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월호

독점 인터뷰

‘미스터 쓴소리’ 이석연 前법제처장

“한국당, ‘100인 국민공천단’에 공천 맡겨라” “희생하지 않는 보수에게 미래 없다”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19-12-16 14: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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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민 ‘배 아픔’ 자극해 편 가르는 집권층

    • 이대로 뒀다가는 나라 거덜 날 거라는 위기감

    • 한국당, 양지만 좇는 기회주의적 속성으론 성공 못해

    • 현역 의원 절반 물갈이해봐야 달라질 것 없어

    • 국민공천단, 국민과 일거에 화학적 결합할 수 있는 방안

    • 공천단 필요성 공감하는 원로 등 보수계 인사 많아

    • 보수시민단체 추천과 공론화 과정 거쳐 100인 선정

    • 공천단원은 선거 불출마와 고위공직 포기 약속해야

    • 국민공천단 제안 받지 않으면 보수 궤멸로 이어질 수도

    [김성남 기자]

    [김성남 기자]

    “역대 법제처장 중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사람은 이석연 전 처장이다. 이 전 처장처럼 바른길을 가야 한다.” 

    2019년 10월 법제처 국정감사에서 박지원 대안신당 의원이 김형연 처장을 향해 한 말이다. 이석연 변호사는 이명박 정부 시절 2년 6개월간 법제처장을 지냈다. 2018년 지방선거 때는 자유한국당에서 서울시장 후보로 나설 것을 권유받았다. 이외에도 보수 진영 후보로 거론된 게 여러 번이다. 정치권 진영 논리에 따르면 박 의원은 그의 반대편에 속한다. 박 의원이 이 변호사를 호평하고 나선 건 이례적이다. 

    2019년 12월 서울 서초동 ‘법무법인 서울’ 사무실에서 이 변호사를 만나 이 얘기부터 꺼냈다. 그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내가 원래 ‘내 편 네 편’ 없이 일해온 아웃사이더다. 그동안 ‘꼴통보수’부터 ‘위장보수’까지 여러 이야기를 들어왔다”고 했다. 

    - 꼴통보수는 보수 중에서도 가장 오른쪽에 있는 사람을 일컫는다. 위장보수는 보수인 척하지만 실은 진보라는 뜻으로 통한다. 스스로 생각할 때 어느 쪽이 맞나. 

    “나는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를 신봉한다. 이 점에서는 분명 보수주의자다. 동시에 사회적 약자 보호를 중시한다. 이 측면에서는 진보좌파보다 더욱 철저하다.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와 사회적 약자 보호는 모두 우리 헌법에 담긴 내용이다. 그래서 나는 보수, 진보이기에 앞서 헌법주의자라고 불리기를 원한다.” 

    이 변호사는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저서 ‘담대한 희망’ 얘기를 꺼냈다. 그 책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우리는 보수 진보를 막론하고 헌법을 옹호한다(Conservative or liberal, we are all constitutionalists).” 이것이 바로 이 변호사가 견지하는 자세다.



    수렁에 빠진 덩치 큰 곰

    그는 최근 문재인 정부 국정 운영을 보며 ‘헌법의 기본 정신이 훼손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느낀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독단적인 남북관계 추진, 지지 세력만을 생각하는 듯 보이는 정책 운용 등을 문제로 지적했다. “그로 인해 나라의 근본이 흔들리고 있다”는 게 이 변호사 생각이다. 

    “이런 상황에 대체 한국당은 뭘 하고 있나.” 

    그가 분노를 억누르듯 또박또박 던진 질문이다. 

    “정부가 김진표 씨를 국무총리로 임명하려다 민주노총 등이 반대해 철회했다는 얘기가 시중에 나돈다. 그동안은 어땠나. 중도보수 진영에서 수십, 수백 개 시민단체가 반대하는 인사들을 보란 듯이 공직에 앉혔다. 이중적인 태도다. 이래서는 국정을 담당할 자격이 없다. 그런데 어느 누구도 이런 행태를 제어하지 못한다. ‘게이트’라고 할 만한 사건이 연이어 터지는 데도 속수무책이다.” 

    - 야당이 제 구실을 못하고 있다는 얘긴가. 

    “내 비판 대상은 한국당이다. 지금 야당은 거기밖에 없다. 다른 당은 사실상 여권 이중대 노릇을 하고 있지 않나. 한국당이 나서서 정권의 폭주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 그런데 뭔가. 100석 넘는 의석을 갖고도 존재감이 없다. 내부에서 자기들끼리 싸우느라 뭐 하나 제대로 못한다. 수렁에 빠진 덩치 큰 곰을 연상시킨다. 그러면서 국민한테는 ‘지금 체제가 뒤집히게 생겼으니 도와주시오’ 하고 있다. 한심하다.” 

    - 최근 한국당 원내대표 선거에서 ‘비박’ 심재철 의원이 ‘친박’ 김재원 의원과 손잡고 당선돼 화제가 됐다. 

    “그런 얘기를 들으면 답답하다. 대체 언제까지 친박 비박 프레임에 갇혀 있을 것인가. 탄핵 문제도 마찬가지다. 과거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찬성했는지 반대했는지가 여전히 각종 논의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이걸 극복해야 한다.” 

    이 변호사는 조너선 스위프트의 풍자 소설 ‘걸리버 여행기’ 얘기를 꺼냈다. 이 책에서 주인공 걸리버는 항해 도중 난파당해 ‘릴리퍼트’라는 소인국에 도착한다. 그곳 사람들은 달걀을 먹을 때 뾰족한 끝 작은 모서리부터 깨는 게 좋냐, 아니면 중간 큰 모서리부터 깨야 하느냐를 놓고 격렬하게 다툰다. 각각 ‘작은 모서리파’와 ‘큰 모서리파’로 불리는 이들의 소모적 다툼이 계속되면서 수많은 사람이 죽고 나라는 혼란에 빠진다. 

    “지금 한국당이 그렇게 치고받으며 세월을 다 보낸다. 한국당 지도부 사이에는 ‘정부가 여러 면에서 죽을 쑤고 있으니 선거 때 되면 별수 없이 우리를 찍겠지’ 하는 안이한 상황 인식이 있는 것 같다. 내가 보기엔 ‘천만의 말씀’이다.” 

    - 왜 그렇게 생각하나. 

    “정부를 비판하는 사람 중 상당수가 ‘그래도 한국당보다는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언론에 보도된 여론조사 결과를 봐도 알 수 있다. 국회 공전의 책임이 한국당에 있다는 대답이 과반에 달했다. ‘한국당이 개혁의 발목을 잡는다’고 보는 국민이 여전히 많다는 데 깜짝 놀랐다.” 

    이 변호사가 언급한 것은 ‘오마이뉴스’가 리얼미터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다. 2019년 12월 3일 하루 동안 전국 성인남녀 501명(응답률 5.4%)을 대상으로 국회 마비 사태에 대한 정당 책임성 인식을 조사한 결과, 한국당에 책임이 있다는 응답이 53.5%로 나타났다. 민주당을 지목한 응답(35.1%)보다 18.4%포인트 높다. 이어 바른미래당 4.2%, 정의당 1.5% 등이 뒤를 이었다(오차범위 95% 신뢰수준에 ±4.4%포인트). 

    이 변호사는 2019년 10월 열린 ‘광화문 집회’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이른바 ‘조국 사태’ 여파로 그 무렵 서울 광화문에는 반정부 시위 군중이 집결했다. 이 변호사 지인 중에도 현장에 나간 이가 적잖았다고 한다. 그는 “박근혜 정부에 비판적이던 진보 성향 인사들까지 다수 시위에 참여했다. 처음엔 ‘이분들 정치 성향이 바뀌었나’ 생각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실상은 아니었다고 한다. 한 지인은 “정부를 향해 ‘이대로 가면 안 된다’는 경고 메시지를 전하려고 참가했을 뿐”이라며 “같은 장소에서 한국당 규탄대회가 열렸으면 거기도 갔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주위에서 이런 얘기를 많이 들었다고 한다. 문재인 정부 실정(失政)을 강하게 비판하다가 ‘그렇다고 내가 한국당을 지지하는 건 아니다’라는 단서를 붙이는 사람도 제법 봤다. 그가 내린 판단은 이렇다. 

    “광화문 집회 참가자 중 상당수는 지금 선거를 할 경우 한국당에 표를 주지 않을 것이다. 한국당이 그들 전체를 ‘자기편’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각종 정당지지율 조사 결과를 봐도 한국당이 정부 실정에 따른 반사이익을 거의 누리지 못하고 있음이 확인된다.”

    “나라가 거덜 나고 있는데…”

    [김성남 기자]

    [김성남 기자]

    - 그 이유가 뭐라고 보나. 

    “국민과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우리나라 보수 세력이 양지만 찾아다니는 기회주의적 속성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한국당에 대해 ‘그동안 꽃가마만 타고 다닌 세력’이라는 시각을 갖고 있다. 틀린 얘기도 아니다. 황교안 대표부터 대통령권한대행까지 지내지 않았나. 국민은 그들이 어려운 사람과 더불어 눈물과 한숨을 나눌 수 있다고 생각지 않는다. 그러니 마음을 주지 않는다.” 

    이 변호사는 이 상황을 매우 심각하게 봤다. 정부 여당이 바로 그 점을 이용해 편을 가르고 자기들에게 유리한 정치 지형을 만들어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몸담은 변호사 업계 얘기를 해보자. 보통 변호사라고 하면 다 중산층 이상일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개인 사무실 유지도 힘든 이가 제법 있다. 그들은 상대적 박탈감이 크다. 일부는 심지어 세상이 뒤집히길 바란다. 의사 중에도, 또 다른 직군에도 그런 사람이 있을 거다. 이 정부는 그런 심리를 교묘히 이용한다. 국민의 ‘배 아픔’을 자극해 편을 가르고 표를 얻으려 한다. 그게 나라 망하는 길이다. 베네수엘라, 아르헨티나가 다 그러다 망했다.” 

    이 변호사는 거듭 “이걸 가벼이 보면 안 된다”며 “계속 이렇게 가다가는 나라가 거덜 날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했다. 그가 한국당을 강하게 비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의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를 수호하려면 더 늦기 전에 보수가 처절한 자기희생으로 국민 마음을 돌려놓아야 한다”는 게 이 변호사 생각이다. 

    한국당도 혁신 의지를 천명한 상태이긴 하다. 황교안 대표는 2019년 12월 초, 8일에 걸친 단식농성을 끝낸 뒤 당무에 복귀하며 당직자 35명의 일괄사표를 받고 사무총장으로 초선 박완수 의원을 앉혔다. 한국당 총선기획단은 21대 총선에서 현역의원을 절반 이상 교체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황 대표는 “국민이 원하고 나라가 필요로 한다면 그 이상도 감내할 각오를 가져야 한다”며 현역의원 교체율을 더 높일 수 있음도 시사했다. 

    그러나 이 변호사는 “그 정도로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잘라 말했다. “보수가 총선에서 승리하고 궁극적으로 정권교체까지 이루려면 기득권을 모두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국민공천단 구성

    - 기득권이라는 게 구체적으로 뭔가. 

    “총선 공천권이다. 지금 황교안 대표한테 사람들이 꼼짝 못하는 건 공천권 때문이다. 상당수 국회의원은 재선 삼선 사선을 위해 영혼이라도 판다. 선거가 얼마 안 남은 시점에서 공천을 바라는 이는 바짓가랑이 사이로 기어 들어가라고 해도 말을 듣는다. 그러잖아도 지도부 리더십이 취약한 한국당이 공천을 놓고 다투면 어찌 되겠나. 내분이 일고 당이 사분오열될 게 눈에 보인다. 국민들은 ‘쟤들보다는 그나마 현 정권이 낫다’며 고개를 돌릴 거다. 그렇게 둬서는 안 된다. 내가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보수계 인사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 한국당이 총선 공천권을 어떻게 행사해야 문제가 풀린다고 보나. 

    “공천권을 국민한테 넘겨야 한다. 중도보수의 신망을 받는 인물 100인 정도로 국민공천단을 구성해 모든 권한을 주면 된다. 이 경우 국민공천단을 선정하고 검증하는 과정부터 대중의 관심을 받을 것이다. 그동안 도무지 감동을 주지 못해온 한국당과 국민 사이에 순식간에 화학적 결합이 이뤄지는 거다.” 

    이 변호사는 요즘 재야 원로부터 30~40대까지, 나라를 걱정하는 사람을 폭넓게 만나고 있다고 했다. 국민공천단 아이디어는 그 과정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 그는 “아직 실명을 밝힐 단계는 아니지만 나와 뜻을 같이하는 사람이 많다. 누가 봐도 ‘저 사람 정도면 믿을 만하다’는 평을 듣는 보수계 인사들이 국민공천단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고 밝혔다.

    과감한 자기희생

    “한국당이 한 줌 흙도 안 되는 유승민, 안철수, 태극기 세력 등과의 통합에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건 한심하고 무력해 보인다. 진정 국민 속으로 들어가는 길이 뭔지 고민해야 한다. 이번 총선이 ‘국체’를 좌우하는 운명의 선거이니 도와달라고 절규하면서 정작 ‘후보는 우리가 공천하고 우리끼리 해먹겠다’고 하면 누가 공감하겠나.” 

    이 변호사 의견이다. 그는 “한국당의 구태의연한 이미지가 바뀌지 않으면 현역의원 절반을 물갈이해봐야 달라질 게 없다”고도 했다. 

    - 한국당이 공천 권한 자체를 포기하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하겠나. 

    “국민 마음을 얻으려면 과감한 자기희생이 필요하다. 지금 한국당은 누구 말마따나 수명이 다했다. 한국당을 기반으로 삼아 대권주자가 되고 싶은 사람이라면 모든 걸 내려놓아야 할 때다. 선거에서 승리하면 국민이 반드시 그 사람을 다시 부른다. 나부터라도 나선다. 내가 아무 욕심이 없기에 이런 말을 할 수 있다.” 

    이 변호사는 “분명히 밝혀둘 것은 내가 향후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거나 공직을 맡을 생각이 전혀 없다는 것”이라며 이렇게 밝혔다. 

    “국민공천단 아이디어가 실현되려면 참여 멤버 전원이 선거 불출마 선서를 해야 한다. 일정 수준 이상의 공직에도 진출하지 않겠다고 약속해야 할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모여 공정하게 후보를 결정하면 국민을 감동시킬 수 있고,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그는 국민공천단 구성에 전제 조건도 달았다. 반드시 중도보수 이념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변호사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한미일 동맹이 붕괴하지 않을까 불안해하는 국민 의견을 반영하기 위한 것”이라며 한국당이 200개가 넘는 보수 진영 시민사회단체에서 2명 정도씩 추천을 받고, 이후 공론화 과정을 거쳐 신망 높은 100인을 선정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국민공천단을 선정한 뒤 한국당은 모든 권한을 넘기기에 앞서 기본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지역의원은 당직 선수에 관계없이 지난 4년간 의정 활동을 잘한 순서대로 공천해달라. △다선의원을 무조건 배제하면 당력이 떨어질 수 있으니 고려해달라. △능력이 뛰어나지만 지역선거를 치를 만한 역량이 부족한 비례대표 의원은 비례후보로 재공천해달라. △신인 영입은 모두 국민공천단의 선택에 맡기겠다. 다만 가능하면 신인 공천의 절반 이상을 20~40대로 채워달라 등을 제시하는 게 가능하다. 이 정도만 해도 당내 결속을 지키면서 균형 잡힌 공천을 이끌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그는 인터뷰 내내 “희생하지 않는 보수에게는 미래가 없다”고 강조했다. 지금 한국당의 문제점을 “첫째 지도부의 리더십 부재, 둘째 국민과의 화학적 결합 부족, 셋째 외곽 시민사회단체와의 소통 부족”이라고 지적하며 “‘국민공천단 구성’으로 난국을 타개하라”고 주문했다. 

    “한국당이 이 제안을 받지 않으면 도리가 없다. 하지만 그럴 경우 후유증이 적지 않을 거라고 본다. 권력다툼이 벌어지고 보수의 궤멸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지금은 과감한 희생을 통해 보수의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할 때다.”

    이석연
    ● 1954년 전북 정읍 출생
    ● 행정고시(제23회), 사법시험(제27회) 합격
    ● 법제처, 헌법재판소 근무
    ● 경실련 사무총장, 헌법포럼 상임대표 등 역임
    ● 법무법인 서울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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