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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가 있는 풍경

멸치잡이 어부의 장단이 고은의 詩로, 클래식 포크로

김광희 ‘세노야’

  • 글·김동률 | 서강대 MOT대학원 교수 yule@empas.com 사진·故 권태균 | 사진작가

멸치잡이 어부의 장단이 고은의 詩로, 클래식 포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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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치잡이 어부의 장단이 고은의 詩로, 클래식 포크로

봄바다로 출어를 앞둔 어부들의 손놀림이 더없이 바쁘다.

이미 자제력을 잃은 최경식(당시 이화여고 음악교사, 현재 미국 거주)은 고은에게 노래 한 자락을 강요했다. 옆자리에 앉은 그의 누이동생 최양숙(성악가, 가수, 당시 서울대 음대 재학)은 그런 광경을 재미있다는 듯이 지켜보고 있었다. 고은은 난처했다. 동갑내기인 최경식과는 호형호제하는 친구 사이라 그렇다손 쳐도 최양숙, 또 최양숙의 성악과 동기생인 미모의 여대생 김광희(당시 서울대 음대 재학, 현재 미국 거주)까지 재미있다는 듯 턱을 괴고 바라보는데 미칠 지경이었다고 회고한다.

밤이 깊었다. 선술집은 점차 조용해지고 옆자리 손님들도 떠난 지 오래다. 술에 취해 고은을 괴롭히던 최경식도 이미 곯아떨어진 지 오래. 텅 빈 선술집 안을 둘러보던 고은은 실내를 채운 적막감을 주체하지 못하다가 마침내 노래인지, 소리인지 모를 타령조의 한 구절을 읊어 내리기 시작한다.

“세노야, 세노야/ 산과 바다에 우리가 살고/ 산과 바다에 우리가 가네/ 세노야 세노야/ 기쁜 일이면 저 산에 주고/ 슬픈 일이면 임에게 주오….”

누에가 실 뽑듯이

고은이 누에가 실을 뽑듯, 선무당이 도끼 칼날에 올라 설움에 겨운 사설을 늘어놓듯 한 마디, 한 마디씩 노래말을 뽑아냈다. 지켜보던 김광희가 종이에다 오선을 죽죽 그리고는 콩나물 대가리를 채워 넣기 시작했다. 선술집에선 이제 더 이상 술기운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붉은 백열등을 감싸 안은 밤안개만이 잠시 동안의 적막을 채워줄 뿐. 음표 붙이기를 끝낸 김광희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 고요함을 뚫고 최양숙이 구겨진 오선지를 잡고 노래를 뽑았다.



“세에노야, 세에에에노야/ 싸안과 바다에에 우리가 싸알고/ 싸안과 바다에에 우우리가 가아아아네/ 세노야 세노야/ 기이쁜 일이면 저 싸안에 주우고/ 슬픈 일이며으은 이이메에게 주오오….”

노래 ‘세노야’의 탄생 설화다. 일부에서는 ‘세노야’의 무대가 고은의 고향인 전북 군산 옥구 앞바다라고 하나 이는 전혀 근거 없는 얘기다. 필자는 최근 고은 선생과 만나 그 시절 얘기를 또렷하게 들었다. 정리하자면, 노래의 부모는 고은과 김광희이고 모티프를 얻은 장소는 남해 진해와 통영 앞바다, 그리고 노래가 탄생한 장소는 종로5가 막걸릿집이다. 그리고 ‘세노야’는 당연히 성악가 최양숙의 노래다.

최양숙은 서울대 음대 성악과 출신이라는 특이한 이력으로 1960~70년대를 풍미한 최초의 여성 샹송 가수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성악가에서 대중가수로의 변신은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졌다. 1938년 함경남도 원산 출신. 1·4 후퇴 때 가족과 함께 월남해 마산 무학여중에 다녔다. 휴전 후 서울로 올라와 서울예고를 거쳐 서울대 음대 성악과에 진학했다. 대학 2학년 때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에 출연했을 때만 해도 그녀의 꿈은 오페라 가수였다.

대중음악과의 인연은 그해 KBS 합창단원으로 몇 달간 동남아 순회공연을 떠나면서 시작됐다. 오랜 항해의 지루함을 잊기 위해 선상의 즉석 음악경연대회에 출연, ‘쟈니 기타’를 불러 큰 호응을 얻었다. “가수로 전향해보라”는 주위 사람들의 권유로 대중가수로 외도를 시도했다. 쓸쓸함이 담긴 독특한 저음의 음색 때문에 그의 노래는 일반 대중보다는 주로 지식인 마니아들의 사랑을 받았다.

불후의 3대 명곡

그런 연유로 사람들은 최양숙의 노래 ‘세노야’를, 이 곡을 대중에게 널리 알린 양희은의 노래로 기억한다. 당시 서강대 학생이던 20대 초반의 양희은이 이 노래를 부르면서 대학가의 주목을 받았다. 비교적 심플한 곡조로 기타 연주가 쉬워 통기타, 청바지 세대, 이른바 ‘쎄시봉’ 세대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멸치잡이 어부의 장단이 고은의 詩로, 클래식 포크로

통영은 유치환, 박경리, 김상옥, 김춘수, 윤이상, 전혁림 등 쟁쟁한 예술가들을 배출한 예향이다. 왼쪽 사진은 통영우체국앞에 있는 청마 유치환 시비.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는 것보다 행복하다’로 유명한 시 ‘행복’이 새겨져 있다. 오른쪽은 벽화 그림으로 유명해진 통영의 동피랑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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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김동률 | 서강대 MOT대학원 교수 yule@empas.com 사진·故 권태균 |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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