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7월호

‘한국의 럼스펠드’ 김희상 청와대 국방보좌관

“미 2사단 후방배치 전략, 한반도 안보에 적절한지는 의문”

  • 글: 이정훈 동아일보 신동아 차장 hoon@donga.com

    입력2003-06-24 14: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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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럼스펠드’ 김희상 청와대 국방보좌관

    金熙相<br>● 1945년 경남 거창 출생<br>● 육사 24기, 서울대 외교학과·미국 육군대학 졸업<br>● 노태우 대통령 국방비서관<br>● 수도기계화사단장·수도군단장·1군 부사령관·국방대학교 총장 역임(예비역 육군중장)<br>● (현)노무현 대통령 국방보좌관<br>● 저서 : ‘중동전쟁’ ‘생동하는 군을 위하여’ 등

    김희상(金熙相·육사 24기, 예비역 육군 중장) 청와대 국방보좌관은 ‘한국의 럼스펠드’로 불린다. 그는 진보적인 사람이 많은 청와대에서 보수파를 대변하는 목소리를 내는 이단자(異端者)이면서도 대통령과 가까이 지낼 수 있는 특이한 사람이다. 이러한 그의 역량이 결정적으로 발휘된 것은 지난 3월말. 그는 “3주면 이라크전은 끝난다”며 조기 파병을 주장해 이를 관철시켰다.

    한국군의 조기 파병은 험난해진 한미관계의 돌파구를 뚫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한국의 반미 촛불시위에 맞서 미국에서도 반한(反韓)과 혐한(嫌韓) 감정이 높아진 때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미국을 방문했다. 그러나 이라크 파병 결정과 노대통령의 ‘노련한 처신’으로 미국내의 반한 파고를 피해갈 수 있었다고 한다.

    김보좌관은 육사 교수 요원이 되려고 임관 후 서울대 외교학과에 편입해 국제정치학을 공부했다. 그러다 방향을 바꿔 중령 때부터 야전으로 나가면서 인재가 많았던 육사 24기의 대표적인 전략통이 되었다.

    일요일인 지난 6월8일 특이한 군 경력을 가졌고 청와대에서도 특이한 위치에 있는 그가 입을 열었다. 그의 첫마디는 뜻밖에도 “한반도를 통일할 수 있는 기운이 높아지고 있으니, 참여정부를 포함한 한국 사회는 장대(壯大)한 통일 비전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김보좌관께서는 1977년 ‘중동전쟁’이라는 책을 편찬하셨죠. 미군은 작전을 잘할 뿐만 아니라 점령지에서 군정을 펼치는 민사(民事) 분야도 준비가 철저해요. 한반도가 통일된다면 우리 군도 민사를 펼치는 상황이 벌어질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민사 업무 경험을 쌓는 것이 필요한데 현재 동티모르에서 소령 계급의 장교가 민사 업무를 하는 것이 전부인 것 같습니다.



    “동티모르는 여기(한반도)와는 전략환경이나 문화적인 차이가 너무 커서 그곳에서 경험한 것이 큰 도움은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기자의 말처럼 우리 국민이 그런 큰 꿈(통일)을 꾸고 있다면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요즘 우리 신문을 한번 보세요. 큰 꿈을 그리는 기사는 찾아볼 수가 없고 온통 불확실한 의혹과 사회적 갈등에 관한 기사로 도배되어 있지 않습니까. 지금이야말로 우리 민족이 큰 꿈을 준비해야 할 시기인데 말입니다.

    2000년 11월말 제대한 후 저는 미국 랜드(RAND)연구소에 갔었어요. 그리고 일본의 방위연구소(NIDS)와 러시아의 세계경제 및 국제관계연구소(IMEMO), 중국의 사회과학연구소도 한두 달씩 방문했습니다. 4대 강국의 국제 안보문제연구소를 다 둘러보고 느낀 것은 ‘남과 북이 다 같이 승리자가 되는 윈-윈의 평화통일을 이룰 수 있는 유리한 여건들이 조성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골목대장 있어야 조용해져

    -저도 동료 기자들에게 그런 뜻에서 이라크파병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었습니다. 군정 업무를 해봐야 통일의 초석을 닦을 수 있다고 말입니다.

    “이라크 파병에 대해 말이 많았지만 싫든 좋든 세계화 시대가 열렸고 또 어차피 ‘역사는 승자의 역사’인 측면이 강합니다(웃음). 어느 쪽이 이길지 뻔한 데 공병이나 의무병 같은 인도주의적 병력을 보내지 못할 이유가 하나도 없지요.”

    -그런데 왜 남이 벌이는 침략전쟁에 끼여드느냐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대체로 그런 사람들은 명분 없는 전쟁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하고 미군이 이라크에서 대량살상무기(WMD)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점을 거론합니다. 대량살상무기가 발견되지 않았으니 미국은 명분 없는 전쟁을 벌였다는 것인데, 그에 대해 월포위츠 미 국방부 부(副)장관은 ‘전쟁 명분에 대해 의구심을 제기하는 사람은 후세인 정권에 의해 집단 학살된 이라크인이 묻힌 곳곳의 공동묘지를 보라’고 했습니다. 부시 미국 대통령도 ‘대량살상무기? 그게 문제가 아니다. 이라크인들의 인권이 중요하다’고 했다고 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이라크 파병을 결정하고 국회 동의를 기다릴 때인 3월26일, 파병 반대 여론이 높자 보좌관께서는 ‘골목대장론’을 거론하셨죠. 미국이 주도하는 이라크전은 부도덕한 전쟁이라는 주장에 대해 “골목이 좀 조용해지려면 튼튼하고 강한 골목대장이 나서는 게 좋다. 그게 패권안정이론이다. 우리는 세계의 안보환경을 보다 폭넓게 봐야 할 것 같다”고 말입니다.

    “그 골목대장론 때문에 좀 시끄러웠지요. 그러나 우리는 국제사회의 가치 기준이 바뀌고 있다는 데 주목해야 합니다. 과거 한 나라의 국제적인 행위가 옳았느냐를 판단하는 기준은 ‘나라의 주권(主權)을 침해했느냐’ 여부에 있었습니다. 이는 베스트팔렌 조약(1648년 10월24일 독일의 30년 전쟁을 종결시킨 조약으로 자기 영토에 대한 각 나라의 주권이 처음으로 인정되었다)으로 형성된 국제질서의 기본 이념인데 300여 년간 지속돼온 이 질서가 20세기 후반 들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변화는 유럽에서 시작됐습니다. 유럽에서 공산주의가 붕괴된 후인 1999년 NATO는 새로운 전략 개념을 내놓았습니다. 유럽을 위태롭게 하는 안보위협 요소로 ‘대규모 인권탄압’을 제기한 것이죠. 이후 NATO 가입 국가들은 ‘인권을 위태롭게 하는 세력은 유럽을 위태롭게 한다’ ‘자유와 평화 같은 인류의 기본적인 가치를 보호하면 옳은 것’이고 침해하면 나쁜 것이라고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원칙 하에서 NATO는 인종청소를 한다는 이유로 인권을 대량 탄압한 보스니아 내전에 개입했고, 1999년에는 코소보로 침공해 알바니아계를 학살한 유고를 응징하는 코소보전을 벌였던 것입니다.”

    미국은 테러에 아주 예민

    -9·11테러 이전의 미국은 ‘억제력(deterrence)’으로 미국을 지켰습니다. 즉 미국을 공격하는 나라가 있으면 그 나라를 열 배 백 배로 응징하겠다고 함으로써 미국의 방위를 도모했습니다. 이 전략은 상대가 어떠한 핵무기를 가졌느냐에 따라 ‘대량보복전략’ ‘유연반응전략’ 등으로 바뀌긴 했지만 억제력을 바탕으로 한 미국 방위전략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2001년 9월11일 여객기를 납치해 뉴욕의 세계무역센터와 워싱턴의 국방부를 덮친 테러리스트들은 목적을 달성함과 동시에 그 자리에서 사망했습니다. 응징보복을 하려고 해도 그 대상이 없어져버린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미국은 테러를 준비하는 세력이 있으면 색출해서 사전에 공격한다는 ‘선제공격(preemptive attack)’을 선택했습니다. 그 예가 이라크전입니다.

    “이기자의 말에는 약간 수정해야 할 부분이 있어요. 방금 이기자가 말한 미국의 억제 전략은 미국의 안보이익에 대한 도전을 억제하는 것이지, 미국이 실제로 공격을 받았을 때 억제하는 것이 아닙니다. 미국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적극적(aggressive)이지요. 이러한 차원에서 미국은 장차 자국의 안보에 대한 제1 위협요소로 중국을, 두 번째 위협요소로 테러를 거론했습니다. 일찌감치 테러를 위협요소로 보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미국은 반(反)테러법을 만들고 테러를 지원하는 나라에는 경제봉쇄를 감행했지요.

    “그래요. 그러한 일들이 클린턴 정부 때부터 이뤄지고 있었어요. 1997년 국토안보사령부(Home Land Security Command)를 만들었고, 미국의 안보관련 서적은 오사마 빈 라덴을 일찍부터 단골 테러리스트로 거론했습니다. 그러다 9·11 테러가 일어나자 중국을 제치고 테러가 미국을 위협하는 최대의 적이 된 것이지요.

    9·11테러는 대량살상무기와 연계된 테러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를 겪고 나자 대량살상무기와 연결된 테러를 큰 위협으로 인식하게 된 거지요. 미국은 북한이 핵무기를 만들면 일주일 후쯤 테러리스트 손에 들어가고, 또 한 일주일 지나면 워싱턴DC에서 폭발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가끔 한국에서 주한미군 장병이 밖에 나갔다가 맞고 들어오는 경우가 있는데 우리에게는 그게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여겨지지만 미국에서는 대단히 중요한 관심사가 됩니다. 그들은 단순한 폭행도 테러와 연결지어 생각합니다.”

    -1987년 11월 김현희(金賢姬)의 KAL 858편 폭파 사건 이후 미국은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했지요.

    “미국의 안보에 있어 북한은 아주 특별한 나라입니다. 정확히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북한은 세계 4위의 생화학무기 보유 국가입니다. 부시는 그런 무기를 만들 돈이 있으면 북한 주민이나 제대로 먹여살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김정일이 그럴 생각은 하지 않고 미사일과 마약, 위폐 등을 만들어 팔아먹을 궁리만 하니 약이 오르는 것이지요. 악의 축이라는 발언도 그런 이유에서 나왔다고 봅니다.”

    -한국이 보다 나은 미래를 개척하고 통일을 이루려면 미국과의 체제공조가 중요할 것 같은데 일부 국민들은 ‘민족이 우선이다’는 정서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한 정서는 지난 정부 5년 사이에 확산되었는데, 우리는 북한을 두 가지 입장에서 봐야 합니다. 하나는 21세기의 도전을 극복하고 미래를 함께 개척해나가야 할 ‘화해와 협력의 대상’으로서의 북한입니다. 또 하나는 우리와 ‘이데올로기 및 체제경쟁’을 벌이고 있는 북한입니다. 이 둘을 균형되게 보아야지 어느 한쪽만 봐서는 안 됩니다. 문제를 풀어가기 위해서는 온 국민이 인식을 같이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국민들이 한 쪽만 바라보지 않도록 언론과 교육기관에서 제대로 설명해주어야 할 것입니다.”

    -국민들이 한 목소리를 낸다면 북핵 위기를 통일의 기회로 전환시킬 수도 있겠지요. 좋은 예가 독일입니다. 영국과 프랑스는 물론이고 소련까지도 독일이 통일되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그러자 독일은 미독(美獨)공조를 굳건히 해 통일을 이뤄냈습니다. 영·프·러 같은 주변국이 통일독일은 위험하다고 할 때, 아버지 부시 대통령이 이끌던 미국은 ‘걱정 마라. 내가 보증한다’며 이를 일축한 것입니다. 한반도 주변국은 한반도의 재통일을 원치 않습니다. 이러한 반대를 일거에 밀어낼 수 있는 나라가 현재로서는 미국이니, 한미(韓美)공조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에 대해 거부감을 가진 세력이 있는데 어떻게 풀어가야 합니까.

    “어려움을 겪고 난 뒤에 깨닫는 것은 너무 늦어요. 시대를 앞서가는 ‘인식의 혜안’이 있어야 합니다. 국민이 현명하지 않으면 현명한 정책을 펼 수 없습니다.”

    노대통령, 자주국방에 관심 많아

    -밖에서는 김보좌관을 ‘한국의 럼스펠드’라고 합니다.

    “동아일보에서 그렇게 썼더군요. 우리한테는 럼스펠드 장관이 강성 인물로 알려져 있는데 나도 그런 인물이라는 뜻인 것 같아요. 그런데 이 소리를 듣고 부시 행정부가 과연 나를 자기 그룹에 포함시켜줄지 의심스러워요(웃음). 나는 군에 있을 때 혁신적인 주장을 많이 했어요. 군에 있어도 군대만 보지 않고 경제·사회를 종합적으로 보면서 가장 합리적인 아이디어를 제공하려고 했던 사람이에요. 그런 저를 강경하다고 보니 당황스럽더군요(웃음).

    럼스펠드 장관을 비롯한 부시 행정부 인사들은 업무에 대한 열정이 있고 자기 신념에 충실하며 적극적이에요. 그런 차원에서 저를 비유했다면 고마운 일이죠(웃음).”

    -당선자 시절의 노무현 대통령께서는 한미연합사의 지휘 체계에 대해 매우 궁금해했다고 하더군요. 유사시 한국 대통령이 한미연합사를 지휘할 수 있는지에 대해 많은 질문을 했다던데요. 지금 김보좌관의 역할이 대통령이 그런 문제를 자문하면 설명해 드리는 것 아닙니까.

    “처음에는 잘 몰랐지만 지금은 많이 아십니다. 한미연합사령관은 한미 양국 대통령이 공동 지휘한다는 것도 명확히 알고 계십니다. 지금 대통령이 걱정하는 것은 ‘유사시 작전지휘권을 행사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가 아니라, 우리 군의 자주적인 국가방위 능력이 너무 미흡한 것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지난 대선 때 군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GDP에 대비한 세계 평균 국방비가 3.5%인데 분단국가인 한국은 김대중 정권 5년을 거치면서 2.7%로 떨어졌다. 이럴 수가 있느냐. 이번 대선에서는 국방비를 5%까지 올리겠다는 후보를 지지하자’는 의견이 많았어요. 그런데 노무현 후보가 당선되자 이 소리가 쏙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국방비 증액은 완전히 끝난 줄 알았는데, 월포위츠 미 국방부 부장관이 한국에 와서 이 문제를 거론했습니다. 그러자 다시 국방비 증액 이야기가 나왔는데, 영 모양이 좋지 않아요. 이러한 주장이 노무현 대통령이 이끄는 청와대에서 먼저 나왔으면 더 좋았을 것 아닙니까.

    “국방비를 GDP 대비 5%로 하자는 이야기는 없었던 것 같은데…. 월포위츠 부장관이 오기 전 이미 노대통령께서는 ‘자주국방하려면 돈이 얼마나 드는가. 한번 보고해달라’고 해서 대략 ‘이러이러한 정도가 소요된다’고 보고한 적이 있습니다. 대통령께서는 ‘한번 노력해봅시다’ 하며 수용했지요. 월포위츠 부장관이 한국 국방비 증액 이야기를 꺼냈을 때 대통령께서는 ‘생각하고 있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지금은 통합안보 시대이기 때문에 무턱대고 국방비만 높여서는 안 됩니다. 경제·정치·과학기술이 고루 발전해야 안보역량이 극대화되니까, 적정 수준의 국방비가 중요합니다. 그러나 지금의 국방비로는 미래에 대비한 전력 확보는 불가능합니다. 노후 장비를 교체하고 현재 전력을 유지하는 데도 충분치 않아 국방 예산의 증액 자체는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올 가을 기획예산처에서 정부 예산안을 확정할 때 그 말이 사실인지 여부가 판가름나겠군요.

    “틀림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첫 해는 ‘전력 증강을 어떻게 한다’는 기획 단계이기 때문에 많은 예산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GDP 대비 3% 정도는 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대통령하고도 IMF 이전 수준으로 회복돼야 하지 않겠느냐는 데에 의견이 일치했습니다.”

    -미국의 안보 체계를 보면 대통령이 아니라 NSC(국가안전보장회의)에서 모든 것이 결정되더군요. CIA 같은 정보기관은 물론이고 국방부 휘하에 있는 아홉 개 통합사령부도 NSC에 보고하고 통제를 받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NSC가 유명무실합니다. 안보사건이 일어나면 관계자들이 모여서 회의 한번 하고 흩어지는 기구에 불과합니다. 이렇게 NSC가 제 기능을 못하고 안보문제가 대통령 한 사람에게 집중되다 보니 대통령은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피해간다는 인상을 줍니다. 김대중 정부 때 이런 현상이 강했습니다.

    “6공 때 국방비서관을 하면서 NSC체계 개선 아이디어를 제시한 적이 있었는데 구현되지 않았어요. 그러다 조금씩 발전해서 이제 겨우 체계를 갖추었습니다. 50년 역사를 가진 미국의 NSC와 비교할 수 없지만 나름대로 효율적이고 적극적으로 임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분단 국가인 한국은 어느 나라보다도 ‘안보 수요’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만큼 안보보좌관 자리가 중요한데, 노무현 정권을 포함한 과거 15년간 안보보좌관(혹은 외교안보보좌관)에 안보 전문가가 임명된 적이 없어요. 언제나 외교전문가가 임명되었지요. 그리고 그 밑에 국방비서관이 있는 구도였습니다. 지금 노무현 정부도 안보보좌관에 학자와 외교관 경험을 가진 사람을 임명하고, 그 밑에 외교보좌관과 국방보좌관을 따로 두고 있어요. 안보보좌관과 외교보좌관을 따로 두는 것은 중복인 것 같습니다.

    “안보는 외교와 국방 그리고 통일 포괄하는 종합적인 개념입니다. 그래서 6공 초기에 안보보좌관만 있던 것을 얼마 후 그 밑에 국방비서관 자리를 만들고 이어 외교비서관을 신설했습니다. 그러자 외교 쪽에서 명칭에 불만을 제기해 안보보좌관이 외교안보보좌관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주로 외교전문가가 외교안보보좌관(지금의 안보보좌관)을 맡게 되었습니다.

    이기자는 안보의 핵심은 국방이니 국방전문가가 안보보좌관을 맡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안보는 종합적인 시각이 필요한 분야입니다. 오히려 군 출신은 시야가 좁을 수도 있습니다.”

    전략적 햇볕정책으로 전환해야

    -노대통령 취임 100여 일이 지났습니다. 그런데도 대북 문제와 관련한 노무현 독트린이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대북독트린이라는 말로 표현하긴 어렵지만 ‘햇볕정책을 계승 발전시켜나가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냥 계승하는 게 아니라 ‘국민의 공감대를 얻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수정 보완하겠다’는 단서가 달려 있습니다. 앞서 이야기했듯 북한은 21세기 도전을 함께 극복해나갈 화해와 협력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생명과 운명을 건 체제 경쟁의 대상입니다. 이 두 가지 면을 함께 바라봐야 합니다.

    그 동안의 대결 위주 정책이 성공을 거두지 못했으므로 햇볕정책을 시도해볼 가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지난 정권의 햇볕정책이 아니라 보다 전략적인 햇볕정책이어야 합니다.

    지난 정권이 햇볕정책을 펼치는 와중에 북한은 핵개발을 하고 카자흐스탄에서 미그21기를 40여 대 구입하였고, 또 서울을 노리는 야포 수를 증가시켰습니다. 노대통령은 어느 한 쪽에도 편중되지 않은 균형된 인식을 갖고 있습니다. 햇볕정책의 기본 아이디어는 계승하되 과거 정권이 보지 못한 부분은 보완해 가겠다는 의지를 갖고 계십니다.”

    -노대통령은 ‘당장 김정일을 만날 의사가 없다’고 밝힌 적이 있습니다. 노대통령은 김정일을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웃음)그건 말하기 곤란하네요. 노대통령의 방미를 수행하고 돌아온 지난 5월17일 제가 KBS에서 ‘북한 체제와 북한 주민은 구별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는데, 제가 말한 체제는 김정일 체제가 아니라 독재체제, 문자 그대로 체제 그 자체를 지칭한 것이었습니다. 나는 북한과의 관계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누구를 지칭하지 않아요. 우리가 바꿔야 할 것은 독재체제입니다. 사람은 그 다음이고요. 통일을 하겠다고 하면서 통일된 후 너희를 죽이겠다고 하면 평화통일이 이뤄지겠어요?”

    -청와대에는 386세대의 비서관·행정관이 많습니다. 그들은 민족공조를 선호하는 것 같은데 코드가 잘 맞습니까.

    “코드가 맞지 않다거나 그래서 불편하다거나 한 적은 없습니다.”

    -전혀 없습니까.

    “더러 있을 수는 있지요…. 하지만 정부의 안보정책은 NSC와 안보장관회의를 통해 결정되는 것이라 크게 문제 될 게 없어요. 그리고 무조건 강경책을 쓰는 것만이 능사가 아닙니다.”

    ‘한국의 럼스펠드’ 김희상 청와대 국방보좌관

    이라크에 파병된 서희부대. 김보좌관의 주장으로 조기 파병이 결정되면서 한국은 대미관계에서 돌파구를 찾았다.

    -지난 5월초 미국을 방문한 노무현 대통령은 “미국이 6·25전쟁 때 도와주지 않았다면 지금쯤 나는 정치범수용소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등 상당히 친미적인 발언을 많이 했습니다. 노대통령이 진심으로 하신 말씀입니까.

    “그런 말씀을 가끔 하십디다. 오해가 있었다는….”

    -오해라구요?

    “보다 근본적으로… 지금은 (노대통령은) 공인(公人)이고 나라의 지도자입니다. 과거에 흘리듯이 한 발언을 갖고 변했느니 변하지 않았느니 하는 것은 진실과 거리가 멀고 나라를 위해서도 별로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미국에 가서 친미 발언을 많이 하셨다고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당시 미국에서는 반한·혐한 의식이 대단했습니다. 교민 대표들과 식사를 하며 들어보니 ‘한국에서 촛불시위를 하며 성조기 태우는 것을 보니 심장이 그을리고 속이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고 하더군요. 교민들 집에 돌이 날아와 유리창이 깨지기도 하고, 주차시킨 자동차 타이어가 펑크 나는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잘 알다시피 한미관계는 한국 대외정치의 대들보 아닙니까? 한미관계와 우리 국민의 안보의지, 그리고 우리 군의 전력이 안보의 3대 지주입니다. 그러한 대들보가 화염에 그을려 무너질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노대통령의 방미 목적을 놓고 말이 많은데 제대로 된 튼튼한 대들보로 바꾸어놓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노대통령의 방미는 굉장한 성공작이었습니다.”

    -그런데 노대통령이 미국에 가기 전에 한 말과 가서 한 말, 그리고 돌아와서 한 말이 다릅니다. 미국을 방문하기 전 노대통령께서는 ‘①북한이 핵을 보유하는 것은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 ②북핵 문제는 한국이 주도적으로 해결한다 ③북핵 문제는 평화적으로 해결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5월14일 발표된 한미정상회담의 공동성명은 ‘①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용인하지 않는다 ②핵문제를 포함한 북한 문제는 중국과 일본 러시아가 참여해 풀어간다(다자협상을 한다) ③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대한 위협이 증대될 경우 추가적 조치(further step)의 검토가 이루어질 것이다’ 라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용인하지 않는다는 것만 같을 뿐 나머지 둘은 내용이 달라졌습니다.

    그런데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노대통령은 다시 ‘북핵 문제는 평화적인 방법으로 해결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어느 것이 노대통령의 진심입니까.

    “한국 주도는 한국이 문제 해결의 틀을 만드는 데 주도적이고 적극적으로 노력한다는 뜻으로 보면 됩니다. 추가적인 조치를 갖고 많은 말이 나오는데 한번 생각해보자고요.

    국가가 정책을 수행할 때는 가능성이 있는 모든 상황을 상정해 그 대응방법을 강구해두어야 합니다. 이 것도 안 되고 저 것도 안 될 때를 대비한 대안이 머리 속에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대안은 표현할 수도 있고 표현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표현하는 것이 전략적으로 좋다고 판단하면 그렇게 하는 것이고, 감추는 것이 낫겠다면 감추는 것입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미국에서 발표한 것과 한국에서 발표한 것을 다르게 볼 필요는 없습니다. 노대통령이 귀국 후 평화를 강조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평화적 해결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드러낸 것으로 보면 될 것입니다.”

    -일본은 우리만큼은 아니지만 어쨌든 북한 미사일 위협 아래에 있습니다. 따라서 미국은 한국과 일본이 북한 문제에 어떻게 대처하는가를 비교해 볼 것입니다. 일본은 북한에 대해 일관된 자세를 유지하는데 우리가 그렇지 않다면 미국은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미국은 다 보고 있지…, 다 알고 있어요. 그 문제는 기본적으로 한·미·일 공조의 틀 안에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이뤄지는 것으로 보면 됩니다. 같은 생각이라도 표현하는 데는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까요….”

    -한미 정상회담 때 추가적 조치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논의가 없었습니까.

    “그냥 선언적인 용어입니다. 무엇을 뜻한다는 논의는 없었어요. 미국이 제시한 용어와 우리가 내놓은 용어를 놓고 협의하는 과정에서 ‘further step(추가적 조치)’이 채택된 것입니다.”

    -평화적으로 북핵 문제를 풀겠다고 했는데 어디까지가 평화입니까. 미국은 해상봉쇄는 물론이고 그 이상도 평화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요.

    “국방보좌관인 내가 ‘여기까지가 평화적인 조치요’라고 하는 것은 적절치 못합니다. 그러나 ‘평화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켜지는 것이다’는 말은 분명히 하고 싶군요. 역사를 살펴보면 구걸한다고 해서 평화가 주어진 적이 없습니다. 강력한 힘과 단호한 의지를 갖고 전쟁 도발을 억제해야 평화를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네가 도발하면 나는 열 배 백배로 응징한다는 역량과 의지를 상대로 하여금 읽게 해야 평화는 지켜집니다. 때로는 부드러운 말로 어르고 달래는 것보다 위협적인 말과 강한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 상대로 하여금 오해를 하지 못하게 하는 방법이 될 수 있어요. 상대가 ‘저쪽은 도발을 해도 싸울 의지가 없구나’ 하는 오해를 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고이즈미 일본 총리는 미국을 국빈방문해 부시 대통령의 개인농장인 크로포드 목장도 갔는데, 노대통령은 왜 실무방문을 했습니까.

    “우리 대통령은 미국에 처음 가셨잖아요. 그래서 해야 될 일이 많았어요. 안보도 챙기고, 경제도 챙기고, 교민도 만나야 했습니다. 뉴욕 월가도 가보고 미국의 상무장관과 국방장관도 만나야 했습니다. 한가롭게 크로포드 목장으로 갈 수는 없잖아요. 고이즈미 총리는 현안이 많지 않았습니다.”

    장계취계로 북한 대응

    -남북 군사문제에 대해 질문 드리겠습니다. 경의선 연결은 어떻게 돼 갑니까.

    “북측은 한동안 소극적이었는데 지금은 적극적으로 나와 상당히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북한은 과거와 달리 400~500명씩 투입해 전례 없이 열심히 작업하고 있어요.”

    -그것이 오히려 수상쩍어요. 북핵 위기는 위기대로 둔 채 왜 전에 없이 경의선 연결 사업에 열을 올립니까.

    “저쪽에서 본다면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이겠지요. 그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니 우리는 우리 나름으로 대응하면 됩니다. ‘장계취계(將計就計: 상대의 계략을 미리 알고 이를 역이용하는 계교)’도 그 하나일 수가 있고…. 북쪽이 어떤 계획을 갖고 접근하든, 우리는 우리 나름의 계획을 갖고 대응하면 문제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통일이라는 대업을 이루려면 북한과 게임을 벌여야겠지요.

    “해야지요. 지난 정권에서 하다가 중단된 국방장관회담도 다시 이어가야 합니다. 남북문제는 화해협력과 평화정착이 양축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돼요. 두 개를 같이 굴려가야 합니다. 북쪽은 화해와 협력을 통해서 경제적인 지원을 얻는 것이 목적이고, 우리는 돈을 좀 주더라도 평화를 정착시키는 것이 목적이라면, 두 개가 같이 굴러가게 해야 합니다. 과거 정권은 군사회담은 쏙 빼고 평화정착이라는 한 쪽만 굴리려고 했으니 삐걱거리고 국민들도 공감하지 않은 것입니다.”

    NLL 월선, 교전규칙대로 대응

    -북한이 어선으로 하여금 서해 NLL(북방한계선)을 넘게 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요.

    “북한이 어떤 의도를 갖고 그렇게 한 것 같지는 않아요. 지금 서해에서는 꽃게가 한창입니다. 알을 배고 값도 좋은데 특히 금년이 풍어랍니다. 외화벌이 할당량이 있으니 자연 많이 잡히는 곳으로 내려오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월선을 방관하면 결국 북한에 NLL을 무시할 명분을 줄 수 있으므로 우리는 교전규칙에 따라 단호히 대항해야 합니다. 그래서 경고사격을 한 것입니다.”

    -대통령도 경고사격하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까?

    “사격하고 난 뒤에 보고를 받았습니다. 교전규칙상 소화기(小火器)와 기관총 사격은 현장에 있는 고속정 정장(艇長)이나 편대장이 결정하게 돼 있습니다. 함포 사격은 2함대 사령관이 결정하는 것이고. 그러한 것을 대통령한테 보고해 허락받고 쏜다면 군대가 아니지요.”

    -그러나 지난해 서해교전 당시에는 상부에서 현장 지휘관에게 많이 간섭했기 때문에 북한군에 당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그렇죠. 그래서 우리는 교전규칙대로만 하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런 차원에서 본다면 1년 전 사건은 예비돼 있던 것이에요. 서해교전이 있기 전에 북한 상선이 제주해협을 무단 통과해 동해와 서해의 NLL을 넘어 북한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때 우리가 원칙대로 대응했다면 북한은 서해교전을 도발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북한의 어선이 아니라 경비정이 NLL을 월선한다면 어떻게 합니까.

    “당연히 교전규칙에 따라 대항할 수밖에 없습니다. 경비정도 그렇고 어선도 그렇고.”

    -경고방송을 하고 위협기동을 한 다음 경고사격을 합니까. 그렇게 교과서적으로 대응하다가 서해교전을 당했는데….

    “어선이라면 그렇게 하게 돼 있습니다. 그러나 월선한 상대가 북한 경비정이라면 경고사격 후 격파사격을 하도록 돼 있습니다.”

    -연평해전 후 북한이 서해 통항질서를 발표한 것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서해 NLL은 1953년 8월31일에 설정된 후 북측이 50여 년간 묵시적으로 인정해왔습니다. NLL 남쪽은 우리 해군에 의해 실질적으로 관할권이 행사되고 있는 바다입니다.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에서도 그것을 인정했습니다.

    그런데 1999년 6월 연평해전에서 패하자 북한은 9월에 서해통항질서라는 것을 발표했습니다. 연평해전에서 패배해 자존심이 상했으니 뭔가 요구해야겠다 싶어 그렇게 한 것이겠지요.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일 이유도 없고 그럴 생각도 없습니다. 그것을 받아들이면 지금은 NLL에서 긴장이 조성되지만 앞으로는 인천항 코앞에서 펼쳐집니다. 영종도에 있는 인천국제공항이 위험해질 가능성도 높습니다.”

    -NLL에서의 남북공동어로작업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런 논의를 하는 것 자체가 북쪽 주장에 힘을 실어주게 될까봐 신경이 쓰이네요.”

    -보좌관께서는 그렇다 치고 청와대에 있는 386세대들도 같은 생각일까요.

    “그 문제를 갖고 논의를 해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막상 논의를 시작하면 상당히 조심스러워질 걸요. 북쪽에서도 아직은 서해 공동어로구역 이야기를 꺼낸 적이 없어요. 공동어로작업을 허용하면 군사적으로 우려할 만한 일이 너무 많아집니다.”

    ‘용산에는 더 있고 싶지 않다’

    -서울 용산에 있는 미 8군사령부를 옮기는 것은 노태우 대통령 때 합의된 것이지요. 그러나 돈 때문에 옮기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때는 돈도 돈이지만 사회적인 반대가 많았습니다. 그러다 정권이 바뀌고 북핵 위기가 고조되면서 유야무야됐죠. 8군 이전은 그때 체결된 합의각서에 따라 다시 추진되고 있는 것인데 상당히 구체적인 안이 마련되고 있습니다. 비용문제는 범정부추진위원회에서 해결할 것으로 보입니다.”

    -서울시나 용산구에서는 8군이 이전한 땅을 거저 받으려고 하는 것 같던데요.

    “하지만 8군이 이전해갈 땅을 구입해야 하니 국방부에서는 거저 줄 수가 없어요. 이러한 문제는 범정부추진위원회에서 결정해야 할 것입니다.”

    -그 결정이 늦어지면 8군의 이전도 늦어지겠네요.

    “아마 빨리 결정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 미국측에서는 이 문제에 대해 매우 불편해합니다. 매주 금요일 반미단체들이 8군 정문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습니다. 미군은 쉽게 말해 ‘하도 못살게 굴어서 용산에는 하루도 더 있고 싶지 않다’고 합니다.

    주일미군과 주독미군은 기혼자의 60∼70%에게 주택을 제공합니다. 그런데 주한미군은 8%밖에는 주택을 제공하지 못합니다. 8군을 옮긴다고 했기 때문에 투자를 하지 않는 것도 원인이겠지요. 아무튼 미국측 분위기는 8군은 옮기겠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의정부와 동두천에 있는 미 2사단은 어떻게 됩니까. 국방부는 2사단 이전에 대해서도 원칙적인 합의가 이루어졌다고 발표했고, 언론은 5~6년 내에 2사단이 평택·오산 지역으로 옮겨갈 것이라고 보도했습니다. 그러나 평택-오산 지역에서는 훈련장 구하기가 쉽지 않을 걸요. 2사단의 기계화부대가 전차와 장갑차를 이끌고 매일 한강 이북의 훈련장으로 이동해 오는 것도 우습지 않습니까.

    “대대급 훈련장이 한강 이북에 있으니, 한 개 대대는 훈련 때문에 늘 한강 이북에 와 있겠지요.”

    ‘미군 후방배치가 전쟁 억제에 유리’

    -4월25일 주한미군 부참모장인 솔리건 공군 소장을 만났더니 2사단 이전을 강력히 주장하더군요. 2사단 이전이 결정된 것은 최근입니까.

    “2사단 이전이 다시 거론된 것은 LPP(연합토지계획)가 거론되면서부터였습니다. 2년 전 LPP가 확정되면서 주한미군을 몇 개 거점(HUB)으로 모은다는 것이 결정됐는데, 그때 2개 거점으로 하느냐 3개 거점으로 하느냐가 문제였습니다. 3개 거점으로 하면 대구·부산과 평택·오산 그리고 의정부·동두천으로 하는 것이고, 2개 거점이면 의정부·동두천이 빠지는 것인데 결국 2개 거점으로 확정되었습니다.”

    -2개 거점으로 확정된 것은 최근이군요.

    “기본적으로는 미국의 세계전략이 바뀐 때문인데 어쨌든 거론된 것은 얼마 안 됩니다. 지난해 여중생 사망사건 이후 촛불시위가 일어나지 않았습니까. 의정부에 있는 2사단 앞에서는 연일 ‘미군 나가라’는 시위가 벌어졌습니다. 그래서 2사단 이전을 검토하니 이번에는 인계철선을 거론하며 ‘옮기지 말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한쪽에서는 가라고 하고 다른 쪽에서는 그대로 있으라 하니 미국 쪽의 분위기가 더욱 나빠졌습니다.”

    -럼스펠드는 1976년 8·18도끼만행사건이 일어났을 때도 국방장관이었습니다. 그로 인해 ‘북한은 위험하다’는 확실한 인식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로부터 25년 후 다시 국방장관이 되고 보니 주독미군이나 주일미군은 변화가 있었는데, 주한미군만 거의 그대로라는 것을 발견했답니다. 냉전이 끝나고 18개 사단이던 미국 육군을 10개로 줄였는 데도 무리없이 이라크전에서 승리했으니 주한미군도 변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다는 것이지요. ‘북한은 위험하다’와 ‘주한미군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인식 사이에서 지금의 주한미군 후방 재배치가 나왔다고 합니다.

    “미국의 국방전략이 바뀌었으니 주한미군에도 변화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럼스펠드 장관은 노대통령을 30분간 만나기로 돼 있었는데 3분의 2 이상, 그러니까 잠깐 인사를 나눈 다음부터는 왜 2사단을 후방으로 빼내야 하는가를 설명하더군요.”

    -논리는 뭐였습니까?

    “전쟁양상이 바뀌었다는, 것으로 늘상 같은 이야기죠. 미국의 과학기술과 군사력은 엄청나게 강해서 후방에 있어도 전방에 있는 것 이상의 역할을 할 수 있다, 후방에 있는 것이 오히려 전쟁 억제에 유리할 수 있다, 그럼에도 한반도가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미국은 전력증강을 한다, 그런 것이었습니다.”

    -주한미군의 전력을 증강하기 위해 110억달러를 투자한다는 게 전력증강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까?

    “110억달러가 한국에 있는 미군에 전부 투자됩니까? 한반도 유사시를 대비해 미국 해군이 괌과 오키나와에 사전 배치해놓은 전단(戰團)에 실려 있는 장비를 교체하는 것도 110억달러에 포함됩니다. 그런 장비는 배가 다른 지역으로 향하면 그만인 것인데….”

    -럼스펠드가 그렇게 이야기할 때 속수무책이었겠네요. 자존심도 상하고.

    “럼스펠드 장관은 대통령에게 어디까지나 군사상황이 바뀌었다는 것만 강조했습니다.”

    SBCT 한국 배치, 우리 현실에 안맞아

    -지금 미국 육군은 96시간(만 4일) 내 전장으로 달려가는 신속기동여단 편성을 완료했다고 합니다. SBCT(Stryker Brigade Combat Team)라는 종합전투가 가능한 기동부대라고 합니다. 전장으로 날아갈 때는 기동장비를 대형 공군 수송기로 옮기는 부대라고 하던데, 미국은 평택·오산 지역으로 옮겨가는 2사단을 장차 SBCT로 만들겠다는 것은 아닌가요.

    오산에는 미 7공군이 있으니 한국을 포함한 동북아에 분쟁이 일어나면 SBCT를 싣고 날아가 떨어뜨리는 것이지요. 우리로서는 주한미군을 대북 억제용으로만 활용하는 것이 좋은데 미국은 북한을 포함한 동북아 전체의 분쟁에 대비한 부대로 사용하려는 것 아닙니까.

    “미국에서도 한미방위조약을 자꾸 미래지향적으로 바꿔나가자고 하지 않습니까. 북한의 위협뿐만 아니라 동북아 전체의 평화와 안전을 대비하는 한미동맹을 만들자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다 그런 의도에서 나온 것이겠지요.”

    -이런 의도에 대한 우리 정부의 입장은 무엇입니까.

    “그 문제를 놓고 아직 우리와 미국 사이에는 정리되지 않은 부분이 있어요. 또 모든 것이 미국의 의도대로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 문제에 대해서는 한미간 의견이 일치된 것이 없습니다.”

    -미국이 SBCT를 한국에 주둔시키는 것이 우리에게 맞는 것입니까.

    “바로 그 문제가 고민이었어요. 미국이 상정하는 미래전쟁은 지난해 수행한 아프가니스탄 작전과 이번에 치른 이라크 작전을 염두에 둔 시스템입니다. 그러나 한반도는 잘 훈련되고 기계화된 전력을, 그것도 산악지역에서 대규모로 운용해야 하는 곳입니다. 따라서 규모가 작은 여단화된 부대가 적절할지는 의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공군 수송기에 실을 수 있는 가벼운 기동장비를 가진 여단으로 북한의 위협에 대처하는 것이 효과적인지 잘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지금까지의 작전계획은 북한이 남침하면 한국군과 주한미군이 틀어막고 있다가 미국에서 대규모 증원군이 오면 반격한다는 것이었습니다. SBCT가 과연 이러한 작전개념에 맞는 부대인지는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지금 미국에서도 럼스펠드의 계획에 반대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들은 SBCT는 특수한 상황에 투입되는 부대고 전통적인 작전은 기계화된 중(重)사단이 맡아야 한다고 보고 있어요. 본말을 전도시켰다가 재래식 전면전이 일어나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하는 반론이 미국에서도 만만치 않습니다.”

    ‘한국의 럼스펠드’ 김희상 청와대 국방보좌관

    통일 비전에 대해 이야기하는 김희상 국방보좌관

    -노대통령이 방일하던 날 일본 국회는 3대 유사(有事)법제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언론은 이 점을 집중적으로 거론하면서 노대통령의 방일을 비판했는데 우리 언론이 너무 선정적으로 나온 것은 아닙니까.

    “재미있는 표현이네요. 옳은 말씀이고요.”

    -유사법안은 미·일 신방위지침에 따라 제정된 것인데, 과연 그 법안이 우리를 위협하는 것일까요. 언론은 그에 대해 전혀 검토하지 않았어요.

    “앞으로의 미래안보 환경을 고려한다면 (한국은) 일본과 상호협조하고 거래해야 합니다. 2001년에 우리 해군이 일본 해상자위대와 구조훈련을 하려다 교과서 파동이 일어나 중단하지 않았습니까. 이는 국가간의 군사관계는 국민이 지지해주어야 이뤄질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지난해 5월 일본 방위연구소에 갔을 때 나는 일본이 유사법제안을 제정하려면 주변국가들의 우려를 해소시켜야 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일본이 바라는 것은 보통국가 건설인데, 보통국가를 만들려면 이러한 법률을 만들더라도 비핵 3원칙과 전수방위, 평화원칙을 계속해서 준수하라고 말했습니다.

    방금 질문하신 대로 일본이 하려는 것에 우리가 천편일률적으로 반대하는 것은 옳지 않아요. 그 중에는 우리 안보에 도움이 되는 것도 있습니다. 물론 한일간에는 역사적 경험에 의한 국민정서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간단히 말할 수 없지만 말입니다. 일본과 중국이 군비경쟁에 들어가면 한반도의 안보에 좋을 게 없습니다.

    이번에 대통령께서는 앞으로 5년간 대일관계의 기본 틀을 만들기 위해 일본에 가신 것입니다. 한일문제는 우호증진이라는 좁은 차원에서만 볼 것이 아니라 미래 한국의 안보환경과 국가안보 목표 차원에서도 살펴봤으면 합니다. 앞으로 동북아 문제를 풀어가려면 우리는 일본이 어떤 위치에서 어떤 역할을 하도록 묶어놓아야 하는가를 생각해봐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우리는 일본에 대해 좀더 적극적인 접근이 필요한지도 몰라요. 언론이 ‘왜 현충일에 대통령이 방일했느냐’ ‘왜 유사법안 통과한 날 방일했느냐’며 작은 것을 잡아 비난하는 것은 좋은 관점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GDP 대비 국방비를 올리겠다고 한 데 대해 사회복지를 담당하는 쪽에서는 “우리 예산을 줄이려고 하느냐”며 반대 의견을 내놓고 있습니다.

    “국방비가 증액된다고 해서 복지가 반드시 침해되는 것은 아닙니다. 국방예산을 잘 집행하면 새로운 수요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도 있어요. 오래 전이긴 하지만 GDP의 6∼7%를 국방비로 사용해도 8%대의 경제성장률을 유지하는 데에는 무리가 없다는 연구결과도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GDP의 9%를 국방비로 써도 우리보다 잘살고 있습니다. 국방비는 너무 많아도 안 되지만 너무 적어도 안 됩니다. 국민경제와 국방경제 간 조화와 균형점을 잘 잡아서 적정선을 찾아내는 것이 필요합니다.”

    국방 대의 위해 복무기간 단축

    -이번에 국방부는 일반병의 의무복무 기간을 2개월씩 줄였습니다. 그런데 육군의 연대장급 장교들은 병사들에게 가장 어려운 것은 겨울철인데, 혹한기를 이겨내려면 최소한 두 번은 겨울을 겪어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야 병사들끼리 겨울을 날 수 있는 비법을 전수해 준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복무기간이 24개월로 줄면 두 번 겨울을 나는 병사가 없을 것이라고 합니다.

    “재미있는 지적이군요. 아무튼 현대의 복잡한 전투기술을 숙지하려면 병사의 복무기간에 여유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현실은 병역기간을 줄여야 하니, 선진국은 할 수 없이 복무기간이 긴 직업군인제로 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의무병제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처지여서 복무기간을 단축키로 했습니다만, 아쉬움이 없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문제는 국민개병주의라고 하는 국방대의(國防大義)를 바로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젊은 남성 모두가 병역의무를 할 수 있도록 기간을 단축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공익근무요원이나 산업체 특례근무요원은 줄여 공평한 병역의무를 수행케 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지요.

    국방연구원에서도 두 달을 줄여 24개월로 하는 것은 괜찮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는데 막상 줄여놓고 보니까 예상 못한 문제점이 조금씩 생겨나고 있습니다. 전·의경 쪽의 수요도 충족시킬 수 있느냐 하는 문제 같은 것 말입니다.”

    -돌이켜 보면 이라크전 때 한국군 파병 결정은 정말 아슬아슬했어요. 결정이 늦었으면 우습게 될 뻔했습니다.

    “대통령께서 일찌감치 파병을 결심하셨습니다. 그런데 파병안을 국회에 제기해놓은 상태에서 장기전으로 갈 것 같다는 우려가 나오고 동시에 범세계적인 반대 여론이 거세졌습니다.

    그래서 국민의 뜻을 존중한다는 의미에서 국회 국방위원들을 모시고 설명을 드렸더니, 한 분을 빼고 전부 파병에 찬성했어요. 그때 대통령께서 상당한 자신감을 가지셨습니다.

    그때 파병을 결정하지 않았다면 한미정상회담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생각해보면 그런 다행이 없습니다.”

    -청와대에서는 반기문(潘基文) 외교보좌관과 호흡이 잘 맞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조기 파병을 주장할 때 반보좌관께서 지지해주시던가요.

    “당연하죠.”

    -두 분이 협조해 참여정부 5년의 안보정책을 잘 만들어가야 할 텐데요.

    “나는 노대통령 5년이 우리 민족의 운명을 결정지을 것이라는 느낌을 갖고 있어요. 우리는 우리의 의지와 관계없이 위대한 결단을 강요받을지도 모릅니다. 지난 2년간(한반도 주변) 4강을 돌아다녀 보니 일본은 물론이고 중국까지도 한국에 호의적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는 체념적 공감(共感)을 갖고 있었습니다. 아직 정제되지는 못했지만 우리 내부에서 분출하는 국민적 자존심과 젊은 리더십이 조화를 이루면 그 에너지도 대단할 것이고….

    그러나 우리가 다가오는 큰 운명에 정면으로 대처하지 않고 피하려 든다면, 민족사적 호기는 슬쩍 우리 곁을 지나가버리고, 가까운 미래에 큰 도전으로 전환해 닥쳐올지 모릅니다. 번영과 영광의 길 대신 전쟁 위험에 직면하는 큰 위협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온 국민이 작은 일에 얽매이지 말고 민족의 운명을 보는 큰 차원에서 한 마음으로 단결해 최선의 노력을 경주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는 북한을 잘 아는 황장엽(黃長燁) 선생을 노대통령과 만나게 해드리는 게 어떨까요. 일전에 황선생의 연설을 들었는데 통일에 대해 높은 안목을 갖고 있는 분이란 생각이 들더군요.

    “나도 황선생을 만나봐서 어떤 분인지 잘 알아요…. 생각해보지요.”

    -장시간 진지한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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