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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선생님

김진경

‘이건 시련도 고초도 아니다!’…수갑 찬 채 마주친 선생님의 뜨거운 눈빛

  • 고진화 국회의원·한나라당 www.gocorea.or.kr

김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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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경

지난 5월 청와대 사회정책수석실 교육문화비서관이 된 김진경 선생(왼쪽)과 고진화 의원.

아무런 힘도 없는 시민이 어떻게 역사의 주체가 되는 것일까. 어려운 개념도 예를 들어 쉽게 설명해주는 것이 선생님의 특기이자 장점이었다. 방과 후 선생님은 자장면을 사주시면서, 해방전후사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광복 이후 과거 청산을 하지 못한 채 현재에 이르게 한 우리의 과오가 있었으며, 평범한 시민의 힘으로 독재정권을 바꾸고 경제발전의 토대를 닦고 민주화를 이뤄가는 과정이 평범한 시민의 위대한 힘이라고 하셨다.

광주민주화운동이 내 가치관을 바꾸는 중요한 계기였다면, 민족정신과 평화에 대해 나눈 선생님과의 대화는 훗날 나의 정치적 비전에 큰 영향을 줬다. 학생운동과 시민운동을 하면서 틈틈이 한국 현대사와 민족사에 대해 공부하게 됐고, 그러던 와중에 장준하 선생과 김구 선생의 삶을 접하며 큰 감동을 받았다. 이후 1990년대, 민족정신과 평화애호 정신에 대한 갈망은 더욱 커졌다.

‘문화대국론’을 주창하며 남과 북을 하나의 조국으로 이어야 한다고 주장한 김구 선생. ‘자유와 민권’을 향한 비타협적 저항정신의 상징이자 ‘사상계’로 커다란 족적을 남긴 행동하는 지식인 장준하 선생에 대한 이미지가 방황하는 젊은 청년의 가슴에 그려지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때 민족정신에 대해 눈뜨고, 대학교 때 민족사를 공부했으며, 이후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김구 선생과 장준하 선생을 주저 없이 꼽게 됐다.

김진경 선생님은 당시로선 보기 드물게도 ‘남북한 평화체제의 정착과 화해와 교류를 통한 통일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 선구자였다. 국시(國是)는 반공이고, 이승만 정권 때 제기된 북진통일론을 외치는 사람이 여전히 많던 시절이라 선생님의 생각은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구치소에서 이뤄진 사제 상봉



1985년, 나는 미문화원 점거사건으로 경찰을 피해 다니다 결국 신민당 총재 사무실에서 민주헌법쟁취 연대투쟁을 제안한 후 경찰에 연행됐다. 서울시경 대공분실에서 십수일간의 조사를 마치고 검찰의 수사를 받기 위해 서대문구치소로 이송됐다. 감방에 있으면서 혈기가 끓어오르던 20대 젊은이의 가슴을 짓누른 것은 시경 대공분실의 천장이 아니라, 시민과 학생이 중심이 된 민주화 운동에 참여할 수 없게 된 현실이었다.

그때 김진경 선생님은 행동하는 지식인으로서 민주적 학교 개혁에 대한 글을 많이 쓰셨다. 군사정권에선 용인되기 어려운 주장이다 보니 그로 인해 선생님도 수감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서울대 국어교육과를 나온 선생님은 1985년 민중교육지 사건으로 1년2개월 동안 옥고를 치르셨다. 나도 당시 미문화원 점거로 3년 가까이 감옥에 있었다. 김진경 선생님이 서대문구치소로 이송된 시기는 공교롭게도 내가 서대문구치소로 이송되던 때와 일치했다.

검찰로 송치되던 그날 나는 교도관과 경찰의 요구에 따라 시선을 바닥에 고정하고 있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누군가가 내 머리에 손을 스치고 지나갔다. 고개를 들고 뒤돌아보는 순간 내 뒤를 지나 멀어져가는 한 사람이 있었다. 김진경 선생님이었다. 수갑이 채워지고 포승에 묶인 채 교도관에게 둘러싸여 있던 선생님, 단 1초라도 시선을 마주치려고 고개를 돌린 채 눈빛을 건네준 선생님…. 갑자기 주루룩 한 줄기 눈물이 솟구쳤다. ‘선생님이 왜 여기 계시냐’고 묻고 싶었다. 제자로서 송구스럽다고 말하고 싶었다. 누구도 알 수 없는 우리의 미래에 대해 토론하고 선생님의 가슴에 기대어 마냥 울고 싶기도 했다. 말을 걸 수도, 쪽지를 전할 수도 없는 상황이 답답하기만 했다.

그러나 김진경 선생님의 눈빛은 초여름 바람처럼 시원하게 느껴졌다. 이것은 시련도 아니고 고초도 아니다. 시대정신을 안고 살아가는 지식인의 참모습이다. 우리는 민주화운동의 동지로 여기에 선 것이다. 끝이 아니라 이제 겨우 시작이다. 선생님은 그런 뜻이 담긴 나지막하고도 뜨거운 눈빛을 내게 건넸다.

말 한마디 주고받지 않은 대화, 그러나 말보다 더 강한 마음의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사제의 만남이 이뤄졌다. 조사를 받고 돌아온 후 방에 앉아 선생님과의 추억을 떠올리며 앞으로 나아갈 ‘항해일지’를 미리 쓰면서 마음을 가라앉혔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김진경 선생님은 그날 밤 한 편의 시를 쓰셨다. 필기도구를 지참할 수 없었기에 선생님은 뾰족하게 간 나무젓가락을 책이나 은박지에다 눌러 희미하게 자국을 내서 시를 쓰신 것이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고진화’라는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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