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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선생님

김진경

‘이건 시련도 고초도 아니다!’…수갑 찬 채 마주친 선생님의 뜨거운 눈빛

  • 고진화 국회의원·한나라당 www.gocorea.or.kr

김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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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의 비극을 듣다

자율과 책임의식이 어느 정도 싹트자, 선생님께서는 잔잔한 내 마음에 돌을 던져 파문을 일으켰다. 파문은 김 선생님께서 1970~80년대 사회에 대한 분석을 들려주면서 시작됐다. 나는 법대에 진학해 판·검사가 되고 싶었고, 사회적 지위와 명예를 꿈꾸던 평범한 청소년이었다. 그러나 김진경 선생님과의 만남으로 내 인생은 180도 바뀌었다.

광주민주화운동이 발생한 지 2주 정도 지난 5월말이었다. 신문과 TV뉴스는 ‘광주사태’라는 제목을 통해 광주에서 폭동이 일어나 군과 경찰이 진압에 나섰다는 소식만 전하던 무렵이었다. 점심을 먹고 난 오후 수업시간에 김 선생님이 침통한 표정으로 교단에 올라섰다. 그리고 한참 후 입을 열어 우리에게 한마디를 건넸다.

“광주에서 일어난 비극을 알고 있느냐?”

우리들 대부분은 광주에서 유혈사태가 일어났다는 정도의 얘기밖에 들은 바가 없었다. 그러자 김 선생님은 고개를 숙인 채 책을 덮었다. 그리고 군사 독재정권이 광주에서 시민에게 발포하고 폭행과 가학행위를 저질렀다며 광주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당신도 광주의 비극에 대해 자세히 몰랐다가 한 지인이 광주에서 찍은 사진과 그의 생생한 수기를 접하고 나서 한참을 흐느꼈다고 했다.



선생님은 칠판 가득히 광주의 비극에 대해 써가며 암담한 현실과 민주정치에 대해 한 시간 내내 울분에 찬 강의를 쉬지 않고 진행했다. 충격적인 이야기를 전해 듣고, 내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설마 이것이 사실일까. 광주의 참상을 듣고 나서 나를 포함한 모든 학생은 흐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울었다. 선생님도 우리와 같이 흐느꼈다.

1980년 5월은 정말 슬펐다. 내 마음속엔 뜨거운 피가 돌기 시작했다. 광주에서의 함성은 내 인생을, 내 가치관과 꿈을 바꿔놓은 결정적 계기가 됐다. 훗날 대학에 진학해 광주 민주화운동을 담은 사진자료와 영상물을 볼 때마다 나는 고등학교 때의 그 뜨거운 피가 심장과 혈관을 타고 흐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실을 알고, 새로운 가치관과 인생의 목표를 찾기 시작한 나는 김진경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잦아졌다. 여름이 시작되던 계절의 문턱에서 학교 벤치에 앉아 선생님과 장래 희망에 대해 이야기하던 중 선생님이 갑자기 질문을 던졌다.

“지식인은 무엇이냐?”

선생님이 내게 처음으로 던진, 교과과정 밖의 질문이었다. 지식인? 설마 지식인이 무엇인지 모르셔서 물어보신 것은 아닌 듯한데, 내 입에서는 단 한마디 대답도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선생님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미소만 지으시곤 그냥 내 앞을 지나가버렸다. 그날 밤 나는 숙제도 하지 않고 ‘지식인이 무엇이냐?’는 숙제 아닌 숙제에 매달렸지만 신통한 답을 찾기 어려웠다.

그 다음날 수업시간이 끝나고 선생님을 찾아갔다. 선생님은 내가 올 줄 알았다는 듯이 반겨주셨다. 그리고 곧바로 지식인의 책임과 역할에 대해 나지막한 목소리로 차근차근 말씀을 들려주셨다.

많은 얘기를 하셨지만 결론은 간단했다. 배운 만큼 실천하고 행동하는 것, 양심과 역사와 시대정신에 따라서 행동하는 것이 진정한 지식인이라는 것이었다. 내게는 절반만 이해가 되는 강의였다. 역사와 시대정신. 도대체 그 정신은 교과서에 나오는 것도 아니었고 누가 내게 가르쳐준 적도 없는 생소한 개념이었기 때문이다.

지식인은 무엇이냐

나중에 든 생각이지만, 마치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것처럼 내 인생에서 충격과 희망이 동시에 다가온 순간이었다. 지난날을 돌이켜보면, 김 선생님이 내 가치관과 인생의 목표를 정해주신 분은 아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분명 판도라의 상자를 열게 해준 ‘열쇠지기’였다.

판도라의 상자에서 튀어나온 다음 과제는 ‘역사 주체로서의 시민의 역할’이라는, 더 어려운 내용이었다. 그 무렵엔 교육방침의 하나로 학생들이 위인전을 많이 읽게 했다. 역사의 위인과 영웅에 대한 글을 많이 접하면서 영웅주의 역사관이 마음속 깊이 자리잡던 때였다. 그러나 김진경 선생님은 ‘역사의 주체는 시민’이라고 해서 충격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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