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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신의 인간탐구

김근태의 이상주의 이인화의 영웅주의

  • 정혜신 < 정신과 클리닉 ‘마음과 마음’ 원장 > okopenmind@netsgo.com

김근태의 이상주의 이인화의 영웅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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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박정희의 영웅 서사시 ‘인간의 길’을 출간하면서 “지식인 사회라는 거대한 항공모함을 향한 가미가제가 되어 자폭 돌격하는 심정이었다”고 고백했다. 필자의 관심을 끄는 것은 이인화의 ‘가미가제’식 저돌성이다.

이인화는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그의 표현대로 하면 1년 365일 단 하루도 매를 맞지 않고 집에 간 날이 없을 만큼 공부를 못한 지진아였다. 지금은 서울대와 서울대 대학원을 졸업하고 이화여대 교수로 재직중인 엘리트 지식인이지만 이인화에게는 그 시절의 상처가 꽤 깊었던 모양이다. 4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글 솜씨를 칭찬해준 후, 반에서 ‘글 잘 쓰는 아이’가 된 것이 그 시절의 유일한 긍정적 경험이었다고 회고한다.

이인화는 11세 때 이광수의 ‘유정’을 읽고 난 후 이광수를 그의 확고한 우상으로 삼았는데, 그 이유가 흥미롭다. 어린 시절 내내 소외당한 평안도 출신의 고아로 위대한 문학적 성취를 이룬 이광수의 일생이 어린 그의 상처받은 자존심에 하나의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었기 때문이란다.

이인화는 밑바닥 인생을 경험하고 일정한 성취를 이룬 사람들에 대해서 남다른 존경심과 애정을 표현하곤 한다. 한때 노예로 팔린 적이 있는 플라톤이나 고아인 이광수, 무당의 아들인 공자, 미천한 농부의 아들에서 온갖 고난을 극복하고 절대 권력자의 지위에 오른 도요토미 히데요시 등 불우한 과거를 가진 사람들이 그 대상이다. 물론 박정희는 맨 첫번째에 자리하고 있다.

아마 이인화는 그 인물들의 맨 마지막 자리에 자신의 이름을 올려놓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는 본래 평범하지 않은 무엇, 천재를 ‘희망’했던 사람이다. 그의 초등학교 성적표 ‘행동발달 상황’란에 적혀 있듯 “침착성과 지구력이 모자라고 덤비는 성질이 있는” 그는 빨리 천재가 되고 싶어했다.



최인호나 황석영처럼 고등학교 때 신춘문예에 당선되는 문학 천재가 되기를 갈망했지만 대학에 진학해서도 그는 쉽게 꿈을 이루지 못했다. 신춘문예 당선작이 발표되는 1월에는 거의 미칠 것 같은 심정으로 “어쩌면 이토록 재능이 없단 말인가…” 하며 자신의 무능을 혐오했단다. 대학시험의 실패가 자신에게 특히 비참했던 것도 “내가 특별한 인간이 아니라는 깨달음 때문이었다”고 했다. 그는 스스로 “천재를 흉내내기 위해 그 나이의 정상적인 삶을 희생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필자에게는 그때 뿐 아니라 그 이후 그의 삶이 ‘천재를 흉내내기 위한’ 시도들과 그 부작용들로 채워진 부분이 적지 않게 느껴진다.

그 연장선상에 이인화의 ‘가미가제’식 저돌성이 있다. 그가 소망했던 “지식인 사회에 대한 가미가제식 자폭 돌격”은 천재가 될 수 없었던 그의 절망이 빚은 드라마틱하고도 선정적인 돌파행위가 아니었을까. 이인화가 자신의 ‘불꽃화’를 위해 박정희라는 민감한 소재를 이용한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는 말이다. 그래서인지 ‘인간의 길’로 인한 박정희 논쟁이 한동안 사회를 뜨겁게 달구었지만 그는 그 정도로 만족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천재성에 대한 욕심

“저는 사실 이 소설은 출간하자마자 몰매를 맞을 것이라고 잔뜩 기대하고 있었어요. 작가는 비판을 받음으로써 ‘오피니언 리더’가 되는 겁니다. 그런데 이건 아무도 비판을 안해주고 모두 ‘선택’만 비판하니까 이문열씨는 자연스럽게 1990년대 작가로까지 살아남게 된 거죠.… 그러니까 이 책이 일으킬 반향에 대해 과잉기대를 하고 실망했죠. 제일 비참한 건 비난이 아니라 무관심 아닙니까?”

논쟁 자체가 ‘공론’으로 그치고 실제 소설 판매에는 별 도움이 되지 못한 데 대한 불만족의 한 표현일지도 모른다. 하긴 필생의 역작이라는 ‘인간의 길’을 출간하면서 아내에게 1억부를 판매하겠노라고 호언장담했다니 그럴 만도 하다. 아직까지는 그의 호언장담이 지나친 욕심이었다고 말하는 것을 유보하자. 판단을 유보하는 것은 1억부 판매가 한바탕 우스갯소리로 한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해 초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도 “나는 내 소설이 한 1000만 질 정도 팔려서 모든 가정에 내 소설집이 있는 환상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틈만 나면 동아시아적 가치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이인화답게 그의 꿈은 몽골 초원처럼 드넓고 웅대하다. 평생에 걸쳐 10권 분량의 장편소설로 완성하겠다는 ‘인간의 길’은 이제 3권이 출간됐을 따름이니 좀더 두고볼 일이다.

이인화는 작가 자신과 작품의 상품가치를 높이는 방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1995년 한 잡지는 이인화를 이렇게 표현한다.

“이인화는 베스트셀러 작가다. 치밀하고 능란한 이데올로그이기도 하다. 그는 소설을 발표할 때마다 어떤 의도나 장치를 숨겨 놓았고, 논쟁을 격발시켰다.”

사실이 그랬다. 이인화는 단지 4편의 장편소설을 발표했을 뿐이지만 그때마다 그의 작품은 논란의 대상이었다. 아마도 그게 이인화가 의도한 바였을 것이다.

이인화의 천재성에 대한 욕심이 빚은 부작용 중 첫번째는 표절시비와 관련한 일련의 사건들이다. 1992년 이인화는 그의 첫 소설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를 발표하면서 문학평론가에서 소설가로 변신했다. 그는 이 작품으로 제1회 작가세계문학상을 수상한다.

제목부터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에 나오는 독백 대사를 차용한 이 작품은 일본작가 요시모토 바나나나 하루키뿐 아니라 공지영의 문장을 그대로 베꼈다는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되었다. 이에 대해 이인화는 “제목부터 작가의 이름 그리고 문장 하나하나까지 이미 씌어진 다른 작품들의 혼성모방으로 이루어졌다”고 당당하게 말한다.

한 평론가는 혼성모방이 포스트모더니즘 기법인 ‘패스티시’라는 작가의 자기 변호를 겨냥해 ‘센세이셔널한 신제품이 되고자 하는’ 가장 포스트모던한 욕망에 의해 혼성모방의 이름으로 상상을 초월한 표절과 모방의 극한을 보여주었다고 질타했다. 또 다른 평론가는 자신의 누비 이불을 만들기 위해 남의 작품을 아무렇게나 짜깁기하는 기법이라고 비난했다.

얼마나 논란이 심했는지 당시 저작권 연구소장이던 한 변호사는 “아무리 포스트모더니즘 기법을 내세운다 해도 남의 글을 그 출처도 밝히지 않고 자기 글 속에다 옮겨 써먹는 것은 저작권 위반 행위에 다름아니므로 마땅히 삼가야 할 일”이라고 거들었다. 하지만 이 화려한 데뷔작에 관련한 가장 화려한 해프닝은 한 평론가의 다음과 같은 평가일 것이다.

“나는 주인공들의 사랑과 이별 이야기가 너무 생생한 묘사로 빛나는 까닭에 이인화의 작가적 여정을 걱정하게 된다. 이 작가가 자칫 그 이야기의 재능 때문에 어설픈 대중적 취향에 영합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대중의 때묻은 박수를 원하기보다 관념과 사상의 깊이를 더욱 확보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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