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8월호

김영재 전 금감위 대변인이 전하는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그는 여전히 기타리스트 불러놓고 폭탄주 돌리는 풍운아”

  • 박성원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parker49@donga.com

    입력2006-08-14 10: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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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재 전 금감위 대변인이 전하는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몇달 전, 외환은행 헐값 매각 사건을 취재하던 한 경제주간지 기자는 수사의 칼날이 이헌재 전 재경부 장관 겸 경제부총리로 향한다고 판단했다. 그는 이 전 부총리에 대한 인물탐구 기사를 쓰겠다고 편집장에게 보고했다. 편집장은 오케이. 그러나 이 소식을 전해들은 회사 대표가 기자를 불러 말했다.

    “이헌재에 대해 나보다 더 많이 알고 있으면 써라.”

    결국 기자는 취재를 포기했다. 이 회사 대표는 경제부 기자 경력이 30년에 가까운 베테랑. 기자는 그만큼 이헌재를 알고 있다고 ‘감히’ 자신할 수 없었다.

    이헌재(李憲宰·62) 전 경제부총리. 그를 좀 안다는 사람들은 주저 없이 “이헌재를 잘 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에 관해 입 밖에 내는 것은 매우 조심스러워 한다. ‘이헌재를 키웠다’는 김용환 전 의원도 “그는 남이 자신에 대해 말하는 것을 싫어한다”며 무뚝뚝하게 전화를 끊었다. 이 전 부총리와 행정고시 동기이자 재무부에서 함께 사무관 생활을 시작한 신명호 한국 HSBC 회장도 마찬가지였다. “가끔 골프나 같이 치는 친구”라고 한마디 하고는 입을 꾹 다물어버렸다.

    ‘이헌재 사단’이라고 불리는 사람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이 전 부총리가 한국신용평가 사장으로 근무할 때 능력을 인정받아 인연을 쌓은 이성규 전 국민은행 부행장이나 서근우 하나은행 부행장도 말을 아꼈다. 이성규 전 부행장의 경우 이례적으로 이 전 부총리에 대해 공개적으로 언급한 적이 있다. 2004년 그는 ‘이헌재식 경영철학’이란 책을 펴내 이 전 부총리와의 인연 등을 책머리에 소개했다. 그러나 317쪽의 두툼한 책에 ‘이헌재’란 단어는 딱 세 번 나온다. 그도 기자의 인터뷰 요청에 묵묵부답이었다.



    끝없는 정적

    더욱이 지금은 이 전 부총리에게 극도로 예민한 시점이다. 검찰 소환을 앞뒀기 때문이다. 그는 론스타의 외환은행 헐값 매입 시비에 휘말려 출국금지조치를 당했다. 재경부 장관을 그만두고 김·장 고문으로 있을 때 김·장이 론스타의 법무자문을 했기 때문이다. 검찰은 이 전 부총리가 김·장에서 월급을 얼마나 받았는지도 조사했다고 한다.

    시기가 시기이니만큼 이 전 부총리를 직접 만날 수는 없었지만, 그가 지금 무슨 생각에 잠겨 있는지는 엿볼 수 있었다. 거의 매일 이 전 부총리를 만난다는 측근 중 한 사람은 기자에게 이렇게 귀띔했다.

    “이 장관은 지금 중국 혁명가가 쓴 ‘회상’이란 책에 심취해 있다.”

    2003년 번역 출간된 ‘회상(나의 중국혁명)’이란 책은 왕범서란 트로츠키주의자가 중국에서 활동한 얘기를 일기 형식으로 기술한 자서전이다. 2002년 사망한 왕범서는 중국공산당과 사상투쟁을 하다가 여러 번 투옥된 인물로, 이 책에서 1919년 5·4운동부터 1949년까지의 중국 역사를 기술했다. ‘회상’이란 제목이 이 전 부총리의 요즘 심경을 대변해주는 듯하다. 독서광(狂)인 그가 이 책에 심취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 책에는 저자의 다음과 같은 고백이 나온다.

    “조그마한 섬(마카오)에 칩거하게 된 지도 8년이 지났다. 나는 시종일관 전세계에서 일어나는 변동을 주시해왔으며, 특히 공산당 통치하의 중국에서 일어나는 변동에 주의를 기울였다. 생각이 정지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절대고독의 상황에서, 뇌의 활동은 도리어 더욱 긴장되었다. (중략) 몇 년 동안 나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지경에 처해 있었다. 모든 것을 잃은 그 자리에는 끝없이 고요한 정적만이 찾아들었다. 고독은 사람을 우수에 젖게 만들고, 침체는 결국 사람을 뒤돌아보게 한다. 어떤 일과 어떤 사람들은 마음에 남아서 흡사 ‘목에 가시가 걸려 있는’ 것처럼 뱉어내지 못해 편치 않았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의 마지막 공직생활일지 모를 지난 경제부총리 시절, 청와대 386 참모들과 빚은 마찰. 그 시절, 경제를 회생시키지 못했다는 자괴심. 그를 두고 쏟아져 나오는 음해성 루머들.

    시계를 좀더 뒤로 돌리면, 금융감독위원회(이하 금감위) 위원장 재직 시절에 직접 지휘한 숱한 구조조정, 그 와중에서 대우와 김우중 회장의 몰락. ‘구조조정의 달인’이란 찬사를 받으면서도 김대중 정권 시절 두 번의 내사(內査)를 받았던 상처. ‘이헌재 사단’이라는 말까지 생겨났지만, 외로울 때면 아무도 그의 곁에 없던 고독.

    요즘 그는 절대 책은 쓰지 않겠다던 결심을 바꿔 자서전을 쓸 것이라는 소문이 들린다. 언론과의 접촉을 극도로 기피하던 태도에서 벗어나 조만간 허심탄회하게 소회를 밝히려 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그는 “적어도 억울한 것은 없어야겠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억울한 것, 그게 뭘까. 이 전 부총리와 가까운 김영재 칸서스자산운용 회장(전 금감위 대변인)에게 그의 근황을 물었다. 김 회장은 이 전 부총리를 ‘이 장관’으로 불렀다.

    “억울한 것은 없어야겠다”

    ▶이 전 총리가 요즘 술을 많이 입에 댄다는 얘기를 들었다.

    “예나 지금이나 다를 게 없다. 마음에 드는 사람 만나면 폭탄주 두어 잔 마신다. 과하게 마신다는 건 음해성 소문 같다.”

    ▶포장마차에서 세월을 보낸다는 풍문도 있다.

    “포장마차에도 가고, 신라호텔에도 간다. 며칠 전엔 대방동 갈치구이집에도 갔다. 물 흐르는 대로 가는 게 그분 생활이다. 이 장관은 술을 요령껏 마시기 때문에 정도를 넘지 않는다. 매일 단전호흡하고, 1시간 이상씩 뛴다. 늘 책 보고 공부한다. 사람도 많이 만난다. 다만 화병이 나서 건강을 해칠까봐 염려스럽긴 하다.”

    ▶화병이라면 청와대 386 참모들과 맞서다 경제부총리를 그만둔 것 때문인가.

    “자기들 기준으로 사람을 재면 문제가 발생한다. 이 장관보다 더 많이 공부한 사람도 많겠지만, 그렇게 하면 안 된다. 금감위원장 시절에도 집권세력이 음해했지만 다 견뎌냈다. 다만 억울한 일은 없어야겠다는 게 이 장관의 생각이다.”

    ▶억울한 일이라는 것이 뭔가.

    “그건 말 안 하겠다. 정치적 배경이 있었겠지. 이 장관이 청와대 386 참모들에게 ‘경제 공부 좀 해라’고 한 것이 문제를 일으킨 것 같다. 그뒤, 이 장관이 노무현 정권의 부동산 정책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자 곧바로 이 장관의 부동산 문제가 터졌고, 결국 사퇴했다. 그리고 (이 장관의 사표를 수리한) 대통령 판단에 문제가 없었다는 것을 입증이라도 하듯 국세청에서 조사를 했는데, 문제가 없는 것으로 나왔다. 그뒤 시민단체에서 고발해 검찰이 수사했지만 역시 문제가 없었다.”

    ▶이 전 부총리는 외환은행 헐값 매각 시비에 휘말려 있다. 이 전 부총리는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매입하던 때 론스타의 법률자문을 맡은 김·장의 고문이었다.

    “그 분은 외환은행 근처에도 안 갔다. 아는 사람은 다 안다. ‘라인’이 어떻고, 누가 개입했는지. 이 장관이 2003년 김·장에 있던 것은 ‘고향’으로 돌아간 것에 불과하다. 이 장관과 김·장은 인연이 깊다. 김·장 김영무 대표와 이 장관은 로펌 설립 때부터 함께 고민하던 사이다.”

    ▶2003년 외환은행에서 10억원의 특혜대출(우대금리 적용)을 받은 것이 문제가 됐다.

    “2001년 가을, 이 장관이 18년 동안 살던 양재동 집에 도둑이 들었다. 집에 들어가려다 창살이 휘어져 있는 것을 보고 이 장관이 나를 불렀다. 무서워서 못 들어가겠다고. 달려가 보니 나도 무서울 지경이었다. 이 장관 부인이 ‘도둑 든 집에 살고 싶지 않다’고 해서 양재동 집을 팔고 누군가의 소개로 한남동 집을 샀다. 그때도 예금이 20억원 있었다. 그런데 모두 기한이 정해진 예금이었다. 중도금 낼 때 대출 받아 집어넣고, 잔금 낼 때 또 대출받아 넣었다. 특혜대출이라고 비난하는데, ‘이헌재’란 이름에다, 현금도 몇십억 있는데, 당연히 은행이 최고 우대금리를 적용해줄 것 아닌가. 그래도 돈 갚을 때는 저축은행에 해지 수수료까지 물면서 예금을 뺐다. 그게 무슨 특혜대출인가.”

    ▶이 전 부총리의 측근인 변양호씨가 구속됐다.

    “지금 와서 얘기지만, 변양호씨와 이 장관은 한 번도 같이 일한 적이 없다. 이 장관의 마음에 들었으면 중용됐을 것이다. 이 장관이 재경부 장관일 때 그는 국방대학원에 파견됐고, 부총리로 들어갈 때는 대기 발령났다. 그러다 변양호씨가 그만두고 나간다니까 금융정보분석원장으로 보냈다. 변양호씨는 이 장관의 측근이 아니다.”

    ▶이 전 부총리가 일부러 그렇게 한 것인가.

    “모르겠다. 아무튼 두 사람은 생각이 다르다. 이 장관이 금감위원장일 때 그의 의견에 주로 반대하던 사람이 재경부 변양호 국장과 김석동 차관이다. 그렇지만 이 장관은 김 차관을 아꼈다. 관료 중에선 그가 총애를 받았다. 그만한 관료가 없다. 전문성 있고, 판단력 빠르고.”

    ▶이 전 부총리와 ‘이헌재 사단’이 비판의 도마에 오르는 것은 금융시장에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했기 때문 아니겠나.

    “관치(官治)냐 시장이냐 하는데, ‘완전 시장’이란 것은 불가능하다. 시장이 제대로 돌아가려면 가이드라인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은 거시적인 시각에서 나온다. 시장은 존중하지만 시장이 돌아가지 않는다면 조정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보자. 금호그룹에 매각된 대우건설의 가치가 대략 3조1000억원이라는 데 이견이 없는 것 같다. 그런데 6조2000억원에 팔렸다. 인수한 회사는 돈을 마련하기 위해 적어도 5조원 이상은 펀딩을 받아야 한다. 이자 비용만도 어마어마하다. 이게 결국 다 국민의 부담으로 돌아간다. 대우건설 입찰자를 평가할 때 인수가격보다 평판 등을 고려한 정성평가를 세밀하게 했어야 한다. 금융시장은 경험 있고 연륜 있는 리더가 세밀하게 조정해야 한다.”

    “똑똑하니까 반발하지”

    ▶금융계 인사에 관여하는 것이 ‘조정’이란 뜻인가.

    “장관이 인사(人事)하지, 누가 하는가. 과거엔 다 그렇게 했다. 그런 절차를 존중했다. 누가 증권사 사장을 은행장으로 발탁하겠나(김정태 전 국민은행장의 경우를 의미하는 듯). 이 장관이 금융계의 풍토를 바꾼 것이다. 그게 뭐가 잘못됐나.”

    ▶김정태 행장은 이 전 부총리에게 자주 반발하곤 했는데.

    “똑똑하니까 반발하지. ‘오리지널 이헌재 사단’의 일원이라면 반발도 한다.”

    ▶김재록씨가 구속될 때 김씨가 이 전 부총리와 가깝다는 얘기가 많았다. 김씨 또한 이헌재 사단의 멤버 아닌가.

    “우리도 이 장관에게 ‘왜 김재록 같은 사람을 만나느냐’고 몇 차례 얘기했다. 그런데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잡지 않는 게 이 장관 성격이다. 김재록씨의 말이 들을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 사람이 이 장관에게 와서 얘기하니까 그저 들어준 것뿐이다. 그런데 마치 이 장관이 자기(김재록) 편인 양 얘기하니까 문제가 된 거지.”

    ▶김영재 회장은 이 전 부총리를 내세워 일한 적 없는가.

    “오리지널 사단은 그렇게 일하지 않는다. 나름대로 다 능력 있는 사람들이다. 학자들도 있고 현장에서 뛰는 사람도 있는데, 모두 평범하다. ‘사단’이라고 해야 10명쯤 된다. 일종의 이 장관 싱크탱크로 보면 된다. 매일 이 장관에게 숙제 받아서 하고, 숙제검사 받다 혼나고, 그러다가 폭탄주 한잔 마시고 돌아가서 다시 숙제하고…. 다 그랬던 사람들이다.”

    ▶요즘 이 전 부총리는 무엇에 관심이 있나.

    “부동산 문제에 관심이 많다. 부동산 문제는 본인 재임 때부터 시작된 것이라 걱정이 많다. ‘경기를 살려야 하는데…’ 하면서. 거래세는 낮추고, 보유세는 감내할 수 있도록 10년의 기간을 두고 차츰 올리는 게 좋은데. 예고만 해도, 시장에선 대비한다. 한꺼번에 올리는 게 문제다. 당장 조세부담이 온다. 집 한 채 있는 사람이 누워만 있어도 세금을 내야 하니….”

    ▶미세 조정에 실패했다는 얘긴가.

    “똑똑한 사람이 많은데 왜 그걸 못하는지 모르겠다.”

    ▶이 전 부총리가 앞으로 무엇을 할 계획이라고 하던가.

    “‘이런 식으로 묻혀버리면 억울하다’는 생각이 있다. 역사 앞에 진실이 밝혀질 것이고, 본인도 움직일 것이다. 지금은 국가 공권력이 들여다보고 있으니 심판을 받아보고 난 뒤 소회를 밝힐 것이다.”

    김영재 전 금감위 대변인이 전하는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2005년 3월 경제부총리 사퇴 직전, 이 전 부총리와 노무현 대통령이 뭔가 의견을 나누고 있다.

    ‘부총리 이헌재’는 불행했다?

    김영재 회장은 인터뷰 말미에 “이 장관의 문제는 사람을 가리지 않고 만나는 것이다. 공직에선 실수하지 않는데, 지금도 기타 잘 치는 사람 불러서 술 마시고, 기분 좋으면 폭탄주 돌린다”며 “그는 풍운아”라고 했다. 검찰 조사에 대비해 변호사를 선임했냐는 질문에는 “그런 게 왜 필요하냐”고 되물었다. 문제될 것이 없다는 얘기다.

    지금은 청와대에서 나왔으나 노무현 정권 초기부터 지난해 초까지 경제분야 비서관으로 재직한 A씨는 이 전 부총리에 대해 “소신이 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더라”며 “대통령 앞에서 말을 세 번이나 바꾸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 전 부총리가 지금은 외환은행 헐값 매각 시비에 휘말려 있지만, 그에 대한 ‘진짜’ 비판은 경제부총리 시절 경제전문가의 면모를 제대로 보여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2004년 12월, 이헌재 당시 경제부총리는 국회 재경위원회에서 권문용 서울 강남구청장과 한바탕 설전을 벌였다. 이 부총리와 권 구청장은 경기고 동창으로 절친한 사이. 서로 속내를 털어놓을 만큼 친하지만, 그날만큼은 얘기가 달랐다.

    노무현 정부가 신설하려는 ‘종합부동산세’를 두고, 권 구청장은 “재산세를 국세로 가져가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며 반발했다. 그는 “종합부동산세를 신설하면 6000억원의 세금이 더 걷힌다고 하는데, 이를 전담할 국세청 직원 2000명의 월급 등을 제하면 4000억원 정도 된다”며 “전국 230개 시군에 나눠준다고 해도 20억원에 불과하며 이것이 지역균형발전을 촉진할지 의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이 부총리는 종합부동산세 도입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권 전 구청장은 당시 이 부총리의 태도를 납득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경제를 잘 아는 이 부총리가 부정적인 효과를 양산할 세금 도입을 주장할 리 없다는 얘기다. 최근에 만난 권 전 구청장은 “빌딩 주인들이 세금 올라간 만큼 임대료를 올려 결국 서민에게 부담을 전가하고 있다”며 “구청장 시절 헌법 소원을 냈고 지금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2004년 이 부총리와 논란을 벌인 뒤 청와대 관계자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이 부총리가 노무현 대통령 앞에서 ‘종합부동산세는 국세가 아니라 지방세로 도입해야 한다’고 몇 차례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노 대통령이 ‘대통령으로서 이것 하나는 꼭 해야겠다. (종합부동산세 도입은) 넘버원 사업이다’라고 했다더라. 이 부총리가 이 말을 듣고도 자신의 소신을 거듭 주장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부총리 시절, 그는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예측의 귀재’

    권 전 구청장이 기억하는 이헌재는 ‘예측의 귀재(鬼才)’다. 이 전 부총리는 대학 시절 친구에게 사법고시에 나올 문제를 정확하게 골라줘 그가 수석 합격하는 데 한몫했다. 이 전 부총리가 재무부 금융정책과장이던 1974년에 만들어놓은 금융 시스템 개혁 방안은 재무부가 그뒤 10년 동안 추진한 과제가 됐다. 권 전 구청장이 경제관료를 그만두고 1995년 구청장 선거에 도전했을 때 이 전 부총리는 “신한국당 출신은 강남구와 서초구만 빼고 서울에서 다 떨어진다”고 예언했다. 결과는 그대로였다. 권 전 구청장은 “그의 예견력이 국가발전에 활용되면 좋겠다”고 아쉬워했다.

    검찰 소환을 앞둔 지금도 이 전 부총리는 사람들을 만나 궁금한 것을 물어본다고 한다. 측근들은 그의 근황을 전하면서 “이 장관은 죽을 때까지 경제 문제로 머리를 꽉 채울 것”이라고 했다. 김대중 정권 초기, 정대철 의원의 차를 타고 청와대로 향한 이 전 부총리에겐 김대중 대통령과 딱 10분간의 면담이 허용됐다. 그러나 10분으로 예정된 면담은 3시간으로 늘어났고, 결국 그는 금감위원장으로 발탁됐다. 1979년 재무부를 떠나 이후 20년 가까이 야인 생활을 했지만, 늘 사람들과 만나 대화하면서 경제 현안을 풀어낼 복안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전 부총리는 우리 나이로 벌써 62세다. 50대 초반이 경제부총리가 되는 시대다. 게다가 그는 불미스러운 일에 휘말려 있다. 그의 앞길은 어떻게 펼쳐질까. 김영재 회장에게 그런 궁금증을 전하자 이렇게 대답했다.

    “후배도 많은데, 어떻게든 되겠지. 부총리도 두 번이나 했다. 꼭 본인이 공직을 맡아야 하는가. 훌륭한 후배를 격려할 수도 있고…. 상황이 중요하지 않겠는가. 상황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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