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황호택 기자가 만난 사람

“권태롭고 창피해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막 내리는 ‘전원일기’ 주인공 최불암·김혜자

  • 글: 황호택 hthwang@donga.com

“권태롭고 창피해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2/7
―1980년에 방송국 간판 드라마를 시작하면서 무대를 농촌으로 잡은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김 : “‘전원일기’를 농촌 드라마라고 하지만 사실은 농촌을 무대로 한 휴먼 드라마예요. 인간의 심성, 인간이 가져야 할 덕목 같은 걸 그리려고 했습니다. 서울보다는 아름다운 산천을 배경으로 사는 사람들이 등장하는 것이 그런 걸 표현하기가 더 좋아 시골을 배경으로 잡았던 것이죠. 그 때는 정말로 많은 사람이 ‘전원일기’를 보고 감동했습니다. 우리도 대본을 읽을 때면 마음이 설레곤 했습니다. 눈물을 흘리면서 연습을 한 적도 있어요. 정말 가슴이 따뜻해오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진하던 감동이 점점 시간이 가면서 퇴색하기 시작했어요.”

―전성기의 감동을 왜 지속하지 못했나요.

김 : “작가가 차지하는 몫이 참 크다고 생각해요. TV 드라마의 성패는 무엇보다 대본이 좌우합니다. 작가가 자꾸 바뀌면서 새 작가가 등장 인물들이 해오던 역을 그대로 계승하지 못했어요. 동일 인물한테서 전혀 다른 성격의 행동이나 말들이 나오면서 약간 갈지(之) 자로 걷기 시작했습니다. 부자가 망해도 3년은 간다는 말처럼 10년 동안 많은 분에게 감동을 준 휴먼 드라마였기 때문에 더 버틸 수 있었어요. 김정수씨 그만두고 3∼4년 뒤부터는 정말 힘겨웠어요.”

그때 최불암씨가 도착했다. 그는 ‘전원일기’ 김회장풍으로 카페를 한번 둘러보더니 “주위가 조금 소란스럽군요. 내가 장소를 잘못 골랐어요”라고 말했다. 그러나 장소를 변경하는 것도 무리였다. 소형 디지털 녹음기를 마이크처럼 잡고 인터뷰를 진행했다.



김 :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고 생각해요. 시작할 때가 있으면 끝날 때가 있는 겁니다. ‘전원일기’는 끝날 때가 돼서 끝나는 거겠지요. ‘전원일기’가 처음에 워낙 좋았기 때문에 지금 나가는 것은 그 시절과 비교하기 곤란할 정도의 내용이 많아요.

요즘 드라마에서는 어른들 얘기가 거의 없어지다시피 했어요. 작가들이 자기 또래 얘기는 잘 쓸 수 있는데 어른들 얘기는 잘 모르니까 안 쓰기 시작했습니다. 말하자면 그냥 마루에 멍청히 앉아 있거나 애들한테 ‘왔니’ ‘갔니’ 말하는 정도밖에는 할 게 없었어요. 전원일기를 다른 드라마와 차별화할 수 있었던 건 어른들의 삶에서 얻은 지혜를 전해주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드라마와 흡사해지기 시작한 것이죠.

저는 2∼3년 전부터 이 드라마에서 빠지고 싶었어요. 내가 더 이상 할 일이 없을 것 같고 이대로는 곤란하다는 생각이 들어 여러 곳에 얘기를 했습니다. ‘전원일기’를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지만 막상 막을 내리기로 하니까 아주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는 듯한 기분이 들어 착잡해요.”

약속시간을 잡기가 어려웠던 최씨에게 “요즘은 무슨 일로 바쁘냐”고 묻자 “전원일기와 관계 없는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며 질문을 막았다.

부모의 위치를 우리가 잡아주자

―‘전원일기’를 끝내는 양촌리 김회장의 감회는 어떻습니까.

최 : “방송국으로부터 끝내겠다는 확정 통보는 받지 않았습니다. 제작진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나와 끝내야 하는 이유를 묻기도 하고 대답도 하고 그런 것 같습니다. 비슷한 후속 드라마를 만들겠다고 제작국장이 이야기 하더군요.”

―소재가 고갈됐고 연기자들이 지쳤다는 얘기가 나오던데요. 연기자들이 지쳤다는 말은 무슨 의미입니까.

최 : “오래 하면 구태의연해질 수밖에 없지요. 말하자면 아버지 어머니 이미지가 굳어지는 데서 조바심이 생기죠. 내 나이를 보면 앞으로 연기를 할 시간은 별로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제작진이 60,70대 연령도 볼 만한 드라마는 안방극장에서 인기가 없고 젊은 사람들 위주로 만들어야 시청률이 오른다고 말합니다.

1980년도에 전두환 정부가 들어서면서 드라마 세 개를 없앴어요. ‘수사반장’ ‘113 수사본부’ ‘암행어사’인데 없앤 이유를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치안이 좋아졌기 때문에 도둑놈 잡는 ‘수사반장’ 프로그램은 필요 없다는 거였지요. ‘113 수사본부’도 철통 같은 안보태세가 확립됐기 때문에 필요 없고, ‘암행어사’는 국민을 암행할 필요가 없는 정부를 만들겠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2/7
글: 황호택 hthwang@donga.com
연재

황호택기자가 만난 사람

더보기
목록 닫기

“권태롭고 창피해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댓글 창 닫기

2019/12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