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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형폐지운동협의회 문장식 대표 & 사형수 원언식

“사랑과 정성 앞에선 누구도 뉘우치고 용서받으려 하죠”

  • 권주리애 전기작가, 크리에이티브 이브 대표 evejurie@hanmail.net

한국사형폐지운동협의회 문장식 대표 & 사형수 원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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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당일. 전날 숙직을 한 그는 아내가 차려준 안주에 곁들여 소주 2병을 마셨다. 그러면서 아내에게 왕국회관에 나가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아내는 그럴 수 없다고 고집했고, 화가 난 그는 바람을 쐬러 밖으로 나갔다. 그가 돌아왔을 때 아내는 집에 없었다. 왕국회관에 갔다는 딸의 말을 듣고 그는 플라스틱 통을 들고 나갔다. 일요일이라 문 닫은 주유소가 많아 세 군데나 들러 휘발유 10ℓ를 사고 슈퍼마켓에서 라이터도 샀다. 그리고 아내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곳에 들어가 아내를 내놓으라며 소리쳤다. 신도들이 아내가 없다고 하자 이들이 아내를 숨겨놓았다고 생각하고는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질렀다. 그러고는 경찰서로 가서 자수했다. 그의 아내는 남편이 소리치는 것을 듣고 뒷문으로 빠져나가 화를 면했다.

1월26일 서울구치소에서 면회한 원씨는 당시 일에 대해 “나 때문에 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쳐 죄송하다”며 “기사에 피해자와 그 가족들에게 거듭 진심으로 용서를 빈다는 말을 꼭 써달라”고 당부했다.

대부분의 사형수는 사형확정을 받으면 서울구치소로 이감된다. 구치소로 이감되면 교무과에서 종교인들과 자매결연을 주선해준다. 당시 서울구치소의 기독교 종교위원이 문장식 목사였다. 문 목사는 처음으로 원씨와 상담한 때를 이렇게 기억했다.

“원언식은 다른 사형수들이 그렇듯 처음에는 말을 하지 않았어요. 그가 유독 심했죠. 허공을 바라보며 허탈해했어요. 얼이 빠져 있더라고요. 자신 때문에 많은 사람이 죽은 것에 커다란 죄책감을 갖고 있었어요. 화가 나서 싸울 때 간혹 ‘확 불 질러 다 죽여버리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도 그렇게 엄청난 결과를 전혀 예상 못하고 술김에, 홧김에 그런 일을 저질렀던 거죠.”

문 목사 외에 자매결연한 두 명의 권사가 매주 화요일 그와 예배를 드리고 상담을 했다. 하지만 그는 쉽게 말문을 열지 않았다. 그러다 그 이듬해 인연을 맺은 김옥이 권사가 친어머니 같은 정성을 보이자 서서히 악몽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종교 때문에 가정이 깨지고 결국은 엄청난 죄까지 저질렀다는 생각에서인지 종교에 대해서는 쉬 마음을 열지 않았다. 문 목사의 얘기다.



“처음엔 하느님의 ‘하’자만 들어도 몸서리를 쳤어요. 그러다가 자매결연한 권사님들과 대화하면서 서서히 마음이 녹더니, 기독교에 귀의하고 세례를 받았죠. 특히 김옥이 권사와의 인연은 10년 넘게 이어지고 있어요.”

흉악범의 최후

그가 마음을 열고 안정을 찾자 문 목사는 그에 대한 구명운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문 목사는 1980년대부터 사형폐지운동에 앞장서왔다. 1983년 법무부가 종교위원제도를 시행하면서부터 서울구치소 종교위원으로 위촉받은 문 목사는 흉악범도 교화될 수 있음을 경험으로 확신했다. 더욱이 기독교 책임목사로 60여 차례 사형집행장에 입회했는데, 한때 인간이기를 포기했던 ‘지존파’조차 교화되어 최후에는 착한 모습으로 죽는 것을 목격하고는 사형제도에 대해 깊은 회의를 갖게 됐다. 문 목사는 그 같은 경험을 최근 책으로 펴냈다. 제목은 ‘아! 죽었구나 아! 살았구나.’ 문 목사에 따르면 대부분의 사형수는 피해자 가족에게 용서를 빌며 마지막으로 선을 베풀고 떠나고자 사후 자기 몸 전체를, 또는 안구와 장기를 기증한다는 유언을 남긴다. 원언식씨도 사후 안구와 장기는 물론 사체도 연구용으로 기증하겠다고 약속했다.

“하늘색 죄수복을 입고 가슴에 빨간 명찰을 단 사형수는 마주하는 것조차 두려울 것 같지만, 그들도 인간이기에 대화를 나누고 사귀면 친구같이, 자녀같이 다정해져요. 수년간의 교화를 통해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그들을 어느 날 기어코 끌어내 처형하는 광경을 곁에서 지켜본다고 생각해보세요. 너무도 비인도적이어서 교화 자체가 무의미해지는 허탈감은 어떻게 말로 다 표현할 길이 없어요. 사형집행을 목격하고 나면 교화 의욕을 상실해 여러 날 동안 몸살을 앓고, 몇 달간은 충격 때문에 정신적 고통을 겪습니다.”

문 목사는 심한 괴로움에 종교위원을 그만두려고 고민하던 차에 또 한 번 사형집행장에 입회했고, 마지막 순간까지 무죄를 주장하는 사형수를 보며 더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하나님이 나를 여기에 보내신 것은 천하보다 귀한 사람의 생명존귀운동을 하라는 뜻’이라고 확신했어요. 그래서 1988년 10월 서울구치소 불교 책임자이던 서성운 스님(삼천사), 천주교 책임자이던 추영호 신부(명동성당), 서울구치소 교화협의회장이던 이상혁 변호사를 만나 의논한 끝에 1989년 5월에 한국사형폐지운동협의회를 만들었습니다. 1990년에는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에서도 사형폐지연구위원회를 조직해 다른 종교와 연대하고 있고요.”

문 목사는 1994년 4월,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이하 예장) 사형제폐지위원장 이름으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인권위원회에 ‘원주 왕국회관 방화범 사형수 원언식의 감형 청원 협조요청’ 공문을 보냈다. 이후 KNCC와 예장이 그에 대한 구명운동을 함께 해왔다. 예장과 KNCC 공동 명의로 1994년, 1999년, 2001년, 2003년, 2006년에 대통령 특사를 청원했다. 그리고 지난 1월에는 3·1절 모범사형수 특사청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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