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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方外之士 ③

차 맛 감별하는 품명가(品茗家) 손성구

“찻잎 우러나는 소리 들으며 마음을 닦지요”

  • 글: 조용헌 원광대 초빙교수 cyh062@wonkwang.ac.kr

차 맛 감별하는 품명가(品茗家) 손성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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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중국 원난(雲南)성 쿤밍(昆明)에서 제1회 보이차 박람회가 열렸습니다. 그때 원난방송국에서 촬영을 나왔어요. 제가 한국의 품명가라고 하니까 똑같은 모양의 보이차 두 덩어리를 제게 주면서 어떤 것이 좋은 제품인지 감별해보라고 하더군요. 물론 좋은 제품을 맞췄습니다. ‘어떻게 알았느냐’고 묻길래, ‘만져보면 안다’고 대답했습니다. 이 역시 차기를 감지한 결과입니다.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중국에는 타이후(太湖)라는 큰 호수가 있습니다. 무협지에 자주 등장하는 유명한 호수죠. 타이후 근처에는 둥팅산(洞庭山)이라는 산이 있는데, 거기서는 녹차 계열의 벽라춘(碧螺春)이라는 유명한 차가 생산됩니다. 차를 우려낸 빛깔은 선명한 벽록색이고 어린 차의 싹과 잎은 여린 비취빛이며 잎의 모양은 소라고둥처럼 나선형입니다.

둥팅산 벽록봉 아래에서 난다고 해서 벽라춘이라 이름 붙였어요. 그런데 이 둥팅산은 동산(東山)과 서산(西山)으로 나눌 수 있어요. 같은 벽라춘이더라도 동산에서 나온 것을 극품(極品)으로 칩니다. 동산은 해가 떠오르는 방향이라 일조량이 더 많기 때문이죠. 그 정도로 미세한 차이, 즉 햇볕의 강도 차이가 차 잎의 성숙에 영향을 미치는 겁니다.

어릴 때부터 둥팅산에서 차를 재배하며 자란 친구가 제게 벽라춘을 주며 맛을 보라고 하더군요. 맛을 보니 동산 것이 아니었어요. ‘이건 동산이 아닌 서산 것 같다’고 하니 그 친구가 깜짝 놀라며 ‘어떻게 알았냐’고 하더군요. ‘서산 것이 맞다’고 인정한 뒤 비로소 동산에서 난 벽라춘을 제게 주었습니다.

중국 사람들은 처음부터 극품을 내놓지 않아요. 밑에서부터 내놓죠. 그러면서 상대방의 반응을 살펴봅니다. 이 친구가 차 맛을 제대로 아는가 살피는 거죠. 모른다고 생각되면 적당한 선에서 끝내고 알면 차츰 좋은 상품을 보여주다가 마지막에 가서야 극품을 내놓습니다.



참고로 극품의 차는 시장에 잘 나오지 않습니다. 상품화하지 않고 차를 아는 사람들끼리만 소비하죠. 밖에 내놓아봤자 일반인들은 그 차의 진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차에 몰입한 경지를 어떻게 나눕니까.

“품명가에게는 4단계 차원이 있다고 합니다. 청명(聽茗), 청호(聽壺), 청신(聽身), 청심(聽心)이 그것입니다. 청명은 차를 마시기 전 차 잎을 만지거나 눈으로 보고 아는 경지를 일컫습니다. 안보고도 알 수 있으면 더욱 깊이 들어갔다고 볼 수 있죠.

청호는 차 잎이 다호(다관)에서 우려질 때 그 소리를 듣고 아는 경지입니다. 다호 안의 상태와 차를 우리는 사람의 마음이 상응하는 차원이라고 할 수 있어요. 청호를 알면 이 차가 어느 정도 우려졌는지 직감적으로 압니다. 최적의 타이밍에 차를 찻잔에 따를 수 있는 거죠.

청신은 차가 내 몸에서 폐를 돕는가, 간을 보강하는지를 아는 경지입니다. 즉 차 한잔이 오장육부에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꿰뚫는 단계죠.

청심은 차를 마시면 마음이 어떻게 변화하는가, 즉 슬퍼지는가, 기뻐지는가, 화평해지는가 등을 인식하는 경지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청호가 4가지 차원 중 가장 깊은 단계라고 생각합니다. 처음에 차를 마실 때는 청호라는 단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몰랐습니다. 지금도 어렴풋하게 짐작할 뿐이죠. 청호가 다구(찻주전자) 속에서 차가 우려지는 소리를 듣는 경지라는 것은 제 주관적인 해석입니다. 제가 체험해보니 그런 것 같았어요. 몇 년 전 중국에서 나이 지긋한 품명가를 한 분 만났습니다. 청호가 어떤 경지인가에 대해서 토론이 오갔습니다. 제가 청호의 의미를 이런 식으로 해석하니까 그 사람이 제게 극상품의 차를 한 봉지 선물하더군요. 공감했다는 표시였죠.”

손씨는 이 4단계의 바탕이 ‘관(觀)’이라고 주장한다. 관이란 ‘반야심경’에서 말하는 관의 의미다. 즉 관조(觀照)가 그 핵심이라는 것. 무슨 말인가. 차의 깊은 경지는 관조라는 뜻이다. 자세히 풀어보면 이렇다. 차의 맛을 느끼려면 우선 마음이 고요해야 한다. 마음이 요동치면 미세한 차의 맛이 혀로 감지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카드 빚에 쫓기는 사람이 어떻게 벽라춘의 무심하게 퍼지는 미묘한 맛을 감지할 수 있겠는가. 마음이 바쁘거나 출렁거리는 사람은 차의 맛을 느낄 수 없다.

그 다음에는 자기를 비워야 한다. 에고(ego)를 없애야 차가 가지고 있는 개성을 온전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자기 주장이 강하면 상대의 이야기를 100% 수긍할 수 없는 것처럼 자기를 비워야 차 자체에 몰두할 수 있다. 이처럼 한잔의 차를 마시는 것이 자기를 비우는 작업으로 전환되면 그것이 바로 관이 된다. 관이 깊어지면 그 차를 덖었던 사람의 공부상태 또는 심리상태까지 역추적할 수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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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조용헌 원광대 초빙교수 cyh062@wonkw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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