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이나리 기자의 사람 속으로

0.001초까지, 절박하다 그 목청

장아찌 같고 성난 파도 같은 소리꾼 장사익

  • 글: 이나리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byeme@donga.com

0.001초까지, 절박하다 그 목청

3/8
“장날이면, 한 서너 시쯤 장이 파하는데, 남동생하고 저하고 마을 어귀 다리목에 서서 아부지를 기다려요. 그럼 아부지께서 술이 얼큰해가지고 기분 좋게 오시거던요. 동생이랑 양쪽 손을 꼭 잡고 그 200미터, 300미터 들길을 걸으며 아부지 좋으신 말씀을 가만가만 듣는 거예유. 그 두꺼운 손, 가축 냄새, 술 냄새…. 아부지가 내 쪽말고 동생 쪽만 보고 얘길 허시면 얼매나 서운한지. 고래 같구 태산 같은 아부지…. 그 때 아부지헌테 배운 것이 살면서 아주 큰 힘이 됐시유. 고맙고 감사한 일이지유.”

봄이면 개구락지 울어대는 둑방길에 앉아 흰 돌로 땅에 글씨도 쓰고 그림도 그렸다. 찰랑찰랑한 논물 위로 벚꽃잎이 우수수 내려앉는, 그 풍경 속에서 클 수 있었던 것이 가장 큰 행운이라 했다.

“왜요, 일도 많이 했지요. 똥지게도 지고 모도 심고 두레 일도 나가고. 그래두 싫단 말은 안 했어요. 장남이잖여유.”

생뼈를 만지듯 절실한 리얼리티

초등학교 5학년 때 웅변을 시작했다. 발성이 좋아야 한다기에 중학교 3학년 때까지 비 오는 날만 빼곤 매일 뒷산 중턱에 올라 소리를 가다듬었다.



“지가 고지식혀가지고, 한번 해야 헌다 하면 끝까지 혀야허거던요. 눈이 쌓여 발이 푹푹 빠지는 날도 가차없이 가는 거여. 그때 목청 틔운 게 여적 오는 거예유.”

중학교 시절은, 그의 말대로라면 “국민핵교 때처럼 고지식하지는 않았다.”

“국민핵교 때는 공부를 제법 혔는디 중학교 때부터는 50명에 20등 안짝이나 할까…. 그때 동네서 태평소, 그러니께 쇄납을 잘 부는 이가 있었는디, 그 분이 꼭 노을 지는 저녁만 되믄 뚝 끝에 앉아 태평소를 부는 거예유. 그 소리를 지만 그렇게 열심히 들었시유.”

중학교를 마치고 서울 선린상고로 진학했다. 대학은 생각지도 않았다. 취직해 서울생활을 하는 것 자체가 출세라 생각했다. 은행원이 됐으면 했다. 고교 시절 내내 자취집과 학교 사이만 왔다갔다했다. 술도, 담배도 배우지 않았다. 고향 떠나올 때 아버지 당부를 틀림없이 지켰다.

“지는 술 담배 안 먹어두 재미있시유. 사람들은 꼭 술 빌려서 즐기려구 하는디, 지는 안 먹어도 잘 놀아유. 친구들이 아주 제껴놨어. 군대 다니면서도 담배 주면 사탕이랑 바꿔 먹고.”

하나 특별한 것이 있다면 노래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었다. “너 참 노래 잘한다”는 얘기를 종종 듣게 됐다. 가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새 꿈이 생겨났다.

“에이 그래도 멍청했지유. 강단두 읍구. 그냥 눈에 안 띄는 애였어요. 그러니 세상 이치가 참 오묘하지요. 꽃도 필 때가 다 따로 있잖여유.”

고등학교 2학년 때 취직이 됐다. 보험회사의 내근직 사원이었다. 회사에 다니면서 서울 낙원동 음악 학원에서 가수 수업을 시작했다. 3년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최선을 다했다.

“예를 들어 ‘가슴 아프게’다, 그럼 이 노래 하나를 가지고 1주일을 연습혀유. 그렇게 한 3년 하니 제법 기초가 탄탄하지 않겄어요? 지가 음반 낼 때나 공연할 때, 앞서 반은 의미 깊은 노래로 좀 무겁게 가고, 뒤로 가면 꼭 옛날 가요 불르믄서 속풀이를 허는디, 젊은 시절 갈고 닦은 그 공력이 엄청 도움이 되지유. ‘동백아가씨’고 ‘봄비’고 ‘대전블루스’고, 세월 흐르는 동안 국악 산조처럼 농익은 내 노래가 돼 버렸거던요. 새 생명을 넣는 거지유, 내 호흡으로.”

아닌게아니라 어떤 노래든 그가 부르면, 이 노래가 그 노래였던가 고개 갸우뚱거려질 만큼 새로운 의미, 새로운 감성으로 가슴을 친다. 장사익은 이에 대해 “정말 그 노래는 내 노래, 새 노래이기 때문”이라 답했다.

“세상에는 노래를 위한 노래를 부르는 사람도 있구, 또 무슨 운동이나 그런 일의 수단으로 쓰는 사람두 있어요. 지는 지 느낌대로 불러요. 세상에 마흔일곱 먹어 노래 시작한 가수가 몇이나 되겄시유. 다른 가수들이 노래를 위한 노래를 한다면은, 지는 이 사회에서 나름대로 경험해온 여러 것들, 내 인생 얘기를 풀어낸다 하는 심정으루, 증말 하고 싶은 말을 꾹꾹 눌러 담아 0.001초 절박하게 불러유. 그냥 유명 가수가 박자 맞춰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니께 단어 하나하나에 엄청난, 생생한 느낌과 공력을 담아서, 지 노래에 그런 게 있는 건 사실이에유.”

그의 공연에서 느껴지던 미묘한 아마추어리즘, 분명 매우 세련되고 잘 부르는 노래임에도 생뼈를 마주한 듯 절실하던 그 리얼리티는, 어쩌면 바로 그런 태도에 기인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대중 음악은 3분 예술이라고 하잖여유. 그러니께 3분짜리 활동사진 같은 거예유. 끝나고 나면, 뭐였지? 텔레비전에서 요즘 꼬마덜 노래하는 거 보면, 어, 뭐였지? 남아 있질 아녜. 근데 어떤 사람 노래를 들으면 나랑 일치하는 거, 그래, 바로 저거여, 저건 내 얘기여. 같이 울고 같이 막 감동하면서, 맞아, 내 사는 재미가 바로 저것이여. 지는 그런 노래를 부를라고 하는 거지유.”

3/8
글: 이나리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byeme@donga.com
연재

이나리기자의 사람속으로

더보기
목록 닫기

0.001초까지, 절박하다 그 목청

댓글 창 닫기

2022/06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