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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 파탈의 독립선언 염정아 VS 냉혹한 살인마로 변신 엄정화

  • 조성아 일요신문 기자 ilyozzanga@hanmail.net

팜 파탈의 독립선언 염정아 VS 냉혹한 살인마로 변신 엄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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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원톱 주연

엄정화(34)는 사뭇 긴장하고 있었다. 그가 이렇게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보긴 처음이었다. 태연한 척 입술은 웃고 있지만 눈빛엔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첫 단독 주연을 맡은 영화 ‘오로라 공주’를 세상에 처음 내보이는 날, 엄정화는 그렇게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내보였다.

‘오로라 공주’는 한 아이의 엄마이자 연쇄살인범인 ‘정순정’의 이야기다. 엄정화가 연기한 정순정은 다섯 명을 잇따라 무참하게 죽이고도 유유히 세상을 활보하고 다니는 무자비한 인간이다. 정순정이 사람들을 죽인 데는 그가 생각하는 나름의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딸을 폭행하는 계모나 아무런 죄책감 없이 불륜을 저지르는 남자, 주변 사람들을 하찮게 여기는 불륜남의 상대여성…. 연쇄살인범에게 그 어떤 변명도 허락하지 않는 세상의 시선을 알 듯, 정순정도 자신이 저지른 일에 용서를 바라지 않는다. 그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고 할 수밖에 없는 일을 한 것뿐이다. 엄정화가 표현한 대로 정순정은 ‘과거의 가슴 아픈 일로 인해 온통 마음의 문을 닫고 복수를 위해서만 사는 여자’다. 그가 당한 가슴 아픈 일이란, 어린 딸아이가 성폭행을 당한 뒤 살해돼 쓰레기 매립장에 버려진 사건이다.

정순정이 택한 복수 방법은 연쇄 살인. 영화는 처음부터 정순정이 연쇄살인범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백화점에서 아이를 심하게 구박하는 계모를 찔러 죽이거나 마사지를 받고 있는 ‘싸가지’ 없는 여자의 콧구멍에 석고를 들이부어 죽이는 방법으로 순정은 한풀이를 한다. 남 보기엔 외제차 딜러로 일하는 세련된 커리어우먼이지만 그의 가면 속 진짜 모습은 잔혹한 살인마다.

‘오로라 공주’는 엄정화의 연기인생에 또 하나의 방점을 찍을 작품이다. 가수로서 이름을 알리고 간간이 배우로서도 명함을 내민 엄정화는 이제야 마침내 자신의 굴레를 벗어던진 듯하다. 가수로서도 배우로서도 자신이 가진 가장 큰 무기인 ‘섹시함’을 내세웠던 그가 처음으로 ‘맨얼굴’로 대중 앞에 선 것이다. 엄정화가 긴장한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화려한 메이크업, 풍만한 가슴과 히프를 강조한 섹시한 옷차림에 기대지 않고 순전히 연기력으로 승부하겠다고 다짐했으니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을 터다. 그는 아직도 정순정에게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았다. 엄정화는 고백하듯 말했다.



“‘어디선가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 때도 ‘싱글즈’ 때도 그러지 않았는데, 이번 작품은 역할에서 빠져나오는 게 너무 힘들어요.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니가 내 맛을 알아?”

잘 알려진 것처럼 ‘오로라 공주’는 엄정화가 ‘자원’해 출연한 작품이다. 배우 방은진의 감독 데뷔작인 ‘오로라 공주’는 시나리오 작업 단계 때부터 화제를 모았고, 우연히 시나리오를 읽게 된 엄정화는 얼굴만 아는 정도인 방은진을 무턱대고 찾아가 자신이 정순정 역을 맡아야 한다고 고집했다. ‘오로라 공주’ 출연에 대한 엄정화의 의지는 대단했다. 다른 배우 이름을 실명으로 거론하며 그보다 훨씬 잘할 수 있다고 큰소리쳤다. 기어이 주인공 역을 따낸 다음엔 영화에 나오는 단 한 장면을 위해 크레인 기사 자격증을 따기도 했다.

남녀를 불문하고 ‘섹시하다’는 말을 듣고 싶어 하는 시대다. 엄정화는 한국을 대표하는 섹시 아이콘이다. 여느 가수나 배우 못지않게 도발적이다. ‘싱글즈’에서 엄정화는 자유연애주의자 동미로 등장한다. 관습에 얽매이는 것을 유치하다고 생각한다. 이번 섹스상대가 마흔 몇 번째인가를 세고 있으니 두말 할 것도 없다. “니가 내 맛을 알아?” “남녀관계는 섹스로 시작해서 섹스로 끝난다”는 말을 서슴없이 한다. 그러면서도 남자 친구와 ‘쿨(cool)하게’ 섹스리스 동거를 한다. 일과 사랑에 있어 용기 있는 동미에게 적잖은 여성 관객이 대리만족을 느꼈을 것이다.

당당한 커리어우먼인 데다 자유분방한 연애감각을 지닌 동미는 친구로 등장한 나난(장진영)과 달리 통쾌함마저 안겨준다. 자신을 희롱하는 남자의 바지를 벗긴 뒤 목덜미를 잡아끌고 사무실 밖으로 내쫓는 당찬 면모. 부럽지만 아무나 가질 순 없는 모습이다. 동미는 바로 엄정화가 가진 이미지를 대변하는 역할이기도 했다.

가요 ‘몰라’를 부를 땐 또 어떠했나. 사이버 여전사 같은 차림새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몰라, 알 수가 없어” 하며 노래할 때 엄정화는 그 자체로 ‘섹시 아이콘’이다. 신곡을 선보일 때마다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하는 엄정화에게 사람들은 카멜레온 같다고도 했고, 변신의 귀재라고도 표현했다. 그렇게 엄정화는 지난 10년간을 섹시함을 무기로 세상을 살아왔다.

노출? 일부러 가리지 않을 뿐

하지만 엄정화는 언제나 목말랐다고 한다. 섹시한 이미지 때문에 정작 자신의 진짜 모습을 내보일 기회가 없었다. 대중은 청순한 엄정화보다는 섹시한 엄정화를 원했고, 풋풋한 메이크업을 한 얼굴보다는 화려하게 치장한 얼굴에 익숙했다. 드라마 ‘아내’를 찍을 때 일부에서 엄정화에게 질타의 시선을 보냈던 것도 그 때문이다. 엄정화는 진한 쌍꺼풀 때문에 극중 ‘현자’의 촌스럽고 억척스러운 캐릭터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가시 돋친 쓴소리를 들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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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아 일요신문 기자 ilyozzang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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