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3월호

전 안토니파 보스 안상민 , 김두한 후계자 조일환

  • 조성식 mairso2@donga.com

    입력2005-04-29 15: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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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7년 대선때 모정당의 정치공작 거절했다”

    《검찰은 폭력배들의 개과천선을 좀처럼 믿지 않는다.

    조직폭력과 전쟁을 벌이는 강력부 검사들은 출소한 폭력배들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감시한다. ‘새 삶’을 선언한 주먹도 예외가 아니다.

    ‘걸레는 빨아도 걸레’라는 것이 강력부 검사들의 신조. 주먹계에 몸담았던 사람이 그 세계를 떠나기는 이토록 힘든 것이다. 아니, 떠났음을 인정받기가 힘든 것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끊임없는 유혹의 손길과 의혹의 눈초리에 맞서 싸워야 한다.



    전 안토니파 보스 안상민씨(44)는 이런 점에서 눈여겨볼 만한 주먹이다.

    안씨는 네 차례에 걸쳐 약 10년간 옥살이를 했다. 1999년 1월 출소 이후 고향인 충남 서산에 정착한 그는 ‘평범한 사람’으로 탈바꿈하는 데 성공했다는 평을 듣고 있다. 그의 아내는 시장에서 이불가게를 한다. 현재 청소년선도에 전념하고 있는 그는 거의 매일같이 아내의 가게에 들러 이불 배달을 거들고 있다.》

    당대 최고 주먹

    안토니파는 80년대 서울 종로와 명동 및 강남 일대를 주름잡던 폭력조직. 20대 초반에 고향인 서산과 당진 홍성 대천 예산 등 충남 일대를 평정한 후 서울로 진출한 안씨는 타고난 싸움 솜씨를 인정받아 이른바 ‘전국구 주먹’의 반열에 올랐다. 당시 서울 주먹계를 좌지우지하던 3대 패밀리의 명성이 조직력과 ‘연장질’에 힘입은 것이라면 안토니파의 위력은 보스 안씨의 주먹 실력에서 뿜어져 나온 것이었다. 그는 유난히 ‘맞짱(일대일 승부)’을 즐겼으며 패한 적이 거의 없는 당대 최고 주먹 중 하나였다.

    그의 이름이 언론에 크게 보도된 것은 1987년 살인교사혐의를 받았던 그가 자수했다가 탈주, 경찰의 추적을 받을 때였다. 언론은 ‘경호원들을 거느리고 외제 방탄차를 타고 다니는 폭력계 대부’라고 표현했다. 1992년 10월 그가 청송교도소에서 출소했을 때 그의 ‘아우’들은 교도소 정문 앞에 관광버스 3대와 승용차 30대를 포진시켜 세를 과시하기도 했다.

    비행청소년 선도하는 재미

    기자가 서산을 찾은 지난 2월3일 그는 이마에 상처를 입은 상태였다. 사정인즉 이랬다. 전날 밤 서산엔 눈이 많이 내렸다. 그는 평소처럼 그날도 차를 몰고 밤거리 순찰에 나섰다. 오토바이 폭주족을 발견하곤 뒤를 쫓았는데, 눈길에 차가 굴러 전신 타박상에 이마가 찢어지는 부상을 당했다는 것이다.

    “매일 밤 11시∼새벽 2시까지 밤거리를 순찰합니다. 처음엔 재미로 시작했는데 한 2년 하다 보니 재미가 덜해요. 밤거리에 비행청소년이 거의 사라졌거든요.”

    ―젊은 애들이 반항하지는 않습니까.

    “아직 망신당한 적은 없습니다. ‘거물 아저씨’라면 아이들이 다 알아보고 꼼짝 못하지요. 무서워서 못 돌아다니게 하는 것도 선도의 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거물’은 1999년 10월 그가 펴낸 책 제목이다. 출판기념회 때 서산시장이 축사를 했다. 일부 언론에 소개도 됐던 이 책은 지금까지 30만 부 가까이 팔린 것으로 알려졌다.

    ―선도사업은 관계기관의 협조를 얻어 하는 일입니까.

    “내 돈 들여 자발적으로 하는 일입니다. 시나 수사기관으로부터 ‘청소년선도위원회’에 들어오라는 제의를 몇 차례 받았지만 다 거절했습니다. 자기 과시나 하는 사람들 틈에 끼이기 싫어서입니다. 가슴에 띠를 두르고 가두행진하는 것보다는 밤거리에서 한 아이라도 붙잡고 대화해 설득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인 선도방법이라고 봅니다. 비행청소년들의 생각과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면 참된 선도를 할 수 없습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아저씨가 겪어보니 정말 좋지 않더라. 처음엔 멋있어 보이지만 결국엔 범죄자의 길을 걷게 되고 결과가 비참하더라’고.”

    주먹사회에서는 깡패니 조직폭력이니 하는 말보다 건달이라는 용어를 즐겨 쓴다. 안씨는 건달에도 족보가 있다고 말한다. 주먹 건달, 화류계 건달, 라인 건달, 양아치 건달이 그것이다. 주먹 건달은 말 그대로 정통파 주먹을 일컫는다. 돈보다 의리를 중시하고 나름대로 의협심이 있는, 이른바 ‘건달 정신’을 가진 부류다.

    이에 비해 화류계 건달은 연예계나 사창가를 기반으로 한 주먹을 가리키는 것이고, 라인 건달이란 슬롯머신이나 카지노 등 도박 계통에서 성장한 건달을 일컫는다. 논두렁 건달로도 불리는 양아치 건달은 서민을 등쳐먹는, 말 그대로 동네 양아치 수준의 조무래기 주먹을 뜻한다.

    안씨는 “진정한 건달은 돈을 좇아가면 안 되는데 요즘 주먹들은 오로지 돈에 의해 움직이기 때문에 건달사회의 낭만이나 매력이 없어졌다”고 말한다.

    건달에도 등급 있다

    ―자서전을 보니 ‘마지막 낭만파 주먹’으로 자처했던데, 무슨 뜻입니까.

    “강아지에게도 혈통이 있듯 건달세계에도 혈통과 족보가 있습니다. 출신 성분이 좋지 않은 주먹들은 아주 잔인하거나 파렴치한 짓을 스스럼없이 저지릅니다. 하지만 혈통 좋은 건달들은 나름대로 멋이 있고 룰을 지킵니다. 정의감이 있고 신의를 소중히 여기죠. 저도 그런 점을 건달의 매력으로 여겼습니다. 저는 싸움은 많이 했지만 절대 서민을 괴롭히지는 않았습니다. 요즘 건달들 보면 똥개들, 참 많아요. 먹을 것만 주면 아무나 따라가고 무슨 짓이든 하는. 가수도 1류 2류가 있듯 건달도 등급이 있습니다. 3류 건달의 못된 짓을 두고 건달 전체를 매도하면 안 됩니다.”

    ―자신을 사회악으로 생각해본 적은 없습니까.

    “그렇게 생각했다면 그 생활 안 했겠죠. 지금 생각하면 폭력은 어떤 경우라도 합리화될 수 없는 것인데, 그때는 마치 사회정의라도 구현하는 양 열심히 싸웠습니다. 유흥업소 이권 따위를 차지하는 일도 탈세 등 부정과 불법을 일삼는 놈들의 돈을 나눠 갖는 것쯤으로 여겼어요. 그런 돈은 뺏어도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서민은 절대 건드리지 않는다는 것을 철칙으로 삼았죠.”

    ―최근 검찰이 조직폭력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에 나서 대표적인 조직들의 우두머리나 중간급 보스들을 구속했는데, 요즘도 3대 패밀리와 같은 거대 조직이 주먹계를 휘어잡고 있습니까.

    “지금은 양은이파니 서방파니 하는 거대 파가 없어요. 조직 자체도 의미가 없어졌고요. 그저 누구 밑에 있다고 말할 뿐입니다. 내가 활동할 때만 해도 조직이라고 해봐야 대여섯 개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군소 조직이 수백 개입니다. 요즘 잘 나가는 애들은 3대 패밀리에 관심도 없습니다.”

    ―검찰은 조양은씨나 김태촌씨를 조직폭력계의 대부로 여기고 지금도 그 영향력이 크다고 보지 않습니까.

    “양은형님이나 태촌형님이 악명을 떨치게 된 데는 매스컴도 한몫 했습니다. 더 심한 사건이 얼마나 많았는데요. 두 사람 말이 먹히는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다만 맹목적 추종자들이 어느 정도 있는만큼 영향력이 아주 없다고는 할 수 없겠죠. 그런데 요즘 애들은 기존 세력을 인정하지 않아요. 자기들이 최고라고 생각하죠. 그래서 ‘겸상’을 싫어합니다. 똑같은 범죄라도 양은이파니 태촌이파니 하는 과거 조직과 관련되면 1년 살 것을 10년 살게 되니까요. 그러니 과거 조직의 보스를 떠받들 이유가 없는 겁니다.”

    안토니파는 호남이나 서울 조직과 상관없는 독자적인 세력이었다. 그렇긴 해도 굳이 구분하자면 호남 주먹패들과 가까운 편이었다. 그 탓에 경찰은 한때 안씨를 범서방파 부두목으로 잘못 파악하기도 했다. 그는 조양은·김태촌씨를 모두 형님으로 부른다. 그들이 전국구 주먹임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1987년 살인교사 혐의로 5년형을 선고받은 안상민씨는 1991년 대전교도소에서 조양은씨를 만났다. 1980년 신군부에 의해 구속돼 15년형을 선고받은 조씨는 당시 교도소에서 한 동을 혼자 쓸 만큼 ‘특별대우’를 받고 있었다. 조씨와 안씨는 한밤중에 통방하는 것으로 서로 안부를 확인했다. 한 달 후 청송교도소로 이감된 안씨는 일과시간에 누군가 찬송가를 부르는 것을 듣고 놀란다. 죄수 신분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바로 김태촌씨였다.

    “아침저녁으로 찬송가를 부르는 태촌 형님이 그렇게 처량해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주먹세계의 허망함을 그때만큼 절실히 느낀 적도 없습니다.”

    ―주먹들의 이권 개입 실태가 과거와 다른 양상을 띤다고 들었습니다.

    “전에는 주로 유흥업소나 도박장, 건설업계 등에서 이권을 챙겼습니다. 나이트클럽에 찾아가 지배인이나 전무 또는 사장을 불러내 ‘우리가 업소를 보호해 줄 테니 지분 20%를 달라’고 요구하죠.

    건설업계의 경우 공사가 발주되면 사업주들은 아예 건달 몫으로 20%를 떼어놓습니다. 건달들은 해결사 노릇을 합니다. 말을 듣지 않는 업체를 찾아가 협박을 해 담합에 동의하게 만드는 식입니다. 법망을 피하기 위해 사전에 해당업체 이사로 등재해놓죠. 경매도 마찬가지입니다. 경매장에 어느 유명한 건달이 나타났다 하면 일반인들은 주눅이 들어 응찰을 포기하고 맙니다.

    요즘 주먹들의 가장 큰 수입원은 사채입니다. 주먹들이 움직이는 지하자금은 천문학적인 액수입니다. 수천억 원대라고 보면 됩니다. 사채 이자수익에 비하면 유흥업소 이권은 아무것도 아니죠. 최근 몇 년 사이에 새롭게 등장한 이권은 벤처기업입니다. 주먹들은 엄청난 지하자금을 배경으로 벤처기업에 투자하거나 직접 운영하기도 합니다.

    주식에도 많이 투자합니다. 주로 작전세력과 손을 잡죠. 작전에 개입할 때 주먹들이 확보하는 자금은 2000억∼3000억 원입니다. 영향력 있는 사람들로부터 확실한 언질을 받고 뛰어들기 때문에 손해 보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애꿎은 개미군단만 피해를 보는 겁니다. 제 주변에도 주식으로 재미본 주먹이 많아요. 과거 식구들이 저한테도 주식투자를 권유합니다. 2억∼3억 원만 투자하면 몇 달 안에 10억 원을 만들어주겠다는 겁니다. 그런데 저는 이권엔 일절 개입하지 않겠다고 결심했기 때문에 다 거절하고 있습니다. 그런 일로 또 구설수에 오르면 공권력이 저를 가만두겠습니까.

    과거 친분 있던 주먹들이 나보고 ‘왜 이렇게 답답하게 사냐’고도 합니다. 나도 하루에 3000만 원씩 벌 때가 있었습니다. 아무 일 하지 않아도 그냥 들어오는 수입이었습니다. 200만 원짜리 구두를 사 신고 최고급 양복에 최고급 외제차를 타고… 그때만 해도 세상이 제 것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사업하는 사람들은 평소 주먹들에게 투자해 놓습니다. 그러다 일이 생기면 그들에게 맡기는데, 주먹들은 그때마다 용돈으로 몇 천만 원씩 챙깁니다. 그런데 쉽게 번 돈은 또 쉽게 나가더라고요.”

    ‘작전’에 동원되는 주먹계 자금

    ―얼마 전 과테말라에서 한국 동포들을 상대로 폭행과 갈취를 일삼던 폭력배들이 체포돼 국내로 압송됐습니다. 검찰은 조직폭력배들의 해외 원정폭력이나 해외 범죄조직과의 연계를 우려하고 있습니다.

    “주먹들이 해외로 나가는 이유는 국내에는 설 땅이 좁거나 단속망을 피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교민사회에서 행패를 부리는 주먹들은 그야말로 양아치로 보면 됩니다. 과테말라에서 사고 친 놈들이 범서방파라는데 태촌형님과는 아무 상관없는 놈들입니다.

    잘 나가는 주먹들은 골프장, 도박장에서 한국 관광객들을 상대로 돈을 벌고 있어요. 현지에서 돈을 빌려주고 국내에서 수금하는 방식인데 이자수익이 엄청나죠. 또 해외에 나가 도박과 유흥비로 수억 원 또는 수십억 원을 탕진하는 주먹들도 적지 않습니다. 해외에 나가면 법망에도 걸리지 않고 놀기도 좋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게 다 노태우 정부 때 실시한 해외여행자유화 탓입니다.

    해외 범죄조직과의 연계에 대해 아직까지는 우려할 정도가 아니라고 봅니다. 검찰이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는 거죠. 일본 야쿠자와는 예전부터 교류가 있었지만 대개 친선 도모 차원입니다. 마피아와의 결탁은 앞으로도 10년 이상 걸릴 겁니다. 우리 건달들이 아직 그 단계까지는 이르지 못했습니다. 우선 영어부터 배워야겠죠. 그러나 국내 조직이 국제 조직과 손잡는 단계에 이르면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질 겁니다.”

    ―조직간 전쟁이 눈에 띄게 준 점도 과거와 다른 양상이지요?

    “지금이야 건달들이 돈 벌 수 있는 방법이 다양하지만 제가 활동하던 때만 해도 건달의 활동영역이 한정돼 있었습니다. 이른바 나와바리(영역) 싸움이 치열했죠. 제한된 영역을 서로 차지하려다 보니 조직간에 피 튀는 전쟁을 치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시엔 오로지 유흥업소였어요. 호텔 나이트클럽 하나만 가져도 식구들 수십 명 먹여 살리고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수입원이 다양해졌습니다. 싸울 일이 별로 없죠. 예전엔 ‘다 내놓아’였는데 요즘은 ‘너 반 나 반’입니다. 웬만하면 타협하고 서로 피 흘리는 일을 피합니다.”

    안씨에 따르면 주먹들은 자기 과시와 허세 부리는 데 엄청난 돈을 들인다. 전성기였던 80년대 중반 안씨는 그때만 해도 서울 거리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던 벤츠500을 탔다. 또 언론 보도로 널리 알려진 것처럼 경호원들의 호위 속에 외제 방탄 승용차를 몰고 다녔다. 주한미국대사가 타던 것을 뒷거래로 구입했다고 한다.

    “요즘은 센 놈들 참 많아요. 저도 예전에 몇천만원짜리 옷을 입어 봤지만, 요즘 잘 나가는 주먹들은 그런 옷을 한번에 대여섯 벌씩 사들입니다. 그런 애들은 ‘김태촌이 누구야’ 하는 거죠. 한 달 수입이 보통 수억 원대입니다. 푸조 도요타 크라운과 같은 최고급 외제차 아니면 안 탑니다. 지금 서울 시내에 벤츠가 1000대 있다면 그중 900대는 건달 것입니다.”

    ―그토록 화려한 세계에 있다가 평범한 현실로 돌아오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닐 듯싶습니다. 주먹들이 좀처럼 그 세계에서 발을 빼지 못하는 데는 그런 이유도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맞습니다. 처음엔 저도 무척 괴로웠습니다. 주변의 유혹도 끊이지 않고요. 주식 투자해라, 카지노에 놀러 오라…. 요즘은 그 선은 넘어섰습니다. 한 달에 100만 원 벌면 100만 원으로 삽니다. 돌아다니지 않고 특별히 하는 일이 없으니 그 돈으로도 생활하는 데 지장이 없더라고요. 예전엔 한 달 품위유지비만 1500만∼2000만 원이었습니다. 경조사비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전국을 다 돌아다니는데, 이름값이 있으니 한번 내면 최하 50만 원입니다. 요즘은 연락이 와도 가질 않죠.”

    ―은퇴를 선언했을 때 ‘동생’들이 반발하거나 말리지 않았습니까.

    “반발 못하죠. 제가 워낙 강했으니까요. 저를 따르던 동생들 일부는 서운한 감정을 가졌을 겁니다. 은퇴하면서 돈을 노나주지도 못했고 챙겨놓은 비자금도 없었으니. 또 어디 가서 명함도 못 내밀게 되니 타격이 컸겠지요. 하지만 내 가정도 책임지지 못하면서 언제까지 조직을 책임지겠습니까. 고향 쪽 동생들은 거의 다 저를 따라 손을 씻었습니다.”

    ―김태촌·조양은씨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 적잖은 주먹들이 공개적으로 새 삶을 선언하고도 이를 제대로 실천하지 못해 재구속의 빌미를 제공하곤 했습니다. 주변의 유혹도 유혹이지만 무엇보다 당사자의 의지가 약했던 것이 원인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정말 손을 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일단 서울을 떠나야 합니다. 서울에선 아무리 노력해도 쉽지 않습니다. 온갖 유혹의 손길이 뻗쳐 옵니다. 시골에서 부모님 모시고 평범하게 사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저는 양은형님이나 태촌형님에게 고마워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처럼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게 해줬기 때문입니다. 시골에 들어가 살면 주먹계에서 차츰 잊혀집니다. 자기 과시도 문제입니다. 제 책을 보고 드라마·영화제의도 들어왔습니다. 저도 영웅심이 있는 놈입니다. 하지만 다 거절했습니다. 저는 지금 평범하게 사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피부로 느끼고 있습니다.”

    애초 안씨가 주먹계 은퇴를 선언한 것은 세 번째 옥살이가 끝난 직후인 1997년 4월이었다. 그러나 은퇴에 이르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대선이 닥치자 정치권은 늘 그래왔듯 주먹들을 선거운동에 끌어들였다. 전국의 주먹들은 각자의 연고와 이해관계에 따라 줄을 갈라섰다.

    모 정당의 회유 공작

    대선을 석 달 앞둔 그해 9월 안씨는 모 정당의 대선캠프 합류요청을 고민 끝에 받아들인다. 유흥업소로 대표되는 지하세계와 시장바닥의 ‘밑바닥 표’를 끌어 모으고 상대 당 유세활동을 견제하는 것이 주요 소임이었다. 어느 날 상대 당 쪽 사람이 안씨를 찾아와 회유했다. ‘양심선언’을 해주면 선거가 끝난 후 ‘큰 선물’을 주겠다는 제의였다. 정치권이 주먹을 어떻게 이용하는지를 잘 아는 안씨는 이를 단호히 거절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검찰에 불려갔다. 마약복용 혐의였다. 서울 손님을 접대하는 술자리에 불렀던 아가씨들에게서 마약양성반응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는 소변·모발검사를 받았다. 음성반응이었다. 그런데도 구속됐다. 폭행 등의 혐의가 덧붙여졌다. 1년6개월형.

    “너무 기가 막혔습니다. 괘씸죄에 걸렸다고 생각했습니다. ‘아 이게 뭔가. 정말 이 세계를 떠나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절실히 들었습니다.”

    인터뷰가 끝난 후 안씨와 함께 그의 아내가 운영하는 이불가게를 찾았다. 시장 한복판에 있는 조그만 점포였다. 초등학교 동창인 두 사람은 어린 시절의 풋사랑을 키워 결혼에 이르렀다. 그의 아내는 오랜 세월 남편이 주먹계를 떠나길 고대하며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그가 가끔씩 거액의 돈을 건네면 ‘더러운 돈은 받지 않겠다’고 뿌리칠 정도였다.

    안씨가 주먹계를 떠날 결심을 굳힌 것도 감옥에서 아내의 헌신적인 사랑과 희생을 절절히 느끼면서다. 그때부터 그는 아내에게 존대말을 쓰기 시작했다. 그의 아내는 몇 년 전 자궁암 진단을 받고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큰 수술을 받았다. 그래선지 얼굴엔 고생한 흔적이 뚜렷했다. 안씨가 아내의 손을 잡아 기자에게 보여줬다. 시골 농사꾼처럼 투박하고 거친 손이었다.

    “이게 어디 여자 손입니까. 다 저 옥바라지하느라 이렇게 된 겁니다. 더 이상 아내에게 고통을 주는 일은 하지 않을 겁니다.”

    “폭력조직 움직이는 주먹귀족 30명 있다”

    한국 주먹사에서 조일환씨(64)가 차지하는 위상은 매우 독특한 것이다. 조씨는 주먹계 거봉인 고 김두한의 공인 후계자다. 김두한은 생전에 동료와 후배들이 모인 자리에서 조씨를 자신의 후계자로 공식 인정했다. ‘천안 곰’이라는 별명이 말해주듯 조씨의 근거지는 충남 천안이다. 20대에 충남 일대를 휘어잡은 그는 타고난 힘과 배짱을 바탕으로 지난 40여 년 동안 전국 주먹계에 이름을 떨쳐왔다. 한가락하는 건달 치고 그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한때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며 정치에도 관심을 보였던 조씨는 자신을 우국지사로 자처한다. 장충단공원 단지사건과 독도결사대 사건은 그의 독특한 ‘우국충정’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 1974년 육영수 여사가 흉탄에 쓰러지자 격분한 조씨는 부하 100명을 장충단공원에 집결시켰다. 일본에 항의하는 뜻에서 그 자리에서 새끼손가락을 자르는 의식을 치렀는데, 조씨를 포함해 모두 34명이 손가락을 잘랐다.

    1996년 독도 영유권 문제를 둘러싸고 한·일 양국간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다. 조씨는 독도결사대를 모집했다. 목표 인원은 2000명. 2000명이 독도로 몰려가 일제히 손가락을 잘라 손가락무덤을 만들고 그중 10명은 분신자살을 감행해 독도수호의지를 만천하에 알린다는 비장한 계획이었다. 다소 황당하기조차 한 이 계획은 목표 인원을 모으는 데는 성공했으나 관계당국의 해산명령으로 실행되지 못했다. 당시 문인 93명은 독도 앞바다에서 ‘3·1절 기념 문학인 독도방문행사’를 갖고 독도 지키기를 다짐했다.

    집이 천안인 조씨는 서해안에서 대형횟집을 경영하는 한편 상가개발과 분양사업을 하고 있다. 또한 주먹 출신으로는 드물게 왕성한 저술활동을 하고 있다. 자신의 주먹생활을 그린 ‘불의 아들’(전 3권)을 비롯해 지금까지 10여 권의 책을 펴냈으며 최근엔 ‘한국 전통무술과 정착무술의 실제’라는 편저를 내기도 했다.

    폭력배도 인권 있다

    그의 건달관은 한마디로 ‘사회에 필요한 건달이 되자’는 것. 그는 후배들에게 “주먹을 쓰더라도 올바른 직업을 가져라”고 강조한다. 또한 ‘진정한 주먹은 국가와 민족을 먼저 생각하고 남한테 피해를 끼쳐선 안 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는 평소 후배 주먹들의 애경사를 잘 챙기기로 소문나 있다. 결혼식 주례도 많이 본다. 현역에서 은퇴하긴 했지만 주먹계에 끼치는 그의 영향력은 누구도 무시 못한다. 2월10일 그를 만나 주먹계의 최근 동향을 물어봤다.

    “지금 겉으로 드러난 폭력조직의 90%는 공권력과 언론에서 만들어낸 겁니다. 툭하면 조직폭력으로 몰아가는데 실제로는 조직폭력이라고 할 만한 것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조일환씨는 주먹계에 대한 공권력의 ‘남용’과 언론의 ‘과장’을 지적하는 것으로 말문을 열었다. 조씨는 최근 검찰의 대대적인 조직폭력배 수사에 대해서도 불만을 터뜨렸다. 폭력조직 두목의 범죄혐의치곤 너무 약하다는 것. 즉 검찰이 여론몰이 수사를 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 제기다.

    “리스트에 올라 있는 주먹만 계속 당합니다. 보이는 조직보다 보이지 않는 조직이 더 문제입니다. 근본적으로 치유할 방법을 찾아야지 이런 식의 전시·인기 위주 수사로는 진짜 조직이 걸리지 않습니다. 눈에 띄면 걸리니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움직입니다. 과거 주먹들이 사업을 하다보면 과격한 행동을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것을 공권력이 튀밥 튀깁니다. 지난번에 잡힌 사람들, 그들이 무슨 두목급입니까. 다 옛날 일입니다. 조직에도 별 힘이 없어요.”

    가슴에 담아 두었던 얘기일까. 평소 하는 얘기일까. 조씨의 ‘주먹 옹호론’은 계속된다.

    “법은 평등해야 하고 폭력배에게도 인권은 있습니다. 얼마 전 김태촌을 면회했습니다. ‘형님, 나 지금 많이 아픕니다’ 그래요. 그대로 두면 교도소에서 죽을지도 모릅니다. 워낙 살려는 의지가 강해 버티고 있을 뿐입니다. 11년째 (형을) 살고 있는데 그만한 형을 받을 이유가 없습니다. 양은이파 부두목이라는 강아무개는 1980년 군법회의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0년을 살았습니다(2001년 2월 출소 예정). 조양은도 그랬지만, 엄밀히 따지면 주먹들끼리 싸운 것입니다. 행위에 비해 너무 가혹한 형벌이었습니다. 군사정권의 희생물이었던 겁니다.”

    ―공권력 시각에선 주먹은 건달이든 조폭이든 다 사회악 아니겠습니까.

    “어느 사회에나 주먹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서민을 갈취하거나 행패 부리는 단계는 지났습니다. 주먹들이 하는 일의 90% 이상은 서비스업입니다. 이것을 양성화해야 합니다. 다 죽이려 들면 영 쓸모 없는 균으로 변해버립니다. 미국의 마피아나 일본의 야쿠자처럼 국가가 잘 관리하면서 필요할 때 적절히 이용해야 합니다. 마약밀수를 경찰이 다 잡아낼 수 없지 않습니까. 국내 조직을 통해 잡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주먹들이 모이는 것 자체가 죄가 됩니다. 야쿠자나 마피아처럼 조직 자체는 인정하되 범죄는 못하도록 막아야 합니다.”

    ―그게 쉽지 않은 일이지요.

    “그 세계는 그 세계에서 다스리도록 해야 합니다. 어차피 근절하지 못할 바에야 투명하게 드러나도록 하자는 겁니다. 한국 주먹계는 아직 골목대장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외국같이 되려면 아직 멀었어요. 내가 말하는 조직이란 애국심을 가진 건전한 조직입니다. 야쿠자는 일본의 이익을 내세웁니다. 홍콩 반환 때 외국 자본의 이탈을 막은 것은 홍콩 정부가 아닌 삼합회였습니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정치권은 너무 무책임합니다. 주먹들을 나쁜 쪽으로만 이용하고 이에 대해 전혀 책임지지 않아요. 주먹들만 희생하는 겁니다.”

    ―현 정부가 들어선 후 호남주먹이 득세하고 있다는 얘기가 공공연히 나돕니다.

    “예전에 호남에서 서울로 올라온 주먹들은 주로 하선(下線)이었습니다. 주로 유흥업계 주변에서 활동했습니다. 호남주먹의 대표주자는 김태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조양은은 워낙 일찍 잡혀 들어간 데다 15년이나 있어서 활동 기간이 짧았기 때문입니다. 현 정부에서 득을 보는 호남주먹도 있지만 오히려 피해를 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내가 아는 어떤 호남 출신 주먹은 권력층과 가깝다는 이유로 서울을 떠나야 했습니다. 김태촌도 비슷합니다. 몸 상태를 감안하면 석방해야 하는데, 정권에 비호세력이 있다는 오해를 살까 봐 못하는 겁니다.”

    조씨 얘기를 들으면 호남주먹들과 정치권 관계를 색다른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 과거 호남주먹들이 각종 선거 때 호남 출신 정치인을 지원한 것은 정치권이 주먹계를 이용하는 일반적 관행과 달리 자발적 행위였다는 것. 다시 말해 대가와 상관없이 순수한 ‘애향심’에서 비롯된, ‘봉사활동’ 성격이었다는 것이다.

    조씨 설명대로라면 한국 주먹계의 현상과 본질엔 큰 차이가 있다. 조씨는 “언론이 주먹세계의 변화와 깊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며 “언론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주먹들은 희생자일 뿐이다”고 말했다.

    “패밀리는 무슨? 과거와 같은 조직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전엔 형님이 부르면 앞뒤 잴 것 없이 달려가고 신발을 지키라면 하루종일 신발을 지켰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어느 줄에 서면 배부를 것인가부터 생각합니다. 옛날 태촌이 밑에 있던 애들, 지금은 다 각자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조양은도 마찬가지예요. 제가 알기론 과거 동생들과 전혀 만나지 않아요. 이번에 양은이파 부두목으로 구속된 오아무개가 마치 양은이 뒤를 잇는 것처럼 보도됐던데, 우리가 볼 때는 우습죠. 지금은 그 바닥에서 돈 많이 번 사람들이 대장 노릇합니다. 이번에 부두목급이라고 걸린 애들은 가지일 뿐입니다.”

    조씨에 따르면, 어느 사회나 상류층이 있듯, 주먹사회에도 상류층이 있다. 겉보기엔 폭력조직 두목이 주먹계를 호령하는 것 같지만 진짜 실력자는 따로 있다. 바로 주먹계의 상류층 인사들이다. 이들은 손에 피 한 방울 묻히지 않으며, 검찰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 주먹사회를 움직이고 있다.

    “주먹도 실세가 있습니다. 이들 상류층 주먹들은, 먼저 재산이 20억 원 이상입니다. 늘 돈이 가득가득 들어옵니다. 나이는, 50∼60대가 가장 많아요. 따르는 아이도 많습니다. 일이 생기면 언제든지 부를 수 있는 보스급 주먹이 서너 명씩 되죠. 그 보스급 주먹 밑에는 보통 수십 명의 부하가 있고. 그러니 굳이 조직을 갖고 있을 필요가 없죠. 이들은 주먹계에서 최하 20년은 그 이름을 지켜온 사람들입니다. 어떻게 보면 진정한 의미의 전국구 주먹이죠. 이런 사람들이 지금 전국에 30명 가량 됩니다.”

    상류층 주먹의 파워

    ―정현준 사건 때 등장한 오기준씨도 거기에 포함됩니까.

    “오기준은 주먹계를 떠난 지 6∼7년 됩니다. 태촌이 바로 위급으로 예전엔 굉장한 실세였죠. 지금은 영향력이 거의 없어요. 상류사회에서 호남주먹이 차지하는 비중은 작습니다.”

    ―그들의 힘은 어느 정도입니까.

    “한번에 100명 정도는 움직일 수 있죠. 또 전화 한 통이면 권력기관과 다 통합니다. 큰 고목은 잘 쓰러지지 않지요. 이들은 겉으로는 범법행위나 나쁜 짓을 안 합니다. 여간해선 감옥 가는 일도 없죠. 또 가더라도 금방 나오고. 이들이 주먹계에 끼치는 영향력은 앞으로도 10년 이상 유지될 겁니다. 어떤 주먹도 이들에게 도전하면 한 방에 가죠. 어느 정도 선까지는 용인하지만 일정선 이상을 침범하면 절대 용납하지 않습니다.”

    ―요즘 말 많은 동아파 두목 같은 사람도 해당됩니까.

    “동아파도 검찰 메뉴에 올라 있어 그럴 뿐입니다. 매일 빵(감방)이나 드나드는 애들은 말하자면 검찰의 단골메뉴인 셈입니다. 불쌍하지요.”

    기자는 주먹계 상류층 인사들의 면면이 매우 궁금해졌다. 그러나 조씨는 밝히기를 꺼렸다. 다만 기자가 어림짐작으로 몇 사람을 찍어 묻자 굳이 부인하지는 않았다. 과거 정치폭력사건에 연루된 L씨, 모 지역 주먹계 실력자인 C씨, 도박업계 실력자 J씨…. 정치폭력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또 다른 L씨는 실력은 인정되나 돈이 없어 여기에 끼지 못한다.

    “검찰은 잘 모릅니다. 단골 메뉴만 보고 있으니. 그래서 한번 검찰의 표적이 되면 평생 그물에서 빠져나가지 못하는 겁니다. 조아무개 검사처럼 검사 중에는 주먹만 전문적으로 잡는 이가 있어요. 새 부임지에 갈 때마다 그 지역 주먹을 잡아들입니다. 사명감을 가진 검사들이니 나쁘다고 볼 순 없겠죠. 그러나 주먹사회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필요합니다.”

    조씨는 얼마전 청송교도소 재소자들을 상대로 한 강연에서 이런 얘기를 했다고 한다.

    “너를 속박하는 것은 철창이 아니라 남을 미워하는 마음이다. 모든 책임은 너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용서하고 사랑해야 참 자유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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