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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택 기자가 만난 사람

영화계 ‘至尊’ 입증한 흥행감독 강제규

“한국영화, 소재 지상주의에 빠져 있다”

  • 글: 황호택 동아일보 논설위원 hthwang@donga.com

영화계 ‘至尊’ 입증한 흥행감독 강제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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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실미도’가 관객 1000만을 향해 나아가고 있을 때 ‘태극기 휘날리며’가 개봉돼 강우석 감독 쪽에서 싫어하지는 않았습니까.

“촬영할 때부터 개봉일자를 협의했습니다. ‘실미도’가 12월14일 개봉하고 3주 뒤 ‘태극기 휘날리며’를 개봉하기로 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실미도’ 제작진은 관객을 300만 정도 예상했습니다. 그래서 3주 뒤에 개봉하면 ‘실미도’가 시장의 파이를 충분히 가져갈 것이라 생각했지요.

그런데 ‘태극기 휘날리며’ 개봉이 예정보다 3주 가량 늦어졌습니다. 그래서 6주가 벌어진 상황이었기 때문에 전혀 문제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실미도’ 관객이 좀 떨어질 때쯤 ‘태극기 휘날리며’가 개봉돼 ‘실미도’가 더 탄력을 받았습니다. ‘태극기 휘날리며’의 가장 큰 수혜자가 ‘실미도’입니다.”

전국의 스크린 수는 1200개 가량. ‘태극기 휘날리며’는 한때 520개 스크린에서 상영됐다. 절반에 가까운 수치다. 스크린 12개짜리 멀티플렉스에서는 ‘태극기 휘날리며’ 필름이 5개 스크린에서 동시에 돌아가기도 했다.



‘사마리아’로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김기덕 감독은 어느 인터뷰에서 영화계 큰손들의 스크린 독식 현상을 비난했다. 영화 이름을 구체적으로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를 겨냥한 발언이었다.

-김기덕 감독의 항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반지의 제왕’이 450개 스크린을 가져갔을 때는 아무 말 없다가 한국영화가 인기를 끄니까 그런 말을 하네요. 씁쓸합니다. 동양그룹 계열의 배급사인 쇼박스가 어떤 극장에 태극기를 휘날리라고 강력하게 요구했다면 문제가 되겠죠. 그러나 우리의 경우는 그 반대였거든요.”

전주의 한 멀티플렉스는 공정거래위원회에 공정거래신고서를 접수했다. 전주에서 가장 큰 멀티플렉스에 필름 ‘태극기 휘날리며’를 주지 않고 다른 영화관에만 준 것은 부당하다는 내용이었다. 그 문제는 배급사에서 이의를 제기한 극장에 필름을 공급하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한 영화가 스크린을 독식하는 현상을 막기 위해 연구를 해볼 필요는 있겠지요. 선진국 사례도 조사해봐야겠지만 신중히 다뤄야 할 문제입니다.”

‘사마리아’는 4억8000만원을 들여 만든 저예산 영화다. 15일 동안 11번 촬영해 완성했다.

“한 나라의 문화가 성숙하면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나도 소위 인디영화(독립영화)를 찍어봤습니다. 사회가 성숙할수록 관객의 기호가 천편일률적이지 않고 다양성을 추구하게 마련이죠. ‘사마리아’ 같은 영화를 좋아하는 마니아층이 지금보다 더 두터워질 거라고 봅니다. 용기를 잃지 않고 끝까지 자기 세계를 펼쳐나가는 게 중요합니다.

극장표 판매금액에서 떼던 문예진흥기금이 부활됐으면 좋겠어요. 지금은 영화관객이 연간 1억명을 넘기 때문에 1∼2%만 떼도 100억원 이상의 재원이 마련되거든요. 그런 돈으로 인디영화나 저예산 아트무비의 제작비와 마케팅 비용을 지원해야 합니다.”

“영화는 10, 20권짜리 대하소설 아니다”

-영화제목이 반공을 주제로 한 초등학생 작문제목 같아요. 보수우익 냄새가 난다고 할까요. 영화가 뜨기 전에 “저 제목 갖고 성공하겠어”라고 회의하는 사람이 많더라구요.

“영화제목 짓기가 참 힘들어요. ‘쉬리’ 때도 주변에서 반대가 심했죠. ‘영화 찍고 영원히 쉬리’하고 놀림을 받았습니다. ‘태극기 휘날리며’란 제목도 주위에서 90% 정도가 반대했습니다. 내가 좀 고집을 피웠어요.”

-‘태극기 휘날리며’가 전체적으로 반공영화에 가깝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그런데 우익적 시각에서 보는 사람들은 남쪽 군인들이 비무장 북한군 포로를 사살하는 장면과 보도연맹 가담자를 학살하는 대목을 문제삼더군요.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그런 문제 제기가 있을 것이라 예견했죠. 늘 하는 얘기지만 한 편의 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한계가 있어요. 10, 20권짜리 대하소설이 아니니까요. 한국전쟁을 사실대로 그리자면 아마 100편의 영화로도 모자랄 겁니다. 보도연맹 이야기만으로도 좋은 영화 한 편을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3년 동안 이어졌던 한국전쟁의 방대한 스토리 중에서 과연 어떤 조각들을 영화에 넣을 것인가는 선택의 문제거든요.

한 조사에 따르면 초등학생 중에 절반이 넘는 숫자가 1950년에 일어난 한국전쟁의 두 당사자가 누구였는지 모르고 있습니다. 일본의 한국학 교수가 일본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40명 클래스에서 한국전쟁에 대한 기본상식을 제대로 알고 있는 대학생이 두세 명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우리의 어린 세대나 인접국의 젊은 세대에게 한국전쟁은 이미 기억 속에서 사라진 전쟁입니다. 따라서 심층적으로 들어가기보다는 전쟁의 전체 맥락을 짚어주는 것이 오히려 영화의 장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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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황호택 동아일보 논설위원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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