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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밀항자’에서 일본 골프 재벌로, 이호진 이안골프그룹 회장

“골프장 사업 시작한 뒤 한국 이름 석 자 당당히 씁니다”

  • 구미화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hkoo@donga.com

‘밀항자’에서 일본 골프 재벌로, 이호진 이안골프그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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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항자’에서 일본 골프 재벌로, 이호진 이안골프그룹 회장
“커피숍에서 아내를 처음 봤어요. 아내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는데, 키가 커서 전 당연히 대학생이나 아가씨일 거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열다섯 살밖에 안 된 고등학생인 거예요(웃음).”

이미 빼앗긴 마음 되찾을 길 없어 그는 얼마간 교제를 하다 여학생의 집으로 찾아갔다. 결혼 승낙을 받겠다고.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않은 여학생과 결혼이라니, 어른들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호통을 치며 쫓아냈다. 그런데도 둘은 곧 동거를 시작하고 말았다. 그리고 2년 후 첫아들이 태어났다.

고교 졸업 후 하루에 2, 3개씩 직장을 바꿔가며 일하던 그는 가장이 된 후 아내와 함께 작은 스낵 바를 운영했다. 어린 자식 몸에 끈을 두르고, 그 끈을 가게 기둥에 묶어놓은 채 부부는 밤잠 못 자고 허리가 휘도록 일했다.

“고생은 했지만 제가 장사 수완이 좋았어요. 스낵 바가 잘되자 인근에 식당을 여러 개 열었어요. 그때만 해도 가라오케가 나오기 훨씬 전인데 ‘쇼펍(Show Pub)’이란 것도 시도했죠. TV에서 가수들이 노래하는 걸 보고 그대로 따라할 수 있을 때까지 연습해 아내가 만들어준 의상을 차려입고 손님들 앞에서 노래를 한 거예요.”

밥 먹고 술 마시면서 쇼도 볼 수 있으니 손님이 몰려드는 건 당연했다. 그는 돈이 모이면 가게 숫자를 늘렸다. 식당, 술집, 가라오케…. 오사카에서 ‘먹고 노는 현금 장사’로 기반을 다진 그는 29세 때 도쿄 북부의 사이타마현으로 생활 터전을 옮겼다.



“아는 분이 사이타마현에 곧 신칸센이 개통될 예정이라 부동산에 투자하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정보를 줬어요. 오사카에서 하던 장사를 정리하고 사이타마현 오미야시에 삼양개발주식회사를 만들어 부동산 개발·임대사업을 시작했죠.”

거품 붕괴가 몰고온 시련

부동산 개발업을 하기에는 자본이 넉넉지 않았던 그는 탁월한 장사수완을 활용했다. 낡고 허름한 건물을 싼 값에 구입한 다음 그 건물에서 직접 음식 장사를 시작한 것이다. 주로 ‘야키니쿠(燒肉)’, 즉 불고깃집이었다. 장사가 잘되면 건물 값어치도 따라서 올라갔다. 값이 오르면 팔아서 상당한 시세차익을 남기고, 또 다른 건물에 투자했다. 부동산 개발업을 하면서 노래방, 나이트클럽, 학원, 파친코 업소도 여러 개 운영해 ‘꽤 많은’ 돈을 벌었다고 한다. 그러다 1990년대 초반 일본 버블 경제가 무너졌다.

“일본 경제의 거품이 꺼지면서 교포 은행도 망해 교포 사회에 타격이 심했어요. 교포 은행이 망하자 한국인을 대하는 일본 은행의 태도도 싹 달라졌죠. 전 당시 사이타마 은행과 거래하고 있었는데, 부동산 사업을 하면서 빌린 돈을 은행에서 조기 회수하겠다고 달려드는 거예요.”

일본 은행에선 돈을 갚으라고 숨통을 조여 오는데, 교포 은행마저 문을 닫아 돈 구할 데는 없고…. 그는 결국 신속하게 부동산을 정리했다. 은행 담보 비중이 낮고, 장기적으로 투자 가치가 있는 최소한의 건물만 남기고, 나머지는 신속하게 팔아 현금을 확보했다. 그는 “더 많은 것을 얻으려 욕심 내지 않고, 작은 손해를 감수함으로써 더 큰 손실을 막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재산상의 손실은 최소한으로 줄였지만, 상실감이 컸다.

“경제적으로 어려워지니 교포들 사이에 반목이 심해졌어요. 전 파친코 업소를 여러 개 계속 운영하고 있었는데 일하는 낙이 없었어요. 정신적으로 가장 피곤할 때 골프장 운영을 맡게 된 거예요. 그 무렵 파친코 업소를 하나 맡아 하던 아들녀석도 그만두고 요리를 배우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아무래도 하늘이 내게 다른 일을 시키시려나 보다’ 생각하고 사이타마현에 벌여놓은 사업체를 모두 아내와 큰아들에게 맡기고 저 혼자 토니원 골프장이 있는 홋카이도로 떠났죠.”

부동산을 제외하고, 사이타마현에서 하던 사업은 대부분 정리했다. 큰아들은 현재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으며, 둘째아들은 미국 유학 중이다. 사이타마현의 부동산은 모두 부인이 맡아 관리하고 있다.

“50대에 골프 사업을 하고 있다는 게 참 행복해요. 물론 지금까지 해본 사업 중 골프장이 가장 돈이 안 되는 사업이에요. 하지만 다른 일을 할 때 느껴보지 못한 자부심이 들어요. 골프장에 오는 고객 대부분이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지위를 가진 분들이다 보니 느끼는 점도 많고요. 지금으로선 남은 일생 골프장 사업에만 매달리고 싶은 심정이에요. 큰돈이 안 돼도 직원들에게 월급 제때 주고, 천천히 투자금 회수하고, 고객들에게 큰 만족 주면 그만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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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화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hk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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