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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 같은 결혼도 이혼하면 아쉽다!

깔끔하게 헤어지는 게 가능할까?

  • 최명기 | 청담하버드심리센터 연구소장 artppper@hanmail.net

지옥 같은 결혼도 이혼하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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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鄕愁심리에 빠진다

여성의 경우는 어떨까. 이혼한 남성이 의식주에서 당장 비상사태가 발생하는 것에 비해 여성은 남편이 없어도 당장 큰 불편은 느끼지 않는다. 그런데 시간이 가도 심리적 상처가 치유되지 않는 이들이 종종 있다. 심하게 싸운 경우 마음이 엉키게 된다. 이혼하는 과정에서 상대방의 마음을 뜯어내다보면 내 마음이 너덜너덜해진다. 나와 상대방의 마음이 분리되지 않은 상태여서 그렇다. 이혼하고 마음이 망가지면서 자아 경계가 허물어진다.

언어적, 신체적 공격은 마음을 찌르는 창(槍)과 같다. 그런 날카로운 창으로 반복적인 공격을 받다보면 나라는 자아의 경계가 군데군데 손상된다. 좋건 싫건 나를 괴롭히는 상대방이 내 마음속에 흔적을 남기고, 심지어는 나의 일부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떼어내기가 힘들다. 억지로 한참 만나지 않더라도 내 안에 남아 있는 그 남자의 일부가 계속 마음을 후벼 판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만나는 게 마음이 편할 것 같다. 그 무렵에 우연히 남자에게서 연락이 오면 마음이 동해서 만나게 된다. 남자를 다시 만나는 순간 인생이 망가진다는 것을 안다. 다시 만나면 안 된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자꾸 생각이 난다. 미운 정, 고운 정이 들어서 헤어지고 나서도 잊지 못한다.

사사건건 싸우던 부부도 막상 헤어지면 마음이 묘해진다. 그동안은 상대방으로 인해 받은 고통만 떠올랐지만, 이제 끝이라고 생각하면 좋았던 순간이 느닷없이 떠오른다. 노스탤지어, 즉 ‘향수(鄕愁)심리’가 작동하는 것이다. 한국에서 살다가 미국으로 이민 가면 한국이 살기 더 좋은 것 같고, 그래서 다시 한국으로 오면 미국이 더 살기 좋았던 것 같다.



아무리 싸우고 비난했더라도 아이가 아프거나 급히 어딘가로 움직여야 할 때 남편이 아쉽다. 밖에서 무시라도 당하면 이럴 때 남편이 있었다면 내 편이 돼줬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썩은 기둥이라도 없는 것보다 낫다는 말처럼 막상 남편이 없으면 서럽고 외롭고 아쉬운 점이 너무 많다.

양육비를 놓고 전남편과 다투게 되면 진짜 치사하고 더럽다. 아이 아빠는 양육비란 온전히 아이를 위해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이를 먹이고 입히고 공부시키는 데 써야만 한다는 거다. 아이 엄마가 살림살이를 사거나 옷을 사는 경우 꼬치꼬치 따지면서 일일이 영수증을 확인하자고 한다. 아이 엄마가 학원비가 모자라다고 하면 꼭 거길 보내야 하느냐면서 따지기도 한다.

어떤 아이 아빠는 아이를 만났을 때 아이가 갖고 싶다고 한 장난감을 사주고 그걸 양육비에서 제하자고 한다. 장난감을 사주면 아이는 아빠가 사줬다는 것을 분명히 기억한다. 아빠는 아이가 좋아하는 걸 보며 흐뭇해한다. 그런데 양육비를 줬을 때 “아빠가 준 돈으로 생활하니까 아빠에게 고마워하라”고 아이에게 알려주는 엄마는 없다. 그러기는커녕 아빠가 돈을 덜 부쳐줘 우리가 이렇게 힘들게 사는 거라고, 엄마가 아이를 세뇌할 것이라 지레짐작한다. 그래서 아이가 원하는 것을 직접 사줘서 아이의 점수를 따려고 한다.

양육비를 아이에게 용돈으로 직접 주겠다고도 한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고, 이혼을 하고 시간이 지나면 양육비를 주다 안 주다 하게 마련이다.

재혼? 아이 핑계는 대지 말라!

자녀를 아내에게 빼앗겼다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남자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양육비 지급을 중단한다. 아이 엄마와 갈등이 생기면 복수하듯 양육비를 끊기도 한다. 다른 여자가 생기거나 재혼을 하면 양육비 지급을 뚝 멈춘다. 아내가 경제적 능력이 있거나 처갓집이 잘사는 경우 “내가 더 힘들다”고 하면서 양육비를 내놓지 않는다. 이렇게 한 번, 두 번 미루기 시작하면 끝없이 미루게 된다. 아내는, 처음에는 어떻게든지 받아내야겠다고 생각하지만 자꾸 다투다보면 치사해서 안 받고 말겠다는 생각이 든다.

따라서 양육비 중 일정 액수는 일시불로 받는 것이 현명하다. 하지만 남자들은 어떻게든 양육비를 목돈으로 주지 않으려고 한다. 아이 엄마가 그 돈으로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는 의심에서다. 매달 돈을 줄 때는 아내와 자녀를 통제할 수 있는데 목돈을 주면 그 맛도 없다는 거다.

이혼한 여성들이 돈보다 더 힘들어하는 건 섹스다. 남자들은 이혼한 후 휘황찬란한 대한민국 밤문화를 통해 성욕을 해소하곤 한다. 물론 아내도 성인 나이트클럽에 가서 ‘원나이트’를 꿈꿀 수 있다. 여성을 상대로 하는 호스트바도 있다. 하지만 그것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여성은 남성만큼 편하게 성욕을 해소할 수 없다. 돈도 쪼들리고, 외롭고, 성적으로도 욕구불만인 경우 남자들에게 자꾸 눈길이 간다. 그러다 친해지면 함께 살게 된다.

하지만 돈 때문에, 섹스 때문에 남자와 산다고 생각하면 스스로도 비참하다. 그래서 아이들 핑계를 댄다. 아이에게는 아버지가 필요하다는 식이다. 과거에 모질게 당했던 학대는 잊어버린 채 아이에겐 아빠가 필요하다고 하면서 전 남편에게 연락해 다시 합치기도 한다.

그러나 아이가 진정 원하는 것은 뭘까. 재혼하는 것도 좋다. 전남편과 합치는 것도 좋다. 하지만 아이를 핑계로 대서는 안 된다. 내가 재혼을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지, 아이를 위해서라고 핑계를 대서는 안 된다. 아이는 굶어 죽을지언정 새아빠하고 살기 싫다. 자신을, 그리고 엄마를 때리고 욕하던 아빠와 다시 사는 것은 죽기보다 더 싫다.

결혼은 커다란 짐을 지고 오르막길을 오르는 것과 같다. 걸으면 걸을수록 짐은 더욱 무거워진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짐이라는 생각에 내려놓는다. 그런데 막상 내리막길로 굴러떨어지고 보니 그 짐은 커다란 보석이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등에 다시 짊어지려고 해도 쉽지 않다.

옛날에는 쓰러지면 안 된다는 생각에 한 걸음 한 걸음 버티었지만, 한번 내려놓은 짐을 또다시 짊어지고 다시 걸을 엄두가 나지 않는다. 허리도 펼 수 없다. 결혼생활도 마찬가지다. 살아갈 때는 지옥 같던 결혼생활도 막상 이혼하면 아쉽다. 함께 살아가는 동안에는 어떻게든 버티지만 다시 시작하려면 엄두가 나지 않는다. 이혼할 때는 신중해야 한다. 하지만 일단 이혼하면 뒤돌아보지 말아야 한다.

신동아 2015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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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기 | 청담하버드심리센터 연구소장 artpppe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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