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8월호

‘의리파’ 장세동 ‘멋대로’ 전유성

그 양극단의 인기비결

  • 입력2006-09-19 14: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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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99년 초 국회에서 IMF관련 청문회가 논의되던 시점이었다. 청문회의 첫번째 증인으로 강경식 전부총리가 거론되던 중, 그의 비망록이 공개되는 바람에 화제가 됐다. 비망록에는 청문회 내내 꼿꼿한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거나, 청문회를 자신의 소신을 떳떳이 밝혀 대중적 인지도를 높일 수 있는 수단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등 세세한 지침이 적혀 있었다.

    그 지침은 5공비리 청문회 때 장세동 전 안기부장이 보여준 행동을 분석한 뒤에 나온 것이라는 후문이다. 한마디로 장세동을 벤치마킹한 것이다. 확실히 장세동은 노무현이나 장석화처럼 5공 청문회가 낳은 또다른 스타(?)였다.

    당시 청문회에서 장세동은 진짜 사나이 중의 사나이, 서울시장감이라는 말까지 나왔으니 청문회가 장세동을 잡는 곳이 아니라 장세동이라는 ‘의리의 남자’(?)를 온 국민에게 알리는 홍보성 이벤트가 된 셈이다. 현재 일반이 알고 있는 장세동의 긍정적 이미지는 대부분 이때 쌓인 것들이다. 선거 때마다 빠지지 않고 그의 이름이 거론되는 것도 바로 그러한 대중적 이미지 때문일 것이다.

    물론 일부 식자층에서는 그의 의리 타령을 유치하기 짝이 없는 뒷골목 건달패식의 사고방식으로 치부하기도 하고, ‘5공 원죄론’을 이유로 그에 대한 어떤 긍정적 평가도 반대한다. 그러나 장세동이란 인물의 대중적 이미지는 이미 그 자체로 대단한 파워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98년 지식인층에 비판의 칼날을 들이대는 일을 서슴지 않는 논객 강준만 교수가 장세동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장세동의 의리를 칭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가끔 텔리비전에 비치는 그의 얼굴도 날이 갈수록 더욱 당당해지는 것 같다. 그런데 전두환씨를 공격적으로 비호하는 것이 단지 의리 때문일까? 나는 그의 심리상태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의 심리만큼이나 중요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장세동에게 환호하는 대중의 심리다.

    탈주범 신창원을 보자. 신창원은 몇 년 동안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며 일부 청소년들 사이에서는 의적이라고까지 불렸지만, 신창원 사건을 사실 관계에만 주목한다면 내용은 싱거우리만큼 간단하다. 살인과 절도죄로 복역 중인 재소자가 감옥을 탈출하여 도피행각을 벌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반 대중이 가지고 있는 신창원에 대한 이미지, 즉 그에 대한 인식은 좀 다르다. 그의 만만치 않은 싸움 실력이나, 자신의 여자를 보호하려는 남자다움, 강철 같은 의지 등이 부풀려지면서 많은 사람들은 그에게 호기심을 느끼고 환호를 보냈다. 신창원의 이미지가 실제 신창원을 압도한 경우다.

    ‘장세동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질문에도, 장세동에 관한 ‘사실(fact)’과 장세동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recognition)’이라는 결코 쉽지 않은 문제가 내포돼 있는 것이다.

    전유성 기사는 왜 늘 똑같은가?

    기자들이 전유성을 인터뷰한 기사를 볼 때마다 생기는 궁금증이 있다. 그에 관한 인터뷰 기사는 모두 ‘천편일률’적이라 할 만큼 똑같다는 것이다. ‘내가 하는 말이 지구상에서 처음 듣는 얘기’가 되도록 끊임없이 애쓴다는 전유성의 노력은, 기자들이 쓰는 그의 인터뷰 기사에서는 여지없이 물거품이 되고 만다. 취재기자가 남자든 여자든, 학생기자든 권위있는 잡지의 중견기자든, 그 구성이나 내용은 서로 상대방의 논문을 베낀 대학원생들의 논문처럼 대동소이하다. 물론 전유성에 관한 호기심에서 시작된 필자의 글도 그런 신세를 벗어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에 관한 인터뷰 기사에서 반복되는 레퍼토리나 컨셉트는 대충 이런 것들이다. 개그맨이란 말을 최초로 사용한 사람이며, 가장 썰렁하게 웃기는 동시에 잘 웃지 않는 개그맨이다, 가수 진미령과 야외 결혼식을 올릴 때 썼다는 ‘비가 와도 강행합니다’라는 문구는 청첩장 역사상 최고의 명카피로 통한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패러디한 ‘남의 문화유산 답사기’라는 유럽여행 견문록 제목은 청운 초등학교 동창생인 유홍준 교수조차 감탄을 금치 못했다, 삼계탕집 오픈식의 특별 이벤트로 닭위령제를 지냈다, 그동안 펴낸 책이 아홉권이며 컴퓨터 관련 책 4권은 도합 100만권이 넘게 팔렸다, 한창 잘 나가던 시절 8개의 TV프로그램에 고정 출연하다가 하루 아침에 중단하고는 지리산에 혼자 들어가 두세달 살다 왔다, 올라올 때 지리산에서 서울까지 13일 동안 걸어왔다는 등 그의 엉뚱하고 기발한 행동들이 글의 재료다.

    이런 인터뷰 기사에 곁들이는 사진들이란 무표정한 그의 얼굴이나, 뒤돌아서서 바지춤을 내리고 소변을 보는 순간들이다. 결국 이런 기사들에서 그를 규정하는 키워드는 ‘새로움과 재미남’을 화두로 삼고 살아가는 ‘자유인’ 전유성이다.

    신기한 것은 늘 비슷한 톤에 비슷한 내용이면서도 그의 인터뷰 기사는 계속 여성지, 시사지, 주간지, 스포츠신문, 교양지, 대학신문, 네티즌을 대상으로 하는 웹진에까지 두루두루 실린다는 것이다. 코미디언 이주일처럼 늦은 나이에 벼락처럼 데뷔를 한 까닭도 아닐 것이고, 남희석이나 유지태 같은 젊은 친구처럼 소위 뜬다는 연예인도 아니고, 한석규처럼 베일에 가려 늘 팬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스타도 아닌데, 전유성은 그렇게 자주 인터뷰에 등장한다. 그에게 대중이 원하는 상품성이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렇다면 대중이 그에게서 느끼는 매력의 핵심은 무엇일까?

    정신분석가 중에 프릿츠 펄스(Fritz Pearls)라는 사람이 있다. 프로이트를 존경하던 동시대의 정신분석가였지만 프로이트의 이론을 반박했다는 이유로 프로이트 학파에서 쫓겨났고, 그로 인해 정신의학사에서도 별로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의 학설을 신봉하는 사람은 적지 않다. 그는 A부터 Z까지 인간의 ‘자유의지’가 중요하다고 역설했는데, 그 이론에 많은 사람들이 열광한 것이다. 성격발달에 대한 그의 기본 이론은 ‘환경 의존’으로부터 ‘자아 의존’으로의 변화다. 다시 말해 부모나 사회의 가치관에 의존하는 삶에서 벗어나 진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여 그것대로 살아가는 것이 인생의 핵심 과제라는 것이다. 그는 더 이상 도덕적 체계, 지적 체계, 종교적 체계에 의존하지 말고 ‘나의 실존에 대한 모든 책임은 나 자신이 져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펄스의 성격발달 이론을 대입해본다면 장세동의 삶은 ‘환경에 의존’하는 것이고 전유성의 삶은 ‘자아에 의존’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충성심과 지적인 느낌 주는 장세동

    장세동은 자신이 군인이 되지 않았다면 건축학을 전공하는 대학교수가 되었을 거라고 말한 적이 있다. ‘장세동 교수’라는 직함이 별로 어색하지 않을 만큼 그는 충분히 지적인 느낌을 주는 사람이다. 그 때문인지 ‘충성과 의리’의 이미지를 독과점하면서도 자칫 그런 경우에 동반되기 쉬운 ‘단순·무식·경박’ 등의 부정적인 느낌을 주지 않는다.

    실상 충성심으로만 따지자면 전임 경호실장들이었던 박종규나 차지철 혹은 이후락 같은 이들도 장세동 못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들에게 열광하지 않는다. 장세동처럼 충성스러우면서도 스마트하고 지적인 느낌을 함께 주지 못한 것이 이유가 될 것이다.

    그는 자기 통제력이 뛰어나며 사전 준비가 놀라울 만큼 치밀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많이 받는데, 5공 청문회가 그것이 사실임을 증명해주었다. 그의 청문회 증언 등을 보면 무관답지않은(?) 어휘력으로 명확하게 개념을 정리한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나는 정치란 진실을 논리적으로 정리하는 과정이 아니라 사회 통념을 선점하기 위한 선전 내지 선동이라고 봅니다. 이럴 때는 용어가 중요해요. 신문사 편집기자들의 제목 선택이 사회적 통념을 만드는 데 중요합니다.”

    5공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는 많은 부분 언론에 책임이 있다며 목소리를 높이던 그의 말이다. 논리의 타당성은 둘째로 하고 이쯤되면 완전히 5공의 율사 수준이다.

    실제로 많은 군출신 인사들이 활동하던 80년대에 그를 자주 접했던 한 중견 기자는 그를 자신이 만나본 군인들 가운데서 가장 두뇌가 명석한 사람이라고 기억했다.

    연대기에 의거하여 간단하게 장세동이란 인물의 삶을 살펴보자. 장세동은 1936년생이다. 전남 고흥군 도양면에서 3형제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4살 때 서울로 이주한 후에 성동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계속 서울에서 살았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육군사관학교 1960년 졸업앨범인 ‘북극성 4293’을 보면 장세동과 친하던 동기생들조차 그의 출생지를 서울로 알고 있다는 기록이 나온다.

    해방되기까지 경찰공무원이던 그의 아버지는 6·25때 실종됐다. 등록금을 마련할 수 없었던 그는 원래 마음먹었던 서울대 건축과를 가지 못하고 1957년 육군사관학교에 16기로 입학한다. 이종찬, 천용택 국정원장과 고강재구 소령이 그의 육사 동기다. 1971년 35세라는 늦은 나이로 은행원이던 지금의 부인과 결혼했다.

    1977년 수경사 30경비단장으로 임명되었는데, 12·12때의 경복궁 모임이 바로 30경비단장인 그의 사무실에서 이루어졌다. 5공이 들어서면서 그의 전성기가 시작된다.

    장군으로 진급한 1981년 7월에 경호실장에 취임해 3년7개월간 재직했다. 재직 중인 84년 12월엔 중장 진급과 동시에 전역, 28년간의 군생활을 마감했다.

    85년 2월 안기부장에 임명되어 87년 5월 박종철군 고문 은폐사건으로 물러날 때까지 2년3개월 동안 명실상부한 5공의 2인자 노릇을 했으며 한때는 전두환 후계자로까지 거론된 적이 있다.

    88년 5공 청문회 증인으로 나온 이후부터는 ‘어른’을 위한 시련(?)의 연속이었다. 89년 1월 일해재단 설립비용 모금과 관련해 직권남용 혐의로 처음 구속된 그는 93년 3월에는 87년의 통일민주당 창당방해 사건(세칭 용팔이 사건)을 배후조종한 혐의로, 96년 12·12 및 5·18사건에서는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로 각각 쇠고랑을 찼다. 2000년 7월 현재 그는 65세의 나이로 ‘어른’의 잦은 나들이에 동행하며 여전히 당당하게 살고 있다.

    장세동이란 인물은 그가 ‘어른’으로 모시는 전두환 전대통령과 연결시켜 살펴보지 않으면 그 참모습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다. 이도령과 분리된 방자를 생각하기 어려운 것처럼 장세동은 전두환을 통해서만 의미가 생기는 사람이 돼버렸다. 부모 품을 떠나기가 두려워 시집도 안간 채 순종적으로 살아가는 노처녀의 삶처럼 그의 삶은 종속적이고 불안정하다.

    장세동이 전두환을 처음 만난 건 1966년 그가 월남전에서 부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였다. 유럽 출장 길에 병원에 들렀던 당시 전두환 중령은 장세동 대위에게 깊은 인상을 받았는지, 1967년 11월에 그가 월남에서 돌아오기도 전에 자신이 대대장으로 있는 수경사 30경비 대대 작전장교로 명령을 내놓았다. 상관과 부하관계로서 둘 사이에 최초의 만남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 후로 두 사람은 파월 백마부대의 일원으로, 공수특전단장과 대대장으로, 대통령 경호실의 상관과 부하로, 무려 7년8개월을 동고동락하게 된다. 그는 전두환과 가장 오랫동안 직접 상관과 부하관계를 유지하며 같은 부대에서 군 생활을 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장세동은 지금도 전두환을 ‘어른’이라고 지칭한다. ‘어른’이라는 말 속에는 상대적으로 자신을 미성숙한 ‘어린 아이’로 규정하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 전두환과 장세동은 육사 11기와 16기의 선후배로 실제 나이는 5살 정도밖에 차이가 안 나지만 그가 ‘어른’을 대하는 태도는 엄격한 부자지간이나 봉건적인 군신 관계를 연상케 한다. 큰절을 올리는 것은 다반사고 자신의 생각이 어른에게 알려지는 일 자체를 ‘외람되게’ 생각한다.

    그는 어른을 정성으로 모셨다고 말하면서 그런 면에서 자신은 행복한 사람이라고 토로한다. 훌륭한 분을 오랫동안 모실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가 ‘어른’에게 바치는 정성과 충성심은 경호실장과 안기부장을 거치면서 절정에 달한다. 대통령이 산책로에서 돌부리에 걸려 비틀거리면 심기가 불안해지고, 그렇게 되면 의사결정에 악영향을 끼친다면서 도로의 정지작업 정도로는 성이 안 차 길에 새똥이 쌓여 굳은 것을 녹이는 약품까지 개발하게 했단다. 대통령의 심기 안정이 경호실장과 안기부장의 가장 큰 임무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른바 ‘심기경호’다.

    그는 경호실장 시절에 ‘어른’이 찾으면 늘 3분 이내에 출두했으며 연락 받는 즉시 머리 손질을 하고 ‘어른’이 쓰는 것과 똑같은 향수를 뿌리고, 권총을 찬 뒤 윗옷의 양 호주머니에 지도를, 그리고 메모용 수첩을 반드시 윗옷 안호주머니에 넣고 갔다고 한다. 지도는 수행 도중에 대통령이 산의 높이나 낯선 건물에 대해서 물을 때 머뭇거리지 않고 대답하기 위해서다.

    그는 또 술자리에서도 각하의 말씀 하나라도 놓칠까봐 바로 옆자리에 앉아서 메모를 했다고 한다. 각하가 술맛이 떨어지겠다고 핀잔을 주었을 정도라니 기가 질릴 만하다. 그런데 그렇게 하는 행동에 붙이는 이유가 자못 숙연하기까지 하다. 사석에서라도 대통령께서 공무에 관계되는 말씀을 하시면 적어 두었다가 관계 부서장에게 통보해주려고 그랬다는 것이다. 이쯤되면 입속에 혀가 따로 없다. 분명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본능에 반하는 한결같은 충성심

    그러나 사람들이 장세동에게 환호를 보내는 건 주군에 대한 의리나 충성심이 직업적, 객관적 관계가 종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되었기 때문인 듯 싶다. 5공이 끝난 뒤 경호실장이나 안기부장으로서 객관적인 책임감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어른을 보호하기 위해서 기울인 노력은 처절하기까지 하다. 인구에 회자되는 명언도 많이 남겼다.

    “사나이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에게 목숨을 바친다” “어른을 구속하려 들 경우에는 내가 역사의 수레바퀴에 깔려 죽는 한이 있더라도 막을 것이고, 그러지 못한다면 나도 어른의 뒤를 따라 가겠다” “가만히 있어라. 내가 링에 올라가면 모두가 불행해진다” “용팔이 사건에는 나 이상의 배후가 없다” “신고합니다, 각하. 휴가 잘 다녀왔습니다” 등등이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그에게 의리의 사나이 돌쇠니, 그림자 인생이니 하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사람이란 기본적으로 자기중심적인 속성을 가졌기 때문에 결정적인 위기의 순간에 타인을 먼저 생각해서 자기 이익에 반하는 행동을 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그래서 장세동의 ‘본능에 반하는’ 한결같은 충성심은 대중을 감동시킨다.

    강준만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장세동 같은 인물은 자기에게 주어진 현실을 자신의 이데올로기로 바꾸어 정당화시키는 일에 거리낌이 없다. 그는 누가 그런 현실을 비판하면 ‘개새끼’라고 소리치는데, 그 소리는 확신과 신념으로 가득하다는 것이다.

    몇 가지 물건 중에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요받은 사람이 오랜 생각 끝에 하나를 선택했다고 가정하자. 선택 후 사람의 반응은 선택 전과는 달라진다. 자기가 선택한 것은 확실히 좋은 것이었다고 확신하며,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평가절하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때론 자기가 선택한 것에 대해 적극적인 선전자로 변하기도 한다. 상표 충성도(Brand Royalty)가 생기는 심리적 이유다.

    자기가 선택한 상품에 대해서 불안감이 큰 사람일수록 선택후의 합리화 경향이 심해진다고 한다. 그가 지금까지도 전두환이라는 상표에 지나치게 충성하는 정도도 혹시 그의 내적 불안감의 크기와 비례하는 것이 아닐까.

    물론 장세동의 의리나 충성심 전체를 깎아내리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그에게 혹시 이런 속마음도 있지 않을까 상상해보는 일조차 금지된 것은 아니잖은가.

    “나도 한두번쯤은 내 행동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해보았습니다. 나도 생각이 있고, 똑똑하다면 똑똑한 놈 아닙니까. 그렇지만 이제는 전두환에 대한 충성심이나 의리를 계속 외쳐대는 것 외에는 사실 대안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내 의리를 그토록 칭찬해주었는데 이젠 너무 지쳤다고 말할 수도 없지 않아요? 지금 와서 등을 돌려 나에게 득이 될 게 뭐 하나라도 있어야지요. 그러니 참아야지요. 갈 때까지 이대로 가는 수밖엔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그런데 그의 ‘어른’은 늘 전력투구형 충성심에 익숙해 있는지도 모른다. 아나운서 김동건이 기자와 인터뷰 중에 이런 말을 했다.

    “저는 전두환 전대통령이 신기합니다. 어떻게 한 인간을 그 많은 사람들이 추종할 수 있을까 하는 점 때문이죠. 장세동, 안현태 등 수없이 많잖아요. 그런데 어느날 우연히 함께 식사를 할 기회가 있어 물어 봤어요. ‘장세동, 안현태 이런 분들이 왜 그렇게 충성합니까?’그랬더니 뭐라 대답한 줄 아십니까? ‘그 사람뿐이 아니여. 그런 사람 말고도 많아요’라며 웃더군요.”

    배신에 대한 두려움을 가진 남자들

    한 순진한 처녀가 운명적인 사랑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남자를 만났다. 그런데 운명의 장난으로 그 사내는 플레이보이였다. 처녀는 남자를 만나고 집으로 돌아와서도 밤새 그와 함께 했던 시간들을 달콤하게 추억하지만 바람둥이 사내는 그 시간에 또 다른 여자를 만나고 있다. 순진한 처녀에겐 그 남자가 유일한 대상이지만 플레이보이에게 그 처녀는 여러 여자 중 하나일 뿐이다. 장세동은 순진한 처녀일 수도 있다.

    전두환 전대통령은 자신의 끈끈한 인간 관계를 바탕으로 정상의 권좌를 차지한 사람이다. 인간관계에서 그의 가장 큰 능력은 동기생이나 부하들로 하여금 ‘저 사람은 누구보다도 나를 제일 신뢰한다’고 믿게 만드는 힘이라고 한다.

    거기에 덧붙여서 받는 사람의 예상보다 늘 ‘0’이 하나 더 붙어 있곤 하는 촌지 액수도 그에 대한 충성심을 강화하는 데 한몫을 한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실제로 장세동이 감옥을 다녀와 “휴가 다녀왔습니다”라고 인사를 하자 전두환 전대통령은 물경 18억원을 그에게 위로금으로 주었고 그 후에도 8차례에 걸쳐 모두 30억원을 하사했단다. 아무리 대가를 바라고 바치는 충성이 아니라고 주장해도, 주군이 이 정도의 배려를 하면 감읍하지 않을 도리가 없을 것이다.

    “배,배, 배신이야. 배신.”

    한동안 장안의 화제가 되었던 유행어다. ‘넘버3’라는 한국 영화에서 얼치기 두목 조필(송강호)이 졸개들의 절대적인 충성심을 강요하면서 더듬거리던 대사다. 남자들은 배신자로 낙인찍히는 것을 죽기보다 두려워한다. 신의가 없는 남자는 남자도 아니라는 것이다.

    10·26 때 김재규의 명령 한마디에 대통령 경호원들을 사살하고 거사에 가담했다가 사형을 당한 박선호 당시 의전과장의 고백은 충성이나 신의에 집착하는 남자들의 안쓰러운 삶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수사할 때 수사관이 나보고 바보라고 했다. 김부장을 쏘거나 밀고했으면 되는데 그러지 않아서 이렇게 사형을 당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내가 배신했으면 김부장은 마음이 아팠을 것이다. 신의가 중요하다. 신의가 없는 상관은 죽은 상관이다.”

    사람들, 특히 남자들은 배신에 대한 두려움을 마음속 깊이 가지고 있는 듯하다. 남자들의 삶은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는 살벌한 삶의 터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의 충성이나 의리에 대한 무의식적 집착은 그 뿌리가 놀랄 만큼 깊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진돗개를 명견으로 꼽는 첫번째 이유도 진돗개의 충성심 때문이다. 진돗개는 주인에게 절대 복종하는 성질이 있어 한번 정해진 주인은 몇년이 지나도 잊지 않고, 주인과 한번 맺은 인연은 죽음으로까지 지켜나간다고 한다. 이 대목에서 사람들은 진돗개에게 경의(?)를 표하기까지 한다.

    사람들이 장세동에 열광하고 호감을 거두지 않는 것은 그가 남자들의 마음속에 있는 배신에 대한 잠재적 불안감을 해소해 주는 인물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어른 중심의 세계관’은 그의 정상적인 균형감각을 마비시킬 수밖에 없다. 100억원짜리 대통령 별장인 청남대 건립, 전대통령 사저 주변 공원화 계획, 4000만달러짜리 대통령 전용기 도입, 전직 대통령에 대한 경호규정 신설, 호사스럽다는 비판을 받은 지방 청와대 등등 그가 경호실장 재직 시절에 벌인 일들이다.

    그는 그 모든 일에 대해서 ‘어른’을 중심으로 한 논리만을 가지고 국민들의 무지를 한탄했다. ‘소설 전두환’이란 소설에 보면 전직 안기부장에 대한 인물평이 나온다. 자신의 주인에게 복종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을 희생한 사람. 확실히 그는 위에서 밑으로 내리꽂는 하향식 사고에 익숙한 사람이다. 24년간을 군대라는 조직에서 보냈음을 감안한다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군인은 명령에 거의 무조건 따르도록 훈련된, 사고방식이 아주 단순한 사람입니다. 이렇게 복잡한 사회를 끌고 나갈 수가 없어요.”

    12·12사태 와중에 부하들에게 총격을 받았던 정병주 전특전사령관이 군인의 특성에 대해서 한 말이다. 정상적인 사람이 과연 군대라는 특수사회에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을까? 소설가 구효서는 그의 병영소설에서 그런 의문을 제기한다.

    “여기서 정상적이라 하는 것은 건강한 사고, 양심적 심성, 비판적 사회인식, 진실된 인간애 같은 것들을 일컬을 터인데, 이렇게 말하면 이미 군대 생활 잘하고 제대한 분들 중에서 성질 급하고 피해의식에 젖은 양반들은 대뜸 그럼 나는 비정상이었다 이거지? 하고 달려들 것이다.

    그러나 그런 말이 아니다. 애써 변명하자면, ‘비정상’이 아니라 ‘비정상적’이었다는 얘기다. 비정상과 비정상적인 것은 엄연히 다르다. 울며 겨자먹기, 즉 까라면 (싫더라도) 까야지 할 때 ‘싫더라도’라는 감정을 소유할 수 있으면 그는 비정상이라고 할 수 없고 비정상적이라 할 수 있다.”

    장세동 전 안기부장의 충성심은 과연 ‘비정상’인가 아니면 ‘비정상적’인 것인가. 그의 나이 올해 예순 다섯이다. ‘당이 결정하면 우리는 한다’식으로 상대방과 객관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없는 충성심은 ‘비정상적’이 될 수 없다. 어떤 경우에도 불복종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 그는 ‘비정상’인 것이다.

    펄스의 기본사상을 담은 글을 장세동에게 바친다.

    ‘내 일은 내가 하고 당신 일은 당신이 하는 것. 내가 당신의 기대에 따라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며, 당신 또한 나의 기대에 따라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아닌 것. 당신은 당신, 나는 나. 우연히 서로를 발견한다면 그것은 아름다운 일. 그렇지 못할 땐 어쩔 수 없는 일.”

    전유성에 대한 아우성

    지난 7월초 우연하게 한 인터넷 사이트에서 젊은 네티즌들이 전유성에 대해서 토론하는 광경을 보게 되었다. 한 사람이 전유성의 개그를 비판했다. 너무 썰렁하게 웃기려고 애쓰는 모습이 안쓰럽다. 그런 안쓰러운 모습을 안 보았으면 좋겠다. 웃기는 데도 수준이 있는 법이다. 대개 이런 식으로 비판했다. 필자의 관심을 끈 것은 그에 반론을 폈던 한 네티즌의 반응이다.

    “글쎄 수준이라기보다는 취향이 다르다고 해야 좀더 옳겠죠? 전 예전엔 전유성씨를 안 좋아했어요. 나오면 딴 데 틀기도 하고 막 욕하고 다니고 그랬거든요. 근데 나이들면서(?) 아니 시간이 지나면서 그 사람의 유머가 이해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그 탁월한 발상은 화려한 달변이나 요상한 몸짓으로 표현하지 않아도 나를 감탄하게 만들죠. 그는 우리가 원하는 개그맨이나 코미디언의 모습은 아닐 수 있어요. 난 그렇게 많은 것을 머리와 마음에 담아 두고도 늘 그렇게 어눌하고 어색한 모습으로 무대에 서 있는 전유성씨가 우습기만 하던데…. 어쨌든 전 그가 부럽습니다. 사회생활하면서 그 사람처럼 머리가 팍팍 돌아가고 아이디어가 넘친다면, 그렇게 부지런할 수 있다면 좋겠어요. 나도….”

    대화의 내용으로 보아 아마도 20대 남성일 듯 싶은데 그런 나이에 전유성을 좋아한다는 게 의외였고, 또 그를 좋아하는 이유가 흥미로웠다. 개그맨으로서도 그렇지만 삶에 관한 포지티브한 전범(典範)으로 전유성을 옹호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확실히 전유성이란 인물은 무대보다 오히려 일상 속에서의 삶이 더 매력적이고 얘깃거리가 많은 사람이다. 그는 하루 10분은 자기 직업에 대해서 생각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자기 자신과 직업에 대한 정체성이 없으면 존재 근거가 흔들린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인터뷰 기사들은 전유성 개인의 신변잡기에서 시작되는 듯하지만 결국은 삶의 철학에 대한 얘기로 넘어간다. ‘개그맨이 되어버린 철학자’란 주철환의 표현이 조금도 어색하지 않다.

    그는 20대 때 대마초 사건에 걸려 6년 반 동안 방송에 얼굴을 내밀지 못한 적이 있고 그 사건으로 한 달 동안 정신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정신병원에서 퇴원했을 때, 주변에서 걱정 반 농담 반으로 위로의 말을 건넸으나 그는 오히려 한달 동안의 정신병동 생활이 즐거웠노라고 대답했다 한다. 뭔가 남들과는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 틈에서 뭔가 남들과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나친 감은 있지만 전유성답다. 그는 남들과 다른 것, 즉 차별화 전략을 삶의 제1장 1절로 삼는 사람이다. 그의 아이디어 발상법 6가지 원칙 중 첫째도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것부터 지워 나갈 것’이다. 그런데 이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먼저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어떤 것인지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그걸 알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다른 사람과 전혀 다른 무엇인가를 끄집어내야 하는데 이게 또 얼마나 힘든 일인가 말이다.

    언젠가 모대학에서 주최하는 고등학생 대상 백일장에서 학생들에게 ‘내일’이란 시제를 주고 글을 써내라고 했단다. 거의 모든 학생이 ‘내일과 희망’, ‘스피노자의 사과나무’ 류의 소재로 비슷한 주제를 담은 글들을 써내 심사위원들이 허탈해 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내일이라는 것에서 연상되는 생각 중에 딴 사람도 생각했음직한 것들을 지워보라. 남는 생각이 있기는 한가.

    그런데 전유성이란 사람은 거의 습관적으로 매일 그렇게 살고 있다는 거다. 그는 어릴 때 읽은 ‘빙점’이라는 소설이 발상의 전환이라는 화두를 자신에게 안겨주었다고 말한다. 주인공 꼬마가 돈을 잃어버린 뒤에 “내 돈을 주운 사람은 얼마나 운이 좋을까?”하는 대사에서 그런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이다.

    전유성식 철학의 중심은 펄스가 말한 ‘자아 의존’이다. ‘처음’ 프리미엄, 주인없는 땅에 내 마음대로 깃발을 꽂을 수 있고 그 쾌감을 아는 남자다. 자유의지에 의한 철저한 ‘자아 의존’의 경험은 그의 정체성이나 사물에 대한 호불호(好不好)를 명확하게 한다. 익히 알려진 대로 그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어떤 일이 있어도 하는 스타일이고, 못마땅하다 싶은 일을 당하면 억지다 싶을 정도로 단호하게 대처한다.

    ‘처음’이라는 프리미엄

    불교방송의 한 프로그램에서 40을 바라보는 딸이 시집갈 생각을 안 한다고 하소연하는 아주머니가 전화를 걸어와 “딸에게 시집 좀 가라고 전유성씨가 방송을 통해 한마디 해달라”고 부탁했다. 사실 이럴 때 대부분의 진행자는 싫어도 참고 부탁을 들어주게 마련이다. ‘올해는 꼭 결혼해서 어머니 걱정 좀 덜어 드리세요’식의 상투적인 멘트를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전유성은 이렇게 물었다.

    “딸이 방송을 듣고 있나요?”

    “안 들어요.”

    “안 듣고 있는데 내가 얘기해봤자 무슨 소용 있어요?”

    “그래도 해주세요.”

    “난 그렇게 못해요. 시집가라고 하는 엄마 말도 안 듣는 딸이 개그맨 말 듣고 시집가겠다고 결심한다면 그 여자가 잘못된 거 아니에요?”

    방송이 끝나고 항의전화가 빗발쳤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단다. 자기 말이 백번 옳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는 아무리 자식을 아끼는 부모라도 자식의 자유의지는 침범하지 말아야 한다고 철석같이 믿는 사람이다.

    어떤 아줌마가 전유성에게 다가와 자기 아이가 그를 좋아한다면서 사인을 해달라고 말했다. 아이는 저쪽에 서 있고, 엄마가 대신 사인을 받아다 주려는 것이다. 그러면서 ‘공부 열심히 해라’ 그렇게 써달라고 전유성에게 주문한다.

    실제로 이런 상황이 닥치면 그는 완전히 돌아버린다. 쌍욕만 안 할 뿐이지 거의 두들겨팰 듯이 그 아줌마를 닦달한다. 부모가 부적절하고 무리하게 자식의 인생에 관여하면서 자유의지를 침범하는 그런 일에 가장 크게 분노하는 사람이 전유성이다.

    그가 선배와 함께 베란다같이 생긴 창문이 있는 어느 카페 앞에 잠시 앉아서 얘기를 하는데 주인 여자가 뛰어나와 왜 남의 가게 앞에 앉아 있느냐고 화를 냈다. 선배가 그녀에게 말했다.

    “보아하니 장사가 잘 안되는 것 같은데 그게 다 이유가 있는 거예요. 이럴 때 ‘여기 앉아 있는 것보다 안에 들어오시면 좋은 자리가 있는데요’하면 얼마나 좋아요. 당신같이 여기 앉아 있는다고 화를 내는 마음씀씀이 때문에 손님이 안 오는 겁니다.”

    전유성은 선배의 말이 너무나 지당하다 싶었고 은근히 화가 나기 시작했다. 뒤늦게 흥분한 것이다.

    “정말 왜 그렇게 화를 내고 그래요? 우리가 손님으로 가도 화를 냈을 거예요? 내일 아침에 유리창이 깨져 있으면 내가 깬 줄 아세요.”

    그날 밤 그는 정말로 그 카페의 유리창을 깨버렸단다. 좀 어이가 없을만큼 과격하다. 호불호가 지나쳐 오버를 하는 때도 있긴 하다.

    그의 아내 진미령은 솔직히 결혼 전에는 전유성에게서 좋은 점을 하나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그런데 결혼하고 나서 그 남자를 좋아할 이유가 생겼다고 한다. 그것은 바로 굳이 자기 것이라는 이기심을 버리고 자기 아이디어를 서슴없이 동료나 후배, 혹은 주변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점이라는 것이다. 그에 대한 전유성의 답변은 간단 명료하다.

    “남들이 나보고 아이디어가 많다고 하지만, 어떤 아이디어가 김형곤에게 맞다고 생각되면 김형곤 주고, 최양락에게 맞으면 최양락 주고, 그러니까 내 아이디어가 많아 보이는 거죠. 다들 자기가 쓸 아이디어만 찾거든요.”

    전유성만큼 말코 같은 떨거지들을 잘 보살피고 돌보는 사람을 일찍이 본 적이 없을 정도라는 게 대다수 후배들의 얘기다. 한마디로 의리가 깊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런 성향 때문인지 이규형 같은 후배들은 그를 교주로까지 추종한다.

    그러나 필자는 그것이 그가 이타적이거나 의리가 강해서 그러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는 이미 ‘조금만 비겁하면 인생이 즐겁다’고 공언한 사람 아닌가. 그의 ‘결과적인 나눠주기’는 그가 자신에 대해 명확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주연보다는 조연에 더 어울리고, 기타로 쳐도 퍼스트 기타가 아닌 베이스 기타이므로 주연 하려 들다가는 조연도 못하고 사라지고 말 것이라는 자신의 운명을 처절하게 알고 있다. 그래서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것은 남들에게 유감없이 나눠줄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개업하는 사람 가게 이름 지어주기, 실업자 친구에게 장사 아이템 만들어주기가 취미다. 그의 사업 아이디어로 돈을 번 사람도 많다고 한다. 전유성이 지금 연예계 막후 실세로, 대부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은 순전히 자기를 아는 힘 때문인 것이다.

    그의 후배들은 늘 그의 독서량과 여행량, 만나는 사람들의 양(?)에 경악하며 그 부지런함에 고개를 숙인다. 그는 연예인중 책을 가장 많이 읽는 사람이다. 98년 연말에는 교보문고에서 한 해 동안 가장 책을 많이 산 5명 안에 뽑히기도 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책이란 것은 가장 값싼 돈으로 가장 안 심심하게 해주는 놀이 기구란다. 책 중에서도 특별히 상상력을 자극하는 ‘시집’을 가장 많이 읽는다는 그의 실제 삶에는 시처럼 함축된 언어와 상징 같은 것이 많이 담겨 있다. 그의 삶과 일상의 행동들은 길게 설명되는 산문적인 것이 아니고, 너무나 절제되어 있어서 처음에는 그 의미를 알 수 없는 시처럼 앞뒤 연결이 안 되는 듯 보이는 엉뚱함과 변화무쌍함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자유인은 튀는 사고가 아니라 행동으로 완성된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양심이 아니다’라는 말처럼 행동없는 자유의지란 공상가의 심심파적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전유성은 완전한 ‘자유인’이라 할 만하다. 그는 생각뿐 아니라 행동에서도 거침이 없다.

    일을 하다가 갈증을 느낀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의 주관심사는 ‘갈증’이고 ‘일’은 부관심사이다. 그러나 물을 마시고 나면 주관심사였던 ‘갈증’은 그에게 배경(背景)이 되어 물러나고 부관심사였던 ‘일’이 그제서야 비로소 주관심사가 되어 그는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주관심사와 부관심사가 끊임없이 순환하는 것이 인간의 삶이며 그 순환이 원활할 때 정신적으로 건강한 삶이라 할 수 있다.

    어떤 사람에게 주관심사로 무언가가 떠올랐는데 그것을 해소하기 위한 행동이 뒤따르지 않으면 그의 삶은 거기서 막혀 버리고 만다.

    30대 중반 이후에 오는 ‘정신적 변비’

    춤을 배우고 싶어하는 직장인이 있다. 현재 그에게 주관심사는 ‘춤’이고 부관심사는 ‘일’이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춤을 추게 되면 다른 사람들로부터 조롱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어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전전긍긍하고만 있다. 그러다 보면 그의 주관심사는 계속 해결되지 못한 채 배경으로 물러나지 않는다. 그런 한 그의 ‘일’은 항상 부관심사로 처져있기 때문에 직장에서 일의 효율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늘 생각만 있고 행동이 뒤따르지 못하는 일종의 ‘정신적 변비현상’이다.

    30대 중반 이후에는 신변의 작은 변화에도 장고(長考)를 거듭하게 된다. ‘정신적인 변비’가 시작되는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각만 반복하다가 결국 아무런 변화도 주지 못하면서 ‘무난하게’ 살아가는 것이 좋은 것이라고 자위(自慰)하고 만다. 행동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자괴감을 숨기면서.

    이런 우리를 비웃기라도 하듯 전유성은 ‘자기 인생의 주도권’을 철저히 자기 책임하에 두고 과감히 행동에 옮긴다.

    전유성이 일이 없어 여기 저기 떠돌던 시절의 일이다. 점심 무렵, 그가 친구 사무실을 찾았다. 친구와 식사를 하러 나가려던 전유성은 날씨가 너무 덥다면서 바지를 벗었다. 그리고는 옆에 있던 가위로 그 바지를 잘라서 반바지로 만들어 입고 나갔다. 그런 식이다. 그는 생각이 들면 주저없이 바로 행동에 옮긴다. 여름에 긴바지를 입고 있다 보면 가끔 자신의 바지를 반바지로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실제로 자르기는 어렵다. 바로 그런 행동력이 그에게 거침없는 자유를 보장해 주는 것이다.

    사람들이 갈등 속에서 번민하며 망설이고 있을 때 그의 인생은 잘 뚫린 고속도로처럼 진도가 쭉쭉 나가고 있다. 그는 벌써 저만치 가서 새로운 방법으로 자신의 인생을 계속 실험하고, 느끼며 향유하고 있다.

    상상이나 꿈, 취미생활을 통해서 부분적으로 자유를 느껴볼 수는 있다. 취중에 잠깐씩 자유스런 느낌을 가질 수도 있지만 인생 전체에서 자유를 느끼기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구두끈을 맬 때마다 어디론가 가고 싶었던’ 행동파이기도 하다. 자유의지와 행동에너지가 절묘하게 배합되어 있는, ‘머리와 발’을 동시에 갖춘 보기 드문 사람인 것이다.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결정하는 행위 그 자체다.’

    정신분석가 펄스는 ‘자아 의존’의 삶에서도 행동력이란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무의식적 욕구를 거침없이 행동으로 옮기며 사는 그에게 부러움과 당혹감과 호기심을 느낀다. 그에게서 내가 펼쳐 보고 싶은 무의식의 세계를 엿보기 때문이다. 그게 바로 나이 쉰 둘의 개그맨 전유성이 아직도 그렇게 많은 인터뷰 속에서 일관되게 ‘자유인’ 이미지로 그려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는 ‘자아(自我)의 진도’에 있어 장세동을 너무나 앞서가고 있다.

    한 명상가가 수련생들에게 말했다.

    “당신 생명이 1개월밖에 남지 않았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그런 다음 그 1개월 동안 당신이 꼭 하고 싶은 일들을 떠올려 보십시오.”

    사람들은 진지하고도 고통스럽게 때로는 눈물까지 흘리면서 자신의 마지막 소망을 종이에 적었다. 고향으로 내려가 노모의 손을 잡고 산책을 하다 생을 마감하겠다는 중년 남자, 늘 권위적이기만 한 자기 보스에게 눈을 부라려보겠다는 소심한 샐러리맨, 자신의 전재산을 정리해 카리브해의 호화유람선을 타보겠다는 20대 처녀, 자신의 장기를 이식하겠다는 청년, 내가 사랑하던 모든 사람의 발을 정성껏 씻어주겠다는 주부.

    명상가가 그들에게 다시 물었다.

    “그런데 그 소망을 왜 지금 바로 행동에 옮기지 않는 겁니까?”

    당신의 자유의지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그 자유의지를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게 막고 있는 장애요인은 또 무엇인가. 그것을 정확히 알고 있다면 당신은 이미 절반의 자유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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