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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령이 쓰는 이 사람의 삶

무장무애의 자유인 수안스님

“먹고 죽자! 있는 것을 자꾸자꾸 죽여야 새것이 나와”

  • 김서령 칼럼니스트 psyche325@hanmail.net

무장무애의 자유인 수안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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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장무애의 자유인 수안스님

선화 그리기에 열중한 수안 스님. 그의 선화를 보고 있노라면 평화가 느껴진다.

이웃집 목수가 그 소년을 유난히 귀애했다. 목공소에서 잔심부름을 해주고 용돈을 얻어쓰기도 했다. 어느 날 목수는 소년을 데리고 해인사로 올라갔다. 거기서 인곡스님을 만났다. 스님은 그림을 보고 절을 하라고 하시더니 달마의 부릅뜬 눈을 보고 웃음을 떠뜨리는 소년을 나무라지 않고 떡과 홍시를 내줬다. 술지게미만 먹던 소년에게 그 맛은 가히 황홀이었다. 떡 얻어먹는 재미에 절에 매일 갔다. 친구들을 잔뜩 데리고 올라가도 스님은 떡을 푸짐하게 주셨다. 떡이 있는 절이 좋아서 절에서 살아버렸다. 먹고 자고 심부름을 하다 열일곱 나던 해 아예 머리를 깎아버렸다.

어머니는 반대하지 않으셨나? “아, 아들이 절에 가는 것을 좋아하는 옴마가 어데 있나? 말 안 하고 그냥 도망을 갔지. 우리 어머니는 내가 중 된 것도 몰랐어. 집에 갈 때는 중옷 안 입고 가거든. 어머니가 싫어하는데 머할라고 승복을 입겠노?”

그런데 왜 벌떡 일어서 내려오지 않았냐고 또 물었다.

“아, 내려왔제. 그란데 집에 와 있으면 또 누가 찾으러 오데. 중노릇 그만 하겠다고 집에 간 거는 아이니까 누가 찾으러 오면 또 올라오고 그랬제. 억지로 되는 게 머가 있나. 다 저절로 그리 됐어, 그라고 세월이 갔을 뿐이지.”

사미승 시절 탱화 전문가인 석정스님 문하에서 수행을 했다. 해제가 되면 불사에 나섰는데 6·25때 철없는 군인들이 망가뜨린 통도사 사천왕상의 화관을 새로 만드는 일이 그에게 주어졌다. 어린 수안이 나무를 파고 은사 석정이 탱화를 그렸다.



억지로 붓 잡으면 그림이 나오니…

어느 날 극락암 경봉스님이 공사장에 오셨다. 그가 판 나무를 보시더니 당신이 쓸 도장을 하나 파달라고 부탁하셨다. “팔 줄 모른다 캤더니 ‘니는 하믄 잘할끼라’ 그러셔. 파는 방법을 알아야지. 찰말로 ‘암담칠갑’이데. 석정스님이 전각의 대가라는 안강석씨를 소개했는데 이분은 가르치는 말이 너무 어려워. 무슨 말인지 모르겠드라고 했드니 이번에는 부산의 대명안과라는 데를 턱 데려가네? 거기서 운여 선생을 만났어. 김광업이라고 건축가 김중업 선생의 형님 되시지. 기독교 장로이신데 안과의사를 하면서 글도 쓰고 각도 하는 유명한 분이야. 시키는 대로 배워서 팠제. 경봉스님께 드렸드니 이건 뭐 하늘 땅이 무너질만치 칭찬을 하시네? 그게 다 어른의 덕이지. 칭찬을 하니까 진짠 줄 알고 앞뒤없이 천방지축 들고뛴 게지 뭐. 3만개를 각을 하면 전각의 대가가 된다꼬 그러대? 숫자개념이 없으니까 머가 3만개인 줄도 몰라. 그냥 보이는 대로 갑골문 상형문을 갖다놓고 무조건 팠제.”

운여 선생은 수안에게 각을 하려면 자꾸 원을 그리라고도 가르쳤다. 천번 만번 원을 그렸다. 계속 그리다보니 원이 그림의 원형임을 알게 됐다. 지금도 스님은 상이 잡히지 않을 때는 원부터 그려놓고 본다.

밥먹다 말고 스님은 실눈을 떴다.

“아버지 돌아가신 후 어머니가 장사를 다니셨는데 내가 길에서 놀고 있으면 날 불러. 긴 목도리를 두르고 가방 하나 들고 우리 어머닌 그때 옷도 참 잘 입으셨데이. 아이고 내 새끼, 땟국물 좀 봐라 하면서 수건에 침을 발라 얼굴을 닦아주셔. 아파도 얼굴을 가만 맡겨둬야 눈깔사탕 한 개라도 사 주신다는 걸 알거든. 그러니까 꾹 참고 얼굴을 맡기고 있제. 그런 게 요즘도 가끔 그립다. 말할 수 없이 그리워. 내가 사모곡이라는 시를 몇 개나 썼어. 한번 들어볼래?”

나 훨훨 벗어버리고 고향으로 가리라. 고희가 넘으신 어머니 눈앞에 철없는 개구쟁이로 나 돌아가리라…세상 다 돌아봐도 쉴 곳이 없으니 작은 가슴 할딱거리며 나 어머니 품으로 가리라.


“울 어머니 생각을 하면서 그림을 그리는데 관세음보살이 동자를 팍 안아버리는 게 나오는 기라. 원래는 따로 떨어져 있는 건데…그걸 전시장에 걸었더니 사람들이 아주 좋아죽지 머.”

스님의 이야기는 끝이 없다. 자정이 넘어 새벽이 올 때까지, 방림보살이 자러오지 않는다고 독촉전화를 할 때까지 쉼없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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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령 칼럼니스트 psyche32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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