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내 인생의 선생님

체육인의 양심과 용기 일깨워준 참 축구인

“공도 잘 차고 공부도 잘해야 진짜 스포츠맨”

  • 신문선 SBS 축구해설위원 goal57@paran.com

체육인의 양심과 용기 일깨워준 참 축구인

2/3
체육인의 양심과 용기 일깨워준 참 축구인

축구 국가대표를 지내기도 한 신문선은 축구해설가, 축구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1985년 프로팀에서 은퇴한 후 20여 년간 방송 생활을 통해, 또한 신문과 잡지에 ‘신문선’이라는 이름을 내건 칼럼을 통해 축구 대중화와 개혁을 주창하며 얻은 것은 솔직히 마음의 상처뿐이다. 가까운 선배와 가족, 친구들은 “사회적 명성도 얻었으니 축구협회 집행부와 원만하게 지내며 대우받고 살지, 왜 굳이 십자가를 메고 가시밭길을 가느냐”며 걱정을 많이 한다.

축구계에서 중요한 사건이 일어나거나 성적이 부진할 때마다 내가 시퍼렇게 날을 세운 글을 쓰며 축구 개혁의 목소리를 높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체육학교 시절 선생님들에게서 수도 없이 들은 체육인의 양심과 참 용기에 대한 가르침 덕분이다.

‘패배는 죽음’

내 인생에 가장 영향을 끼친 분은 이미 고인이 되신 이계근 선생님이다. 치열한 경쟁에서 탈락하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앞만 보고 뛰던 중학교 3학년 때 처음 선생님을 만났다.

고교시절까지 축구선수를 한 선생님은 공군사관학교에 들어갔다가 퇴교당한 뒤 경희대와 실업팀에서 선수 생활을 하다 교사자격증을 받고 교사가 되셨다. 평범치 않은 이력만큼이나 선생님에겐 다른 교사들과는 다른 특별함이 있었다. 전공 실기인 축구연습시간에는 우리와 같이 운동 팬티를 입고 함께 달리고 넘어지고 뒹굴었고, 운동이 끝난 후 저녁 공부 시간에는 축구선수들을 모아 과외공부를 시켰다.



당시 선생님께서 강조하신 게 ‘패배는 죽음’이라는 말이었다. 우리를 강하게 담금질하시던 선생님은 축구부가 유도, 태권도, 농구, 배구, 육상 등 여타 종목 선수들과의 학과 성적 경쟁에서 이기지 못하면 엄청난 벌을 주기도 했다. 벌이란 운동선수들의 세계에서나 있을 법한 것으로, 요즘 같으면 상상도 못할 체벌까지 포함됐다.

1주일 혹은 10여 일간의 시험기간에는 축구연습도 중단하고 교실에서 집중적으로 시험공부를 시키기도 했다. 당시 선생님은 인간의 능력으로 며칠 밤을 새우며 공부할 수 있을지 알아보라는 과제를 내주며 시험공부에 매진하게 하기도 했다. 나는 꼬박 나흘밤을 새우며 공부하고 시험을 본 후 코피를 흘리며 쓰러진 기억이 있다.

이렇게 제자들을 다그치며 강하게 키운 이유를 훗날 내가 성인이 됐을 때 선생님에게서 직접 들을 수 있었다. 고등학교 때 축구선수였던 선생님은 어렵사리 공군사관학교 생도가 됐지만, 결국 학과공부 때문에 사관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퇴교 조치를 당해 방황했다. 선생님은 당신이 겪은 그런 아픔을 제자들은 결코 겪지 않게 해주고 싶었다고 한다.

선생님의 노력으로 강하게 단련된 우리 체육학교 축구팀은 고등학교에 진학해 ‘체육고 전성시대’를 활짝 열었다. 2학년부터 전국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3학년 때는 3관왕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전국고등학교선수권대회, 추계연맹전, 부산MBC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전국 최고의 팀이라는 금자탑을 쌓았다. 당시 많은 언론매체는 ‘공부하며 축구하는 체육고 축구팀 돌풍’이라는 제목을 뽑아 신바람난 연승을 보도하기 바빴다.

제자 옹호하다 쓰러지신 선생님

체육고 축구팀 경기가 있는 날이면 축구장엔 무려 2만여 명의 관중이 운집할 정도로 인기 최고였다. 당시 우리 팀이 인기를 모았던 것은 공부하면서 축구를 잘한다는 점도 있었지만 심판 판정에 승복하고 철저히 페어플레이 정신에 입각한 경기를 펼쳤기 때문이다.

상대가 넘어지면 일으켜 세워주고 주심의 판정에 절대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 시간을 벌기 위해 경기를 지연시키는 비신사적인 플레이를 하지 않았던 점도 팬들의 사랑을 받은 요인이었다.

이런 면모도 다 선생님의 가르침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교사이면서 현역 심판으로도 활동하시던 선생님은 늘 “심판 판정을 존중하고 정해진 룰에 따라 정정당당히 승부를 겨루라”고 강조하셨다. 이 가르침 덕분에 나는 연세대와 육군대표 충의팀, 대우축구단, 유공 프로축구단을 거쳐 1985년 현역에서 은퇴할 때까지 단 한 번도 퇴장당한 적이 없다.

2/3
신문선 SBS 축구해설위원 goal57@paran.com
목록 닫기

체육인의 양심과 용기 일깨워준 참 축구인

댓글 창 닫기

2019/12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