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7월호

정태수 전 한보그룹 총회장 “92년 대선 직전 만난 YS ‘뭐든 해줄 테니 나 좀 도와주소 하소연”

  • 글: 이형삼동아일보 신동아 차장 hans@donga.com 성기영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ky3203@donga.com

    입력2004-06-29 18: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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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태수 전 한보그룹 총회장 “92년 대선 직전 만난 YS ‘뭐든 해줄 테니 나 좀 도와주소 하소연”
    ‘부도옹(不倒翁)’인가, ‘부도옹(不渡翁)’인가.7년 전, 파란많은 기업인의 삶을 접고 무대를 떠나는 듯했던 정태수(鄭泰守·81) 전 한보그룹 총회장이 재기를 다짐하고 나섰다. 법정관리를 받고 있는 한보철강 인수전에 뛰어든 것. 정 전 회장은 지난 5월20일 기자회견을 자청, “나 말고는 한보철강을 살려낼 사람이 없다”고 호언했다.

    인수전의 전면에는 정 전 회장의 3남으로 한보그룹 회장을 지낸 정보근 보광특수산업 회장이 아버지를 대신해 나섰다. 보광특수산업은 컨소시엄을 구성해 한보철강 인수의향서를 제출했다. 정 전 회장은 “한보철강을 인수하면 ▲3개월 안에 외자 유치로 5000억원 ▲3년 안에 아들이나 종친회 명의로 된 땅에 아파트를 지어 얻은 수익으로 1조원 ▲15년간 한보철강 수익으로 매년 3000억원(16년차에는 1000억원)을 상환해 한보철강 부채 6조1000억원을 모두 갚겠다”고 밝혔다.

    엄밀히 말해 정 전 회장은 ‘재기’를 노리고 있는 게 아니다. 그는 1991년 수서사건으로 위기를 맞았지만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후 김영삼 대통령으로부터 특별사면돼 기업활동을 재개했고, 1995년 노태우 비자금 사건 때는 구속된 지 보름 만에 구속집행정지로 석방됐다. 1997년 한보특혜대출로 다시 구속돼 징역 15년형을 선고받았으나 2002년 대장암 진단을 받고 형집행이 정지된 데 이어 김대중 대통령으로부터 특별사면됐다. 그러니 이번에 다시 일어선다면 ‘재기’가 아니라 최소한 ‘사기(四起)’가 되는 셈이다. 그는 과연 잡초처럼 끈질긴 생명력을 다시금 확인시킬 것인가, 아니면 ‘한 여름밤의 꿈’으로 고별무대를 장식할 것인가.

    정태수 전 회장의 근황, 그리고 ‘로비의 귀재’라는 별명이 따라붙던 그의 비즈니스 인생역정을 들어보기 위해 6월14일, 서울 대치동 은마상가에 자리한 한보그룹 사옥에서 그를 만났다. 우리 나이로 82세. 70대 중반부터 6년간 수감생활을 했고, 당뇨, 고혈압, 심장질환이 있는 데다 대장암 수술까지 받은 노인의 목소리가 맞은편 벽에 부딪쳤다가 살짝 울려올 만큼 카랑카랑하다.

    9월10일, 외자 5000억 입금



    -건강이 무척 좋아 보입니다.

    “이렇게 회복되리라곤 나도 생각 못했어요. 참 기적적으로 살아난 거야. 6년 동안 징역 살았지, 대장암 수술 받았지…. 내 건강비결은 하루에 3시간 걷기입니다. 세 끼 식사를 마칠 때마다 반드시 30분 쉬고 나서 1시간씩 걷습니다. 이걸 20년 동안 하고 있어요. 2002년 대장암 수술 받고 한 달쯤 꼼짝 못했지만, 억지로 걸음을 떼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걷고 있죠. 내가 아는 ‘도사’ 한 분이 그럽디다. 그렇게 걷는 걸 50대에 시작하면 50대 건강을 죽을 때까지 유지하고, 60대에 시작하면 60대 건강을 죽을 때까지 갖고 간다고.

    -지난주에는 해외출장도 다녀오셨다고 하더군요.

    “일주일 동안 미국과 중동을 다녀왔습니다. 강행군이었는데, 젊었을 때보다 건강이 더 나은 것 같았어요. 도쿄에 가서 서너 시간 기다렸다 비행기를 갈아타고 뉴욕으로 갔고, 뉴욕에서 나흘 지낸 뒤 사우디아라비아엘 갔어요. 거기에서 하룻밤 자고 홍콩을 거쳐 돌아왔으니 거의 세계일주를 한 셈이죠. 젊어서 중동 오갈 때는 시차나 음식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비행기를 40시간이나 타면서 먹고 자고 했는데도 아무렇지 않더라니까.”

    -미국과 중동은 왜 다녀왔습니까.

    “한보철강 인수를 위한 외자 도입 MOU(양해각서)를 6월9일자로 체결하고 왔어요. 비밀보호협정 때문에 자세한 내용은 공개할 수 없지만, 간단하게 얘기하면 미국의 A라는 대형 보험회사가 지불보증을 하고 사우디아라비아의 B라는 투자펀드로부터 4억5000만달러를 들여오는 겁니다. 이 돈으로 한보철강 부채 가운데 일단 5000억원을 갚겠다는 거죠. 돈은 3개월 후인 9월10일에 입금됩니다.”

    -중동 펀드가 무슨 생각으로 그런 거액을 투자하기로 했을까요. 한보그룹 자산은 모두 압류된 처지라 담보로 잡아둘 만한 것도 없을 텐데요.

    “영업비밀이라 돈이 들어오면 말씀드리죠. 담보 같은 건 없습니다. 그 펀드가 움직이는 돈이 100조원쯤 돼요.”

    -과거에 한보나 정 회장과 관계가 있던 회사입니까.

    “아닙니다. 우연하게 연결됐어요. 굳이 따지자면 지금은 고인이 된 후세인 요르단 국왕과의 인연으로 연결됐습니다(한보는 1970∼80년대에 요르단에서 건설, 유전개발사업 등을 벌였고, 정 전 회장은 후세인왕으로부터 공로훈장을 받기도 했다-편집자). 물론, 이건 비즈니스니까 우리와 그쪽의 이해관계가 일치해야 하는 거지만.”

    정 전 회장은 부도에 책임이 있는 사주이기 때문에 파산법에 따라 한보철강 입찰에 참여할 수 없다. 그래서 “채권단이 출자전환 후 주식매각을 하는 방식으로 한보철강을 넘겨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현재 한보철강의 자본금은 83억원. 채권자들이 부채 일부인 100억원 정도를 출자전환해 그 주식을 보광특수산업 컨소시엄에 매각하면 보광이 한보철강의 대주주가 되고, 그후 당진제철소 철근공장 담보를 풀어주는 것과 동시에 철근공장을 신설법인 HB스틸로5000억원에 넘겨주면 한보철강은 이 돈으로 부채를 상환하기 시작해 6조1000억원의 부채를 다 갚겠다는 얘기다.

    -5000억원은 그렇게 갚는다 쳐도 그후 아파트를 지어서 1조원, 한보철강을 경영하면서 매년 3000억원씩 15년간 4조5000억원을 상환하겠다는 계획은 당장 와닿지 않습니다. 한보철강의 1대 채권자인 한국자산관리공사도 “현실성이 없다”고 일축했더군요.

    “인천(4만9000평), 경기도 용인(3만5000평)과 안산(2만4000평) 등 세 곳에 아파트를 지어 분양하면 공사 이익금과 토지대금으로 3년 안에 1조원의 부채를 충분히 갚을 수 있습니다. 그러고 나면 당진제철소 A지구 핫코일 공장과 B지구 냉연공장 담보를 풀어달라는 겁니다. 나머지 담보는 남은 부채 4조6000억원을 다 갚을 때까지 그대로 놔두고. 매년 3000억원을 갚을 수 있냐고요? A지구 철근공장과 핫코일 공장, B지구 냉연공장 세 군데에서 내는 이익만 해도 1년에 3000억원이 넘어요. 철근공장은 연 생산규모가 130만t인데 지금 법정관리상태인데도 연 700억∼800억원씩 순이익이 납니다. 핫코일 공장과 냉연공장은 각각 200만t 규모니 그 이상 이익이 나죠. 따라서 15년간 3000억원씩, 그리고 16년차에 1000억원을 갚아 4조6000억원을 상환하는 것은 문제 될 게 없습니다.

    우리가 갚겠다는 6조1000억원을 회계법인에서 현가(現價)로 계산해보니 3조4000억원입디다. 그런데 한보철강 입찰 참가자 중 가장 많은 금액을 써낸 INI 컨소시엄이 9100억원을 제시했습니다. 우리가 2조5000억원이나 더 많아요. 그렇다면 자명하지 않습니까. 기자가 채권자라면 누구를 선택하겠습니까. 더구나 최근 자산공사 등 채권기관들이 부실기업을 헐값에 팔았다고 징계를 받지 않았습니까. 부실기업이라고 제값도 안쳐주고 담합해서 주워가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또 그런 짓을 하면 이젠 국민이 용서하지 않을 거요. 그래서 내가 자신감을 갖고 이 나이에 미국으로, 중동으로 날아다니며 외자유치를 하고 온 겁니다.”

    “너무 분해서 암 걸렸다”

    -어쨌든 채권자들을 설득해야 될 텐데요.

    “채권자들 스스로 판단할 일입니다. 옛말에 ‘빚을 줄 때는 앉아서 주고, 빚을 받을 때는 서서 받는다’고 했어요. 무슨 뜻인지 알겠죠? 우리가 제의한 대로나마 받으려면 자기네들도 노력을 좀 해야지. 출자전환 정도는 해줘야 된단 말입니다.”

    -채권자들의 반응이 그리 긍정적인 것 같지 않습니다.

    “지금은 뭐라고 해도 괜찮아요. 하지만 결과는 두고 봐야 알지 않겠소.”

    -자신만만하시군요.

    “한쪽은 3조4000억원, 다른 쪽은 9100억원을 내겠다고 했습니다. 시장원리에 따라 결정되겠죠. 한보철강을 매각하려면 채권자 회의에서 동의를 얻어야 하는데, 상식 밖의 결과가 나오진 않을 겁니다. 당진제철소는 내가 20년을 바친 곳입니다. 내 발이 안 닿은 땅 한 평이 없고, 내 손이 안 닿은 못 하나가 없는 곳이오. 나보다 그곳을 더 잘 아는 사람이 없다는 말입니다.”

    -정 회장께 주식을 살 돈이나 아파트를 지을 땅이 있으면 채권단이 추심에 들어가지 않나요.

    “내 명의로 된 게 아니라 종친회(해주 정씨)가 보광특수산업에 기증한 겁니다. 종친회 재산은 추심할 수 없게 돼 있어요. 내겐 재산이 없습니다. 집도 얼마 전 경매로 넘어갔고, 이 사무실을 포함해 전 재산이 압류돼 있죠.”

    -종친회가 땅을 기증하고, 거기에다 아파트를 짓겠다는 것으로 봐선 비록 종친회 재산이지만 정 회장 뜻대로 처분할 수 있다는 의미로 들립니다.

    “우리 종친회가 전국적으로 땅을 많이 갖고 있어요. 변호사 타운으로 유명한 서울 서초동 정곡빌딩도 종친회 소유예요. 원래는 법원 자리도 종친회 땅이었지. 과거엔 서초동 일대가 다 ‘종친회 마을’이었으니까. 그래서 사회환원도 많이 했어요.”

    -부동산을 많이 소유한 사람들이 노출을 피하기 위해 땅을 종친회 명의로 돌려놓는 경우도 많지 않습니까.

    “그러기도 하죠. 실제로 양도하는 경우도 있고.”

    -종친회가 보광에 기증했다는 땅의 원래 소유주는 누구입니까. 정 회장과는 무관한 땅입니까.

    “그건 원래부터 종친회 땅이오.”

    -정 회장께서 종친회 재산을 증식하는 데 상당히 기여했을 것 아닙니까. 종친회도 그런 점을 고려해서 땅을 기증했을 듯한데요.

    “돈 많이 벌 때는 그랬지요. 뭐, 그런 게 인연이 됐을 수도 있고. 그런 인연도 없는데 땅을 주진 않았겠지.”

    한보는 1997년 1월23일 부도를 맞았고, 정 전 회장은 일주일 후인 1월31일 구속됐다. 그는 “검찰 수사와 수감생활을 거치면서 배신감과 허탈함, 원통한 마음에 1년 여 동안 실어증에 시달렸고, 너무 분한 나머지 암까지 얻었다”고 털어놓은 바 있다. 1999년에는 불법대출사건 등과 관련, 징역 15년형이 확정되자 한보 부도가 김영삼 정권의 ‘음모’에서 비롯됐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정태수 전 한보그룹 총회장 “92년 대선 직전 만난 YS ‘뭐든 해줄 테니 나 좀 도와주소 하소연”

    1997년 국회 한보 특위 청문회에 나와 증인선서를 하는 정태수 당시 한보 총회장.

    -한보가 부도에 이르게 된 연유를 여전히 납득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부도 전후 상황을 좀 들려주시죠.

    “1996년 12월말 청와대 이석채 경제수석을 만나 당진제철소 건설자금 지원 문제를 협의했습니다. ‘내년 1월에 1000억원, 2월에 1000억원, 3월에 1000원 이렇게 3000억원 지원해주면 공사를 끝낼 수 있다’고 했더니 이 수석이 ‘그거면 되냐. 산업은행에 돈 내주라고 지시하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1월20일 주거래은행인 제일은행 신광식 행장에게서 전화가 왔어요. 다음날 아침에 임창열 재경부 차관, 이수휴 은행감독원장과 식사를 같이 하자는 거야. 그래서 프라자호텔로 나갔더니 신 행장은 안 나오고 임 차관과 이 원장만 왔어요. 밥을 막 먹으려는데 임 차관이 나더러 ‘한보철강 주식을 매각하고 경영권을 포기하면 예정된 자금을 지원하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일 당장 부도를 내겠다’고 합디다.

    어이가 없어서 ‘그렇게는 못하겠으니 부도를 낼 테면 내라’면서 자리를 박차고 나왔습니다. 내가 입지 선정하고, 바다 매립하고, 공장 짓고, 기계 들여놓고 20년 넘게 세월을 보내면서 8조원 이상을 투입했고, 전체 공정의 90%가 진척된 공장인데 경영권을 포기하라니요. 그랬더니 다음날인 22일 채권단으로부터 ‘경영권 포기 불가시 부도 처리하겠다’고 공식 통보가 왔고, 23일 부도처리가 됐습니다. 나는 31일 구속됐고.”

    정권 재창출 노린 ‘고의 부도’?

    -1996년 들어 한보의 자금사정이 많이 악화됐습니다. 더욱이 당진제철소 프로젝트는 규모가 갈수록 커지면서 소요자금도 급증했습니다. 정부나 은행들이 더 큰 피해를 막기 위해 순수한 재무적 판단에 따라 그런 결정을 했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1996년 재계 14위였던 한보그룹의 부채비율은 1800%에 달했지만, 당시 30대 기업중엔 우리보다 재무상황이 나쁜 기업도 많았습니다. 연결재무제표를 고려하면 한보의 부채비율은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었어요. 채권은행들이 설정한 담보가치도 100%가 넘었고. 더구나 당진제철소는 1997년 6월 완공 예정이었습니다. 공장이 완공돼야 은행들도 대출금을 받아낼 수 있을 것 아닙니까. 완공 5개월을 앞두고 부도를 낸다는 게 말이 돼요?

    그리고 당진제철소 같은 프로젝트 시설자금을 대출받을 때는 은행과 조율을 거칩니다. 가령 우리가 열연공장을 짓겠다, 제강공장을 짓겠다 해서 은행측에 기획안을 내면 은행이 검토해서 거기에 맞게 자금지원을 해주기로 약속합니다. 은행으로부터 사전에 사업승인을 얻는 거나 마찬가지죠. 우리도 그렇게 해서 총 소요자금의 70%를 산업은행에서 지원받기로 한 겁니다. 그래놓고 하루 아침에 부도를 내버렸어요.

    부도라는 것도 그래요. 물품대금이나 인건비로 내준 어음이 돌아왔는데 그걸 못 막으면 부도가 나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단자회사 대출금 리볼빙(만기 연장)한 걸로 부도를 냈단 말이에요. 그건 원래 매달 연장해가는 거예요. 그런 걸 부도 처리하면 삼성그룹인들 부도가 안 나겠어요?”

    -그 전에 이석채 수석을 찾아갔다면 산업은행과 얘기가 잘 안 됐거나 해서 청와대에 도움을 청할 일이 있었던 게 아닙니까?

    “그때는-뭐, 지금도 그렇지만-큰 돈을 움직이려면 ‘위’부터 움직여야지, 행장 정도 선에서는 결정이 되지 않았어요.”

    -그 이전에도 자주 이 수석과 접촉했습니까.

    “어려우니까 자주 만나 사정했지.”

    -만나고 오면 바로 집행되던가요.

    “그 전에는 잘 돌아갔다니까.”

    -그렇게 잘 돌아가다가 왜 갑작스레 브레이크가 걸렸다고 봅니까.

    “내가 몇가지 얘기를 들은 게 있습니다. 신한국당이 1996년 12월26일 새 노동법을 날치기 통과시켜서 온 나라가 발칵 뒤집혔잖아요. 이듬해 1월7일 YS가 연두기자회견을 했지만 상황은 더 악화됐죠. 그런 국면에서 YS 차남 현철씨를 중심으로 한 민주계 신주류가 세 가지 목적에서 한보를 치려 했다는 거예요. 첫째, 노동법 파동으로 시끄러워진 정국을 한보 정국으로 끌고간다. 둘째, 한보에게서 돈을 받은 최형우, 홍인길 등 민주계 구주류 및 5·6공 인사들을 제거한다. 세 번째는 한보철강의 제3자 인수과정에 개입해 차기 대선자금을 마련한다….

    나를 거꾸러뜨리면 구주류와 보수세력이 다 죽을 테니 소위 정권 재창출을 할 수 있으리라 본 거죠. 12월에 약속해놓고 1월 초에 틀어버린 걸 보면 연말에 자기들끼리 모여서 뭔가를 했다는 것 아니겠어요? 그렇게 정권 재창출을 꿈꿨다는 사람들이 제 몸 관리 하나 못해서 감옥엘 들어왔으니 참. 김현철, 임창열, 이수휴, 이석채… 이 사람들 다 뇌물수수 등으로 교도소 들어가지 않았습니까. 임창열, 이수휴씨는 내가 교도소 있을 때 만났어요. 면전에다 대고 ‘꼴 좋다, 이 XX들아’ 하고 욕을 해줬지. 고개도 못 들고 슬슬 도망가더군.

    교도소에서 들은 얘기가 또 하나 있는데, 1996년 4월 총선 때 당진에서 출마한 후보 하나가 ‘당진제철소 주인은 정태수가 아니라 YS’라고 흑색선전을 했대요. 그러자 귀가 얇은 YS가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한보를 손보기로 했다는 겁니다.”

    -정 회장께선 1992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김영삼 후보에게 준 돈이 150억원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600억원을 줬다느니, 800억원을 줬다느니 하는 얘기가 나돕니다.

    “150억원이 확실해요. 그때로선 엄청 큰돈이죠. 대선에 출마하면 처음에는 아무도 돈을 안 줍니다. 그러다 막판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눈에 띄게 올라가면 들어오는 돈을 주체를 못해요. 지난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한테 돈 들어가는 것 봤죠? 여론조사에서 앞서니까 돈이 막 들어온 겁니다.

    YS는 나와 옛날부터 친했기 때문에 내가 잘 알아요. 그 사람은 돈이 없어요. 후보로 나섰어도 돈 주는 사람이 거의 없었죠. 게다가 김대중씨도 나오고 정주영씨도 출마했으니…. 정주영씨야 돈을 물 쓰듯 하지 않았습니까. 그때 우리 아이가 서빙고동 신동아아파트에 살았는데, 당시 민자당 김명윤 고문이 같은 아파트에 살았어요. YS가 김 고문 집에 와서 나한테 연방 전화를 합디다. ‘나 죽을 지경이다. 도와달라’고. 그 무렵엔 나도 돈이 별로 없었어요. 그래서 준 게 150억원이야.”

    “죽을 지경이니 무조건 도와달라”

    -YS가 그 정도로 다급해 했습니까.

    “죽을 지경이었다니까. 자기 말로 그랬어요. ‘뭐든지 해달라는 대로 다 해줄테니까 나 좀 도와달라’고.”

    -얼마 정도가 필요하다고 전갈이 와서 돈을 들고 나갔습니까.

    “무조건 도와달라고만 했어요.”

    -당시 정 회장께서 “기업인 중에 내가 대선자금을 제일 많이 갖다줬다”고 했다면서요.

    “계산이 그렇게 나오지 않겠소? 그 때는 초반이었으니까. 물론 그 뒤에는 더 가져온 재벌도 있었겠지만. 출마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주는 게 최고지. 내가 준 150억원이 그때는 1000억원보다 큰돈이었을 거요. 지지율 올라가면 서로 갖다주려고 해서 돈을 주체를 못할 지경이니까.”

    -YS에게 선거자금을 지원한 것과 YS의 이른바 ‘한보 고의 부도설’을 함께 떠올리면 YS에 대한 배신감이 엄청나겠군요.

    “뭐, 그렇게까지는…. 화야 나지. 날 수밖에 없지. 감옥에 가고 병도 생겼으니까. 교도소 있을 때 얘기 하나 더 할까요? 친구 세 명을 차에 태우고 운전하던 사람이 사고를 냈는데 자기만 살아서 교도소에 들어왔어요. 이 사람은 죽은 친구들의 가족이 탄원을 해서 석방됐습니다. 그걸 보고 내가 ‘아이고, 친구 잘못 만나 죽는 사람도 있는데, 내가 여기서 징역 사는 건 약과다’ 이런 생각을 했어요. ‘나야 설마 살아 나가겠지, 죽어서 나가기야 하겠냐’며 대범하게 생각했어요. 내가 원래 좀 대범한 사람이오. 그렇기에 이 마당에 다시 (사업을) 하려고 하지 안 그러면 하겠소?”

    ‘몸통’은 나도 모르는 말

    YS에 대한 감정을 물은 질문에는 이렇게 동문서답에 가까운 답만 돌아왔다. 그러나 행간을 들여다보면 분명 뭔가 하고 싶은 얘기가 있는 듯하다. 자신의 대범함을 강조하면서 YS의 성격을 드러내보이려는 것일까.

    -YS와 오래 전부터 친하다고 하셨는데….

    “좀 알아요.”

    -언제부터 교분이 있었습니까.

    “내가 옛날에 하키협회장을 했잖아요. 그래서 86 아시안게임, 88 올림픽 열리고 할 때 경기 현장에 많이 갔거든요. YS나 DJ도 경기장에 왔는데, 내가 협회장으로서 손님을 접대하다 보니까 자연히 알게 된 거에요. 의도적으로 꼭 알려고 한 게 아니라.”

    -그러면 1992년 대선 전에도 YS를 후원했겠군요.

    “YS가 민자당 대표일 때 나는 당 재정위원이었으니까요. 정치하는 사람들이 주머니에 돈 있습니까. 우리가 돈 줘야 살지.”

    -대선 전에 YS가 “해달라는 것 다 해주겠다”며 도움을 청했다고 했는데, 대통령이 되고 나서 YS를 만났을 때는 뭐라고 하던가요.

    “대통령 되고 나서는 한 번도 안 만났어요.”

    -면담신청도 안 했습니까.

    “안 했어요.”

    -만나자는 연락도 없었고요?

    “없었어요. 만날 필요도 없고.”

    -“해 달라는 것 다 해주겠다”는 사람이 대통령이 됐는데….

    “정치인들이 원래 그런 거요.”

    -YS 대선자금과 관련, 1997년 국민회의 박광태 의원은 “YS는 대선 당시 노태우 대통령으로부터 3000억원을 받아 2000억원을 선거자금으로 쓰고 나머지 1000억원을 정태수 회장에게 맡겨 돈세탁과 자금증식을 해왔다”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낭설이예요. 절대 그런 일 없었습니다. YS가 만약 내게 돈을 맡겨놓았다면 한보를 부도 냈겠습니까.”

    -홍인길 청와대 총무수석에게 10억원을 준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당시 “홍인길에게 돈을 주니까 은행들이 움직이더라. 그래서 홍인길이 신(神)인 줄 알았다’고 하셨죠. 그런데 YS와 그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으면 직접 얘기할 수도 있었을 것 아닙니까.

    “아시다시피 ‘창구’라는 게 있습니다. 홍인길 수석을 창구로 이용한 것이지, 다른 건 없어요. 홍 수석이 자기는 ‘깃털’이고, ‘몸통’은 따로 있다고 했다는데, 나와는 아무 상관없는 얘기에요. 교도소에서 홍인길을 만나 ‘깃털이 뭐꼬?’라고 물으니까 ‘괜히 하는 말이지, 뭐’라더군요.”

    -당시 ‘몸통’으로 지목된 인물은 김현철씨 아닙니까. 아드님인 정원근, 정보근 회장은 현철씨를 몇차례 만난 것으로 압니다만.

    “행여 김현철이가 돈 달라고 해도 절대로 주지 말라고 했어요. 내가 대통령하고 알면 됐지 그럴 필요가 뭐 있냐고. 지가(김현철) 대통령이에요? (돈 갖다 줬으면) 오히려 큰 일 날 뻔했지.”

    -1997년 한보 청문회 때 정 회장은 YS에게 150억원을 제공했다는 얘기는 입밖에도 꺼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자물통’이라는 별명도 붙은 것 아닙니까. 그런데 정권이 바뀐 뒤인 1999년 경제 청문회에서 그 얘기를 털어놓았죠.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겁니까.

    “국민들이 나에 대해 안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으니까 어느 정도는 밝혀야겠다는 심정에서 그랬습니다.”

    -YS측에서 150억원 부분은 끝까지 밝히지 말라는 요구가 있었거나, 이 부분만은 끝까지 함구함으로써 정 회장께서 YS측으로부터 뭔가 기대하는 바가 없었다면 그렇게까지 입을 다물 필요가 있었을까요.

    “좀 전에 얘기한 대로 국민의 의구심을 웬만큼 풀어줘야 되겠다는 생각밖에 없었어요.”

    -1999년 청문회에서 150억원 제공 사실을 밝히기 전에도 특위 위원들과 사전 조율이 전혀 없었습니까.

    “전혀 없었어요.”

    1999년 경제 청문회 당시 국민회의 김원길 의원은 정태수 증인에게 “1992년 12월12일경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김영삼 후보에게 100억원을 전달했느냐”고 구체적으로 물었다. 정 회장은 기다렸다는 듯 “부인할 수는 없다”고 대답했다. “김명윤 민자당 고문의 자택으로 찾아가 김영삼 후보에게 50억원의 선거자금을 전달했느냐”는 질의에 대해서도 “확실치는 않으나 대충 그 정도는 되는 것 같다”고 답변했다. 1997년 한보 청문회 당시 시종 ‘모르쇠’로 일관하던 태도와는 확연히 달라진 것이었다. 당연히 사전에 조율을 거친 것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정 전 회장은 ‘국민의 의구심을 풀어주기 위한 것’이라는 답만 반복했다.

    -‘자물통’으로 소문난 분이 은행장 중에서도 신광식 제일은행장과 우찬목 조흥은행장에게만 돈을 줬다고 하자 ‘미운 놈 찍어내기’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기억이 없어요.”

    -두 은행장이 대출 중단을 주도하는 바람에 감정이 좋지 않았을 듯한데요.

    “모르겠어요. 지나간 일이라서.”

    -두 사람에게 4억원씩을 커미션으로 줬다고 진술하지 않았습니까.

    “몰라.”

    순간적으로 시간을 뛰어넘어 7년 전으로 되돌아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정태수 전 회장은 청문회 증인석에 마스크를 쓰고 나와 앉았고, 기자는 특위 위원이 되어 굳게 닫힌 그의 입을 열려고 진땀을 흘리는 착각에 빠져든 것이다. 1997년 한보 청문회 당시 ‘모르겠다’ ‘기억나지 않는다’는 답변을 지겹도록 들으면서 생긴 환각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인터뷰는 청문회가 아니다. 그쯤에서 ‘추궁’을 끝내고 화제를 돌렸다.

    -검찰 수사를 받을 때 부장검사에게 “우리 보근이만은 건드리지 말아달라. 모든 죄목은 내 앞으로 해달라”고 했다면서요?

    “나는 보근이뿐만 아니라 우리 직원 모두를 그렇게 대했습니다. ‘나한테는 사형을 줘도 괜찮으니까 우리 임직원들에겐 벌을 주지 마라’고 부탁했어요. 나중에 교도관들은 ‘징역 20년 구형 받고 눈도 깜짝 안 하는 사람은 정태수 하나밖에 못 봤다’고 합디다.”

    병실에서 ‘한보철강 정상화 방안’ 연구

    -당시 검찰이 ‘야당 총재이던 김대중씨와 민주계 구주류 실세이던 최형우씨에게 돈을 줬다고 진술하면 정보근 회장은 구속하지 않겠다’고 제안했다고도 하더군요. 혼자 다 뒤집어 쓸 각오였다면 그런 제안에 솔깃했을 텐데요.

    “기억 안 나요. 너무 오래 전의 일이라서.”

    기자가 답답하다는 표정을 짓자 이번에는 정 회장이 손바닥으로 탁자를 ‘탁’ 치며 분위기를 바꿨다. “자, 그런 것 말고 다른 얘기를 합시다. 10년 전 얘기를 지금 해서 무슨 소용이 있다고…” 하면서 자세를 고쳐 앉았다.

    -자세한 사정이야 어떠하든 국가 경제를 뒤흔든 부도사태의 장본인이 다시 그 회사를 인수하겠다고 하니까 여론은 좋지 않습니다. 당진제철소 직원들도 정 회장의 복귀를 보는 시각이 곱지 않은 듯합니다.

    “그건 잘 몰라서 하는 얘기에요. 우리나라에 유권자 100%의 지지를 받아서 대통령 된 사람이 있었습니까. 다른 출마자보다 표를 조금 더 많이 얻어서 당선된 것 아닙니까. 과거에 부도 낸 사람이 다시 경영에 나선다는 걸 반대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분명히 있어요.

    대장암 수술 받고 서울대학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직원들 10여명이 함께 문병을 왔습니다. 이 사람들이 돌아갈 때 군인처럼 ‘차렷, 경례!’ 하고 구령을 붙이더니 나한테 거수경례를 하는 거에요. 눈물이 흐르더라고. ‘저 사람들 속엔 내가 아직 살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 이걸 내가 해야 되겠다’ 싶은 거에요. 그때부터 한보철강 정상화 방안을 마련하기 시작한 겁니다. 병원에서 말이에요. 이런 게 하루 이틀에 만들어지는 줄 압니까.”

    그러면서 정 전회장은 탁자 위에 놓인 100페이지 분량의 두꺼운 책자를 ‘탁탁’ 쳤다. 제목이 ‘한보철강 정상화 방안’이다. 한보철강 정상화를 위한 자금 조달 방안과 향후 투자 계획 등이 각종 도면과 함께 수록돼 있다.

    -동아건설의 최원석 전 회장이 “중국 남북조 대수로 공사를 수주해 동아건설을 살리겠다”고 했을 때 채권단과 종업원들 모두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결국 이 시도는 해프닝으로 끝났죠. 정 회장께서 한보를 인수하겠다는 청사진에도 그런 반응들을 보이는 듯합니다.

    “사실 내가 이만한 노력과 이만한 돈을 들이면 한보철강보다 더 좋은 기업을 인수할 수도 있어요. 그러나 20년 동안 손때가 묻은 곳은 한보밖에 없잖아요. 그리고 나는 다른 사람이 100억원에 할 것을 50억원에 할 수 있다 이 말입니다. 하청업자들도 내가 데리고 있던 사람이에요. 돈만 있으면 앞으로 그 사람들이 다 모여들 겁니다.”

    -듣기 언짢은 표현같지만 정 회장께는 ‘로비의 귀재’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나는 그저 정정당당하게 ‘담보 줄테니 돈 내놓으라’고만 요구했어요. 내 사업 목적은 딱 3가지예요(이 대목에서 그는 기자의 취재수첩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이거 단디(단단히) 적으소!’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첫째, 국가에 이익이 돌아가고, 그 다음엔 국민에게 이익이 돌아가고, 마지막으로 나한테 이익이 돌아와야 한다는 겁니다. 이 세 가지가 타당하면 도와달라 이거에요. 그걸 안 도와준다면 나쁜 놈이지. 그런데 로비는 무슨 로비에요? 단지 홍인길처럼 심부름을 해줄 경우에는 심부름값을 줘야 하니까 별 수 없이…. 그게 로비에요?”

    -홍인길 전 수석에게 준 10억원이 ‘심부름값’이었다는 말입니까.

    “그걸 한꺼번에 줬다는 게 아니고, 여러 번에 걸쳐서 준 걸 다 모으면 10억원이라는 거지. 2∼3년 동안.”

    -조금씩 챙겨주다보니까 10억원이 됐다는 얘기군요.

    “은행장 만나서 일 좀 해달라고 하면서…아니, 그런 걸 가지고 뭘…. 만약 로비 목적으로 주려면 돈이 수백억원씩 나가야 돼요. 알아요? 은행 대출하면 커미션이 10분의 1이야. 그건 위법이죠. 난 그렇게 한 것은 한 번도 없어요.”

    -청문회에서 우찬목 조흥은행장이나 신광식 제일은행장에게 커미션으로 각각 4억원씩 줬다고 증언하지 않았습니까.

    “모르겠어요.”

    -검찰 수사 기록에도 나오는데요.

    “그럼 검찰에 가서 보세요. 나한테 물을 게 아니고.”

    또 청문회 분위기로 샐 조짐이다.

    -로비 얘기가 나왔으니 옛날 얘기 하나 더 물어보죠. 1991년 수서 사건 당시에 고건 전 국무총리가 서울시장이었는데, 당시 한보의 로비를 받은 청와대가 고 시장에게 계속 압력을 넣었다는 겁니다. 수서주택조합의 택지 특별분양 요구를 들어주라고요. 하지만 고 시장은 “무주택 서민에게 돌아갈 택지를 특정업자에게 특혜분양할 수 없다”며 버티다가 결국 경질당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내가 노태우 전 대통령과 친한 건 잘 아시죠? 노 전 대통령이 올림픽조직위원장을 할 때 내가 하키협회장을 했잖아요. 노태우씨가 대통령이 된 뒤에 내가 찾아갔더니 애로사항이 없느냐고 묻더군요. 그래서 ‘애로사항은 없습니다만, 단지 서울시에 하고 싶은 말이 하나 있긴 한데, 그건 제가 해결하겠습니다. 각하께 신세 지고 싶지 않습니다’ 하고 말았어요. 그러고 나와서 내가 직접 (수서 택지분양을) 추진한 겁니다. 그런데 청와대가 서울시장한테 무슨 압력을 넣었다는 겁니까.”

    -당시 서울시장이 허가만 내주면 일사천리로 진행될 수 있는 상황인데, 마지막 수단을 쓸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까.

    “전혀 안 했습니다. 그 시대, 그 정권에서 할 일이 있고 안 할 일이 있어요. 사업이라는 게 그런 거에요. 할 때도 있고 안 할 때도 있는 것.”

    -그때껏 들인 공이 있잖습니까.

    “다음에 하면 되는 거지. (정권) 끝나고.”

    ‘머슴’들은 자기 몫만 챙겨

    인터뷰가 시작된 지 두 시간이 훌쩍 넘어갔다. 이쯤 되면 웬만한 인터뷰 상대는 “이만 하면 됐다”거나 “이제 그만하자”고 나오게 마련이다. 좀 지칠 수도 있고, 딱히 다른 일정이 잡혀 있지 않더라도 기자 앞에서는 좀 ‘바쁜 티’를 내려고 하는 게 매스컴의 스포트라이트깨나 받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성이다. 그러나 정 전 회장은 오히려 “여러분이 궁금하면 국민들도 궁금할 것”이라며 “국민들이 궁금해할 만한 걸 물어보라”고 재촉했다.

    국민들이 궁금해할 만한 게 뭐가 남아 있을까(그가 ‘기억나지 않는다’라고 답할 게 뻔한 주제 외에) 하고 생각하다 ‘머슴론’이 떠올랐다. 한보 청문회 당시 정 전 회장은 국민회의 이상수 의원이 한보 직원의 검찰 진술을 인용해 “한보가 3000억원의 추가 대출을 받았더라도 두 달 이상 못 버틸 지경이었다더라”고 추궁하자 “자금에 대해서는 주인인 내가 알지, 머슴이 뭘 알겠냐”고 일갈, 대한민국 직장인 모두를 한 순간에 ‘머슴’으로 전락시킨 바 있다.

    -정 회장께서 뭐든지 지나치리만큼 꼼꼼하게 챙기다 보니 문제가 생긴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명절에 선물 보낼 명단까지 직접 작성하는가 하면, 회사 업무, 특히 재무쪽에서 전권을 행사하는 바람에 전문경영인이 성장할 여지가 없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머슴론’도 그런 맥락에서 나온 게 아닌가 싶네요.

    “내가 말한 ‘머슴론’은 이런 의미예요. 가령 철강회사 사장은 철강만 알지 건설은 몰라요. 에너지도 모르죠. 그러니 주인은 이쪽 저쪽 사정을 다 살펴야 합니다. 건설회사에 돈이 많이 남아 있을 때가 있고, 철강회사에 돈이 모자랄 때도 있으니 적절하게 안배를 해야 할 것 아니겠어요? 그걸 사장이 일일이 어떻게 합니까. 철강회사 사장도, 건설회사 사장도 자기 회사 돈은 안 내놓으려 할 것 아닙니까. 이 사람들은 돈을 감춰놓고 있다고요. 그럴 때 누가 그걸 조정하느냐 말이죠.”

    -그래서 자기 분야만 갖고 있는 계열사 사장을 머슴에 비유한 겁니까.

    “그렇게 내버려두면 안 되는 거야. 어딘가에서 부도가 나요. 지난번 LG카드 사태도 그러다가 터진 것 아닙니까.”

    -머슴한테만 맡겨놓았기 때문에 그런 사고가 났다는 얘기군요.

    “머슴들은 자기 몫만 챙기니까….”

    이 정도면 ‘머슴론’에 대한 국민들의 궁금증이 어느 정도 풀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취재수첩을 덮으려 하자 그쯤에서 “진짜 물어볼 건 왜 안 물어? 내가 한보철강 (경영)하려는 얘기 같은 건 왜 안 묻는 거요?”라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한보 경영정상화방안’ 책자를 가리키며 “그거야 이 책에 다 들어 있는 것 아닙니까”라고 했더니 정 전 회장은 “내가 아무리 말해도 여러분이 제대로 쓰지 않으면 그만”이라며 다시 한번 목청을 높였다.

    “단디 쓰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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