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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깎이 화가로 ‘인생 2막’ 연 명사들

“몰입과 성취의 쾌감… 그림은 행복한 마약입니다”

  • 박은경 자유기고가 siren52@hanmail.net

늦깎이 화가로 ‘인생 2막’ 연 명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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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깎이 화가로 ‘인생 2막’ 연 명사들

강현두 서울대 명예교수는 퇴임 후 그림을 그리면서 작가와 관객 처지에서 소통하는‘페인트저널리즘’을 연구하게 됐다.

강 교수가 그림을 시작한 것은 서울대 정년퇴임을 2년 앞뒀을 때. ‘그동안 하고 싶었던 일, 지금부터 할 수 있는 일, 새롭게 해볼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학자답게 구체적이고 합리적으로 따지던 그는 남은 20, 30년의 삶은 새로운 무언가에 도전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라고 결론지었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그림이었다. 어릴 적부터 관심이 많은 분야이기도 했지만, 예술 장르 가운데 특별한 테크닉을 상대적으로 덜 요구하는 듯했고, 언제까지든 손으로 할 수 있는 작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 근처에 있는 예술의전당 미술아카데미를 찾아가 기초반에 등록했죠. 선 긋는 것부터 시작해 몇 개월간 스케치를 하니까 채색을 좀 하고 싶더군요. 그래서 다음 단계로 수채화반을 선택했는데, 조금씩 묘미를 느끼면서 근 4년간 아카데미를 다녔습니다.”

기초반 첫날 수업에 들어가자 20, 30대 여성 20여 명이 앉아 있었다. 남자 회원은 강 교수 한 사람뿐이었고, 학생들은 나이 지긋한 그를 강사로 착각했다. 멋쩍고 난감해서 “나 대신 젊은 남자가 청일점 회원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회원 평균연령을 올려놓아 미안하다”는 말로 넘겼다. 그 후 나이 어린 회원들과 어울리는 건 별로 문제 되지 않았지만 미술 실기에 문외한인 그를 어렵게 한 것은 따로 있었다.

“미술사를 포함한 이론이야 그동안 박물관과 미술관을 드나들며 보고 들은 풍월이 있어 웬만큼 알았죠. 하지만 실기에 필요한 재료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곤 도화지, 크레파스, 파스텔뿐이었어요. 어느 날 선생이 4B 연필을 준비해 오라는데 그게 뭔지도 몰랐죠. 어떻게 생긴 거냐고 물어볼 수도 없어 발음만 열심히 외워 문방구엘 갔습니다. 연필 종류 중에 4B가 있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 지금도 미술계에서 흔히 쓰는 용어 중에 모르는 게 적지 않아요. 죽고 사는 문제는 아니니까 눈치로 맥락을 대충 꿰어맞추는 식이죠.”

“안 보이던 게 보인다”



그림에 깊이 빠져들수록 강 교수의 고민은 커져간다. 그림은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이고 그에 따라 필요한 표현수단을 자유자재로 컨트롤할 수 있어야 하는데, 아무리 열심히 해도 쉽지가 않기 때문이다. “그동안 눈만 높아지고 능력은 이를 따라주지 못해 답답함을 느낄 때가 있다”는 것. 세계 각국의 풍경을 캔버스에 옮긴 두 번째 개인전 ‘지구촌 풍경 기행’도 고민 끝에 나온 것이다.

“공부 삼아 인사동 화랑에 자주 가는데, 훌륭한 사람들의 개인전을 보니 평범한 그림으로는 눈길을 끌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국내 화가 중에 풍경화를 그리는 사람은 많지만 외국 풍경을 그리는 경우는 드물어요. 외국 풍경을 모티브로 삼으면 일단 특색 있고 남들과 비교가 안 되니까 괜찮을 듯했죠. ‘지구촌 시대’에도 잘 부합한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강 교수는 언론학계에 몸담은 경험을 바탕으로 그림을 또 다른 저널리즘에 비춘 ‘페인트저널리즘’을 연구하는 중이다. 또 전시회를 통해 작가와 관객 처지에서 사람들과 소통하는 새로운 커뮤니케이션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고 거기서 얻는 성취감이 크다.

“좀더 일찍 그림을 했더라면 좋았을 거예요. 일정한 매뉴얼이 있는 학문과 달리 그림은 매뉴얼이 없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로움이 있죠. 이게 매력인데, 오랫동안 학문을 하면서 몸에 밴 룰을 깨기가 쉽지 않아요. 틀을 완전히 깨뜨렸을 때 진정한 창작자이자 예술가가 될 것 같네요.”

미술아카데미를 졸업한 후 지금까지 수채화반 강사에게 개인 레슨을 받고 있는 강 교수는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든다고 했다.

“‘월사금’도 내야 하고 물감이나 붓 하나만 해도 값이 엄청 비싸요. 아무것도 모르고 저지른 게 오히려 다행이었죠. 요즘 술 덜 마시고 골프 덜 치면서 죄다 그림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부분들이 보이고, 모든 것이 아름답게 보이는 것. 그가 그림을 그리면서 얻은 가장 큰 소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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