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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와 미술관

사막에 핀 하얀 장미

조지아 오키프 미술관

  • 최정표 |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jpchoi@konkuk.ac.kr

사막에 핀 하얀 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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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에 핀 하얀 장미

Abstraction White Rose, 1927(왼쪽), Banana Flower No.2, 1934

캔버스 가득한 꽃 한 송이

미술관에 전시된 그림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페더널(Pedernal)’이라는 이름이 붙은 풍경화였다. 사막의 산과 꽃을 수채화처럼 그린 유화다. 사막의 황량함이 화려한 꽃과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하얀 장미 추상화(Abstraction White Rose)’도 오키프의 전형적인 꽃 그림으로 눈길을 끌었다. 꽃은 오키프 그림의 주요 주제였다. 곡선의 흐름이 매우 부드럽고 탐미적이다. 오키프의 꽃 그림에서 꽃잎과 꽃술 등은 여성의 생식기를 상징하는데, 이는 남성적 시선의 미의식에 도전장을 던진 것으로 해석된다. 그는 꽃 한 송이를 캔버스 가득 확대해 아주 크게 그리면서 이러한 상징성을 최대화했다.

오키프의 꽃 그림은 처음엔 별로 주목받지 못했다. 그는 사람들이 당시 우후죽순처럼 솟아오르는 맨해튼 고층빌딩에 환호하자, 자신도 꽃을 크게 확대해 그리면 대중의 관심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예상은 적중해 꽃 한 송이가 화폭을 가득 채운 그의 독특한 스타일은 이내 주목받기 시작했다.

오키프와 스티글리츠는 1924년에 정식 부부가 됐다. 이때 오키프는 37세, 스티글리츠는 60세로 무려 23세 차이였다. 스티글리츠가 사망한 1946년까지 둘은 22년간 서류상 부부 사이를 유지하며 상대방의 예술 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스티글리츠는 뉴저지 주의 독일계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비교적 여유 있는 집안이라 스티글리츠는 일곱 살에 뉴욕에서 가장 좋은 사립학교에 다녔다. 아들의 재능을 알아챈 아버지는 아들의 대학 교육을 위해 가족을 모두 데리고 독일로 이주했다. 스티글리츠는 독일에서 대학에 다니며 유럽 여행을 많이 했다. 1890년 서른여섯의 나이로 뉴욕으로 돌아와 본격적으로 사진작가의 길에 들어섰다.



스티글리츠는 1893년 9세 연하의 오버마이어와 결혼했다. 하지만 결혼생활은 원만하지 못했다. 그는 훗날 ‘돈 때문에’ 첫 결혼을 했다고 고백한 바 있다. 신부는 맥주회사를 운영하는 사업가의 상속녀였고, 당시 스티글리츠의 아버지는 주식 투자가 망해 쪽박 신세였다.

사막에 핀 하얀 장미

오키프가 스티글리츠에게 보낸 편지(왼쪽), 스티글리츠가 촬영한 30대 시절의 조지아 오키프(1920~22).

오키프 예술의 聖地

스티글리츠는 여성 취향이 독특한 남자로 한평생 젊은 여자에 탐닉하며 살았다. 그래도 첫 아내는 남편이 언젠가는 자신에게 돌아올 것이라 생각하며 경제적 지원을 계속했고, 덕분에 그는 재정적 어려움 없이 작품활동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1924년 스티글리츠 부부는 정식으로 이혼했고, 이혼 도장을 찍은 지 채 4개월도 지나지 않아 오키프와 결혼했다. 결혼 후에도 둘은 독자적으로 작품활동을 계속해나갔다. 상대방의 고유 영역은 침범하지 않는다는 합의가 이뤄진 셈이다.

그러나 재혼 3년 만에 스티글리츠는 22세의 젊은 여성과 사랑에 빠졌다. 이 여성은 아이가 하나 있는 유부녀인데도 거의 매일 스티글리츠를 찾았다. 오키프도 곧 이 사실을 알게 됐고, 두 사람 사이에 거리가 생기기 시작했다. 1946년 스티글리츠가 쓰러졌다. 오키프가 병원에 도착하자 젊은 애인이 그를 지키고 있었다. 애인이 나간 사이 오키프가 남편의 임종을 지켜봤다. 오키프는 스티글리츠의 유해를 화장해 레이크조지에 뿌렸는데, 정확한 장소는 밝히지 않았다. 그는 남편이 남긴 작품들을 정리해 미국의 주요 미술관에 기증했다.

스티글리츠는 1917년 자신의 갤러리에 오키프가 방문했을 때부터 오랜 기간 그를 모델로 사진 작업을 했다. 1937년 은퇴할 때까지 오키프가 모델이 된 사진 작품이 350점이 넘는다. 그중에는 누드 작품도 있다. 스티글리츠 회고전에서 이 작품들이 공개됐을 때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화가는 대개 가난하다. 고흐는 그 대명사다. 가난이 작가정신을 키운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부자 화가도 있다. 화가가 부자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부모가 부자이거나 생전에 유명해져서 큰돈을 벌었기 때문이다. 은행가 아버지를 둔 세잔이 전자라면 피카소와 오키프는 후자다. 오키프는 일찍이 명성을 얻어 여유롭게 작품활동을 할 수 있었고, 개인 미술관도 만들 수 있었다.

사막에 핀 하얀 장미
최정표

1953년 경남 하동 출생

미국 뉴욕주립대 박사(경제학)

공정거래위원회 비상임위원, 건국대 상경대학장

저서 : ‘경제민주화, 정치인에게 맡길 수 있을까’ ‘재벌들의 특별한 외도’ ‘한국재벌사연구’ ‘공정거래정책 허와 실’ ‘한국의 그림가격지수’ 등

現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경실련 공동대표


하지만 유명 화가의 개인 미술관에는 대표작이 거의 없는 경우가 많다. 생전에 유명해진 작가일수록 작품이 남김없이 팔려나가기 때문이다. 피카소의 대표작은 세계 유명 미술관에 흩어져 있어 정작 파리의 피카소 미술관에서는 그의 대표작을 구경할 수 없다. 암스테르담에 있는 고흐 미술관은 예외다. 생전에 빛을 보지 못해서 팔린 그림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오키프는 생전에 유명해진 화가지만, 산타페의 개인 미술관에는 그의 많은 작품이 소장돼 있고 대표작도 더러 있다. 그가 경제적으로 여유 있었고, 직접 작품을 관리했기 때문이다. 미국 유명 미술관도 빠짐없이 오키프 작품을 소장하고 있지만, 샌타페이의 오키프 미술관이야말로 그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최고의 장소라 하겠다.

신동아 2015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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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표 |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jpchoi@konk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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