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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 장편소설

둔주곡(遁走曲) 80년대

제1부 / 帝國에 비끼는 노을 | 8화. 조짐 혹은 참사

  • 이문열

둔주곡(遁走曲) 80년대

3/11
[일러스트·박용인]

[일러스트·박용인]

1.
토요일이라 서둘러 편집을 끝내고 첫 교정지를 내려보내며 퇴근을 준비하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서울 주거래 출판사의 노 부장이었다. 

“불휴 씨, 긴급이에요. 조용히 듣고 대답만 하세요.” 

“예?” 

“사장님 지신데요, 얼른 퇴근해서 집으로 가셔야겠어요.” 

그가 등단한 첫해부터 사장을 도와 문예편집인 겸 에이전트 역할을 하며 작가 관리와 창작기획 및 홍보판촉까지 거들어와서 그런지, 그와는 동갑내긴데도 새로운 제안을 할 때는 손위 누이같이 굳은 얼굴로 지시 투가 되는 노 부장이었다. 그런데 그날따라 왠지 노 부장의 목소리가 다급하고 절박하게 들렸다. 



“안 그래도 지금 막 퇴근하려고 하는 중인데, 갑자기 서울서 남의 직장에까지 장거리 전화를 걸어 얼른 퇴근하라니요. 그것도 사장님이 직접 지시로 노 부장을 시켜….” 

“오늘 댁에 계셔서는 안 될 것 같은 일이 있어 그래요. 아직 신문사 퇴근 전이면 집에 전화해서 사모님과 아이들부터 얼른 불러내세요. 식구대로 최소한 사나흘은 밖에서 지낼 생각하고 준비해서 나오라 하시고.” 

그제야 그도 섬뜩한 느낌이 들어 절로 떨려오는 목소리를 농담조에 감추며 물었다. 

“아니, 노 부장 무슨 일이요? 최소한 사나흘은 식구대로 밖에서 지내야 한다니, 누가 우리 집에다 폭격이라도 한답디까?” 

“제 얘기 심각하게 들어주세요. 그러고 보니 불휴 씨가 지금 바로 집으로 가는 것도 경우에 따라서는 위험할 수 있겠네요. 그러지 말고 사모님께 차분하게 전화해서 아이들 데리고 시내로 나오라고 하세요. 사모님과 아이들 모두 옷가지 좀 챙기고 일용품도 급히 쓸 것은 함께 싸서 기차역이나 시외버스 정류소 부근으로. 주말 나들이 같은 것으로 둘러대, 현금도 있는 대로 긁어모아 모두 들고나오게 하는 게 좋겠네요. 어쨌든 아이들과 함께 급히 가야 할 곳이 있다고 하고. 시간 없어요. 그래서 집 밖에서 사모님과 아이들 만나거든 다시 제게 전화 주세요.” 

“이거 무슨 간첩 접선 지령이라도 받는 것 같네. 아니, 노 부장님. 도대체 왜 그러시는지 짐작이나 좀 할 수 있게 해주시오.” 

“미안해요. 어서 신문사부터 떠나세요. 다시 말해 누구든 지금 이 시각 불휴 씨가 있을 곳이라 짐작되는 곳에서 속히 떠나라고요. 집에 거는 전화도 신문사 나간 뒤 공중전화를 이용하는 게 좋겠고, 내게도 공중전화로 해야 이렇게 수선 떠는 까닭이라도 차분히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네요.” 

그러고는 전화를 철커덕 끊어버렸다. 

그제야 그에게도 서울에서 무언가 심상찮은 일이 벌어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으나 그게 무슨 일인지는 전혀 짐작이 가지 않았다. 노 부장의 말투나 지시 내용이 너무 엄중하고 위협적이라 그 원인이 될 만한 일을 떠올려볼 엄두조차 나지 않은 지도 모를 일이었다. 귓속에서 무언가가 윙 하며 울려대는 것 같은 소리까지 들으며 신문사를 나와 첫 번째 만난 공중전화에서 아내와 아이들을 불러내는 전화부터 했다. 

공연히 사람 놀라게 할 수도 없어 당장은 주말 나들이를 핑계로 아이들과 함께 가까운 동대구역으로 나오게 하니 아내가 좋아하면서도 조금은 걱정스러워하는 목소리로 물었다. 

“어머님은요? 어머님은 지금 섬들(島坪) 작은 외가에 갔는데요.” 

“그건 이따가 따로 전화드리지. 며칠 영동아재 댁에 머물러도 좋고, 집으로 돌아오셔서 홀로 계셔도 되고.” 

그러자 아내는 금세 밝은 어조로 돌아가 집 안에 남은 현금이 그리 많지 않은 것만 걱정했다.

집을 비워두고 아이들과 며칠 나들이할 채비가 그리 간단하지 않을 것 같아 아내와는 한 시간 뒤 동대구역 대합실에서 다시 만나기로 하고 조금 여유를 찾은 그는 다시 서울 출판사로 전화를 걸어 노 부장을 찾았다. 그렇게 들어서 그런지 노 부장도 그 사이 조금 진정된 듯했다. 평소처럼 안정을 되찾아 들뜨거나 과장된 기색 없이 그 한 시간 전에 서울 출판사에서 있었던 일을 들려주었다. 

“그러니까 아까 10시 반쯤에 공수부대 상사 하나가 하사 둘을 데리고 3층 경리부를 찾아왔어요. 때마침 우리 편집부는 오전 중으로 마쳐야 할 여름호 특집 마무리 교정 교열에 바빴고, 아시죠? 계엄 확대와 뒤이은 광주사태로 턱없이 까다로워진 검열 때문에 ‘우리시대 문학’ 여름호가 한 보름가량 늦춰진 것, 경리 김 양은 은행에 간 터라 새로 경리부 수습 중인 박 양만 남아 있었는데, 거기 검은 베레모를 쓰고 정장한 그들 셋이 한꺼번에 덮치듯 들이닥친 거예요. 그리고 칸막이 넘어서 편집회의 중이던 우리나 3층 이쪽저쪽에서 일하던 영업부 사원까지도 그들이 온 걸 느끼지 못한 사이에 그 봄 여상을 갓 졸업한 그 수습사원의 작은 책상 앞을 에워싸듯 둘러서 그 애와 무언가를 두런두런 얘기를 주고받았다더군요. 

그러다가 얼마 뒤에 굳은 듯이 앉아 있는 경리부 수습 박 양만 남기고 군홧발 소리를 저벅거리며 사라져버렸다는 것인데, 알 수 없는 일은 그때부터 그 어린 박 양이 그대로 책상 앞에 앉은 채 눈물도 닦지 않고 하염없이 울기 시작한 거예요. 한 10분 뒤 은행에 갔던 경리 김 양이 돌아올 때까지요. 김 양이 이상해 물으니 그때까지 소리 없이 흐느끼던 박 양이 갑자기 서럽게 소리 내어 울며 말하더랍니다. 공수부대원들이 이불휴 선생 주소와 전화번호를 알아갔다고, 자기가 다 말해주었다고. 그리고 김 양이 그 까닭을 묻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밝히더라는 거예요. 그 공수부대원이 자신에게 이죽거리듯 했다는 말로. 

‘너 아니? 우리가 바로 얼마 전 광주에 갔던 그 공수부대야. 소문 들었지? 밤새 갈아 날 세운 대검으로 여대생의 유방을 도려내고 임산부의 배를 갈라 태아를 꺼냈다는 그 악귀들 말이야. 밤새 칼을 갈아 날을 세운 까닭은 그냥 군용대검으로는 여대생의 유방도 못 잘라내고 임산부의 배를 갈라 태아를 꺼내지도 못하거든.’
 
그러고는 손으로 얼룩무늬 군복 윗도리 가슴께나 불룩한 주머니가 달린 작업복 허벅지 쪽을 쓰다듬어 금세라도 시퍼런 대검을 빼 들 것 같은 시늉을 하며 덧붙이더라는 거예요. 

‘이왕 악귀가 된 거 두 번 되기가 뭐 그리 어렵겠니? 그러니 그 새끼 주소하고 전화번호 빨리 대. 기억을 못 하면 경리 장부라도 펼쳐 찾아보라고. 여기서 주는 상 받고 여기서만 책을 낸 작가라면 그 새끼한테 원고료도 보내고 인세도 보냈을 거 아냐? 폭도건 민주투사건 성난 수십만 시민을, 그들 안마당에서, 그것도 겨우 수천의 병력으로 터무니없는 위력진압을 꾀한 죄가 있으니, 우리가 광주에서 악귀가 된 것은 그래도 어떻게 참아낼 수도 있어. 하지만 이런 개새끼는 절대로 용서할 수 없어. 작가라는 탈을 쓰고 우리가 하지도 않은 짓을 지어내어 우리 인격뿐만 아니라 존재 자체를 말살하려 드는 이런 망종은, 우리가 여대생의 유방을 자르고 임산부의 배를 갈라 태아를 꺼냈다고 덮어씌운 자들보다 더 악질이라고. 그렇게 광주에 아첨해서 무얼 얻어걸리려고 하는지는 모르지만, 이런 새끼를 찾기 위해서라면 정말 나라 지키라는 대검이라도 얼마든지 빼 들 수 있다고, 알아? 그러니 빨리 말해. 시퍼렇게 간 대검으로 젖통이건 아랫도리건 확 쑤셔 그어버리기 전에….’ 

그러니 그 어린 게 얼마나 놀랐겠어요. 놀라 제정신도 아니게 불휴 씨 주소하고 전화번호 알려주고는 그리 넋을 놓고 울어댄 거예요. 그런데 불휴 씨 도대체 어디다 뭘 쓴 거죠?” 

노 부장의 그런 말을 듣자 그는 새삼 가슴 안이 써늘해지며 지난달 서울에서 만난 김형우 작가의 빈정거림이 얼어붙은 겨울 하늘을 찢는 천둥소리처럼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광주를 ‘휴가병 열차’로 보고, 병역 의무를 벗고 집으로 돌아가는 제대병을 유신의 질곡에서 벗어나 자유민주의 옛날로 돌아가려는 광주시민으로 대치하면, 그런 제대병들로 가득 찬 객차를 폭력으로 점거한 공수부대와 어우러져 그대로 1980년대 초반 우리 사회를 연출해낼 수 있는 멋진 정치·사회적 알레고리 공간이 완성된다…. 

“제대병 신분으로 경험한 휴가병 열차 속 얘긴데, 등단 전부터 가지고 있던 단편입니다. 우리 동인지 ‘입문(立文)’에 원고를 넘긴 것도 광주사태 일어나기 한 달 전인 4월 중순이고, 그게 실린 동인지 창간호도 5월 말에는 이미 나왔는데….” 

입으로는 노 부장에게 그렇게 절실하고도 간곡한 해명을 하고 있었지만, 그러는 자신도 그런 해명이 통하리라는 기대는 전혀 품지 못했다. 노 부장도 무턱대고 그를 편 들어 낙관적인 전망만 내놓지는 못했다. 

“설령 검열에서 문제가 되고, 그게 신군부의 심기를 건드렸다 해도 별로 걱정할 일은 아닌 듯하다네요. 사장님이 여기저기 알아보고 계신데, 계엄사 검열 쪽이든 보안대, 안기부건 정식 경로를 통해 입건하고 수사에 들어간 흔적은 아직 없는 것 같다는 거예요. 우선 발등에 떨어진 불인 광주 일로 딴 곳을 돌아볼 틈이 없어서일 수도 있겠지만. 가만히 따져보면 출판사로 찾아온 공수부대원들만 해도 그래요. 정식 수사라면 아무것도 모르는 수습경리를 그렇게 무지막지하게 윽박질러 주소하고 전화번호만 빼갔겠어요? 요란하게 짖는 개가 물지는 않는다고, 어쩌면 광주로 출동한 서울 근교 공수부대 한구석에서 일어난 개별적인 일탈행동일 수도 있어요. 휴가나 외출 나온 김에 한 번 손봐주고 온다는 식의…. 어쨌든 이번 주말은 이왕 나선 김에 아이들하고 어디 좋은 데 물놀이라도 갔다 오세요. 아직은 6월 중순이라 좀 이르기는 하지만. 그리고 역시 사장님 당부인데, 월요일 오후 다시 제게 전화 주신 뒤에 거취를 결정하도록 하시라는 데요. 그때까지면 어디를 쑤시든 뭘 좀 알아낼 수 있을 것 같다나요.” 

그런 말로 위로와 희망 어린 전망을 대신했다.

2.
노 부장과 통화를 끝내는 대로 택시를 잡아탄 그가 동대구역 광장에 내렸을 때는 1시 가까울 무렵이었다. 그 무렵 그가 새로 채비한 국산 낚시 세트까지 기대 세운 크고 작은 여행 가방 둘을 내려놓고 아이들과 함께 대합실 입구 쪽에서 기다리고 있던 아내는 흔치 않은 식구들만의 주말 나들이를 쑥스러워하면서도 환하기 그지없는 얼굴이었다. 아이들은 더했다. 둘 다 여름휴가라도 떠나는 것 같은 차림에 큰놈은 챙 넓은 모자에 작은 배낭까지 메고 있었다. 

“어디로 가려고요? 기차역으로 나오라니 얼른 짐작이 가지 않아서….” 

아내가 그러면서 그의 눈치를 살폈다. 질문을 받고 보니 실은 자신도 명확히 정한 데가 없어 잠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밀양으로 한번 가보았으면 해. 크게 변하지 않았다면, 남천강 줄기가 읍내 한가운데를 지나가고 있으니까 가까이에 며칠 머물 물가가 있을 거야. 아니, 읍내에 숙소 정하고 매일 강가로 나가도 되고.” 

“그것도 좋겠네요. 밀양은 나도 한번 가보고 싶었던 곳인데. 거기 가는 기차 시간은 어떻게 돼요?” 

“경부선 하행(下行)이니까 그리 기다리지 않아야 될걸. 보자….” 

그가 그러면서 맞은편 열차 시간표 아래로 다가가 가까운 하행 열차를 알아보았다. 밀양은 아직 읍이지만 통일호 무궁화호도 서는 곳이라 늘 시간에 쫓기는 그로서는 거의 습관적으로 특급 쪽부터 살폈다. 부산으로 내려가는 특급은 한 시간 넘게 있어야 오고 보급(普急)도 30분은 기다려야 하는 것으로 나와 있었다. 

“이거 꽤 기다려야 되겠네. 그럼 특급으로 기차표부터 끊고 어디서 점심이라도 먹을까.” 

그가 그러면서 매표구 쪽으로 걸음을 옮기려는데, 보고 있던 시간표 아래쪽으로 이어진 완행열차 시간표가 퍼뜩 눈에 들어왔다. 특급이나 통일호 무궁화호 같은 표시가 없어 좀 전에 지나쳐본 발착 시간표 아래 칸에 15분 뒤 지나가는 보통열차가 있었다. 

“아, 저기 완행이 있었구나, 15분 뒤에 지나가는. 저걸 타자. 점심은 오랜만에 기차 칸 벤토(도시락) 한번 먹어보지 뭐.” 

그가 그렇게 말하자 잠깐 아내의 얼굴에 뭔가 의아해하는 낯빛이 비쳤다 스러졌다. 그러나 까닭을 묻지는 않고 여행 가방에 기대놓은 낚시도구 세트 주머니를 그쪽으로 살그머니 밀었다. 거기 달린 멜빵끈을 받아 쥐며 그가 변명하듯 아내의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여기서 밀양까지는 완행이나 급행이나 그게 그거야. 괜히 사람들 눈에 띄는 대합실에 식구대로 몰려 있는 것보다 아무거나 잡히는 대로 기차를 타고 사람들 사이에 섞여 멀리 가버리는 게 좋아.” 

그러자 다시 아내의 얼굴에 반짝, 하듯 의아해하는 기색이 떠올랐다. 그러나 이번에는 공연히 다급해진 그에게 그걸 풀어줄 여유가 없었다. 낚시도구 주머니를 어깨에 걸치며 아내를 재촉하듯 말했다. 

“내 얼른 매표구로 뛰어가서 기차표 끊어 올 테니, 어서 아이들 데리고 개찰구 앞으로 가 줄 서 기다려.” 

하지만 결과로 보아서는 해명으로 늑장을 부리지 않은 게 잘한 일이 되었다. 토요일이라 그런지 그날따라 매표구와 개찰구가 다 붐벼 그가 허둥대며 기차표를 끊어 개찰구 쪽으로 갔을 때는 아내와 아이들 앞에도 제법 긴 줄이 서 있었다. 플랫폼으로 나가자 그곳도 혼잡하기는 마찬가지, 아이들 손을 잡고 식구대로 한 객차에 몰려 타기도 그리 쉽지 않을 정도였다. 

객차 통로에서 북적이는 사람들 사이에 부대끼던 그들 네 식구는 기차가 청도역에 도착해서야 겨우 함께 앉을 자리를 마련할 수 있었다. 가방과 짐은 열차 시렁에 얹고, 그사이 심사가 나서 칭얼거리기 시작하는 둘째를 안아 옆자리를 비워주면서 아내가 조심스레 물었다.

[일러스트·박용인]

[일러스트·박용인]

“저, 오늘 무슨 일이죠? 왜 우리 식구는 남의 눈에 띄는 곳에 모여 있으면 안 돼요? 아니, 어째서 집에 돌아와 같이 짐을 싸지도 못하고, 나만 이렇게 정신없이 보따리를 싸서 뛰어나오게 만들었어요? 그리고 왜 그렇게 무슨 죄진 사람처럼 사방을 곁눈질하는 거죠?” 

여보, 당신이나 아이 아버지, 혹은 아무개 아빠 같은 말을 잘 쓰지 못해 대칭(對稱) 대명사가 아예 빠진 말로 아내가 그렇게 물었다. 무언가 좋지 않은 예감에 정색을 한 표정이었다. 그도 더는 미룰 일이 아니다 싶어 노 부장에게 들은 말을 아내가 알아듣기 좋게 풀어서 말해주었다. 그러나 듣고 난 아내는 공수부대가 아파트로 들이닥칠지도 모른다는 말에 놀랐는지 낯빛까지 하얘졌다. 

“그럼 식구대로 밀양으로 가서 피해 있으면 모두 해결되는 거예요?” 

그런 물음에 그도 난감해져 대답을 머뭇거리고 있는데, 갑자기 창밖으로 무슨 아이디어가 반짝 떠오르듯 하얀 판에 검은 글씨로 쓰인 이정표 하나가 철로가에 떠오르듯 비쳤다가 사라졌다. 유천 4km. 그걸 보고 그가 무슨 갑자기 급한 신호라도 받은 사람처럼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밀양이 아니라 유천(楡川)이야. 아니 유천으로 바꿔야겠어. 우리 유천에서 내려.” 

아내가 얼결에 따라 일어서며 더 알 수 없다는 얼굴로 물었다. 

“유천? 유천이 어디예요?” 

“여기서 십 리만 가면 나오는 기차역이야. 거기서 내려.” 

“아는 곳이에요?” 

“그래. 이제 생각해보니 밀양역보다 그곳에 내리는 게 나을 것 같아.” 

그가 그렇게 말하며 객차 시렁에서 여행 가방을 내리자 아내도 안고 있던 둘째를 의자에 내려놓고 큰아이의 배낭과 그의 낚싯대 가방을 챙겨 차에서 내릴 채비를 했다. 

기차는 그때부터 채 5분도 안 돼 유천역에 섰다. 역사는 1950년대 말에 새로 지은 것이라고 들었는데, 그가 보기에는 식민지 시절에 지은 목재 간이역사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벽체가 예전같이 목조 기둥에 회벽 미장 마감을 한 것이 아니라, 시멘트 블록을 쌓고 미장을 한 뒤에 회칠을 한 것 같았다. 낡은 제복에 제모까지 쓰고 출찰구를 맡고 있던 늙은 역원이 도착지가 밀양으로 된 기차표를 잠깐 살펴보더니 말없이 그들 일가를 내보내주었다. 

역사를 벗어나자 6월 중순 한낮의 따가운 햇살이 벌써 제법 초여름 티를 냈다. 간이역이라 그런지 역사 뒤편으로 흔히 ‘역전앞’이란 겹말로 불리는 널찍한 공터가 있었으나, 역전거리라고 부르는 여인숙 골목과 선물용 과일 가게, 그리고 술밥을 함께 파는 식당가 같은 것은 없었다. 강변 쪽으로 가는 길가로 잡화점에 담배포와 낚시용품을 곁들인 가게가 하나 있었는데, 마당에 넓은 평상이 펼쳐 있고, 그 곁에 솥 걸린 화덕이 있는 걸로 보아 손님이 몰릴 때는 국밥이나 국수, 라면 같은 단품 요리도 끓여내는 듯했다. 

여남은 채 민가가 흩어져 있는 저편 마을 쪽 출구에도 주막과 잡화 가게를 겸하는 것 같은 곳이 있었지만, 그는 가족들과 함께 물가 쪽 출구에 있는 잡화 가게로 갔다. 그리고 마당의 평상에 짐을 부려놓으면서 가게를 보고 있는 중년 아주머니에게 조금 늦어진 점심으로 라면 네 개를 끓이게 하고 따로 막걸리 한 대포를 청했다. 점심시간이 많이 지난 것 같지 않은데도, 대구에서 그곳까지 오는 동안 버드나무 껍질 곽에 든 추억의 도시락을 파는 홍익회 직원을 만나지 못한 탓이었다. 

“여기는 어떻게 알아요? 여기도 살아본 적 있어요?” 

그동안 저만치 긴 다리가 놓인 물가 쪽을 유심히 보고 있던 아내가 아직도 수심을 털어내지 못한 얼굴로 물었다. 조금 여유가 생긴 그가 짐짓 느긋한 말투로 대꾸했다. 

“여기도 밀양이야. 살아보지는 않았지만 어릴 때 이 부근에 몇 번 와본 적은 있지.” 

“그럼 지리도 잘 알아요?” 

“대강은. 국민학교 다닐 때 저기 보이는 산등성이 너머 어디쯤인가 소풍을 와본 적이 있어. 거기 천연기념물 제 몇 호라던가 하는 백송(白松)이 두 그루 있었거든. 대단한 고목도 아니고, 풍채도 그리 신통찮았던 것 같은데 왜 거기로 소풍을 갔던지. 부근에 무슨 정자도 있었던 것도 같고. 내가 유천이라는 지명을 처음 들은 것도 그 소풍 때였을 거야.” 

“국민학교 아이들이 소풍을 올 정도라면 밀양 읍내에서 멀지 않은 곳이겠네요. 그런데 어떻게 이리 도시와는 먼 한적한 산골 마을 같을까.” 

“저기 보이는 저 물 있지? 저것과 그 북쪽 어디에서 만나는 다른 물줄기가 또 있는데, 그중에 하나는 청도(淸道) 쪽에서 내려오는 청도천이고 다른 하나는 운문사 쪽에서 내려오는 동(東) 무슨 천이라 하던가. 그것들이 저기 보이는 산모퉁이 너머 어디쯤에서 만나 남천강 상류가 되어 밀양 읍내 영남루 앞으로 흘러내려 간다고 들었어. 그런데 거기까지가 모두 한 끈에 꿰인 것처럼 이어진 놀기 좋은 물가야. 긴늪이라고, 아름드리 솔밭(소나무 숲)과 길고 깊게 고인 물이 그윽하게 어우러져 또 다른 소풍 행선지가 되는 곳도 있고, 그 아래로 어른들의 좋은 은어 낚시터가 되는 물줄기를 따라 선불, 용두목(용두연), 참물샘이, 꼬꾸랑바우(바위)로 해서 영남루 앞까지 읍내 아이들의 황당한 모험담이 서린 명소가 이어지지. 여름의 물놀이, 겨울의 썰매타기, 양쪽으로 다.” 

그러는 그의 목소리에 애틋한 추억이 빚어내는 축축함과 또 그 때문에 느슨해진 현실감이 묻어났던 것인지, 말을 마치고 아내를 살피니 경계와 불안으로 그들 네 가족의 안위와 관련된 지리적 정보를 캐듯 물어오던 그녀의 눈길이 이상하리만치 조용하게 가라앉은 정서를 드러내고 있었다. 

“밀양으로 가면 왜 안 돼요?” 

“거긴 아무래도 나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더러 있을 것 같아서.” 

“그럼 우리가 지금 밀양보다 더 구석진 곳으로 피하는 셈인가요?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으면 그들이 누구에게 이르기라도 할까 봐서요?” 

그러는 아내의 얼굴에는 다시 어두운 그늘이 졌다. 그제야 정신이 퍼뜩 든 그는 다시 애써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을 지으며 아내를 안심시켰다. 

“뭐, 그렇게까지 난리 만난 거는 아니고, 어차피 토요일에 아이들 데리고 나섰으니 읍내 여관에 식구대로 모여 있는 거보다는 물가 동네에 민박 정하고 애들하고 고기잡이나 하는 게 더 자연스럽지 않겠어?”

3.
식구대로 묵을 곳을 찾아가다 만난 냇가 야트막한 둔덕에서 하상이 갑자기 넓어지며 탁 트인 강변이 펼쳐지는 것을 보고 그는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늙고 젊고를 가리지 않고 한나절 천렵과 물놀이에 맞춤한 맑은 냇물과 넓고 시원한 자갈강변이며 군데군데 굽이진 모래톱 같은 것들이, 저만치 돌아가는 또 다른 물줄기가 맞은편 높지 않은 산발치를 후벼 파서 만든 푸른 소와 어울려 멀리서도 근교 물가 유원지로 손색없는 입지임을 드러내 보여주고 있었다. 

거기다가 유천 다리가 만드는 한낮의 그늘과 그 상판 아래로 흐르는, 취사하기에 좋은 여울 같은 것들은 이미 가까운 도시 사람들을 적잖이 그리로 끌어들이고 있는 듯했다. 물가에서 멀지 않은 몇 호 되지 않는 마을에는 도회지의 허름한 여인숙보다는 설비가 훨씬 나은 숙박업소도 하나 있었다. ‘유천장(楡川莊)’이라는 간판을 달고 있는 그 여관 두 칸 장방에 짐을 푼 그들 네 식구는 준비한 취사도구와 낚시도구를 챙겨 가까운 다리 밑 물가를 찾아 나섰다. 

도착이 2시 남짓이었는데 라면이지만 식구대로 점심을 끓여 먹고, 여관 찾아 보따리 풀고 다시 물가 나들이로 채비하다 보니, 벌써 오후 4시가 넘어 해가 서편으로 기웃해져 있었다. 여관 주인이 그가 메고 나서는 낚시 도구 세트를 보며 한마디 참견을 했다. 

“파리 낚시 있어예? 물 건너 쏘(소) 쪽으로 갈 꺼 아이라 카믄, 저녁답(저녁때) 자갈밭 여울물에 찌낚시는 잘 안 될 낀데예. 글타고 해 질 녘에 돌 뒤베(뒤집어서) 물 벌거지(벌레) 잡아 뜬 낚시 하거나, 마구다지(마구잡이) 채낚시로 들이댈 만한 모래바닥 여울살이도 엄꼬오(없고)….” 

그러더니 친절하게도 작은 양초 덩어리가 달린 낚싯줄에 인조 파리 여섯 마리가 한 뼘 남짓한 간격으로 묶인 것을 포장한 얇은 비닐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값을 물어도 대답하지 않고 그냥 내미는 걸로 보아 처음부터 어설픈 낚시 손님을 위해 서비스로 마련해둔 것 같았다. 그런 짐작으로 고맙다고 인사하는 그에게 주인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그 파리 낚시의 출처를 일러주었다. 

“이 집에서 묵고 가는 물놀이 손님 중에는 이따금 쓰던 어구나 낚시채비를 떠라놓고(남겨두고) 가는 사람들이 있어예. 이거 말고 고기 잡는 어항도 누가 두고 간 게 있는데 드릴까요? 깻묵 한 봉지하고.” 

그 바람에 고기잡이 어항까지 얻어 낚시 가방과 함께 메고 들고나오는데, 아내가 또 제법 배가 불룩한 작은 여행 가방을 들고 따라나섰다. 그가 의아한 눈길로 아내와 가방을 번갈아 살피자 아내가 알아차리고 말했다. 

“이거요? 우리 새로 장만한 등산용 코펠하고 바나(버너)예요. 거기에 집에서 먹던 조림 반찬 좀 싸고, 밖에서 먹을 푸성귀와 조리하는 데 쓸 양념도 있는 대로 넣어왔어요. 쌀도 한 웅쿰(움큼) 봉지에 담고.” 

“무슨 솥단지이고지고 나서는 피난민 보따리도 아니고. 혹시 이불은 안 넣어 왔어?” 

“큰 가방에 차렵이불도 얇은 걸로 한 채 넣어 왔어요.” 

“아예 이삿짐을 싸지 그래.” 

그는 그렇게 핀잔처럼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문득 그런 아내가 안쓰럽게 느껴졌다. 아직은 짐작이 가지 않는, 그러나 뜻밖으로 가까이 다가와 있을지도 모르는 위해가 갑자기 한 실체로 느껴진 탓이었다.

그는 아무것도 모르고 물놀이 기대만으로 들떠 있는 아이들과 되도록 수심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애쓰는 아내를 데리고 진작부터 눈여겨보아둔, 2차선 국도를 지고 있는 다리 쪽으로 갔다. 해가 서쪽으로 제법 뉘엿하게 기울었는데도 그 다리와 건너편 저만치 산발치를 감아 도는 곳에 있는 소 사이의 강변 여기저기에 아직 꽤 많은 사람이 남아 있었다. 청도와 밀양의 경계에 놓여 있다고 들은 그 다리 북쪽은 제법 넓은 여울을 낀 교각 사이 상판 그늘에 의지해 가족 단위나 작은 규모의 친지 모임 같은 것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들은 대강 두 부류의 소박한 행락객으로 구성되어 있는 듯했다. 한쪽은 그 무렵 가족 휴가용으로 대중화되어 한창 팔리고 있는 간편한 레저용 텐트와 취사도구 세트를 갖춘 이웃 도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한 공장에서 나온 듯 울긋불긋한 텐트를 치고, 입구에는 석유버너와 손잡이 있는 알루미늄 냄비를 크기대로 네댓 개 차례로 집어넣은 플라스틱 천막천 주머니를 펼쳐, 그 안에 들어 있는 양은 밥공기까지 잔뜩 펼쳐놓고 있었다. 

다른 한쪽은 십 리 안쪽 인근 농촌 마을에서 모내기 뒤의 반짝 농한기에 한숨을 돌리려고 천렵놀이를 나온 친지나 가족들인 듯했다. 헌 돗자리에 양은솥 얇은 스텐 식기 같은 것을 간장 됫병이나 작은 된장독과 함께 플라스틱으로 찍은 큰 함지나 큰 대야에 담고, 바지게로 지고 왔다. 그리고 왁자하게 광목 차일 앞에 부려놓고는 솥을 건다, 장만해 온 요리 재료를 손본다, 분주했다. 

여울 남쪽, 멀리서 보면 제법 물길 푸르게 보이는 소 언저리는 남쪽으로 이어진 다리 끝에서 저만치 떨어져 있어 의지할 상판 그늘이 없어선지 주로 텐트가 쳐져 있었다. 개중에는 제법 큰 군용 텐트까지 있어 북쪽 여울가보다 규모가 훨씬 큰 단체들의 야외 모임 때도 이용되는 듯했다. 소가 깊고 넓어 보여 애초 아이들과 함께 갈 수 없는 곳이라 여기고 제쳐두기는 하지만, 짐작으로는 수영이나 낚시뿐만이 아니라 큰 고기를 잡기 위한 투망이나 찌낚에도 훨씬 진진한 재미가 있을 것 같았다. 

다리 북쪽 입구 상판 아래 여울가에 자리 잡고 물놀이로 아이들과 함께 남은 날을 보낼 생각을 한 그는 아이들을 데리고 진작부터 눈여겨보아둔 다리 아래 교각 사이에 들고 간 짐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몇 걸음 뒤처져서 따라오는 아내의 짐을 받으려고 돌아서서 나오며 살피니, 멀리서 보기에는 해가 뉘엿한데도 떠날 기색이 없는 것 같던 사람들이 실은 알게 모르게 자리를 싸 말 채비에 들어가고 있었다. 아직 여흥이 식지 않아 노랫가락을 이어가는 자리도 있고, 그 한구석에는 태평으로 잠들어 있는 사람까지 있었지만, 그들도 곁에서 자리를 말고 뒷설거지를 시작하는 사람들을 곁눈질했고, 더러는 잠든 사람을 난감해하는 눈길로 흘깃거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막 자리를 잡은 뒤였고, 또 서둘러 돌아가야 할 곳도 없었다. 그들을 못 본 척 아내의 짐을 받아오는 대로 모랫바닥에 작은 비닐 돗자리를 깔아 아이들이 앉을 곳을 마련하고, 야외용 취사도구와 더 이상 물러지게 해서는 안 되는 채소나 반찬 도시락 같은 것을 꺼내놓았다. 

“화덕부터 먼저 만들어주세요, 큰아이와 함께 땔감도 좀 모아주고요. 오늘 저녁은 여기서 끓여 먹고 들어가는 수밖에 없겠네요.” 

아내가 그렇게 말하며 취사 준비를 물놀이에 앞세웠다. 그는 물가에, 특히 흐르는 강물가에 서면 언제나 느끼는 그 알지 못할 설렘과 들뜸을 억누르고 먼저 굵은 돌 몇 개를 주워 와 알루미늄 냄비를 얹을 크고 작은 아궁이를 얽었다. 이어 일곱 살 난 아들놈도 일손이라고 함께 데리고 냇가 자갈밭을 누비며 바짝 마른 나뭇가지들을 주워 아궁이 곁에 한 아름 쌓아놓았다. 그런 다음 어구를 꺼내 본격적인 물놀이 준비를 하려는데, 아내가 다시 이제 막 시작되려는 부자간의 신나는 천렵을 말 그대로의 어로(漁撈)로 바꾸어놓았다. 

“물고기부터 좀 잡아주세요. 저는 둘째와 함께 다슬기를 주울 테니. 급하게 오느라 저녁 찌개거리를 장만해 오지 못해서 그래요. 그렇게라도 매운탕거리를 마련하지 못하면 맨 된장 국물에 신 김치하고 볶은 지 오래되어 푸석푸석한 멸치 졸임만으로 저녁을 먹어야 돼요.” 

그 바람에 그들 부자는 민물고기 어부가 되어 그로부터 두 시간 가까이 가족의 끼니를 돕기 위한 고기잡이에 전념해야 했다. 

그는 처음 손쉬운 어항과 손에 익은 찌낚에 의지해 생산성 있는 ‘어로’를 도모해보았다. 그 물줄기는 그가 초등학교 상급반 3년을 붙어살다시피 한 남천강에서 몇십 리 안 되는 상류 지천(支川)이고, 그 뒤 20년의 세월이 지났어도 그곳에서의 고기잡이는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어찌 된 셈인지 한 시간도 안 돼 그날의 시도는 시작부터가 어림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깻묵을 넣은 고기잡이 어항은 세 번이나 물에 넣었다 건져도 새끼손가락만 한 피라미 몇 마리에 쉬리 두 마리가 고작이었다. 그가 자신 있어 했던 떡밥 찌낚도 여울살은 물론 제법 깊이 있는 웅덩이에서도 입질조차 없었다. 물이 너무 맑은 데다 주변에 투망질을 하거나 줄에 꿴 나무오리로 고기몰이를 하는 천렵꾼들이 요란을 떨어 더욱 그런 듯했다. 

그제야 다급해진 그는 남천강에서뿐만 아니라 고향의 산골 계곡 여울 웅덩이에서도 실패한 적이 없는 꺽지 낚시로 전환했다. 물가 여울살의 돌을 뒤집어, 거기에 붙은 굵은 모래를 체액으로 단단하게 굳혀 만든 벌레집을 뜯고, 그 안에서 자라는 흔히 ‘물벌레’라고 하는 둥글고 검푸르게 반짝이는 마디를 가진 반딧불이 유충을 잡아 미끼로 쓰는 낚시였다. 챔질은 찌낚과 채낚시의 중간쯤이었는데, 미끼 부근 몇 미터 안에 꺽지만 있다면 백발백중인 그 낚시법도 거기서는 통하지 않았다. 아직 남은 행락객들의 물가를 떠나기 전에 피우는 마지막 수선이 더해져 더욱 그랬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도 저도 글러 버리자 그는 아들과 함께 다리에서 5리쯤 떨어진 상류로 올라가며 요란스러운 고기몰이를 하는 사람들을 피해 이런저런 고기잡이 도구를 바꾸어 써보았다. 하지만 여전히 빈손이나 다름없이 돌아와 보니 교각 근처는 그사이 텅 빈 것처럼이나 사람들이 줄어들어 있었다. 그새 저녁밥을 다 지어놓고 마늘 파 양념에 배추속대와 상추 잎만 몇 장 떠 있는 매운탕 국물만 졸이고 있던 아내가 만선을 기다리다 실망한 어부의 아낙처럼 그들 맥 빠져 돌아온 부자를 맞았다. 

“전에는 곧잘 잡히더니, 아쉬워지니까 그것도 뜻대로 안 되네요. 밥 식기 전에 있는 반찬으로 그냥 먹어요.” 

아내가 그렇게 말하면서 구겨진 자리를 펴고 어떻게 저녁상이라고 차려보려는 시늉을 했다. 

“가만 있어 봐. 아직 여관집 주인에게 얻어온 파리 낚시를 제대로 해보지 않았어. 그런데 저 물가 좀 봐. 피라미 떼가 여기저기 하얗게 튀어 오르는 게 ‘날 잡아 잡수’ 그러는 것 같지 않아? 거기다가 어두워질 때까지는 아직 한참 남은 것도 같고.” 

그가 그렇게 잘 나오지도 않는 우스갯소리를 하며 낚싯대에서 찌낚 줄을 걷고 다시 파리 낚시 줄로 갈아 달았다. 6월 중순의 긴 해가 마지막으로 철렁, 하며 빠져들 듯 서편 붉은 산 그리매 너머로 가라앉을 무렵이었다. 그런데 그 파리 낚시에서 뜻밖의 반전이 시작되었다. 한 시간 전만 해도 찌낚에 새끼손가락만 한 피라미만 이따금 걸리던 곳이었는데, 어디서 왔는지 거멓게 몰린 고기 떼가 물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한 마리씩 툭툭 물더니 갑자기 무엇에 급해졌는지 두 마리 세 마리가 한꺼번에 물기 시작했다. 

파리 낚시에는 미늘이 없어 물리는 대로 물가 백사장에 낚싯줄을 흩뿌리면 물고기는 절로 모랫바닥에 떨어지고 아내와 아이들은 환성으로 모래 위에 펄떡거리는 물고기들을 주워 담았다. 환성에 궁금해진 그가 낚시를 하면서 흘깃 건너보니 피라미 크기가 한 뼘은 되어 보였다. 그런데 짧은 순간의 곁눈질이지만 피라미의 지느러미 형태와 색깔이 왠지 낯선 데가 있었다. 한 스무 마리 남짓 건져 올리고 난 뒤에 그는 잠시 낚시를 거두고 아내와 아이들 쪽으로 다가가 그간에 잡힌 고기들을 살펴보았다. 한 뼘은 될 듯한 길이의 고기들은 뜻밖으로 피라미가 아니라, 그의 고향 쪽에서는 ‘먹치’라고 부르는 갈겨니였다. 

갈겨니를 먹치라고 부르는 것은 입 주변에 수염 대신에 나 있는 검은 색 돌기 때문이 아닌가 싶었다. 그러나 갈겨니는 무엇보다 길고 맵씨 있는 지느러미와 산란기 갈겨니 수컷의 배 양편에 비치는 찬란한 무지개 같은 혼인색으로 사람의 눈길을 끈다. 이미 어둑해오는 해 저문 냇가지만, 그런 갈겨니의 혼인색은 여전히 눈부셨다. 

갈겨니는 식감이 유별나게 좋은 것도 아니고 맛이 뛰어난 것도 아니었지만 어쩌다 잡게 되면 공연히 기분 좋은 고기였다. 아무리 상처 없이 잡아도 관상용으로 기를 수가 없고, 양어장에서 식용으로 기르기에도 터무니없이 효용성이 떨어졌지만, 어쩌다 몇 마리 잡고 나면 까닭 모르게 속이 뿌듯하고 자랑스럽기까지 하던 기억이 있었다. 그런 갈겨니를 스무 마리 넘게 물가 백사장에 흩뿌리고 나니 갑자기 이상한 포만감까지 들었다. 

“이만하면 우리 식구 매운탕은 충분하겠네. 낚시는 이제 그만둬야겠어. 실은 이 먹치, 지느러미 치레고 혼인색 치레지, 맛은 별로야.” 

그가 그렇게 말하며 낚시를 접으려 하자 아내가 그새 죽은 갈겨니들을 주워 담은 냄비를 내밀었다. 

“아이들에게도 이 매운탕 그리 먓난 음식은 못 될 거예요. 이 물고기 배나 좀 따 씻어주세요. 그다음엔 어두우면 등으로 쓸 수 있게 랜턴 전지 바로 준비해주고요.” 

그가 서둘러 배를 딴 갈겨니들을 건네주자 그녀가 얼른 물에 헹궈 언제부터인가 끓고 있는 매운탕 냄비에 털어 넣었다. 그사이 낚싯대를 말고 낚시 도구 세트 가방에서 랜턴으로 쓸 수 있는 플래시를 찾아 배터리를 점검해 돗자리 부근 큰 돌 위에 얹어둔 그는 아이들을 그리로 불러 앉혀 저녁 먹을 채비를 하게 했다. 오래잖아 날이 저물고 매운탕도 다 끓었는지 아내가 랜턴 비치는 비닐 돗자리 위에 늦은 저녁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일러스트·박용인]

[일러스트·박용인]

4.
늦은 저녁 설거지까지 마치고 이미 어두워진 물가를 더듬어 여관으로 돌아오니 8시가 훌쩍 넘어 있었지. 아이들 대강 씻기고 재울 때는 9시가 넘었고, 곤히 잠든 아이들 곁에 누운 우리 부부가 다시 아무 근심 걱정 없는 사람들처럼 평온하고 깊은 잠에 빠져든 것도 10시 넘긴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을 거라…. 다음 날 아침잠에서 깬 그가 담배에 불을 붙여 물면서 남의 일 보듯 전날 밤 일을 떠올리고 그렇게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어지러운 꿈 한 자리 없이, 참으로 잘도 잤구나. 

대구를 떠날 때까지만 해도 무슨 끔찍한 재난이나 잔인한 추적자들로부터 쫓기는 듯 절박한 심경이었는데, 어떤 심리기제가 그들에게 그토록 평온하고 편안한 밤을 보낼 수 있게 했을까. 추적자가 누군지 어디서 어떻게 오는지 모르는 황당한 도주에 너무 오래 무겁게 짓눌려 진작에 지쳐버린 것일까. 아니면 두려움의 대상이 너무 특정되지 못하고 한편으로는 좀 엉뚱하기도 해 오히려 둔감해지고 경계심이 마비된 것일까. 

거기다가 잠에서 깨어난 뒤에도 두려움이나 불안은커녕 아무런 경계심이나 자기 단속의 각성조차 일지 않은 것은 스스로도 까닭을 짐작하기 어려웠다. 투숙객들이 공동으로 쓰는 욕탕과 세면대가 있는 곳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간 아내도 그랬다. 전날 이따금 그녀의 표정을 어둡게 했던 수심과 불안은 말끔히 걷히고 아이들을 씻기며 어르고 도닥이는 게 어김없이 한적한 물가로 아이들과 함께 주말 나들이를 나온 젊은 엄마였다. 

“가서 세수하고 아침 먹으러 가요. 여기서 아침이 된대요. 어제 점심 저녁을 제대로 먹지 않아 오늘 아침은 이 집 한정식으로 한 상 받아요.” 

그러면서 여관 부엌으로 가서 이제 아침을 들여도 좋다는 말을 하고 왔다.

그들이 식구대로 전날 오후에 자리 잡았던 다리 상판 밑 교각 사이 여울가를 찾아갔을 때는 일요일이어서 그런지 전날보다 사람이 더 많이 몰려 있는 것 같았다. 멀리서는 끼어들 자리가 없을 것처럼 북적이는 것 같은데도, 전날 저녁 날이 저문 뒤까지 그들이 머물렀던 자리는 다행히 그대로 비어 있었다. 아이들과 함께 다시 짐을 부려놓으면서 가만히 둘러보니 거기 있는 사람들 가운데는 전날 밤 거기 남아 야영한 사람도 더러 있는 것 같았다. 그중에 친구들끼리 몰려온 것 같은 사람들 몇이 아이들을 알아보고 알은체를 해 그들 내외도 반갑게 인사를 받아주었다. 

자갈 강변 건너 남쪽으로 푸르게 물이 고인 소 곁 모래밭에도 어제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모여 웅성거렸다. 개중에는 큰 군용 텐트에 스피커까지 준비해온 단체가 있어 무슨 대회라도 하는지 마이크가 거슬리는 기계음과 함께 삑삑거렸고, 그 곁에는 또 다른 팀이 고성능 야외용 전축이라도 들고 나왔는지 고음 좋은 여가수의 트로트 가락이 간드러졌다. 강변 건너 저쪽에 세워진 천막 앞으로 무언가 검은 글씨 붉은 글씨가 크게 쓰인 현수막이 걸려 있어 눈길을 모아 읽어보니, 대구 직할시 무슨 구(區) 의사회 하계연수란 글씨가 보였다. 그 곁 멀지 않은 나무 그늘에는 부근 도시 로타리클럽의 친목대회 현수막도 걸려 있었다. 그리고 그 밖에도 크고 작은 개인 텐트들이 펼쳐 있어 멀찍이서 보기에는 제법 작은 천막촌처럼 보였다. 

그새 익숙하게 느껴지는 어제의 그 교각 부근에 짐을 풀자 아이들이 이것저것 집어내 먼저 물놀이 기분을 냈다. 그들 부부도 그때껏 마음 한구석을 짓누르고 있는 음울한 상념을 깨끗이 털어버리고 온전히 새로워진 기분으로 다시 유쾌한 물놀이에 기꺼이 하루를 쓰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인지 날씨도 화창해 아직 오전 10시도 안 되었는데 기온은 물놀이에 전혀 부담되지 않을 만큼 따뜻했다. 

산골에서 집 밖을 모르고 자라 물 길러 가는 개울가밖에는 물가를 잘 모르는 아내와 갓 국민학교(초등학교)에 입학한 아들을 데리고 어두운 상념에 빠지는 일 없이 한나절을 보내기에는 강 상류, 아직은 내(川)라고 불리는 물가보다 나은 곳도 없을 것이다. 그날 유천 물가에서 보낸 한나절, 그는 초등학교 상급반 3년을 붙어살다시피 한 밀양 남천강의 여러 물굽이와 그 뒤 타향을 떠돌면서도 1년에 한 번씩은 반드시 들러 친화를 두텁게 해오는 동안에 반변천(半邊川) 상류 고향 물가에서 익힌 모든 어획 수단과 기술을 아내와 아들에게 펼쳐 보였다. 

아들에게는 전날 해보지 못한 옛날 시골 방식의 사발무지로 뜬 고기와 바닥고기, 비늘 있는 고기와 비늘 없는 고기 할 것 없이 모두 잡아볼 수 있게 해주었고, 전날 실패한 꺽지 낚시도 성공해 반딧불이 애벌레를 미끼로 외진 물가 바위틈에서 손바닥만 한 꺽지를 직접 끌어올려 보는 놀라움도 맛보게 해주었다. 파리 낚시를 여울에 거치해 과일 따듯 낚싯줄에 걸린 피라미를 잡아내거나, 반딧불이 애벌레 아닌 또 다른 물벌레를 찌를 떼낸 찌낚 줄에 미끼로 달아 견지낚시처럼 당겼다 풀어주었다 하며 강을 거슬러 오르는 누치나 모래무지를 노려보기도 했다. 

아내는 함께 다슬기를 줍다가 군데군데 진흙바닥이 있는 여울 하류로 내려가, 남천강 지류에서 이따금 찾아낼 수 있는 주먹만 한 민물조개 하나를 찾아내 놀라게 해주었고, 다르게는 자배기 대신 작은 플라스틱 대야로 옛적 고향의 ‘버지기(자배기)무지’를 흉내 내어 그녀를 감탄하게 만들었다. 아이 주먹만 한 구멍을 뚫은 보자기를 자배기 비슷한 플라스틱 대야에 씌우고, 그 안에 생된장과 먹다 남은 밥덩이이며 참깻묵 부스러기 같은 것을 비벼 넣은 뒤 교각 부근 깊은 물에 두 시간이나 묻어두어, 중고기나 미유기같이 그녀에게 낯선 물고기를 볼 수 있도록 해준 게 그랬다. 

어쩌면 그 오전 내내 그가 한 일은 아내나 아들을 놀라게 하고 감동시키기보다는 그 자신을 위해 한나절 몰두할 거리를 찾은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점심때를 넘기면서 모든 것은 달라졌다. 오전 내내 냇물 속을 허우적거리며 휘젓고 다니다가 끼니때를 놓치고, 1시 넘어 아이들의 재촉을 받고서야 허둥지둥 지은 점심을 먹고 나서부터였다. 무엇보다도 네 식구 모두의 몸부터가 오전의 그 몸이 아니었다. 무려 네 시간을 물살 쎈 여울부터 허리까지 차는 느린 목 웅덩이를 가리지 않고 내달은 데다, 늦은 점심으로 오래 비어 있던 위에 만두며 어묵 토막까지 넣어 더욱 느끼해진 라면을 채워 넣어서였을 것이다. 

숟가락을 놓으면서부터 아이들은 벌써 움직임이 느려졌을 뿐만 아니라 눈꺼풀까지 조금씩 내려앉는 것 같았다. 고단하고 졸리기는 물가까지 온 잡상인으로부터 소주 한 병을 사 반주로 마신 그도 마찬가지였다. 25도 소주라도 빈속에 마신 술이라 취기가 더 심한 줄 알았으나, 그의 눈꺼풀을 무겁게 내려앉게 하는 것도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졸음이었다. 

“그렇게 눈 억지로 부릅뜨고 한잔 더할 궁리 말고 차라리 아이들과 한숨 자둬요. 저물 때까지 날은 기니까.” 

아내가 그들 삼부자의 내려앉는 눈꺼풀을 알아보고 그렇게 권했다. 듣고 보니 딱히 마다할 까닭도 없어 그는 먼저 플라스틱 돗자리 위에 누워 있는 아이들 곁에 몸을 뉘었다. 6월이 한 해의 딱 절반이 되는 날이지만 햇살은 따갑고 바람조차 없어, 그들 가족이 자리 잡은 교각 그늘은 시원한 동구 밖 느티나무 아래 못지않았다. 무단히 배가 부르거나 쓸데없이 따뜻한 것을 싫어하는 아내만 물가에 앉은 채로 설거지한 냄비와 그릇들의 물기를 닦아 원래 들어 있던 주머니에 집어넣고 있었다. 

내가 여기서 이러고 있어도 되는가. 두 손 놓고 속절없이 타자(他者)로부터의 신호만 기다리고 있어야 하는가…. 잠들기 전 반짝 그런 자문(自問)이 일었으나 취기와 졸음이 망설임 없이 그를 달랬다. 내버려 두어라. 부동성의 원리에 맡겨두어라. 모든 일은 해결되게 되어 있다. 어쨌든 오늘은 지나갈 것이고 내일은 새로운 주일이 시작된다. 출판사 박 사장은 그 마당발과 이미 여러 해 확장해둔 고급 정보망으로 여기저기 쑤셔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를 알려줄 것이고, 해결도 시작될 것이다. 다시 한번, 모든 문제는 마침내는 풀리게 되어 있다….

언제부터인가 주변의 심상치 않은 수선거림이 그를 여름 강변에서 청한 깊지 못한 낮잠에서 깨어나게 했다. 마침내 거지반 깨어난 상태에서 눈만 감고 있는 그에게 주변에서 벌어진 심상찮은 일을 먼저 알아차리게 한 것은 그날 오전 내내 시끄럽던 강변 남쪽 소(沼) 부근의 음향기기 소음이었다. 잠들 무렵만 해도 졸다가 깜짝깜짝 깨어날 정도였는데, 깨어서 들으니 멀리서도 느낄 만큼 소리를 죽여두었거나 아예 꺼버린 듯했다. 

사회, 소개, 감사 인사, 짧은 강연, 공지, 주의, 안내 등으로 끊임없이 왕왕거리던 의사협회 마이크도 꺼져 있고, 강변 북쪽 교각 아래 사람들까지도 공연히 들뜨게 하던 야외전축 앰프음도 숨을 죽이고 까닭 모르게 서글퍼지는 가락만 낮게 흘려보냈다. 간간 들리는 것은 무언가 주의를 주거나 경고를 하는 핸드마이크 소리와 그곳 사람들의 알아듣기 힘든 웅성거림뿐이었다. 오히려 아직 눈을 감고 있는 그에게 더 뚜렷하고 자극적인 것은 교각 부근의 자갈 덮인 모래강변을 공연히 서성대는 이편 사람들 사이의 소리 죽인 수군거림 쪽이었다. 

“저다가(저기가) 왜 절타(저렇다) 캅디꺼?” 

“사람이 물에 빠진 모양이더마는.” 

“저런, 누가요? 우짜다가?” 

“무슨 친목계 모임 버스 운전수라 카든강. 점심 잘 묵고 덥다 카미 물에 들어갔는데 아직 안 나온다 카네.” 

“보자, 하마 오후 3시에 가까우이 점심 묵고 바로 물에 들어갔다면 아직 그 안에 들가(들어가) 있기는 어려울 끼고…. 그래, 영장(시체)은 껀졌다 캅디꺼?” 

“그기 바로 문제라, 저래 들쌀대는(난리치는) 거 아이가? 옷은 진작에 쏘(소) 우(위) 한쪽 진 곳에 벗어논 걸 찾아냈다 카는데, 사람을 찾을 수 없는 기라, 사람을. 쪼매 전에 경찰에 신고 옇고(넣고) 어디다 긴급 구조신청도 했다 카이, 곧 구슨 구체(區處)가 나겠제.” 

그 무렵에야 눈을 뜨고 일어난 그가 주변을 살펴보니 함께 자던 큰아이는 그새 일어나 다시 물가로 나갔는지 안 보이고, 둘째만 아내의 무릎을 베고 자고 있었다. 방금 이야기를 주고받은 사람은 그들의 자리에서 멀지 않은 곳에 허연 광목 차일을 쳐놓고 매운탕 국수를 안주로 술판을 벌이고 있던 청년들 가운데 하나와 저쪽 물가 일이 궁금해 직접 가보고 온 바로 곁 물놀이 나온 가족 돗자리의 중년 가장이었다. 

“멀리서 건네다 보기에는 시퍼래도 물은 그리 깊지 않아 보였는데, 버스 운전까지 하는 어른이 빠져 죽었는가 보네요. 그 참.” 

아이에게 무릎을 내어주고 있던 아내도 그와 마찬가지로 멀지 않은 곳에서 그들이 주고받는 이야기를 귀담아듣고 있었던 듯 깨어난 그와 눈을 맞추며 그렇게 말했다. 

“그러게. 종지 물에 코 박고 죽는다더니, 하필 여기까지 와서 그렇게 죽었네. 우리도 아이들하고 조심해야지.”
그가 그렇게 맞장구를 치고 큰아이를 찾아보니 멀지 않은 상류 여울살에서 짧은 막대기로 물고기를 쫓고 있었다. 역시 오전에 그가 가르쳐준 바 있는 맨손 고기잡이 비법이었다. 

비교적 물결이 잔잔하고 얕은 여울살의 피라미 떼 가운데서 구별하기 쉬운 한 마리를 골라 뒤쫓으며 그게 달아나는 방향으로 팔을 뻗거나 짧은 막대기 그림자로 차단하면, 대부분의 피라미는 뒤쫓는 사람의 의도대로 방향을 바꾸며 쫓기게 된다. 그렇게 해서 한 5분 남짓만 몰아가면 마침내 지친 피라미는 배를 희뜩희뜩 뒤집으며 돌 틈에 아무렇게나 숨어드는데, 그때쯤은 별로 힘이 없어 맨손으로도 쉽게 잡을 수가 있다. 하지만 잡는 데 품이 많이 드는 것에 비해 소출이 너무 적고, 피라미를 원하는 곳으로 몰아가는데도 나름의 기술이 필요해, 일곱 살 아이가 흉내 내기에는 어려운 고기잡이 방식이었다. 

그가 말리려 하는데, 갑자기 강변 건너편 길게 소가 파인 쪽에서 사이렌 소리가 들리더니 검은색 봉고 승합차 한 대가 강둑을 따라 난 농로를 타고 남쪽 강변으로 내려섰다. 그리고 검은색 제복을 입은 사람 서넛이 차에서 내려 마이크가 차려져 있는 곳으로 몰려갔다. 그들은 마치 물놀이 본부석처럼 되어 있는 마이크 설치대 단상 쪽에서 거기 사람들과 만나 무슨 말인가를 주고받는데, 아무래도 사고의 경위를 알아보는 경찰이나 구조대 같았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소의 남쪽 끄트머리, 남천강 상류로 빠지는 여울이 펼쳐지기 바로 전의 깊지 않은 웅덩이 쪽에서 사람 몇이 웅성거리더니, 큰 소리로 마이크 있는 단상 쪽에 대고 무어라 고함을 질러댔다. 곧 마이크 쪽에 있던 사람들이 그리로 몰려가고 함께 간 검은색 제복 입은 사람들이 소 끄트머리 푸르스름한 곳에 입수해 무엇인가를 끌어냈다. 그러자 한층 높아진 그 부근의 웅성거림에는, 이제 이편 다리 상판 아래에서 햇볕을 피하고 있는 사람들 귀에까지 들릴 만큼의 비명과 탄식 소리까지 섞여들었다. 

“저다서 머신(무엇인)가를 껀진(건진)갑다.” 

“순사고 구조반이고 구경꾼이고 다 한 덩거리로 몰리 저리 왁삭거리는 거 보이, 죽은 사람 영장 껀진 거 아이가?” 

귀 밝고 눈치 빠른 사람들이 그쪽으로 넘어가 보지도 않고 단번에 그렇게 상황을 정리했다. 

“아까 옷 벗고 들어간 곳이 저기 소 위쪽 방구(바위) 있는 데라 안 캤나? 쏘 안쪽에서는 물살이 그래 안 씼을(세었을) 낀데 영장이 언제 저마이(저만큼) 떠내려갔이꼬? 보이(보니) 안 된다 캐도 가스나들 체력장 달리기 구간(50m)은 넘겠구마는.” 



“가마이 히(헤어) 보이 하마 물에 잠겐 지 시(세) 시간이 안 넘었나? 날이 이만하이 물도 어지간히 뜨시할 끼고. 우짜믄 시체가 바닥에서 떠 그마이(그만큼) 흘러갈 수도 있다.” 

다른 쪽은 그렇게 제법 추리에 가까운 의문과 예측들을 쏟아냈고, 궁금증을 못 이긴 사람들은 몇 명씩 무리 지어 자갈 강변 저쪽으로 구경을 나서기도 했다. 그도 자칫 거기 낄 뻔했으나 아내가 정색을 하며 살며시 옷깃을 잡는 바람에 그들을 따라나서지는 못했다. 그러나 큰아이를 주의 깊게 살피는 일은 거기서 중단되고 말았다. 대신 어떤 낯모르는 사람의 갑작스럽고 흔치 않은 방식의 죽음에서 번진 비극성은 침울함과 비감으로 바뀌어 얼마 전 낮잠을 자면서 잠깐 빠져들었던 그 자문으로 되돌아가게 만들었다. 

내가 여기서 이러고 있어도 되는가. 어쩌면 저 사람은 대수롭지 않은 방심이나 엉뚱한 불운으로 목숨을 잃은 지도 모른다. 그런데 너는 임박한 재난의 조짐에 잘 대처하고 있는가. 모든 비극이 저항할 수 없는 운명의 소산이라는 것은 그리스인들의 비관적인 결정론이다. 이 세상에 운명이라는 것은 없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은 모두 작위의 연쇄다. 지금 너는 그런 작위의 연쇄에 적절하게 대응하고 있는가. 그렇게 사고가 비약하면서 그는 이내 꼬리가 꼬리를 무는 무익한 상념으로 다시 빠져들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갑작스레 그런 그의 귓전을 스치는 소리가 있었다. 

“자(저애)가 저기서 뭐할라 카는 기고? 저 다리 공굴(콩크리트) 가에 물구디(물구덩이)는 알라들 (아이들)한테는 개미구신(귀신) 구디 맨키로 한번 빠지믄 다시 못 나오는데.” 

그래서 힐끗, 소리 나는 쪽을 건네 보니 옆 차일 밑에서 술을 마시던 청년 가운데 하나가 저만치 보이는 교각 쪽을 보며 누구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도 보니 웬 어린아이가 교각 옆 센 물살로 둥그렇게 파인 파란 물구덩이 곁에 위태롭게 서 있었다. 한 발만 더 내디디면 시퍼런 물구덩이로 미끄러져 들어갈 것 같은데도 어린아이는 그 물속 무언가에 홀린 듯 눈을 팔고 있었다. 

그런데 알 수 없게도, 그 아이가 위태롭기는 하지만 자신과는 무관한 일로 여겨져 그는 여전히 꼬리에 꼬리를 무는 자신만의 상념만 쫓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이번에는 그 청년이 짜증 난 목소리로 자리를 털고 일어나며 말했다. 

“저 바라(봐라) 저거. 기어히 일냈다. 내 참.” 

하지만 그때도 그는 여전히 자신과는 무관한 일로 여겨 끝도 없이 돌아가는 상념의 쳇바퀴에만 매달려 있었다. 잠시 뒤 교각둘레 물구덩이에 갔다 온 그 청년이 까닭 모르게 성난 얼굴로 그를 노려보며 쏘아붙이듯 한마디 했다.
“자는 저거 어마이, 아바이도 없나. 이 위태로운 물가에 자 혼자 놀러 오지는 안 했을 낀데.” 

그 말에 그는 다시 기계적으로 교각 쪽을 돌아보았다. 물에서 건져낸 아이는 웅덩이가에서 뭔가를 몇 모금 토해내더니 아직 정신이 돌아오지 않은 듯 멍한 눈길로 방금 구조받아 빠져나온 개미귀신 구덩이 같은 교각 둘레 웅덩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까지 그와 함께 그 아이 쪽을 힐끔거리던 아내가 외마디 소리와 함께 울먹이며 그쪽으로 뛰어갔다. 

“저거 우리 현이에요. 우리 큰애라고요!” 

그때 큰애를 구한 청년이 완연히 뒤틀린 목소리로 말했다. 

“글케, 자가 그 집 아(아이) 틀림없는 거 같았는데, 일부로 그래나 싶으디(싶더니) 참말로 자를 못 알아본 모양이쎄. 별일 다 있다.” 

그리고 눈물이 줄줄이 흐르는 얼굴로 비틀거리며 큰아이를 부둥켜 않고 돌아오는 아내와 큰아이를 한꺼번에 싸안는 그를 보며 갑자기 무언가 으스스해하는 얼굴로 덧붙였다. 

“혹시 그 뻐스 운전사 양반, 혼자 가기 억울해 두 분 눈에 멀(뭘) 씌워뿐 거는 아인강. 가망이 (모르게) 자 데리고 갔뿔라꼬. 그거 참말로 생각만 해도 무시무시하네요.”

그로부터 한 시간 뒤 그들 네 식구는 뉘엿한 6월 햇살을 받으며 유천역에서 대구로 올라가는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보, 돌아가자. 턱없이 심각한 망명극(亡命劇) 도피극 흉내는 그만 내고. 돌아가서 정면으로 대응하자. 근원적으로 해결하자. 아무렴, 10년 만에 다시 맞은 봄이다. 이리 허망하게 다하지는 않을 거다.” 

잠시 후에 기차가 들어온다는 역 구내방송을 들으며 그는 그때까지 몇 번이나 되풀이한 말을 아내에게 한 번 더 수군거렸다. 그러나 아내의 얼굴은 지는 햇살을 정면으로 받고 있는데도 짙은 구름 같은 수심으로 가득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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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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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주곡(遁走曲) 8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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