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0월호

정세현 통일부 장관

“진보도 보수도 北 한 단면만 보고 있다”

  • 글: 송문홍 동아일보 논설위원 songmh@donga.com

    입력2003-09-25 15: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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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세현 통일부 장관

    丁 世 鉉<br>●1945년 만주生 ●1971년 서울대 외교학과 졸업 ●1979년 통일원 공산권연구관 ●1982년 서울대 정치학 박사 ●1983년 통일원 남북대화 운영부장●1991년 민족통일연구원 부원장●1993년 청와대 통일비서관 (95년 3차 남북 쌀회담 대표)●1996년 민족통일연구원 원장●1998년 통일부 차관(베이징 남북당국자 회담 수석대표)●2001년 국가정보원장 통일특보●2002년 통일부 장관(7~11차 남북 장관급회담 수석대표)

    정세현 통일부 장관과 인터뷰를 약속한 9월9일은 북한의 정권수립 55주년 기념일이었다. 이 날은 추석 연휴를 앞두고 남쪽도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서로 다른 이유로 들뜬 남과 북의 사람들 마음을 가라앉히려는 듯 이 날도 어김없이 비가 내렸다.

    북한이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를 벌일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면서 북한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은 이 날 온종일 긴장을 늦추지 못했다. 만약 북한이 신형 미사일이라도 공개한다면 8월 말 6자회담으로 어렵사리 조성되어가던 대화 무드는 또 한 차례 난관에 부딪칠 게 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인터뷰 시간인 오후 4시가 되도록 북한에서 별다른 움직임은 없었다.

    -오늘 어떠셨어요? 저도 마음이 좀 부산했습니다만.

    “아이구, 잘 넘어갔지요. 일단 지금까지는 그래요. 정말 요즘은 하루하루를 긴장하면서 살고 있어요.”

    -날이 저물기 전까지는 계속 북한쪽 동향을 지켜보셔야겠네요.



    “어두워진 뒤에 또 뭐가 나올지 몰라요. 일단 8시 뉴스까지는 봐야 좀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김정일 답방 무산 아쉬워

    기자가 정장관을 처음 만난 것은 10년 전인 1994년 7월경, 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간의 정상회담이 무산된 뒤였다. 당시 청와대 통일비서관이던 정장관은 서울 무교동의 허름한 음식점에서 소주잔을 앞에 놓고 사상 최초의 남북정상회담이 무위로 돌아간 것에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때 그는 김영삼 전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하고, 이어서 김일성 주석이 답방을 했다면 서울에서 일어났을 법한 일들에 대해서도 나름의 해설을 쏟아냈었다. “김 주석은 서울 거리에서 자신을 열렬히 환영하는 수백만 인파를 기대했을 것이다” “우리 내부에선 통일을 열망하는 진보세력과 6·25전쟁을 경험한 반공 보수세력 사이에 갈등의 골이 깊어졌을 것이다” 등의 말들이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다.

    자리에 앉은 후 10년 전 얘기를 꺼내자 정장관은 “그 때 정상회담이 성사됐다면 오늘의 남북관계는 많이 달라진 모습일 텐데…. 2000년 6월15일에 약속한 대로 김정일 위원장이 적절한 시점에 서울을 방문했더라도 상황은 또 많이 달라졌을 텐데…” 하며 또 아쉬워했다.

    이번 인터뷰는 9월초에 방송된 한 TV 프로그램이 직접적 계기가 됐다. 일본 방송사가 제작한 이 프로그램에서 정장관은 자신이 북한문제에 발을 들여놓게 된 계기에 대해 “6·25 피란 시절에 보았던 장면들이 잠재의식에 남아 이 자리까지 오게 된 것 같다”고 술회했다. 이 말이 인상 깊었던 기자는 인터뷰를 제의했고, 정장관은 “현안 문제가 아닌 대북정책 추진 과정에서 정부가 겪는 어려움과 고민을 말하는 것이라면 좋겠다”는 조건으로 응했다. 하지만 현안 문제를 완전히 배제한 인터뷰란 애초부터 성립될 수 없는 약속이다. 정장관도 그 점은 사전에 알고 있지 않았을까.

    -역사상 처음으로 6자회담이 열리면서 한반도 핵문제가 국제무대의 주된 의제가 되었습니다. 주무부처인 외교통상부에 비해 남북대화가 주된 업무인 통일부는 요즘 상대적으로 한가한 것 아닙니까?

    “6자회담은 핵문제를 다루기 위한 국제회담이니까 대표 창구를 외교부로 하는 건 당연해요. 통일부는 지금 남북대화 채널이 잘 작동되고 있으니까…. 핵문제를 풀어가는 데 있어 국제공조와 남북대화의 투 트랙(two track)으로 접근하는 것이 훨씬 유리합니다. 6자회담에서 우리가 핵문제의 당사자인 것은 분명하지만 우리가 모든 걸 좌지우지할 수 있는 건 아니고, 남북대화 또한 한계가 있으니까 두 가지가 서로 보완관계가 될 수 있어요.

    그리고 6자회담에도 통일부에서 대표가 나가 있습니다. 한미일 고위 정책협의회에도 우리 부 국장급이 계속 나갔고…. 그 쪽 상황을 바로바로 남북대화에 반영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북한이 9·9절에 군사 퍼레이드를 하지 않은 것은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미국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신호가 될 수 있다고 봐요. 그동안 장관급회담 등으로 북한 사람을 많이 접해본 경험에 비춰볼 때 정장관께선 북한이 현 상황을 제대로 읽고 있다고 보십니까?

    “북한의 상황인식이 점점 정확해지고 있다는 느낌은 받아요. 이건 외교부도 브리핑을 했다고 알고 있는데, 6자회담 첫날 미국측 발언 뒤에 자연스럽게 북미간 접촉이 이뤄졌고, 남북 외교당국자간 접촉에도 호응해왔어요. 특히 미국측 발언의 진의가 무엇인지 우리에게 문의한 것은 커다란 변화라고 봅니다.

    나는 1984년 남북대화 운영부장을 할 때부터 현장 감각을 익히기 시작했어요. 첫 경험이 그 해 LA올림픽 단일팀 구성을 위한 체육회담이었습니다. 그 후 1995년 북경 쌀회담, 1998년 4월 베이징 비료회담, 2002년부터 나간 장관급회담, 그 외에 경제협력추진위원회 회담과 실무 국장급 경제회담들을 돌이켜보면 북한도 이제는 선전 차원의 공허한 힘겨루기에서 점차 실무적인 대화에 무게를 두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요. 이건 너무 앞서가는 평가인지 모르지만 회담 당국자 사이에 뭔가 테두리가 그어져 그 안에서 대화가 이뤄지는, 그래서 이젠 상대방의 의중을 헤아리기 어려운 시절은 지나갔다고 봐도 좋지 않느냐는 겁니다.”

    -일전에 제가 외교부 장관을 지내고 나서 다시 통일부 장관까지 역임한 분을 만났을 때 국가들 사이의 외교협상과 남북대화는 왜 이렇게 달라야 하는지를 놓고 한참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 남북대화도 이젠 일방적인 주장과 힘겨루기에서 벗어나 정상적인 대화와 거래가 이뤄져야 한다는 건데, 그런 점에서 꽤 고무적인 말씀입니다.

    “외교라는 것은 말 그대로 주고받는 거래입니다. 국가 대 국가의 관계에서는 서로 넘지 못할 선이 있고, 건드려서는 안 될 부분이 있어요. 그러니까 외교관계는 신사적으로 할 수 있고, 철저하게 상호주의를 적용할 수 있습니다.

    반면 남북관계는 요즘 들어 겨우 협상이나 거래라는 말이 나오는 단계에 들어섰다고 하지만, 기본적으로 외교와는 달라요. 지금까지 남북대화는 민족사적 정통성을 놓고 경합을 벌이는 일종의 제로섬 게임이었어요. ‘한 지붕 두 가족’이라고 할 수도 있겠고…. 판문점에서 유엔기와 인공기가 키 높이기 경쟁을 벌였던 것이 남북관계의 현실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였습니다. 상대가 죽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는 식이었으니까 당연히 치열할 수밖에 없었어요. 1990년대까지도 그런 제로섬적 요소가 많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2000년대로 넘어오면서 북한도 과거에 비해 엄청나게 달라졌습니다. 혁명과 건설을 내세워 모든 것을 전투적으로만 생각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실리라는 개념을 매개로 좀더 실제적·실용적으로 바뀐 겁니다.

    국제무대에서 외교협상을 한 경험을 갖고 있는 사람이 보기에 남북대화는 이상한 대화이고 짜증이 날 수밖에 없습니다. 단적인 예로 남북대화에서는 먼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쪽이 지는 겁니다. 외교무대에선 상대를 압박하기 위해 얼마든지 그럴 수 있어요. 하지만 남북대화에서 그렇게 행동하면 회담을 재개할 때 부담을 안게 되고 불리해지기 때문에 서로 버티기를 합니다. 그런 특수성이 있어요.”

    “북한의 군사적 변화는 두고 볼 문제”

    -북한이 실리를 추구하게 됐다고 하지만 최근 몇 년간 우리가 그런 북한의 태도에 부응해서 그들의 요구를 너무 쉽게 들어준 게 아니냐는 비판도 있어요. 물론 대승적 견지에서 북한에 조건 없이 지원을 해줄 필요는 있겠지요. 하지만 우리가 북한에게 주는 만큼 그에 상응하는 북한의 변화를 요구하는 데는 미온적이지 않았느냐는 겁니다.

    “물론 우리가 준 만큼 북한의 변화는 없었어요. 우리는 많이 줬다, 그런데도 북쪽은 변한 게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짜증이 나는 거예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지난 정부 때부터 국민에서 소상하게 설명했어야 하는데 때를 놓친 게 아닌가, 지금 와서 설명하겠다고 나서면 변명처럼 들릴 것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지금 국민이 바라는 북한의 변화라는 건 북한사회 밑바닥에서부터 일어나는 변화의 바람이 아니라 대남정책이나 군사적 상황의 변화입니다. 그런 부분에서 변화가 보이지 않는다는 게 불만이지요. 그런데 정부 입장에선 바로 그런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일종의 투자를 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어요.

    투자를 해서 바로 효과가 나오는 사업이 있고, 결실을 보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 사업이 있습니다. 예컨대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는 경제학적으로 말해 자본의 회임기간이 긴 사업입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경부고속도로를 만들 때 반대가 얼마나 많았습니까? 당시 정치지도자들 대부분이 반대했어요. 그 때 고속도로 건설에 들어간 돈은 곧바로 효과를 낼 수 있는 투자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항만 건설에 대해서도 반대가 심했지요. 지금은 오히려 너무 작은 것이 문제가 되고 있어요. 북한사회의 질적 변화와 정책 변화를 이끌어내는 사업도 마찬가지라 봅니다. 이건 자본의 회임기간이 긴 프로젝트예요.

    과거 미소관계를 돌이켜봐도 그래요. 미국과 소련은 이념적 대립관계에 있었지만 언제까지 그 상태를 지속할 수는 없다, 결국 동쪽 진영의 질적 변화를 이끌어내야만 군비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게 미국의 생각이었어요. 그래서 미국은 소련 및 동구권에 대해 경제지원을 계속해서 연계고리를 만들어 나간 겁니다. 물론 그 전부터 전략무기제한 협상 같은 것으로 일정 부분 성과를 냈지만, 경제적 연계고리가 생기면서 소련도 군사적 공존의 필요성을 느끼게 됐는데, 그렇게 되기까지 걸린 시간이 굉장히 길었어요.

    한국인의 성질이 급한 것은 유명합니다. 남북관계에서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고 조바심을 내는 것도 이해할 수 있어요. 그러나 이것이 군사적 변화로 이어지려면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습니다. 정부가 이런 점을 처음부터 국민에게 설명하고 이해를 구했어야 했다는 반성을 하게 됩니다. 또 한 가지, 지난 5년간 햇볕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대북지원 액수에 대한 논란이 있었지만, 사실 지원 액수가 많다 적다 따지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고 봐요. 과거 서독이 동독에 지원한 액수에 비해 32분의 1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는 것도 마찬가집니다. 독일은 워낙 잘사는 나라니까 동쪽의 못사는 사람들 돕는 것에 대해 저항이 크지 않았을 수도 있어요.”

    “대북지원은 시간 걸리는 사업”

    -그러니까, 일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대북 지원은 계속돼야 한다는 말씀인가요?

    “우리나라는 명목상으론 1인당 국민소득이 1만달러지만 잘사는 사람과 못사는 사람의 편차가 큽니다. 연소득 2000달러 미만인 가구가 많아요. 그런 저소득계층이 많다 보니 북쪽을 돕는 것에 대해 불평이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북 협력이나 인도적 지원을 하지 않을 경우에 치러야 할 기회비용은 사실 더 크거든요. 사람들이 이 부분을 제대로 보지 않는 것 같아요. 한반도에 긴장이 고조되고 산업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경제가 나빠지고, 그러면 자기 수입이 줄어든다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또 북한이 완전히 남도 아니고, 현실적으로는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관계지만 동포가 헐벗고 굶주리는 데 이들을 돕는 것은 어떻게 보면 도리입니다. 이런 걸 계산적으로만 볼 수는 없는 일이죠. 들어간 만큼 나오는 게 없다지만 그 싹은 이미 자라나고 있다고 봐요. 북한이 지난해 7월1일 취한 경제개선 조치나 올 4월에 단행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는 대내 개혁, 이런 것들은 우리가 그동안 추구해오던 바로 그런 방향입니다. 레닌도 자본주의 불균등 발전론을 제기했었지만, 북한 같은 사회가 체제를 유지하면서 개혁과 개방을 해나갈 때 걸리는 시간이 반드시 중국과 같으라는 법은 없습니다. 중국이 24~25년 걸려서 이룬 것을 북한은 4~5년 안에 해낼 수 있다는 겁니다.

    특히 금강산 관광이나 개성공단 개발과 같이 비무장지대를 넘나드는 사업은 남북 공동의 이익이 되는 일입니다. 논자에 따라선 일방적인 퍼주기라고 비판하지만, 금강산 관광을 퍼주기라고만 본다면 통일을 이루기는 참 힘들어집니다. 관광은 경제성과 함께 사회문화적 성격을 갖는 사업입니다. 금강산 관광을 나쁘게 말하는 분들은 ‘철조망 사이로 줄 서서 보고 오는 것이 무슨 관광이냐’고 하지만, 그 철조망을 통해서도 남과 북의 사람들 사이에선 수많은 소리 없는 대화가 이루어지고 있어요. 처음엔 남쪽 관광객을 외면하고 손도 흔들지 않던 북한 사람들이 이제는 손도 흔들고 궁금해합니다. 그런 점에서 금강산 관광은 일종의 사회문화적 동질성을 찾는 노력이라 보고 싶어요.

    한편 개성공단은 남북이 경제적 접점을 모색하는 하나의 실험실입니다. 개성공단을 개발하려다 보니까 철도·도로를 깔기 위해 철조망을 잘랐고, 지뢰를 제거했고, 직통전화가 가설됐습니다. 군사당국자간 직통전화는 11년 전에 약속했던 것이 이제야 이뤄진 겁니다. 이렇게 경제적 이해관계가 생기면서 군사부문에서도 작지만 긴장완화의 씨앗이 자라나기 시작한 거지요. 앞으로 5년간 이걸 더욱더 발전시켜야 해요.”

    “금강산·개성공단은 자본주의 실험장”

    -금강산 관광에 대해 말씀했지만 이건 인도적 지원이라든가 정부 차원의 쌀·비료 지원과는 다른 문제가 아닌가요? 민간사업인 금강산 관광은 애초에 현대아산이 북한과 계약할 때부터 무리였고 그 때문에 적자가 누적돼 왔습니다. 이걸 보전해주기 위해 최근에도 정부가 경협자금에서 199억원을 지원한다는 얘기가 나왔지만, 이런 식의 정부 지원은 문제가 많다고 생각해요. 현대아산이 북한과 재협상을 거쳐 개선된 사업안을 가져올 때 정부가 일정 부분 돕는다면 국민여론도 한결 긍정적으로 돌아설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만.

    “금강산 관광사업은 북한이 현대에게 50년간 독점적인 개발권을 주면서 시작된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자가당착적인 측면이 있었어요. 왜냐하면 50년간 독점으로 사업을 한다면 그동안은 통일이 안 된다는 말이니까. 그런데 고성항은 사실 군사항구란 말입니다. 이 사업이 북한에 현금을 준다고 해서 국민들로부터 비판받았지만 북한은 사실 큰 결단을 내려 문을 열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금강산 관광사업은 남북관계를 오늘날까지 이끌어오는 데 견인차 역할을 했다고 봐요.

    199억원 지원 문제는 북한에 현금을 주는 차원이 아니라 관광사업의 명맥이 끊어지지 않게 하는 차원에서 고려하고 있어요. 현재 이 사업은 매달 30억원씩 적자를 보고 있는데, 정부로선 그것을 다 보전해줄 수도 없고 그럴 생각도 없어요. 또 관광특구가 개발되면 자체 수익성은 보장된다고 봅니다. 앞에서 말한 남북한간 사회문화적 접점을 찾기 위한 실험이라는 점에서도 특구는 꼭 이뤄져야 해요. 북한 사람들이 특구에서 서비스업에 종사하며 시장 마인드를 배워야 합니다. 그래서 남쪽 사람들과 같은 점과 다른 점은 무엇인지 깨닫고, 다른 점을 줄이고 같은 점을 늘려나가는 실험장이 되어야 합니다.”

    -정장관께선 얼마 전 정부가 개성공단에 상하수도 등 사회간접자본(SOC)을 지원하는 문제를 언급했습니다. 그 문제도 금강산 관광사업에 대한 지원과 비슷한 맥락에서 가능하다고 보시는 겁니까?

    “개성공단은 일부 외국 합작사가 들어갈 수도 있지만 전적으로 우리 기업이 진출하게 될 공단입니다. 개성공단은 또 서울에서 거리상으로 청주공단보다 가까워요. 토지공사가 청주공단이나 대불공단 등 국내 공단을 개발할 때 분양가를 낮추기 위해 산자부가 내부 기반시설을 지원합니다. 상하수도, 폐기물 처리시설 같은 것들이지요. 그 다음엔 외부 기반시설로 SOC, 전력, 통신 같은 것들이 있어요. 한전이 공단에 전기를 팔아야 하니까….”

    -전략물자라는 점에서 전력 공급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가 아닌가요?

    “개성공단 100만평을 개발할 경우 거기서 쓰는 전력은 7만~10만kw예요. 철저하게 그 지역으로만 전력이 들어가도록 선로를 깔고….”

    -제 말은 전력 공급에 관한 한 미국과 사전에 합의가 있어야 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애당초 북한에 경수로를 지어 200만kw를 공급하기로 했는데, 경수로 완공이 늦어지면서 북한이 200만kw를 보상해달라고 해서 전력제공 얘기가 시작됐던 겁니다. ‘200만kw가 안 된다면 우선 50만kw라도 주면 좋겠다’는 식으로 남북간에 얘기가 오가다가 이게 핵문제와 관련되는 민감한 사안이라 협의가 뒤로 미뤄졌던 거지요.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50만kw는 북한 전역에 들어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개성공단에 공급되는 전력은 다른 사안이라는 건데….

    “물론 한미간에 협의를 해야 할 겁니다. 그러나 미국이나 일본 사람들은 이런 문제를 사전에 미리미리 챙기고 시뮬레이션도 해보는데, 거기에 대해서는 별 문제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개성공단에 공급하는 전기는 전적으로 한국 기업이 쓰는 것이고, 선은 바로 우리 기업 공단에만 이으면 되니까요.”

    -정장관께선 경수로에 대해서도 최근 어느 자리에서 ‘계속될 수 있다’고 낙관적 견해를 밝혔습니다. 그러나 경수로 공사는 사실상 중단이 불가피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입니다.

    “그게 참 어려운 문제예요. 지금까지 들어간 돈만 9억3000만달러입니다.”

    -그래요. 그리고 이제 와서 공사를 중단하면 위약금도 엄청나게 들어갑니다.

    “우리가 내야 할 위약금이 3억 내지 5억달러입니다. 지금까지 3억5000만달러쯤 낸 일본도 공사가 중단되면 우리처럼 위약금을 물어야 해요. 그러니까 공사를 중단한다는 게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겁니다. 경수로 공사는 근본적으로 북한 핵문제로 인해 생긴 것이고, 따라서 앞으로 6자회담이 어떤 결과를 내느냐에 따라 명맥을 유지할 수 있지 않겠나 생각해요.”

    -얼마 전 한 국회의원이 북한에 다녀와서 북한도 경수로 대신 화력발전소를 지어주는 대안에 관심이 있는 것 같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전력난이 심각한 북한으로서도 그게 더 현실성 있는 방안이 아닌가 생각되는데요.

    “비용을 누가 내느냐가 문제지요.”

    -6자회담으로 화제를 돌려 보지요. 북한은 올해 들어 폐연료봉을 재처리한다, 핵실험을 할 수 있다는 등 위협 수위를 계속 높여왔습니다. 이런 위협을 우리 정부가 언제까지 받아들여야 하는지, 정부가 인내할 수 있는 한계선이 설정돼 있는지, 있다면 어느 선까지인지 궁금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몇 해 전부터 미국에서 거론된 ‘레드 라인(red line)’을 우리는 과연 갖고 있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레드 라인은 한미 또는 한미일간에 협의할 대상입니다. 또 ‘여기까지가 레드 라인’이라고 먼저 밝혀버리면 그건 이미 레드 라인이 아닌 게 되는 겁니다. 레드 라인이란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변경될 수 있는 것이기도 해요. 그런 점에서 전략적 모호성이 필요합니다. 그건 북한이 잘 활용하는 수법인데, 북측에서는 그럽니다. 남북대화를 할 때 남쪽은 완전히 노출돼 있고 자기네는 오리무중 속에 들어가 있으니 회담 때 별 걱정이 없다고. 남쪽 언론만 보면 대체로 그림이 그려진다는 거예요. 판문점에서 회담을 하면 평양서 미리 준비할 필요도 없이 개성까지만 오면 대체로 감이 잡힌다고 했으니까. 이런 게 참 문제예요.”

    -언론보도가 남북대화를 어렵게 한다고요?

    “사실 전략이나 정책은 상식에 기반을 두고 있어요. 상식적인 수준에서 생각할 수 있는 것을 언제 실행에 옮기느냐, 이게 정책결정의 타이밍인데 그걸(언론이) 미리 써버리곤 하니까 전략이나 정책으로서 힘을 상실하게 된다는 거죠. 협상도 점점 어려워지고.”

    -이번 6자회담에서 북한은 동시 타결, 미국은 순차적이고 포괄적인 해결, 그 사이에 선 우리 정부는 병행이라는 용어를 내놨습니다. 이런 말들이 참 모호한 측면이 있는 것 같아요.

    “저는 동시, 병행, 순차라는 용어의 차이가 나중에는 ‘결국 그 말이 그 말이었다’는 식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북한과 미국이 첫 회담부터 양보하는 모습을 보일 순 없으니까 그런 말이 나온 건데, 북미 관계로만 국한한다면 동시냐 순차냐 하는 게 문제가 되겠지만 핵문제가 해결되려면 어차피 6개국이 함께 관여해야 해요. 그런 점에서 순차가 바로 동시고, 동시가 바로 순차다, 이렇게 봅니다.”

    -북핵 협상과정에서 또 한 가지 변수는 북한의 내부 사정입니다. 북한은 최근 우리측에 비료 10만t 지원을 요청하기도 했는데, 요즘 북한의 경제사정은 어떻습니까?

    “특별히 좋아진 것은 없다고 봐요. 평양은 도시미화사업을 많이 하고 전등도 많이 켜요. 하지만 전기 생산량이 뻔한데 평양이 밝다면 함경도는 어둡다는 얘깁니다. 식량사정도 특별히 나아진 건 없어요. 금년엔 남쪽에 비가 많이 왔는데 북쪽인들 냉해를 입지 않았겠어요? 북한이 비료 10만t을 요청한 것은 수확기에 쓸 비료를 달라는 얘깁니다. 작년에도 봄에 20만t, 가을에 10만t을 줬어요. 식량사정은 구조적으로 봐도 특별히 나아질 이유가 없습니다. 협동농장 방식이나 분조관리 등 새로운 방식을 시도하지만 워낙 지력(地力)이 쇠진한 상태거든요. 인도적 차원의 식량이나 비료 지원은 국회에서도 신경을 써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햇볕정책과 평화번영정책의 차이

    -노무현 정부는 집권 초기에 햇볕정책을 계승, 발전시키겠다고 천명했습니다. 그런데 북한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계승 발전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과 전임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의 차이를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햇볕정책 시기에 우리 정부는 북한만 바라봤습니다. 그런데 노무현 정부의 평화번영정책은 무대를 넓게 잡아서 중국 및 러시아의 변화와 북한의 변화가 맞물릴 수 있도록 틀 자체를 짜야 하는 게 아니냐, 그 토대 위에서 남북관계 개선이나 평화정착을 이루고 나아가 동북아경제중심까지 되어보자는 정책 목표를 세워놓은 것입니다. 바꿔 말하면 한국이 동북아 경제중심으로 나가려면 남북관계가 개선돼야 하고, 이를 위해 중국과 러시아의 협력도 이끌어내야 한다는 겁니다. 정책의 외연(外延)이 확대됐다는 점에서 발전이라고 생각해요.

    독일도 빌리 브란트 수상이 동방정책을 내세우기 전까지는 동서독 관계에 중점을 둔 독일정책이 중심이었습니다. 동방정책은 독일정책을 통해 이룬 동독의 변화를 바탕으로 소련, 폴란드, 미국까지 정책의 폭을 넓혀나가지 않았습니까? 이런 식으로 정책의 외연을 확장시켜나가는 것은 발전된 측면이라고 봅니다.

    또 한 가지 발전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은,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햇볕정책을 계승 발전시키되 추진방법은 개선하겠다고 한 대목입니다. 국민의 정부 시절에는 햇볕정책의 합목적성이나 적합성에 대해 국민이 당연히 이해하고 따라올 것이라는 전제에서 성큼 앞서간 측면이 있었다고 봐요. 그래서 노대통령이 추진방법을 개선하겠다고 밝혔을 때 나는 그 뜻을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혼자서 열 걸음 가는 것보다 다섯 사람이 두 걸음 가는 식으로 하는 게 좋겠다고 말이죠. 그런 차원에서 3월부터 ‘열린 통일포럼’을 시작했습니다. 지방을 돌면서 국민한테 대북정책을 충분히 설명하겠다는 취지죠. 9월 말에는 미국에서 열 계획입니다.”

    정세현 통일부 장관

    정세현 장관은 인터뷰 내내 달변이었지만 좀처럼 웃음을 보이지 않았다.

    -그게 몇해째지요?

    “11회까지 했고 미국에서 세 차례 가질 예정입니다. 노대통령의 스타일은 예컨대 이런 식이에요. 쌀이나 비료 지원은 국민들도 북한에 줘야 하는 걸로 알고 있지 않느냐, 그렇다면 북한도 그걸 받아내기 위해 이런저런 수를 부려야 하는, 그런 것은 없었으면 좋겠다, 남북간에 그런 건 합의가 안 되느냐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나온 것이 ‘새로운 회담문화’입니다. 서로 믿고 존중하는 선의의 협상, 이게 정착되면 그 다음부터 정말 풀어야 할 일들을 본격적으로 다룰 수 있지 않겠냐는 겁니다.

    이런 건 어떻게 보면 인도주의라기보다는 동족으로서의 도리입니다. 인도주의는 제3자에 대해 하는 겁니다. 우리가 파키스탄이나 아프가니스탄에 지원하는 것은 인도주의이지만 남북간에는 인도주의보다 한 차원 높은 도리 내지 동포애 차원으로 접근하면 좋겠다, 이런 게 노대통령이 남북관계를 보는 철학이랄까…. 어쨌든 그런 식으로 남북관계의 틀을 새롭게 짜보겠다는 것은 이전 정권과 다른 점일 수 있어요.”

    -이런 식으로 접근해보면 어떨까요. 김대중 전 대통령은 북한 문제 전문가였습니다. 반면 노대통령은 취임 때 북한에 대해 특별히 많이 알고 있다고 하긴 어려운 상태였지요. 말하자면 백지 상태에서 대북정책을 수립하는 상황이 었다고 할까요. 그렇다면 노대통령의 정치적 퍼스낼리티에 대북정책과 관련해 누가 어떤 그림을 그려 넣느냐가 매우 중요한데, 그런 점에서 보면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왜 이런 말을 하느냐면, 대북정책 결정과정에서 특정 인물, 특정 부서가 독주하는 것 아니냐는 식의 얘기가 들리기 때문입니다.

    “글쎄, 나는 별로 실감이 안 나는 얘긴데…. 밖에서 그런 얘기를 한다는 건 나도 알고 있어요. 하지만 정부 안에 협의기구가 없다면 몰라도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가 있고, 그 밑에 차관보급 실무조정회의가 매주 열립니다. 거기서 충분히 협의되고 걸러지기 때문에 독주라는 것은 있을 수 없어요. 정권 초기에는 가령 인수위에서 일방적으로 방향을 설정한다든가 그럴 수 있겠지만, 일단 정부조직 안에 들어오면 틀 속에서 움직이게 돼요.”

    “정책 일선에 있으면 보수적일 수 밖에”

    -박사 학위논문의 주제가 마오쩌둥 연구였지요?

    “마오쩌둥의 국제정치사상이었어요.”

    -1980년대 이후로 줄곧 북한문제만 담당해오셨는데요. 그렇게 보면 누구보다 전문가인 셈입니다.

    “현장이 아니라 학교에서 연구를 했다면 연구자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겠지만…. 하긴, 민족통일연구원 세종연구소에도 한동안 있었으니까 연구 경력도 갖고 있는 셈이죠.”

    -연구자로서 북한을 보던 시각과 대북정책을 결정 집행하는 팀의 일원으로서 북한을 보는 시각에 충돌하는 점은 없습니까?

    “내가 중학생 때였나, 아버님께서 해주신 말씀 중에 이런 게 있어요. 그 때는 무슨 뜻인지 몰랐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참 뜻 깊은 말이더라고요. 아버지는 그 말의 출처까지는 말씀하지 않았어요. 나중에 찾아보니 ‘회남자(淮南子)’에 나오는 말이더군요. ‘지욕원이행욕방 담욕대이심욕소(知欲圓而行欲方 膽欲大而心欲小)’ 될 수 있으면 둥글게 많이 알도록 노력하고 행동할 때는 모질게 선택과 집중으로 하라. 담력은 크게 갖되 실제 행동에 들어갈 때는 소심할 정도로 조심하면서 치밀하게 하라는 뜻입니다. 연구자와 정책담당자에게 상당히 도움이 되는 구절이라고 생각해요. 이것저것 자료를 분석적으로 보고 연구하던 습관이 남아 있어서 정책을 추진할 때 오히려 도움이 된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정치적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잖아요? 평소 생각과는 다른 결정을 해야 할 경우도 있을 텐데요.

    “정무직이 정치적 영향을 받는 건 불가피해요. 하지만 정책결정도 결국 상식선에서 하는 건데, 전혀 말도 안 되는 일을 하지는 않아요. 또 현실적으로 특별히 불합리하지 않은 한 그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게 정무직이에요.”

    -제가 보기에 정장관께선 기본적으로 보수 성향이 강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 본인은 어떠세요?

    “글쎄요, 어떤 의미에서 보수라고 하는지 모르지만 상황을 챙기다 보면 조심해야 할 구석이 많습니다. 그런 점에서 보수적이라면 얘기가 되죠. 그런데 저는 정책 추진의 일선에 있는 사람이 너무 진보적이면 곤란하지 않은가 생각해요. 정치지도자는 진보적일 수 있어요. 그러나 일선 책임자는 이것저것 챙길 건 챙기면서 가야 해요.”

    -지난 번 장관 평가에서 민주당에서는 굉장히 높은 점수를 받았고, 한나라당에서는 최악의 점수를 받으셨더군요.

    “한나라당에서 한 표 나왔다지요? 한 표도 못 받은 사람도 있는데, 뭘.”

    -그런 일이 지금 우리 사회의 심각한 문제인 남남갈등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 점에서 정장관께서 이 나라의 국론분열을 최소화하고 통합성을 유지할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는 셈입니다.

    “나보고 보수라고 하니까 하는 얘긴데, 저는 1975년 대학원 박사과정에 있을 때 공산주의 이론 공부를 했어요. 그 시절엔 그 분야가 굉장히 위험한 거였습니다. 결국 박사학위 논문은 마오쩌둥으로 썼죠, 1977년에 통일원에 들어간 것도 자료를 마음껏 볼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어요. 공산주의 이론에서 마오쩌둥으로, 중국 공산주의로, 그러다 보니까 자연히 북한 공산주의에 관심을 갖게 됐고, 이렇게 비교 공산주의적 시각을 가지고 북한을 봐 왔어요. 그러니까 저는 학문적으로 북한을 바라보면서 현장에서 통일문제를 추적해왔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사고 나지 않을 정도로 나름대로의 방향을 잡아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밖에서는 너무 끌려 다니는 것 아니냐, 퍼주기다, 이러니까…. 참 이거…. 그렇다고 내 말만 믿어라, 이럴 수도 없는 거고, 어쨌든 열심히 설명하고 이해시키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어요. 예를 들어 우리 통일부 사이트에 자료를 많이 올려놓아도 보수적 시각을 갖고 걱정하는 분들은 인터넷을 하지 않기 때문에 잘 몰라요. 저는 정보 부족이 오해를 불러온다고 생각해요. 오해를 하게 되면 비판 아닌 비난으로 흐르게 되고 편이 갈라지게 되는데, 이걸 봉합하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럼에도 남남갈등이 계속 커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점인데요.

    “유력한 언론기관에서 남남갈등이 커진다고 하면 국민들도 자꾸 그렇게 생각하게 되잖아요.”

    -언론이 문제가 아니라 정부가 중심을 잘 잡아주는 게 중요합니다. 그렇지만 최근에도 U대회 사과 건을 비롯해 정부가 되레 문제를 일으키는 것 같습니다.

    “정부도 나름대로 중심을 잡는다고 하는데, 왼쪽에 가 있다느니 오른쪽에 가 있다느니 자꾸 흔드니까 그렇지.”

    -20~30년간 북한을 들여다보고 나서 지금은 북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북한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가 보혁 갈등을 야기하고 대북정책에 대한 논란을 일으키는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만.

    “북한을 계속 따라다니면서 지켜보다 보면 북한 자체를 볼 뿐이지 자신의 보수적인, 혹은 진보적인 입장에서 북한을 보게 되지 않습니다. 보수다 혹은 진보다 하는 분들은 일종의 자기 선입관을 가지고 시작합니다. 사람마다 북한이 아닌 다른 경험을 통해서 쌓인 자기 나름의 입장이 있어요. 그런 분들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골라서 봐요. 보수 쪽은 북한의 변화하지 않은 측면만 보고 우리도 변하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말합니다. 반면에 진보적인 분들은 북한의 변화하는 측면만 봐요. 그러니까 우리도 변화해야 한다는 식의 주장만 하게 되는 겁니다.

    제가 통일문제에 대해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71년 장충단 연설입니다. 그 해 대통령선거 때 김대중 후보가 거기서 연설을 했어요. 저는 당시 대학원 1학년이었는데, 국제정치학을 공부했지만 도대체 이걸 어디에 써 먹을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장충단 연설에서 4대국 보장론이란 게 나온 거죠. 대학원에선 이용희 교수한테 배웠는데, 우리와 같은 분단국가에서 국제정치학을 공부하는 이유는 내 나라 내 민족의 문제를 어떻게 국제정치적으로 푸느냐는 것이 화두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을 여러 차례 하셨어요. 하지만 그 말씀을 실감하지는 못하고 있던 터에 4대국 보장론을 들으면서 맞다, 한국의 국제정치학은 통일문제로 연결돼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겁니다.

    북한을 바라보는 일은 통일원에 들어와 서른 살부터 시작했어요. 비교공산주의적 관점에서 북한을 보니까 보수다 진보다 하는 관점을 떠나 북한을 있는 그대로 보게 되더군요.”

    “있는 그대로의 북한 본다”

    -실용주의적 관점 비슷한 건가요?

    “일종의 실용주의라고 할까, 아무튼 현 상태에서의 북한, 그것을 비교공산주의적 관점에서 중국이나 러시아가 가고 있는 방향으로 유도하면 저들도 형편이 좀 나아질 텐데, 그렇게 하려면 남북관계를 어떻게 끌고 가야 하겠느냐, 이런 것들을 먼저 생각한다는 겁니다. 방향을 먼저 설정해 놓는다는 거지요. 그래서 보수 쪽에서도 저를 자기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거고, 진보 쪽에서도 저를 자기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것 같고, 그런 것 같아요.”

    정장관은 평소에도 거의 웃지 않는 편이다. 그건 인터뷰 중에도 마찬가지였다. 남북회담에 나갔을 때 북측 대표는 환하게 웃는 반면 그는 시종 무뚝뚝한 표정이어서 시민들 중에는 남북 대표를 거꾸로 착각하는 사람도 많았다고 한다. 웃음을 자제하다가 이젠 웃는 법도 잊어버린 것일까? 그러고 보면 이런 논리도 가능할 법하다. 남북간에 ‘정상적인’ 대화가 가능해지는 날, 정장관도 마음 편하게 웃는 법을 다시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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