흥행을 바탕으로 스타로 떠올랐던 여배우 또한 카페 여급만큼의 에로를 발산했다. 실제로 많은 여배우가 경제적 궁핍을 견디다 못해 자진해서 카페의 여급으로 일했다.

초콜릿의 끈적끈적함

이상은 그러한 ‘여자’들이 발산하는 ‘에로 그로’와 그것에 매혹된 사람들이 느끼는 취기를 ‘초콜릿’이라는 끈적끈적한 물질적 이미지로 제시한다. 두 작품에서 ‘여자’와 그 ‘여자’를 동경하는 ‘사람들’이 매혹된 것은 ‘초콜릿’이다. ‘여자’는 ‘사람들’을 유혹하기 위해 초콜릿으로 화장을 하고, ‘사람들’은 초콜릿 냄새에 이끌려 ‘여자’를 따른다. ‘여자’와 ‘사람들’이 매혹된 것은 결국 ‘초콜릿’이라는 표면적 장식, 내적 진실을 가리는 인공적인 냄새, 냄새에 의해 떠올려진 환상 속의 육체에 불과하다. 1930년대 초부터 ‘에로 그로 난센스’는 당대 문화의 키워드가 되었고, 이상은 그러한 자극들로 이루어진 당대의 문화를 ‘초콜릿 냄새’로 표현한다. ‘초콜릿 냄새’는 본격적인 도시화의 진행과 함께 수입된 첨단 서구 문명의 냄새이자, 당대의 모든 사람이 동경했던 유행을 대표하는 냄새다. 어쩌면 이상에게 그것은 근대의 냄새, 자본주의의 냄새와도 동의어였을 것이다.

‘흥행물천사’에서 ‘여자’는 “실컷 웃어도 또한 웃지 아니하여도 웃는”다. 사람들은 그 웃음에 매혹되지만, 그것은 이미 상업화된 웃음, 억지웃음일 뿐이다. 이상은 ‘여자’의 눈이 ‘곡예상(曲藝象)’, 즉 곡예 공연을 펼치는 코끼리의 눈과 같이 되었다고 말한다. 영화 간판이나 사진엽서 속의 여자 모델은 한결같이 웃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몸짓과 표정은 곡예 하는 코끼리의 모습과 다를 바 없다. 그것은 철저하게 계산되고 상업화된 육체를 드러낼 뿐이다.

근대에 들어서 냄새도 웃음과 마찬가지로 상업화의 길을 걷게 된다. 향수와 방향제 등 냄새를 처리하는 대량생산 기성품이 쏟아져 나오면서, 냄새는 자본주의 경제체제 속으로 편입된다. 과거에는 냄새가 그것을 발산하는 물질의 내적인 가치를 드러내는 지표가 되었던 반면, 상업화된 냄새는 환상을 충족시키는 대행물의 역할을 수행한다.

근대는 초콜릿 냄새가 난다
소래섭

1973년 전북 익산 출생

서울대 외교학과, 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석·박사

울산대 국어국문학부 교수

저서 : ‘백석의 맛’ ‘불온한 경성은 명랑하라’ ‘시는 노래처럼’ 등


향수 제조업자들은 자신들이 파는 냄새가 사람들에게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광고하지만, 이상은 그것이 ‘초콜릿’을 먹고 “돼지같이 비만하는” 육체를 갖게 되는 것일 뿐이라고 비웃는다. 근대에 들어 냄새를 제거하기 위해 노력하는 동안 소외되었던 육체는, 상업적이고 인공적인 냄새로 인해 또다시 소외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신동아 2014년 5월호

3/3
소래섭 | 울산대 국어국문학부 교수 letsbe27@ulsan.ac.kr
목록 닫기

근대는 초콜릿 냄새가 난다

댓글 창 닫기

2023/04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