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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택 기자가 만난 사람

한국 영화 ‘원조 스타’ 최은희

“김정일은 나를 김일성에게 바치려 했어요”

  • 황호택 동아일보 논설위원 hthwang@donga.com / 사진·정경택 기자

한국 영화 ‘원조 스타’ 최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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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제작 못한 ‘칭기즈 칸’

-고인의 작품 하나하나에 다 사연이 있고 애착이 가겠지만 평소 어떤 작품을 대표작이라고 생각했습니까.

“당신 입으로 대표작에 관해 말한 적이 없어요. 이상하게 저도 그래요. 제가 수많은 작품에 출연했지만 작품에 만족해본 적이 없거든요. 이 양반도 당신이 만든 작품에 항상 뭔가가 부족한 느낌을 가졌어요. 주변에서는 첫째로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를 꼽죠. 그 외에도 ‘로맨스 빠빠’(1960) ‘상록수’(1961) ‘연산군’(1961) ‘빨간 마후라’(1964) ‘이조여인잔혹사’(1969)를 비롯해 좋은 작품을 많이 만들었습니다. 본인은 한번도 그런 걸 입으로 얘기한 적이 없어요.”

-최 선생님은 이들 작품에 모두 주연배우로 출연했지요.

“하여간 신 감독이 만든 영화 중에 좋다는 말을 들은 작품은 제가 안 나온 게 없어요. ‘연산군’은 외국인들도 좋아했죠. 이 양반은 북한 감옥에서도 머릿속으로 온갖 필름을 재편집하는 거예요. 감옥에서 할 일이 없으니까. ‘연산군’에서 어디를 잘라 불태워버리고 어떤 장면은 다시 찍고…. 인편을 통해 조카한테 비공식적으로 보내는 편지에 그런 구상을 담은 적이 있잖아요. 그 정도로 영화에 애착이 많았죠.”



신 감독은 북한 감옥에 갇혀 있을 때부터 영화 ‘칭기즈 칸’을 구상해 시나리오 원고를 완성해놓고 틈만 나면 손질할 정도로 애정을 쏟았다. 그러나 투자자를 찾지 못했다.

“애석하게도 그 작품을 못하고 돌아가셨죠. 북한 감옥에서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해 고치고 또 고치고, 계속 십몇 년을 그렇게 했죠. 칭기즈 칸의 웅대한 스케일을 담자면 막대한 제작비가 들지 않겠습니까. 미국에서도 찍으려고 시도했지만 출연진 문제가 걸렸어요. 백인을 출연시켜 만들면 칭기즈 칸 맛이 안 나죠. 국제적인 작품을 만들기 위해 칭기즈 칸 역에 동양계 미국인을 쓰려고 했어요. 시나리오가 남아 있죠. 초원이 너르고 말이 많은 헝가리 부다페스트 쪽에서 찍으려고 구상했어요. 로케이션 헌팅 다 하셨어요. 타슈켄트까지 갔으니까.”

-회고록을 쓰고 있다면서요. 언제 출간됩니까.

“초고(草稿)를 써놓았는데 마음에 들지 않아요. 작가가 도와주고 내가 다시 고치고,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결혼, 이혼, 북한에서 재결합. 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한 삶을 산 이 부부는 지난해 결혼 50년 금혼식을 하려고 준비했다.

“행사를 치를 만큼 몸이 좋지 않아 금년 가을로 미뤄놓았죠. 그때 둘이 함께 자서전을 써서 발표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이 양반이 덜커덕 돌아가셨어요. 이 양반도 초고는 다 써놓았습니다. 언젠가는 이걸 내가 완성하고 가야지요.”

-두 분에 관해서는 수많은 인터뷰, 기사, 책, 다큐멘터리가 나왔죠. 회고록에는 지금까지 소개되지 않은 비화(秘話)가 많이 있습니까.

“많죠. 자서전은 자기 치부를 다 드러내야 되는 거 아닙니까. 미화하면 자서전이라고 볼 수 없죠. 과거를 다 드러내놓고 정말 팬 여러분한테 공정한 심판을 받는 기분으로 쓰려고 했어요. 내용은 지금 얘기할 수 없습니다.”

배신과 이혼

-50년을 함께 살았는데 두 분 사이에 자녀가 없어 서운하지 않습니까.

“우리 애들이 효도하고 있어요. 큰아들이 맏상제 노릇을 잘 했어요. 미국에서 사는 둘째아들(상균)도 달려와서 같이 하고. 내가 출산은 못했지만 아주 흐뭇했어요.”

신 감독은 영화배우 오수미씨와의 사이에 1남(상균) 1녀(승리)를 뒀다. 오씨는 신씨가 납북된 뒤 사진작가 김중만씨와 재혼해 살다가 하와이에서 교통사고로 숨졌다. 최씨는 북한에서 탈출해 미국에 정착한 뒤 상균과 승리를 미국으로 불러 공부를 시켰다. 승리씨는 동국대 연극영화과를 나와 연극을 한다.

납북 수기를 쓰기 위해 미국에서 6개월 체류했던 김일수씨는 “오씨의 소생들을 자상하게 가꾸는 모습이 감동적이었다”고 거들었다. 신 감독은 홍콩에서 납북된 최은희씨의 행방을 추적하면서 김 특파원의 도움을 받았다. 신 감독이 북한을 탈출하자 한국의 언론매체들이 수기(手記)를 따기 위해 거금(巨金)을 제시하며 경합을 벌였는데 아무런 조건 없이 김 특파원을 수기 집필자로 지목했다. 잘나갈 때 거들면 빛이 안 나지만 어려울 때 도와준 인연은 평생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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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택 동아일보 논설위원 hthwang@donga.com / 사진·정경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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