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육군항공단 소속으로 헬기를 조종할 때의 피우진 중령. 그는 군대 내 여성차별과 여성인권 침해에 맞서 온몸으로 싸워왔다.
그가 모 부대에 근무할 때였다. 일요일 오후에 상관이 “내무검사를 해야겠다”며 불쑥 들어섰다. ‘냉장고 하나가 전부인 개인 숙소에 내무검사라니…’ 하고 의아해하는데, 상관은 손에 들고 있던 피자를 내밀며 함께 먹자고 했다. 거절하면 무안해할까봐 “감사하다”고 하고는 냉장고로 가서 마실 것을 꺼내려는데 상관이 뒤에서 그를 껴안았다.
“놀라 가슴이 뛰면서 저도 모르게 주먹이 올라가는 걸 겨우 참았어요. ‘왜 이러십니까’ 하고 화를 내니까 민망한 표정으로 ‘아니, 냉장고에 뭐가 있나 보려고’ 하고는 슬며시 돌아가더라고요. 그 장교는 그나마 얌전한 편이었어요. 군에서는 각종 테스트가 많아요. 그럼 그걸 도와주겠다, 시험 문제를 알려줄 테니 내 방에서 공부하라며 접근하는 상관들도 있어요.”
1988년, 대위이던 그는 여군 부사관을 술자리에 내보내지 않아 사령관의 노여움을 샀다. 일직을 서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사령관이 나이트클럽에서 술을 마시고 있으니 그리로 오라고 하는 것을 거절했다. 며칠 후에는 여군 일직 사관이 전화를 걸어 사령관이 어느 여군을 보내라고 명령했다며 외출승인을 요청했다. 사령관이 다른 사람들과 술을 마시면서 분위기를 띄워줄 여군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미 여군 부사관들로부터 그 사령관이 툭하면 술자리에 여군을 불러들인다는 얘기를 들은 터였다. 어느 여군을 지목해서 보내라고 할 때도 있고 그냥 알아서 몇 명 보내라고 할 때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불러서는 옆에 앉히고 술시중을 들게 하면서 같이 노래를 부르거나 블루스를 추게 한다고 했다. 접대부가 따로 없었다. 게다가 올 때는 꼭 예쁜 사복을 입고 오라고 했다.
그는 그 여군이 아프다고 둘러대고는 외출승인을 내주지 않았다. 그러자 사령관 참모가 전화를 걸어 “빨리 보내라”며 욕을 해댔다. 고민 끝에 그 여군에게 전투복을 입혀 내보냈다. 덕분에 여군은 곧바로 부대로 돌아올 수 있었지만 그는 이 일로 꼬투리가 잡혀 보직해임을 당했다.
▼ 그 무렵엔 여군들이 술자리에 불려가는 게 일반적이었던 모양이죠?
“그랬어요. 저는 지휘관 생활을 오래 해서 여군학교, 특전사, 88사격단, 육군항공학교, 군사령부, 여군단, 국방부 등 여러 곳을 돌아다녔어요. 거기서 부대원을 관리하는 직책에 있다보니까 종종 부사관들이 제 방문을 노크하는데, 고민을 들어보면 남자 상관들이 자기네들을 어떻게 한다, 막아달라는 얘기가 빠지지 않았어요.”
사단장의 여군 성희롱 사건
피우진이라는 이름이 세상에 처음 알려진 건 2001년 발생한 사단장 성희롱 사건 때였다. 당시 그는 국방부에서 근무하고 있었는데, 모 부대에서 사단장이 여군 장교를 성희롱한 사건이 발생했다. 사단장은 결국 군복을 벗었지만 처음엔 반격이 만만치 않았다. 오히려 피해자인 여군 장교가 징계를 받기까지 했다. 그를 도우려면 현역 여군이 당당히 나서야 했는데 상명하복이 절대적인데다 상관에게 찍히면 어떻게 될지 뻔한 군조직의 특성상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때 적극 나선 사람이 피우진 중령이다.
“그 여군은 정말 큰 용기를 내서 얘기를 한 건데, 처음에는 다들 그 친구가 행실을 잘못해서 그런 상황에 이르렀다는 식으로 몰아갔어요. 가해자들이 계급이 높고 권력을 쥐고 있으니 성희롱이나 성추행을 그렇게 몰아가는 경우가 적지 않았죠. ‘여자가 조심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건 정말 몰라서 하는 이야기예요.”
당시 사건을 정리하면 이렇다.
소위로 갓 임관한 여군 장교가 모 사단 부관부에 배속됐다. 사단장은 업무보고를 하고 나가는 여군 장교의 볼을 가볍게 꼬집었다. 시작은 그렇게 단순했다. 그 자체만 보면 사단장이 딸 같은 여군 장교를 대견하게 여겨 격의 없이 친밀한 행동을 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