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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方外之士 ⑦

지리산 터줏대감 김을생

“바람과 빛과 대화하며 함께 흘러가지요”

  • 글: 조용헌 江湖東洋學연구소 소장, 원광대 초빙교수 cyh062@wonkwang.ac.kr

지리산 터줏대감 김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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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에는 팔대(八臺)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어디인지 설명해주시죠.

“첫째, 남원군 산내면 상왕부락에 청신대(淸信臺)가 있죠. 둘째, 함양군 마천면 가흥부락에 금대(金臺)가 있습니다. 흔히 지리산의 제일 수행터를 금대라 할 만큼 알아주는 곳이죠. 일설에 의하면 지리산 산신이 여자인데, 금대가 있는 봉우리의 산신은 남자라고 합니다. 지리산의 여산신이 금대의 남산신을 바라보는 형국이죠. 그래서 금대에서 공부하면 지리산 여산신이 아낌없이 지원해준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또 80년 전쯤 억수같이 비가 쏟아진 날이 있었다고 해요. 그런데 세찬 빗줄기 속에 여러 사람이 영차, 영차 하는 소리가 들리더랍니다. 다음날 금대에 가보니 커다란 바위덩어리가 금대의 나한전(羅漢殿)을 덮치려고 했는데, 바위덩어리 밑에 큰돌을 쐐기로 박아놓은 것이 보였다고 해요. 그전까지는 보이지 않았던 쐐기돌이었죠. 동네 사람들은 장마에 나한전이 위험해지니까 나한들이 나타나서 신통력으로 바위가 나한전을 덮치지 못하도록 한 것이라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그만큼 금대의 나한전은 영험한 곳이죠.

셋째, 함양군 휴천면 세동(細洞)부락에 마적대(馬跡臺)가 있습니다. ‘말의 자취가 있다’는 이름을 얻게 된 것은 최치원 선생과 관련된 고사 때문입니다. 최치원 선생이 이곳에 머물면서 함양 장날에 말에다 바구니를 묶어 심부름을 보내곤 했는데, 그러면 말이 바구니에 필요한 물건을 담아 돌아왔다고 합니다. 아마 바구니 속에다 쪽지를 넣어 보냈던 모양입니다.

넷째, 문수대(文殊臺)는 함양군 마천면 군자리에 있습니다. 군자리를 넘어가면 도마마을이 있고, 그 뒤로 2시간 정도 올라가면 문수암이 나옵니다. 문수암은 해발 1000m가 넘는 고지인 데다 북향이라서 겨울에 좀 추운 것이 단점입니다. 문수대는 문수암 근처에 있습니다.

다섯째, 연화대(蓮花臺)는 뱀사골 뒤의 산내면 와운리에 있습니다.



여섯째, 묘향대(妙香臺)는 구례 산동의 반야봉 밑에 있죠. 이곳은 개운조사(開雲祖師)의 전설로 유명한 곳입니다. 지리산 마니아들 가운데 이백 살이 넘은 개운스님이 아직도 살아있다고 믿는 사람이 많습니다. 최근에 그분을 목격했다는 사람도 있죠. 그 분이 1790년에 태어났으니까 아직까지 살아있다면 무려 215세인 셈이죠. 도를 닦아서 불로장생하는 신선이 된 겁니다. 일반인은 믿기 어려운 이야기이겠지만 지리산에서는 가능한 신화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근래 200∼300년 동안 한국이 배출한 도인 가운데 최고단자가 바로 개운조사가 아닌가 싶어요. 그 분의 태생지는 경북 상주군 개운동인데, 도장산(道藏山) 심원사(深原寺)에서 도를 이룬 후 지리산 묘향대로 거처를 옮겨와 지금까지 머무르고 있다고 전해집니다. 1970년대 후반에는 그 분의 거처를 찾으려 수십 명이 반야봉 일대를 수색했던 적도 있습니다. 개운조사가 남겼다는 ‘능엄경’이라는 책에 개운조사가 도를 닦던 방법이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지난해 저희 집에 77세인 향국(香國)스님이 머물다 간 적이 있습니다. 이분도 평생 지리산 일대를 돌아다니며 수행했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저녁이 되자 이 스님이 방바닥에 머리를 대고 무려 3시간이나 물구나무서기를 하는 겁니다. 깜짝 놀랐죠. 노인인 데도 장정과 같은 힘을 씁디다.

식사는 밥 대신 미숫가루와 생식만 해요. 향국스님이 ‘아직 선생을 만나지 못하였다. 선생만 만나면 훌훌 날 수 있을 것 같다’고 하데요. ‘어떤 선생을 찾느냐’고 묻자 ‘지리산 어딘가에 살고 계시다는 개운조사를 찾는다’고 대답하더군요. 자신이 쌓아놓은 공덕이 부족해서 아직 선생을 못 만난 것 같다고 덧붙였습니다. 이 스님은 개운조사를 만나려는 일념으로 걸망 하나 짊어지고 온 지리산을 유랑하고 있는 겁니다. 놀라운 일이죠.

일곱째, ‘만복이 깃들어 있는 곳’이라는 뜻의 만복대(萬福臺)입니다. 구례 산동에 있는데, 펑퍼짐하게 생긴 것이 무척 덕스럽습니다. 마지막으로 여덟째 수성대(水聲臺)는 남원군 동면 중군리에 있습니다.”

실상사 터가 일본을 누른다

-지리산 실상사에는 일본과 얽힌 전설이 있습니다. 실상사 터가 한국에서 일본으로 기운이 넘어가지 못하도록 누르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실상사 보광전에 있는 종에 일본지도가 새겨져 있는데, 이곳 스님들이 매일 종을 치면서 이 일본지도를 때리는 것을 저도 본 적이 있습니다. 왜 지리산 깊은 곳에 있는 실상사에 일본과 관련된 이야기가 많이 전해져오는 겁니까.

“실상사 터는 백학(白鶴)이 내려앉은 자리입니다. 학의 한 발은 극락전으로 내려앉았고, 다른 한 발은 보광전 쪽으로 내려왔어요. 그만큼 기운이 좋은 곳이죠. 절 주변에 평평한 전답이 2만평이나 돼 스님들이 살기에도 좋았습니다. 중국에서 우리나라에 선(禪)이 유입된 구산선문(九山禪門) 중 하나죠. 고려시대 전성기에는 스님이 3000명이나 살았다고 합니다.

지리산에서 가장 큰 절이 실상사인데, 이 터를 위에서 내려다보면 연꽃 같습니다. 실상사 중앙에 목탑이 있는데, 이것이 연꽃의 꽃심에 해당합니다. 꽃심이라 돌이 아닌 나무로 탑을 세운 거죠. 그런데 이 목탑은 1907년에 불탔습니다. 일본인들이 실상사에 불을 지른 거예요. 임진왜란 때도 일본군이 불질러서 숙종 때 복원해놓았는데, 일제시대에 다시 불을 지른 거예요. 실상사 터가 일본을 누른다는 전설이 일본인들을 자극해 터를 망치려 한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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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조용헌 江湖東洋學연구소 소장, 원광대 초빙교수 cyh062@wonkw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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