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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의 삶

“부끄럽냐구요? 배부른 소리죠”

홍익대 관리장 김주한씨

  • 이계홍 언론인·용인대 겸임교수 khlee1947@hanmail.net

“부끄럽냐구요? 배부른 소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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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수위하는 직원들 연령이 높지요.

“비교적 높지요. 우리 학교는 아니지만, 얼마 전에 기업체에서 이사를 하던 사람이 수위로 일한다거나 군에서 대령까지 지낸 사람이 들어왔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우리 학교 미화원들은 대개 50대 이상으로 연령층이 높지만 그중에는 고등학교까지 나온 사람도 적지 않아요. 수위 중에는 대졸 출신도 있지요. 모두들 현역에서 정년퇴직하고 오신 분들이라 자세가 당당하지요.”

-연배가 높은 사람들이 부하직원으로 들어오면 아무래도 부담이 될 텐데요. 그 중에는 지휘하기 쉽지 않은 사람들도 생길 테고요. 자리배치나 일 배분을 할 때 그런 인간관계를 염두에 두게 되지 않습니까.

“그러면 안됩니다. 제가 젊었을 때 당한 일이 얼마나 많은데요. 한번은 학교가 꽁꽁 얼어붙을 만큼 추운 겨울날이었는데, 직속 상관이 물청소를 시키더군요. 지금 해봐야 그다지 청소가 될 것 같지 않다고 말했더니, ‘이 자식 건방지다’며 유배지 격이었던 과학관 후문으로 쫓아버리는 거예요. 물청소를 거부하다 물을 제대로 먹은 셈이죠.

처음에는 정말 유배라도 온 듯 울화통이 치밀더군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까 꼭 그렇지도 않아요. 과학관은 평소에도 사람이 적은 데다 방학 때는 거의 그림자 하나 얼씬거리지 않는 곳이기 때문에 시간 보내기가 무료했거든요. 원래는 그러면 안되지만 도서관에서 한두 권씩 책을 빌려 읽다보니 공부가 되더라고요.”



날아가버린 ‘고가 그림’

이때 그는 한국소설전집을 독파했고, 세계문학전집을 대부분 마스터했다. 중국 소설들도 엄청나게 읽었다. 새벽까지 책을 들여다보니 동료들은 ‘저 사람이 한번 물을 먹더니 대학을 가려나 보다’고 수군거리기도 했다는 것.

“그렇게 한 2년 들입다 책을 읽었어요. 저도 2년제 대학은 나온 셈이라고 생각하기로 했죠. 인간지사 새옹지마라니까요. 결국은 좋게 끝난 셈이지만 그래도 그때 느낀 울분은 꽤 깊었거든요. 그 일을 거울 삼아 관리장이 된 후에도 부하들이 하찮은 일로 불이익을 당해선 안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말씀만 들으면 수위라는 직업이 항상 고달프고 재미없는 일인 듯합니다.

“꼭 나쁜 일만 있는 건 물론 아니죠. 추석 명절 때 교수님들이 양말 세트를 선물로 주고 갈 때는 고맙지요. 특히 김창집 총장님을 잊을 수가 없네요. 언제나 먼저 인사를 건네시곤 했거든요. 명절 때면 직원들과 함께 먹으라고 케이크를 보내오셨죠.

동양화과의 교수 한 분도 기억에 남습니다. 학생시절 너무 어렵게 학교를 다니며 혼자 남아 그림을 그리곤 하셨죠. 이 분이 젊은 조교시절 때 내가 제상에 펴놓을 병풍용 그림을 하나 그려달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얼마 후 열두 폭 그림을 그려줍디다. 모두 전지 그림이었는데 들여다보니 이게 영 괴상망측해요. 산이 있고, 냇물이 있고, 그 사이에 한가하게 낚시질하는 선비가 있는 평범한 동양화가 아니라 귀신 나올 듯이 요란한 그림이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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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홍 언론인·용인대 겸임교수 khlee194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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