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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奇人·名人 ④

춤꾼 운심|“천하 名妓가 천하 명승지에서 죽는다면 그 또한 만족이니”

  • 글: 안대회 영남대 교수·한문교육 ahnhoi@yumail.ac.kr

춤꾼 운심|“천하 名妓가 천하 명승지에서 죽는다면 그 또한 만족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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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갈라져 하나는 동에, 하나는 서에 선다. 서쪽 기생은 검을 땅에 꽂고 팔을 늘어뜨리고 섰는데 동쪽 기생이 달려든다. 그로 인해 검은 날개가 달린 듯 달려나가 서쪽 기생의 옷을 푹 찌르고, 고개를 쳐들고 뺨을 벗겨내기도 한다. 서쪽 기생은 까딱 않고 선 채 얼굴빛도 바꾸지 않으니 옛날 영인(텽人)의 몸가짐 같다(영인은 중국 전국시대 고사에 등장하는 초(楚)나라 서울 사람이다. 코끝에 회반죽을 파리 날개만큼 바르고 서서 장석(匠石)이라는 목수로 하여금 대자귀로 깎아내게 했는데 회반죽만 살짝 벗겨내고 코는 조금도 다치지 않았다고 한다. 영인도 장석의 기술을 믿기에 까딱 않고 서 있었다는 것이다 - 역자 주). 달려온 기생은 훌쩍 날뛰며 용맹을 뽐내고 무예를 자랑하다가 돌아간다. 서 있던 기생이 그를 쫓아 보복한다. 처음에는 히죽히죽 말이 웃듯 부르르 떨더니 문득 성난 멧돼지처럼 고개를 숙이고 곧바로 달려든다. 질풍폭우를 무릅쓰고 내달리는 용사와도 같다.

그러나 정작 곁에 가서는 싸우려다 싸우지도 못하고, 그만두자 해도 그만두지도 않는다. 두 어깨가 슬쩍 부딪치더니 각자가 불의에 서로 발꿈치를 물고 돌아가는 모양이 마치 지도리를 박은 물체가 도는 듯하다. 어느새 동쪽에 있던 기생은 서쪽으로, 서쪽에 있던 기생은 동쪽으로 위치를 바꾼다. 일시에 함께 몸을 돌려 이마를 맞부딪고 위에서는 넘실넘실 춤추고 아래에서는 씩씩거리고 있다.

싸움 때문에 검광이 현란하여 낯이 보이지 않는다. 혹은 자기 몸을 가리켜서 솜씨를 뽐내기도 하고, 혹은 부질없이 허공을 안으면서 온갖 태도를 다 한다. 사뿐사뿐 걷다가 날름 뛰어 땅을 밟지도 않는 듯하고, 걸음을 늘였다 줄였다 하여 미진한 기운을 뽐낸다.

무릇 치는 동작, 던지는 동작, 나아가는 동작, 물러나는 동작, 위치를 바꾸어 서는 동작, 스치는 동작, 떨어지는 동작, 빠른 동작, 느린 동작이 다 음악의 장단에 합치됨으로써 멋을 자아내었다.

이윽고 쟁그렁 소리가 나더니 검을 던지고 넙죽 절한다. 춤이 다 끝난 것이다. 좌석이 텅 빈 것같이 고요하여 말이 없다. 음악이 그치려는지 여음이 가늘게 흔들려 소리를 끌었다.



검무를 시작할 때 절을 하고는 왼손을 가슴에 대고 오른손으로 전립을 잡는다. 더디게 일어나는 자태가 몸을 이기지 못할 것 같으니 이것이 시조리(始條理)이다. 귀밑머리가 흐트러지고 옷자락이 어수선하게 나풀거리며 순간 몸을 뒤집으며 훌쩍 검을 던지는 것이 종조리(終條理)이다.]

시작부터 끝까지 검무의 전과정을 개괄하고 춤 동작과 자세, 분위기를 대단히 구체적으로 묘사하여 현장감을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남성이 아닌 젊은 여성이 군복을 입고, 군모를 쓰고서 양손에 칼을 들고 추는 춤은 그 이상한 부조화 때문에라도 호기심을 자아낸다.

박제가의 기록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 검무의 특징은 다이내믹한 동작에 있다. 특히 운심의 검무는 박진감이 넘쳤던 것 같다. 전통적으로 여성이 추는 춤 가운데 검무보다 동작이 크고 활발한 춤이 있었을까. 정적인 동작 위주로 짜여진 춤사위 사이에서 이렇듯 역동적인 검무가 등장했을 때의 충격을 생각해보면 이 춤이 불과 몇 십 년 사이에 전국적으로 가장 인기 있는 춤이 된 이유를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유례가 없는 역동성은 세상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박진감 넘치는 역동성에 비례해 춤이 끝난 뒤의 정적은 더욱 두드러졌을 것이고, 때문에 박제가도 “좌석이 텅 빈 것같이 고요하여 말이 없다”고 묘사했을 것이다.

하지만 운심은 무대에 올라서도 곧바로 춤을 추지 않고 일부러 질질 끌었다고 한다. 숨죽여 기다리던 관객이 조바심칠 때 비로소 빠른 춤사위를 펼쳐나갔다는 것이다. 그런 행동을 두고 “세상에서 이른바 운심의 태도라는 것이 이런 것”이라고 증언한 사람이 있다. 이를 보면 운심은 관중의 심리까지 요리할 줄 알았던 무용가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 이야기는 ‘동야휘집(東野彙輯)’에 실린 ‘운심의 집에서 광문이 춤을 구경하다(雲妓家廣文觀舞)’에 나온다.

연암의 눈에 비친 운심

밀양 기생 운심은 서울에 올라온 뒤 일약 장안의 제일가는 기생으로 명성을 떨쳤다. 도도하고 춤 잘 추는 기생으로 한 시대에 명성이 자자했고, 그 명성이 19세기까지 전해질 정도였다. 운심이 서울에서 이름을 얻어 뭇 사내들의 환심을 산 광경은 우연히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의 글에도 등장한다.

연암은 젊은 시절 당대의 유명한 거지왕초 광문(廣文)을 묘사한 소설 ‘광문자전(廣文者傳)’을 쓴 일이 있는데, 이 유명한 전기의 마지막 대목에 광문이 한양 명기 운심의 집에서 검무를 구경하는 장면이 나온다. 당대 최고 협객의 이야기에 운심이 등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연암의 전기를 읽어보자.

[한양의 명기는 자태가 우아하고 용모가 아리땁다고 할지라도 광문이 성가(聲價)를 올려주지 않으면 한 푼어치 값도 나가지 않았다. 우림아(羽林兒·대궐의 경비와 임금의 의장(儀仗)을 맡은 근위병)와 각 궁전의 별감(別監)들과 부마도위궁(駙馬都尉宮·임금의 사위가 사는 저택)의 겸종(탙從·청지기)들이 뒷짐을 지고 운심의 집을 찾았다. 운심이 이름난 기생이었기 때문이다. 마루 위에 술상을 차리고 가야금이 연주되자 운심에게 춤을 추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운심은 일부러 지체하면서 좀체로 춤추려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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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안대회 영남대 교수·한문교육 ahnhoi@yumail.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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