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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셀러’와 책의 굴욕

TV에 떠야 팔린다?

  • 정해윤│시사평론가 kinstinct1@naver.com

‘미디어셀러’와 책의 굴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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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담 쌓은 젊은 세대

그렇다고 탈근대 시도에서 앞서가는 것도 아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이후 일본 소설이 인기를 끄는 한가운데에는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추리작가가 있다. 한국은 1970~80년대 김성종이라는 걸출한 추리작가의 등장 이후 거의 대가 끊기다시피 했다. 리얼리즘과 순수문학만을 강조하는 풍토에서 자유로운 장르문학이 뿌리내릴 수 없었다. 한국문학은 지금 실리도 명분도 찾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15년 콘텐츠산업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출판시장은 2010년을 정점으로 매출액 규모에서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반면 2014년 상반기 발행 종수는 전년도 동기 대비 3.1% 늘었다. 요컨대 다양성은 더해졌지만 독자 이탈은 심화하는 형국이다. 여기에다 TV나 영화를 보고 책을 고르는 현상이 더해지고 있는 것이다. 미디어셀러의 득세에 대해 일부 평론가는 “정보과잉 시대가 초래한 선택장애 상황에서 영상 미디어가 결정권을 발휘하는 것”이라고 풀이한다. 그러나 지금처럼 영상 미디어가 출판 콘텐츠의 수요를 좌지우지하는 현상이 지속된다면 향후 출판시장의 다양성은 보장되기 힘들 것이다.

지난해 도서 구매 고객 통계도 주목할 만하다. 인터넷 서점 YES24의 통계에 따르면 30대 중 책을 구매한 사람의 비율은 2013년 36.1%에서 2014년 33%로 하락했다. 반면 40대는 35.7%에서 39.7%로 증가해 최대 구매층을 차지했다. 이와 관련해 한 가지 뚜렷한 사실은 젊은 세대로 갈수록 책과 단절되고 있다는 점이다.

같은 통계에서 20대는 2013년 16.3%에서 2014년 14.5%로 줄었다. 30, 40대의 절반도 채 되지 않는다. 게다가 주목받지 않지만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늘 상위권을 기록하는 책은 토익과 같은 영어 수험 서적이다. 이미 대학 도서관 열람실은 교양서적도 전공서적도 아닌 영어 수험 서적이 차지한 지 오래다. 초중고교생은 물론 대학생도 책과 담을 쌓고 지내는 셈이다.



미디어셀러 현상의 가장 큰 문제는 ‘젊은 세대는 책을 거의 읽지 않고 스스로 책을 선택하는 능력조차 잃어가고 있으며, TV에 나온 책만 마지못해 읽는다’는 점이다. 이젠 독자로서 직접 책과 만나지 않는다. 시청자에서 독자로 간혹 유입될 뿐이다. 그것도 1년이나 2년에 한 번 정도만.

‘미디어셀러’와 책의 굴욕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감정수업’, ‘정의란 무엇인가’.

연예인이 책 내는 이유

사정이 이러니 출판 기획자 처지에선 영상 미디어에 많이 노출된 인물을 저자로 섭외하는 것이 베스트셀러의 지름길이라고 여길 수 있다. 실제로 연예인이 출판계의 인기 저자로 자주 등장한다. 이들은 높은 인지도 덕에 팬 사인회만 몇 차례 열어도 기본 판매부수는 충분히 채운다고 한다.

이적, 타블로, 차인표, 구혜선 등은 소설을 펴냈다. 소설은 아마추어의 진입장벽이 높은 장르다. 콘텐츠에 대한 호불호도 뚜렷하게 갈린다. 신인이 펴낸 소설이 베스트셀러로까지 이어진 경우는 드물었다. 그런데 이제 연예인들은 쉽게 소설을 쓴다. 책의 내용보다는 저자의 인지도가 판매량을 좌우하는 쪽으로 풍토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연예인은 비소설 분야엔 더 쉽게 접근한다. 최근에는 부업 같은 것을 염두에 두고 전략적으로 출간하는 경우도 있다. 이혜영, 전혜빈, 유진은 패션·미용 관련 책을 냈다. 조혜련, 김영철은 어학 관련 책을 냈다. 양희은, 이현우, 알렉스는 요리책을 냈다.

특히 눈여겨볼 대목은 자기계발서 분야다. 자기계발서는 강연 시장과 긴밀히 연동돼 있다. 미국은 수사학이 발달한 서구의 전통을 이어받아 오래전부터 강연 시장이 활성화했다. 한국에선 강연 시장이 커진 게 불과 수년 전이다. 진보진영이 ‘○○콘서트’ 형식의 강연회를 연 것이 일반 대중의 참석을 활성화했다고 한다.

강사들의 ‘몸값’을 보면 시장이 왜곡돼도 한참 왜곡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최근 가장 인기 있는 강사는 주로 개그맨이다. 이들은 저서도 내면서 대중을 ‘힐링’하기에 바쁘다. 하지만 이들의 몸값이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 같은 석학의 2배 이상이라는 점은 납득하기 어렵다. 단지 강연을 재미있게 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개그맨을 능가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기존의 만담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결국 미디어셀러와 마찬가지 구조다. 콘텐츠가 좋아서 잘 팔리는 것이라기보다는 영상 미디어로 뜬 유명 인사라 잘 팔리는 것이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경제학 금언은 아마 지금의 한국 출판시장에서도 통용되는 진리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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