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생님 견해에 대해서 반론을 펴자면 윤동주 한용운 시인이 일제치하에 저항운동을 한 것에 대해서도 지금 말한 방식으로 비판할 수 있습니까.
“현실에 참여하더라도 문학으로 했으면 좋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말이나 웅변이라기보다는 시와 소설을 통해서 나타났으면 하는 거죠.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기왕 말을 꺼냈으니까 한 가지만 더 물어보지요. 이문열씨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책 장례식이라는 행위를 했는데 어떻게 생각합니까. 독자의 당연한 권리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박완서 선생도 거기에 대해서 나무랐던데…. 작가가 밉다고 해서 책 장례식을 치른 것은 너무 오버한 거죠. 다들 너무 극렬한 것 같아요. 작가가 싫으면 작품을 읽지 않으면 됩니다. 어린아이를 앞세운 것도 보기에 좋지 않고…. 저도 1970년대 청년문화로 비슷한 공격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알아요. 장례식까지 한 것은 잘못입니다.”
―아까 과거완료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라는 말을 했는데 미래에는 어떤 작품을 쓰실 계획이 있는지요.
“제가 10년 전부터 구상하고 있는 건데 지저스 크라이스트의 생애를 쓰려고 합니다. 니체가 ‘신은 죽었다’라고 했던 말이 20세기 최고의 유행어였거든요. 2000년 전의 목수가 도대체 뭔데 그를 믿건 안 믿건 사람들을 들었다 놨다 하는가? 이런 의문을 풀기 위해 인격적인 지저스 크라이스트를 만나러 갈 것입니다. ‘상도’로 돈을 많이 벌었으니까 한 3∼4년간 이스라엘 터키 이집트 같은 나라에 가서 그분의 행적을 연구하겠습니다. 최씨에 곱슬머리 옥니박이니까 붙들고 늘어지려고 그래요.
요즘에는 철학이 재미있어요.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시대의 변화와 더불어 철학의 사조가 변해가잖습니까? 지저스 크라이스트가 신학이라면 철학은 인간학이거든요. 철학 공부를 더 하고 싶어요. 이 두 과제가 앞으로 숙제입니다.”
작년에 박모 시인이 어느 여성 시인에 대해 ‘오늘 외출했다가’라는 제목의 욕시를 발표해 파문을 던졌다. 신인 여성 시인으로부터 성추행 혐의로 고소를 당한 박시인이 고소를 부추긴 것으로 오해한 선배 여성 시인을 공격한 시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문학을 사적 복수심을 채우기 위한 무기로 사용해 현존 인물이나 개인을 비판하거나 공격하는 글쓰기에 대해 논란이 일었습니다.
“박완서씨가 옛날에 검찰에서 너무 위압적인 조사를 받고 나서 소설로 쓴 적이 있죠. 검사들이 그걸 읽어보고 반성했다고 합니다. 나는 그런 건 괜찮다고 생각해요. 그런 건 작가로서 당당한 권리일 수도 있겠죠. 검찰은 개인이 아니잖습니까.
그러나 사적인 비난은 안된다고 생각해요. 대통령의 막강한 권한도 자기에게 속한 개인의 권리가 아니거든요. 권력을 자기 거라고 생각하니까 문제가 있는 거죠. 문화적 권력도 마찬가지지요. 왜 말과 글이 다른 겁니까. 왜 내가 될수록 말을 안하려고 하냐면 말은 즉물적이거든요. 글은 필터를 거쳐야 나오니까 정제돼 있습니다. 작가의 붓은 신성합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 같은 작품에서 붓의 힘은 얼마나 위대합니까? 그것을 개인의 원한이나 감정풀이에 사용해서는 안되죠. 차라리 편지를 쓰는 게 낫지요. 작가정신의 문제지요.”
―언론이나 문학이나 글쓰는 작업인데 언론은 공인을 비판하고 문제점을 까발리잖습니까. 소설이나 시도 그럴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기자와 작가는 다르죠. 공인에 대한 비판은 당연히 기자의 권리이자 의무죠. 그러나 작가는 결과적으로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영혼을 보는 존재거든요. 괜히 문학적으로 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게 우리의 책무죠.
고흐도 자기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그렸습니다. 자기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통해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보편성을 그린 것이죠. 작가는 인간 존재의 영혼성을 표출해내려고 애를 쓰는 사람입니다. 누구를 비난하기 위한 도구로 쓴 작품은 화장실에 쓴 낙서라고 할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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