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내 인생의 선생님

신철수

‘국어 달인’ 울린 ‘국어 지존’의 준엄한 충고 “다시는 학교 올 생각 마라”

  • 주철환 이화여대 교수·언론홍보영상학 chjoo@ehwa.ac.kr

신철수

2/4
‘내가 우울할 때도, 배가 고플 때도, 화가 났을 때도 액자 속의 내 얼굴은 철부지처럼 늘 나를 보며 환하게 웃고 있다. 밤이 되어 하늘엔 별들이 나타났는데 액자 속의 나는 여전히 한낮의 동산에서 신나게 놀고 있다.’

초등학교 4학년 땐가 동구릉으로 소풍 가서 찍은 흑백사진을 작은 액자 속에 넣어두었는데 그걸 보며 별생각 없이 지은 시였다. 어찌 보면 시라고 할 수도 없는 조잡한 내용이었는데 선생님은 그걸 높이 평가하시고 교내 최고의 행사인 문학의 밤에까지 나가라고 등을 떠미신 것이다.

당시 웬만한 중·고등학교는 문학의 밤이라는 연례행사를 열었다. 분위기 있는 배경음악과 함께 희미한 조명 아래서 시를 낭송하는 자리인데, 볼거리가 많지 않던 시절이라 인근 학교 학생들도 많이 구경 오곤 했다. 그 해 ‘동북 문학의 밤’에는 당시 유명한 시인이던 김용호 선생님이 초대작가로 오셔서 강평을 하셨다. ‘곡마단 트럼펫 소리에 탑은 더 높아만 가고…’로 시작하는 ‘5월의 유혹’을 쓰신 분이다. 그 시는 당시 교과서에도 실려 있었다. 김 시인은 유독 내 이름을 거명하며 중학교 1학년 학생의 시로 매우 훌륭하다고 평가하셔서 수줍음 많은 나를 감격시켰다.

‘바둑이’ 선생님

별볼일 없던 나는 졸지에 동북의 스타가 되고 말았다. 행사가 끝나기 무섭게 인근 계성여고 문예반 누나가 나를 찾아왔다. 이정인이라고 자신을 씩씩하게 소개한 후 자기 학교 문학의 밤에 와서 그 시를 낭송해줄 수 있냐고 물었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 누나는 나중에 이화여대 법대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이민 가서 미주 한국일보 기자가 됐다. 지금까지 연락하며 지내는 절친한 사이다. 이화여대 교수로 오기 한참 전에 대학 홍보실에서 이화에 얽힌 추억을 써달라고 해서 그 누나와의 인연을 소상히 쓴 적이 있는데, 나중에 내가 이화여대 교수로 오게 됐으니 ‘참 세상은 좁구나’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문학의 밤 행사가 끝난 후 복도나 운동장에 신 선생님의 모습이 멀리서 보이면 호로록 달려가서 반갑게 인사를 했다. 선생님은 늘 조그만 몽둥이를 들고 다니셨는데 그걸로 내 옆구리를 찌르는 게 그분의 독특한 인사법이었다. 수업을 할 때 다른 학생들에게도 늘 그런 식으로 애정을 표현하셨다.

그분께 수업을 듣는 학생들은 선생님을 ‘바둑이’라고 불렀다. 자그마한 체구에 귀여운(?) 눈망울이 한눈에도 장난꾸러기 같아 보였다. 흔한 성함이어서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영희야, 철수야, 바둑아 이런 식으로 붙여진 별명임이 분명했다. 중학교 3학년 때 교내 백일장에서 나는 ‘고궁’이라는 시를 써서 장원을 했는데 선생님은 따로 나를 불러서 먹을 것까지 사주시며 격려하셨다. 중학교 3년 내내 선생님의 수업을 직접 듣지는 못했지만 선생님의 따뜻한 시선이 내 주변에 머물고 있음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이건 주철환도 모를 거야”

내가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 세칭 명문이라고 하는 경기·서울·경복중학교가 한꺼번에 없어지면서 경기·서울·경복고등학교는 그 중학생 숫자만큼 입학정원이 늘어났다. 동북중학교에 다니던 동기 중에도 공부깨나 하던 친구들은 그 3대 명문으로 많이 진학했다. 그러나 국어를 제외하고는 공부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던 나는 그 대열에도 끼지 못했다. 동북고등학교로 진학하는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천만다행인 것은 신철수 선생님이 동북중학교에서 동북고등학교로 자리를 옮기셔서 드디어 2학년 때부터 선생님께 국어를 배우게 된 일이었다.

선생님은 소문대로 국어의 대가, 아니 지존이었다. 전설로 내려오던 선생님의 국어수업은 매시간 내게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백제가요 ‘정읍사’를 가르치시는데, 처음 나오는 단어 ‘달’ 하나만 가지고도 칠판의 절반을 채우는 정도의 심화학습이었다. 그러면서도 학생들이 전혀 지루함을 느끼지 못하도록 알록달록 흥미로운 수업을 진행하셨다.

지금 돌아보니 선생님의 수업은 한 편의 미니시리즈와도 닮았다. 단순한 지식을 전달하는 게 아니라 사춘기 소년들의 심리와 생리를 완벽하게 이해하지 않고는 도달하기 어려운 경지의 학습법을 구현하셨다. 그때 벌써 교실 안의 ‘시청률’을 높이는 고도의 전략전술을 가지고 계신 분이 선생님이셨다.

나는 어느 시점에서 선생님의 분신이 되기로 마음을 굳혔다. 장차 유능한 국어교사가 되기로 굳게 결심한 것이다. 국어수업은 어느새 선생님과 나의 긴장감 넘치는 대결의 장이 되어가고 있었다. 물론 건방진 나의 일방적인 해석이다. 선생님과 대적(?)하기 위해 다른 공부는 안 해도 국어과목만큼은 복습 예습을 철저하게 했다. 없는 돈에 국어 참고서만 따로 두세 권 사봤을 정도다. 선생님은 이따금 “이건 주철환도 모를 거야”라고 하시며 회심의 미소를 지으셨고, 나는 이에 뒤질세라 “선생님 저도 그 정도는 압니다”하며 언필칭 국어의 달인 행세를 했다.

운명이 그렇게 가기로 계획을 세웠는지 고맙게도 선생님은 나의 고3 담임이 되셨다. 어린 마음에 장차 국어교사가 되려면 신 선생님이 다닌 서울대는 못 갈지라도 어느 정도 전통 있는 대학에 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일년 동안 나름대로 공부하는 흉내를 내봤다. 그렇지만 국어를 제외한 다른 과목의 실력은 일년 사이에 쉽게 늘지 않았다. 특히 수학과목이 취약했다.

2/4
주철환 이화여대 교수·언론홍보영상학 chjoo@ehwa.ac.kr
목록 닫기

신철수

댓글 창 닫기

2019/12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