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1월호

30여년 투병해온 탤런트 김성원씨 “당뇨병을 친구처럼 여기며 ‘동거’하세요”

  • 글: 김진수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jockey@donga.com

    입력2004-10-28 13: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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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여년 투병해온 탤런트 김성원씨 “당뇨병을 친구처럼 여기며 ‘동거’하세요”
    “기다려봐, 내게 다 묘안이 있으니….”

    얼마 전 종영된 SBS 주말드라마 ‘파리의 연인’에서 주인공 한기주(박신양 분)와 강태영(김정은 분) 사이를 떼어놓으려 절치부심하는 한성훈 회장 역을 열연한 탤런트 김성원(金聖源·68)씨.

    강인하면서 완고해 보이는 인상과 굵고 우렁찬 목소리. 매정한 가부장 역할을 주로 맡아온 연기 이력과 달리 일상에서의 그는 달갑잖은 당뇨병과 30여년을 ‘동거’해온 환자다.

    “당뇨병은 정말 무서운 병입니다. 언제 어떻게 합병증이 생길지 몰라요. 완치를 위한 묘안 따윈 없습니다. 그저 꾸준한 식사·운동·약물 요법으로 혈당조절을 잘하는 수밖에…. 이걸 보세요. 단 한번도 빠뜨린 적이 없어요.”

    폭음·폭식이 불러온 당뇨병



    10월5일, 김씨는 처음 만난 기자에게 웃옷 호주머니부터 뒤집어 보였다. 그의 호주머니엔 늘 ‘비상약’이 들어 있다. 갑작스레 저혈당증이 나타날 때 즉시 당질섭취가 가능한 초콜릿, 양갱, 초코파이류 등이다. 짧은 해외여행이라도 할라치면 휴대하는 각설탕만 한 움큼이다.

    평양 태생인 김씨는 서라벌예대 1학년이던 1956년 당시 기독교방송 성우로 방송계에 입문한 뒤 1968년 TBC(동양방송) 개국 때부터 연기를 시작, TV와 연극무대를 통해 폭넓은 활동을 해왔다. 1995년부터 8년간은 TV를 떠나 연극에만 전념, 뮤지컬 ‘해상왕 장보고’에 출연해 세계 26개국 38개 도시에서 투어 공연을 갖기도 했다.

    김씨가 자신의 지병을 알게 된 건 우연한 기회를 통해서다. 1970년 절친한 후배 탤런트 김세윤(64)씨가 종합건강검진을 받았다는 말을 듣고 호기심에서 검진을 받았다. 검진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담당의사가 나 대신 아내를 불러 검진결과를 알려줬어요. 당뇨에다 심장, 혈압, 기관지 등 온전한 데가 별로 없었어요. 약도 엄청나게 받아왔더라고요. 그때 내 나이가 30대 중반이었으니 정신적 쇼크가 엄청났지요.”

    의사는 “겁내지 마라, 죽을 때까지 평생 갖고 가는 병이니 관리만 잘하면 된다”고 조언했지만, 그저 앞이 캄캄할 따름이었다.

    그때부터 김씨는 소식(小食)을 실천하기 시작했다. 당시 그의 키와 몸무게는 175cm에 89kg. 허리 사이즈도 37∼38인치나 됐다. 게다가 원체 대식가였다. 세무서 직원의 외동아들로 자라 어릴 때부터 초콜릿을 입에 달고 살아온 건 그렇다손 치더라도 한 끼 식사로 볶음밥과 울면, 군만두 1인분을 너끈히 먹어치울 정도였다. 앉은자리에서 생고기 10인분은 기본이었다. 주량도 엄청나 일단 맥주컵에 부은 소주를 석 잔쯤 연거푸 들이켠 뒤 본격적인 술자리를 시작하곤 했다.

    그런 김씨에게 소식은 그야말로 ‘형벌’에 가까웠다. ‘먹어도 되는 음식’과 ‘먹어서는 안 될 음식’의 현실적 격차는 매우 컸다. 그래도 그는 자신의 말로는 ‘겁이 많아서’라고 했지만, 지병을 치유하겠다는 일념에 꾸준히 소식을 해나갔다.

    ‘제2의 고향’인 강원도 원주에서 유치원과 초등학교를 함께 다닌 짝꿍이자 40여년을 그와 해로하며 2남1녀를 출가시킨 동갑내기 부인의 내조 또한 대단했다. 율무 보리 현미 수수 기장 등을 섞어 지은 밥에 달걀 흰자로 옷을 입힌 주먹밥을 날마다 60∼70개씩 준비해주는 등 갖은 정성을 다했다. 임금 역을 많이 맡았던 김씨는 세트장의 용상(龍床)에서 주먹밥을 먹기도 했다고 한다.

    지금은 김씨 스스로 참치를 넣은 샌드위치나 잣죽 등 식사 대용식을 곧잘 준비하지만 부인은 여전히 그의 투병생활에 크나큰 버팀목이다. 식기를 어린이용으로 바꾼 남편이 하루에 7끼씩 먹는 소식을 뒷바라지한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하지만 바쁜 촬영 스케줄 때문에 식사조절이 쉽지 않았다. 제때 식사를 하지 못하는 데다 여러 사람과 어울리다 보니 과식과 과음이 이어졌다. 젊은 시절 김씨는 운동을 꽤 한 편이다. 연예인 축구·야구·볼링팀 단장을 맡을 만큼 건강체질이었다. 그러나 작품을 많이 맡게 되면서 운동할 짬을 내기도 쉽지 않았다.

    마침내 어느 날 김씨에게 ‘위기’가 닥쳐왔다. 1980년, 방송 일로 과로가 겹쳐 의식을 잃고 쓰러져 응급실로 실려간 것이다. 3일 만에 의식을 되찾은 그는 20여일의 입원기간 동안 ‘대오각성’하고 본격적인 치료에 돌입했다. 즐기던 담배도 완전히 끊었다.

    그후 김씨는 비교적 혈당조절을 잘해왔다. 그러다 몇 년 전 뮤지컬 ‘팔만대장경’의 워싱턴 공연 당시 극심한 저혈당증에 시달렸다. 식사한 지 2시간30분∼3시간이 지나면 어김없이 당분을 추가로 섭취해야 하는데 한참 쇼핑을 하느라 그만 깜빡 잊고 만 것.

    “그래도 일을 안 할 땐 괜찮은 편이에요. 하지만 촬영이다 뭐다 해서 정신없이 바쁘게 시간을 보내다 보면 몸의 리듬이 깨지면서 때때로 저혈당증이 생깁니다. 눈이 침침해지고 기운도 없고 몸이 저려오면서 그야말로 고통의 나락으로 빠져드는 거죠.”

    김씨는 1년7개월 전부터 경기도 안양 평촌동에 있는 한림대 성심병원 박성우 박사에게 진료를 받으며 경구용 혈당강하제 종류를 바꾼 뒤로 혈당조절이 좀더 잘 된다고 밝힌다. 그는 주치의의 지시를 잘 따른다. 7∼8년 전엔 많이 걷는 게 좋다는 주치의의 말에 승용차도 팔아치우고 걷기운동을 시작했다. 지금 그는 걷기 예찬론자다. 서울 영등포동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를 나서 천천히 걸으며 인근 백화점에서 쇼핑을 즐기기도 한다.

    구두를 신으면 발바닥이 너무 아파 촬영이 없을 땐 언제나 푹신한 농구화를 신는다. 한달에 한 번 평촌의 병원을 찾을 때도 많이 걸으려 계단을 오르내려야 하는 지하철을 이용한다.

    “아침식사 후 30분~1시간 정도 걷는 게 습관화됐어요. 걷기 전엔 혈당치가 175mg/dl인데 걷고 나면 정상치인 115mg/dl로 떨어집니다.”

    “걷기운동이 혈당조절에 큰 도움”

    김씨는 현재 혈당조절을 잘해나가는 편이라고 여긴다. ‘파리의 연인’ 촬영 당시 규칙적으로 식사를 못해 한때 혈당치가 190mg/dl까지 치솟기도 했지만, 종방한 뒤로는 혈당치가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다. 체중은 80∼82kg으로, 허리 사이즈는 34인치로 줄었다. 전립선 질환도 가진 터라 매일 토마토 주스도 거르지 않는다.

    김씨는 촬영현장에서도 ‘당뇨인’임을 수시로 강조한다. 덕분에 동료 탤런트나 스태프들은 그의 건강을 염려해 상황에 따라 적절한 배려를 잊지 않는다. 술자리를 피하는 것도 이제 그의 지인들에겐 자연스런 풍경이 됐다.

    “나는 인슐린 주사를 맞을 정도는 아닙니다. 아직은 합병증도 없어요. 하지만 나이가 나이인 만큼 노화가 점점 진행되면서 저혈당증에 빠지는 횟수가 1주일이나 열흘에 한 번쯤으로 잦아지고 있어요. 선후배 탤런트들 중에도 당뇨병 합병증으로 사망했거나 투병중인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김씨는 “당뇨병을 친구처럼 여기고 같이 생활해간다는 마음가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소식과 걷기운동을 꾸준히 실천하면서 주치의의 지시를 잘 따르는 것만이 당뇨병을 극복하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말을 같은 병을 앓는 환자들에게 꼭 해주고 싶다”고 덧붙였다.

    1시간30분간의 인터뷰를 마친 뒤 김씨는 내년 1월 선보일 악극 ‘어머니’의 대본을 읽어야 한다며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번에 맡은 역할도 매정한 아버지란다.

    “그래도 해피엔딩이에요, 하하. 당뇨요? 어쨌든 (병과) 사이좋게 지내면서 손자에게 아파트 사줄 때까지는 일하고 싶습니다. 단 무리하지 않고 몸 상태에 맞게 해야죠. 일과 생명을 맞바꿀 수는 없잖아요.”

    당뇨병 극복을 향한 그의 노력도 해피엔딩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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