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1월호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사장 바뀌었다고 KBS가 정부 비판 중단했나”

  • 정현상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doppelg@donga.com

    입력2008-11-05 15: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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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장관님은 햄릿형입니까, 아니면 다른 형입니까?”

    솔직히 말하면 ‘다른 형’이 아니라 ‘돈키호테형’이냐고 물었어야 했겠지만 부정적 의미가 강한 단어를 장관에게 직접 빗대는 건 아무래도 결례 같아 에둘러 물었다. 스타 연기자 출신으로 장관직에 오른 뒤 그는 돈키호테처럼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부지런히 움직였고, 그의 발언들은 앞뒤가 잘린 채 수없이 인용되며 큰 파장을 몰고 다녔다. 전 정부에서 임명된 정부 산하기관장 사퇴 요구, 민영미디어렙 도입 발언, 한국방송광고공사 폐지 발언, 종교 편향 시비, 언론사 지원 중단 발언 등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발언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햄릿과 돈키호테가 먼저 떠올랐던 것은 그가 그 인물들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그는 연극계에서 햄릿 연기로 손꼽히는 배우였다. ‘햄릿’을 네 번이나 상업무대에 올렸고, e메일 아이디도 ‘hamlet2005’로 쓰고 있다. 햄릿의 성격 연구로 석사 학위까지 받은 이다. 그는 기자의 질문에 마치 햄릿처럼 잠시 고개를 젖히며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9월26일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위원회에 출석한 유인촌 장관(오른쪽)과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저는 햄릿형은 아닌 것 같아요. 물론 햄릿도 여러 가지 형으로 분석되긴 하지만 일반적으로 갖고 있는 그런 사색적이고 고뇌하는 형은 아닙니다. 오히려 저는 조금 더 행동적이랄 수 있어요. 빨리빨리 어떤 결과를 봐야 하는 성격이고, 일도 속도감 있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장관의 말을 감안하면 활기차고 저돌적으로 문화체육관광부를 이끌어가는 돈키호테형 장관의 이미지를 떠올린 기자의 판단이 영 어긋난 것은 아닌 셈이다. 사실 그는 2월의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좋아하는 연극 대사가 있느냐’는 질문에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에 나오는 한 구절을 읊었다.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고,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움을 하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며, 잡을 수 없는 저 하늘의 별을 잡자….” 즉 돈키호테의 행동철학이 그의 좌우명인 셈이다.



    전임 장관이 누구였는지 이름도 가물가물한 상황이지만 유 장관은 짧은 기간에 자신이 대한민국 문화부를 이끄는 수장임을 국민의 뇌리에 각인시켰고, 7개월 재임기간에 많은 변화를 몰고 왔다. 그런 유 장관 인터뷰를 통해 최근 화제가 됐던 그의 발언들의 배경과, 달라진 이명박 정부의 문화정책을 짚어보고, 앞으로 이 나라가 어느 정도의 문화국가가 될 수 있을지를 가늠해봤다.

    ‘인터넷 불특정 다수의 힘이 너무 세다’

    10월3일 ‘하늘이 열린 날’ 오후 서울 광화문 문화부 청사에서 유 장관을 만났다. 그는 역시 일반적인 관료들과는 많이 달랐다. 인터뷰 장소도 장관실이 아니라 앞마당 한켠으로 잡았다. 경복궁 뜰에서 인터뷰하는 것도 고려됐지만 어떤 이유에선지 취소됐다. 장관실을 나선 유 장관은 바깥바람을 누구보다 먼저 느끼고, 심호흡하며 혼잣말을 했다.

    “바람이 부니까 아주 괜찮네. 지금이 딱 좋을 때구나. 날씨도 좋고 기온도 적당하고.”

    ▼ 늘 그렇게 한가로운 마음을 갖습니까.

    “지난 7개월 동안 뒤돌아볼 시간이 거의 없었습니다. 요즘은 더 바빠요. 참석해야 할 행사도 많고, 왜 그렇게 만나야 할 사람이 많은지…. 참, 인터뷰 끝나면 조문 가야 돼요.”

    인터뷰 전날 배우 최진실씨 사망 소식이 전해졌다. 연예계 후배의 안타까운 소식을 그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 최진실씨의 사망에 인터넷 악플이 영향을 미쳤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이처럼 거르지 않은 비방이나 인터넷의 부정적 기능은 어떤 정책을 통해 개선될 수 있을까요?

    “좀 포괄적으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인터넷 등 기계문명이 발달하면서 이전에 없던 새로운 문화가 만들어졌습니다. IT(정보기술) 사업은 국가적으로 역점을 둬왔고, 현재 그로 인해 분명히 많은 것을 얻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런 기술이 만들어낸 새로운 문화에 대해서는 제대로 정리하지 못했습니다. 인터넷 악플은 바로 기술문명을 문화가 따라가지 못한 데서 온 부작용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차원에서 최진실씨 문제를 이해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유 장관은 연예계 후배의 불상사가 못내 마음이 아픈 듯했다.

    “연예계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과 달리 감정의 기복이 심하고 예민합니다. 그러나 겉으로 잘 표현하지 않고, 화도 잘 안 내고, 늘 가슴속으로 울면서도 밖으로는 웃어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사람에게 너무 심하게 한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최진실씨 사망 이후 사이버 모욕죄와 인터넷 실명제 강화를 위한 법안(일명 최진실법)이 추진되고 있다. 10월6일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고흥길) 국정감사장에선 이 문제가 논란이 됐다. 한나라당 측은 “허위사실 유포 등으로 선의의 피해자가 생기는 것을 막아야 하므로 대책을 빨리 마련하라”고 주문했고, 민주당은 이 법안이 ‘인터넷 죽이기’에 악용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 인터넷 실명제의 부작용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높은데요.

    “지금의 법으로는 악플 등이 통제되지 않기 때문에 법 신설이 필요합니다. 다른 뜻이 있는 건 아닙니다. 사실 불특정 다수의 힘이 너무 큽니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숨어서 공격하는 것은 옳지 않아요. 원래 사람은 기계하고 오래 놀면 파괴적으로 변합니다. 그것을 경계해야 해요.”

    ▼ 전파 속도가 빠른 인터넷 문화를 돌아보고, 정신문화를 고양한다는 차원에서 펼 수 있는 문화정책이 있을까요?

    “저는 우리 직원들에게 다른 부도 아니고 ‘문화부’니까 정신적 차원의 운동을 좀 벌여보자고 했습니다. 보고할 때 가능하면 인터넷을 쓰지 말고 대면하자고 했는데, 당장 불편하니까 잘 안 돼요. 우리 사회는 갈등이 많고, 서로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한데 어울려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서로 다른 생각을 갖고 있어도, 얼굴을 마주 보고 이야기하면 대개는 이해가 돼요. 인터넷 사용을 줄이고 대면하자는 것이나, 순수예술 지원, 슬로 시티 개념, 생태관광, 자전거 차선 만들기 같은 것들이 다 통하는 개념이라고 봅니다. 빠른 인터넷 기술이 최고가 아니라 인간적인 면이 강조되는 문화가 중요합니다. 예컨대 음악 무용 국악 연극처럼 육체를 이용해 땀 흘려 만드는 예술을 많이 접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한다면 지금과 같은 속도지상주의의 인터넷 문화와는 조금 다른 문화가 생길 수 있지 않을까요?”

    ‘방송 , 산업적 측면 중시해야’

    유 장관은 달변이다. 중간에 끊지 않으면 말이 한없이 이어진다. 예술가들의 특징적인 말법, 즉 비약과 생략이 많고 이미지가 난무한다. 그래도 이야기를 다 듣고 나면 한 줄로 꿰어진다. 인터뷰 시간은 한정돼 있고, 질문할 것은 많아 유 장관에게 단답식으로 답변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래도 답변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먼저 논란이 됐던 부분들을 짚었다.

    ▼ 민영 미디어렙(광고 판매 대행회사)이 공영방송 민영화 등 정부의 방송구조개편 논의의 핵심 기반으로 알고 있습니다. 정부가 미디어렙 도입 시기와 방침이 확정된 것이 없다고 했지만 다시 한번 원칙을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연구를 많이 해야겠지만 미디어 환경이 많이 바뀌고 있기 때문에 그에 맞는 방식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미디어렙은 이미 지난 정권 때도 제기됐던 문제입니다. 새로운 얘기도 아니에요. 늘 문제만 제기됐다 흐지부지됐습니다. 왜냐하면 편한 게 좋으니까요. 뭔가 새로운 것 하려다가 서로 갈등이 생기면 불편해지니까 그대로 유지시킨 겁니다.

    그런데 올해 안에 SKT와 KT가 IP TV 상용화 서비스를 시작하는 등 방송 환경이 크게 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미디어렙 자체는 언젠가 하기는 해야 합니다. 지금도 케이블TV는 미디어렙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곳은 방송광고공사를 통해 광고를 하지 않고, 개별 사업자가 자율적으로 광고를 사고팔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민영미디어렙이라면 케이블의 미디어렙이 조금 확대되는 정도라고 보면 됩니다. 물론 초기 혼란이 예상되기도 해서 갑자기 시작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정부의 기본 방침은 광고산업 활성화를 위해 방송광고 판매시장에 경쟁체제를 도입한다는 겁니다. 경쟁체제 도입에 관한 구체적인 방안은 각계각층의 다양한 의견을 들어 마련할 계획입니다.”

    ▼ 민영 미디어렙 도입의 반대 논리는 종교방송사와 지방 방송사의 재정적 어려움이 예상되고, ‘PD수첩’ 같은 시사 고발 프로그램들이 광고가 붙지 않아 사라지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국민의 알 권리도 줄어드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선 어떤 대안을 갖고 계신지요?

    “방송은 산업으로서의 의미를 분명히 갖고 있습니다. 그동안 방송이 공공성, 공정성의 기능만 주로 강조돼왔다면 앞으로는 산업적 측면도 고려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경쟁에서 지면 남의 나라 콘텐츠만 빌려다 쓰는 그런 상황이 초래될지도 몰라요. 광고를 안 주면 시사프로그램을 안 할 것이라는 논리가 있지만, 그렇다면 그런 프로그램은 공영방송에서 하면 되지 않겠어요? 방송사가 이미지 제고를 위해 수준 높은 방송 프로그램을 제작하거나 시청자 모니터링 등을 통해 개선해나갈 수 있을 겁니다. 다만 매체의 영향력이 취약한 종교방송이나 지역민방 등에 대해선 현실적 어려움을 감안해 정부에서 실효성 있는 지원방안을 적극적으로 강구해나갈 것입니다. 1차 경쟁에서 밀린 방송에는 패자부활전의 기회를 줄 생각입니다.”

    ▼ 너무 낙관적으로 보시는 것 아닙니까?

    “예술정책 지원도 패자부활전의 기회 제공 원칙을 갖고 있습니다. 경쟁에서 졌다고 해서 조금 어려워질 수는 있겠지만 완전히 없어지진 않을 겁니다. 지역 방송은 양질의 프로그램, 지역민이 원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살길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정부에서도 지역 방송이 활성화되도록 여러 가지 차원에서 정책을 펴나갈 겁니다.”

    신문·방송 겸영, 규모의 경제 가능

    ▼ 기왕에 신문 방송 얘기가 나왔으니까 그쪽을 좀 더 묻고 싶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언론을 장악하려고 한다, 이런 얘기 많이 하잖아요. 그게 오해에서 비롯된 거라고 보십니까?

    “언론 장악론은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에게서 나온 생각이 아닌가 해요. 언론이 장악될 수 있나요? 말도 안 됩니다. 요새 언론이 어떻게 장악이 돼요. 인사문제를 두고 언론 장악론을 펴고 있는데요. 역대로 사장 개인에 의해 방송이나 신문이 장악된 적은 없지 않았나요? 정부 입장은 언론에 정부를 도와달라는 게 아니에요. 언론이 좀 공평하게, 균형 있게 보도해달라는 겁니다. 이 정부 들어 KBS 사장이 바뀌었지만 지금 KBS가 정부비판을 중단하거나 친정부 일색의 보도를 하고 있나요? 자신들이 생각하는 그 나름대로 방송하고 있지 않습니까? 기본적으로 저는 우리나라 기자들이 정부는 물론이고 사장의 부당한 지시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집단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동안 언론은 어려운 민주화 과정을 거쳐 지금의 위치에까지 왔습니다. 그런데 다시 옛날로 돌아가겠어요? 언론은 균형 있게 다수의 입장을 받아들이고, 스스로 사회 공익적인 기능을 열심히 해나가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정부를 도와준다고 정부 홍보용 방송이나 기사만 내보내 봐요, 그러면 사람들이 그 언론을 제대로 보겠어요?”

    ▼ 신문과 방송의 겸영 허용은 어떤 이점과 단점이 있지요?

    “신문과 방송의 겸영을 제한하는 이유는 한 그룹이나 개인이 유력한 신문과 방송을 함께 갖게 될 경우 여론 영향력이 집중되기 때문에 이러한 폐해를 방지하려는 것입니다. 어느 나라나 이러한 겸영규제가 다 있는 것도 아니고, 또 규제가 있는 경우에도 일정 조건 이상인 경우에만 신문과 방송을 함께 갖지 못하게 하거나 일정 지분 이상을 소유하지 못하도록 하는 등 그 나라 상황에 맞게 다양한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일간신문 소유자는 지상파방송과 종합편성 및 보도전문편성 PP(방송채널사업자) 법인의 주식이나 지분을 1%도 갖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요즘 환경이 변하면서 매체가 다양화하고 융합되고 있는 상황인데다 인터넷의 발달로 신문의 영향력이 예전과 달리 줄어들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런 규제가 너무 엄격하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감안할 때 겸영이 허용되더라도 여론 다양성을 크게 해칠 우려는 없다고 판단됩니다. 오히려 신문이 방송에 진출할 경우 시너지효과를 얻을 수 있고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는 등 언론산업 발전에 많은 이익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종교정책이 편향됐다는 지적이 많았습니다. 이를 시정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요?

    “종교편향 문제로 많은 국민에게 심려를 끼쳐드려 주무부처 장관으로서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다행히 9월26일 불교계에서도 대통령의 유감표명에 대해 그 진정성을 긍정적으로 평가해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정부는 이번에 불거진 종교편향 문제를 근본적으로 방지하기 위해 ‘국가공무원복무규정’을 개정했고, 공무원행동강령도 10월 중에 개정할 예정입니다. 또 ‘공직자 종교차별 방지를 위한 업무처리 지침’을 마련해 중앙행정 기관은 물론 모든 헌법기관(국회, 대법원, 헌법재판소 등)과 지자체, 지방교육청, 각급 학교 등에 통보해 업무를 처리하는 지침으로 활용토록 했습니다. 또 국회에서 활발히 논의 중인 종교차별방지법은 정부 차원에서도 입법을 적극 지원할 계획입니다. 비 온 뒤에 땅이 굳는 것처럼 종교 편향과 관련한 제도적인 개선이 이뤄지면 종교편향 논란이 불식되고 종교 간 화합 및 국민화합에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대통령은 문화 향수에 관심 많아’

    ▼ 초등학교 교과서의 직업 소개 내용에서 국회의원을 제외하고 연예인을 넣도록 문화부가 교육과학기술부에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아이들의 관심이 많다고 더 중요한 것은 아닐 텐데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요?

    “과장 전결로 처리된 것이라 신문에 나온 뒤에서야 알았습니다. 2007년 교과서 개정 검토 과정에서 국회의원의 경우 ‘초등학생들이 현실적으로 접하기 어려운(거리감이 있는)’ 직업이기 때문에 지방의 초등학생이라도 쉽게 접할 수 있는 공무원(또는 사회복지사 등)으로 대체하면 이해하기가 쉬울 것이라고 교사들이 제안했습니다. 또 문화예술인을 추가한 것은 문화예술 종사자가 증가하고, 문화예술과 문화산업이 국가의 주요한 경쟁력이 되고 있는 21세기를 반영해야 한다는 취지였습니다. 그런데 이 의견은 반영이 안 됐고, 올해 5월 다시 개정의견을 제출하면서 ‘거리감 있는 국회의원’이라는 적절하지 못한 표현이 들어가게 됐습니다. 결국 이 표현은 오해의 소지가 있어 교과부에서도 반영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 이명박 정부의 문화정책이 이전과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은 무엇입니까.

    “문화지원의 원칙이 달라진 점입니다. 국제교류 분야의 전략적 지원 등의 예처럼 선택과 집중을 하고, 실연심사나 평가를 통한 사후지원, 집필실 등 간접지원, 아마추어 동호인 등을 지원하는 생활 속의 예술확대를 4대 원칙으로 잡았습니다. 또 문화부의 새 정책기조가 ‘품격 있는 문화국가, 대한민국’이므로 요란한 문화활동보다는 국민 모두 생활 속에서 문화적 삶과 풍요로움을 누릴 수 있도록 노력하려 합니다.

    또 문화나 예술을 다른 무엇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예술 자체가 목적이 되는 순수한 가치를 확대하고 작품의 질을 높여서 세계에서 인정받도록 하겠습니다. 문화정책은 눈에 보이지 않는 이면의 것, 창조라는 것과 맥이 닿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차원에서 이명박 정부는 우리의 대표적인 전통과 정신이 새로운 가치로 성장하고 확대될 수 있도록 정책을 추진할 계획입니다. 한글문화관 건립 등을 통해 한글의 실용성을 더욱 가다듬어 한글이 문화산업 곳곳에 적용되도록 하겠습니다.”

    ▼ 예술의 순수성을 강조하는데, 장관께서도 예술가 출신 ‘정치인’ 아닙니까? 또 한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문화예술계는 정치적이면 안 된다’고도 했는데, 이건 이중적인 잣대 아닌지요?

    “평소 예술가는 작품으로 사회에 참여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저야 이미 정치의 한복판에 와 있는 사람이고, 제 역할이 끝나면 더 이상 하라고 해도 정치에 참여하지 않을 겁니다.”

    ‘불법 다운로드 내년까지 분명히 해결’

    ▼ 이명박 대통령이 문화정책에 대해 직접 관여합니까?

    “문화정책의 구체적 부분까지 언급하지는 않습니다. 전반적으로 문화를 향유하는 쪽에 관심이 많으시고, 국민이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도록 여건을 많이 만들고, 예술가들이 창작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주문하십니다. 또 해외에 우리 문화를 잘 알려달라고 하십니다.”

    ▼ 부산영화제가 해마다 눈에 띄게 향상되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러나 영화산업은 침체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이를 활성화기 위해선 어떤 것이 보완돼야 할까요?

    “지금 영화시장은 매우 어렵습니다. 이를 활성화하려면 우선 사람을 키워야 합니다. 좋은 감독, 좋은 배우, 좋은 시나리오 작가가 우선입니다. 그 다음 영화는 오래전부터 산업적 측면이 강하니까, 마케팅이나 시장 확대 등을 위한 정책적 지원이 필요합니다. 최근엔 불법 다운로드 때문에 피해를 많이 봐요. 그 부분을 해결하기 위해 정책적인 의지를 갖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내년까지 이 문제를 분명히 해결하려고 합니다.

    또 한 가지 문제는 영화가 흥행이 돼도 정작 직접 만드는 사람들은 제대로 돈을 벌지 못하는 구조입니다. 앞으로 IP TV가 본격화되면 영화가 방송통신의 중요한 콘텐츠로 자리 잡을 텐데 그 소득이 영화를 현장에서 만드는 사람들에게까지 잘 배분될 수 있는 원칙이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 앞으로 문화부가 세계 5대 콘텐츠 강국 도약을 위한 신성장동력으로 차세대 융합형 콘텐츠 육성과 제2의 온라인게임 혁명, 100년 감동의 킬러콘텐츠 개발 등 3대 핵심과제를 추진할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이는 문화예술을 공공복지가 아니라 산업화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는 뜻으로 들립니다. 이게 세계적인 방향인가요?

    “3대 핵심과제의 의도는 문화예술 분야가 세계적인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육성해서 더 품격 있는 콘텐츠를 만들고 그것을 더 많은 사람이 나눌 수 있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지금 세계는 콘텐츠 강국이 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습니다. 영국은 10여 년 전부터 문화산업에 창조산업(creative industry)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전략적으로 육성했는데, 2005년 매출 130조원(608억£), 수출 31조원(146억£)을 기록했습니다. 영국 GDP의 7.3%를 차지했지요. 그 결과 복합문화공간인 바비칸센터, 사우스뱅크센터 등이 활성화됐고, 이를 통해 일반 대중과 문화예술이 더 가깝게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확대됐습니다.”

    ▼ 킬러 콘텐츠란 어떤 의미입니까.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유인촌 장관은 문화부 부(部)로고에 직원 전체의 이름이 인쇄된 티셔츠를 직원들에게 추석선물로 돌렸다.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혁신적·창의적 내용을 통해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는 콘텐츠를 뜻합니다. ‘해리포터’ 시리즈(출판),‘반지의 제왕’(영화),‘대장금’(방송드라마), ‘미키마우스’(캐릭터), ‘태양의 서커스’(공연) 등이 그런 예입니다. 모두 독창적인 소재, 완성도 높은 제작 기법, 글로벌 마케팅, 다양한 상품화 전략 등을 통해 전세계적으로 엄청난 신규 수요를 창출했습니다. ‘해리 포터’는 출판 영화 등으로 이제까지 308조원대의 매출을 기록했습니다. 우리나라 반도체 총수출액이 231조원임을 감안하면 얼마나 대단한지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영국, 미국, 일본 등에서 주로 글로벌 히트 콘텐츠가 창출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우수 전문 인력, 콘텐츠 기획, 제작, 마케팅, OSMU(One source Multi▼ Use) 상품화 전략, 장르 간 협업 시스템 등 적합한 산업구조 여건이 갖춰져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의료 관광 등 적극 육성

    ▼ 정말 세계적인 수준의 위대한 창작물이 나타나게 하려면 우선적으로 어떤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고 보십니까.

    “순수예술을 진흥하고, 창작자들이 성장하도록 도와야지요. 우리 민족은 훌륭한 스토리를 많이 갖고 있는데 아직 작품 속에 녹아든 스토리는 약합니다. 또 창작자 외에도 기획 제작 유통을 위한 창의적 인재들도 필요하기 때문에 그들을 정책적으로 육성할 계획입니다. 문화원형을 발굴하고, 우수 시나리오를 개발하는 등 창작 인프라를 구축해나가면 우리도 세계적 수준의 창작물을 낳을 수 있을 겁니다. 저는 그런 믿음이 있어요.”

    유 장관은 정부 대변인으로서 국가홍보 역할도 맡고 있다. 국가 홍보는 곧 관광과 연결된다. 우리나라 관광수지는 관광업계의 노력과 정부의 지원 등에 따른 외래 관광객의 증가(2007년 645만명, 4.8% 증가)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높은 해외여행 증가(2007년 1333만명, 15% 증가)로 적자가 지속되고 있다. 지난해만 101억달러의 적자를 보았다.

    ▼ 관광수지 개선 방안은 어떤 게 있습니까.

    “올해 들어 7월까지 고유가 고환율 등의 영향으로 관광수지가 마이너스 45억 달러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지난해 같은 기간엔 마이너스 60억달러였습니다. 정부는 관광수지 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3월28일 대통령이 주재하는 ‘관광산업 경쟁력 강화회의’를 통해 총 32건의 감세 및 규제완화 대책을 마련했습니다. 10월 말엔 제2차 관광산업 경쟁력 강화회의를 개최해 콘텐츠 위주의 관광활성화 방안을 마련해 추진할 예정입니다. 여수 엑스포, 대구세계육상대회 등 굵직한 이벤트도 잘 활용하고, 의료관광 등 고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새로운 관광분야를 육성해나갈 계획입니다.”

    ▼ 베이징올림픽을 계기로 생활체육 활성화의 필요성이 다시 제기됐습니다. 어떤 대책이 있는지요?

    “체육정책에서 추구하는 가장 중요한 목표 중 하나가 생활체육 참여율을 높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주일(7)에 세 번(3), 하루 30분(30) 이상 지속적인 운동을 하자는 ‘스포츠 7330’ 캠페인을 범국민 건강증진 브랜드로 정착시키기 위해 TV·지하철·옥외전광판·인터넷포털 등을 통해 홍보하고 있습니다. 또 학교가 지역사회의 문화중심축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학교 부지 내에 다목적 체육관 건립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방과 후엔 주민들이 학교 체육시설을 이용할 수 있게 하겠습니다.”

    ‘연기자 이미지, 오히려 손해’

    ▼ 그동안 연기자, 문화예술행정, 교수, 제작자 등 여러 가지 일을 해오셨는데요. 특히 일반인에겐 ‘연기자 유인촌’이 가장 강하게 인식돼 있습니다. 연기자 생활이 지금 장관직 수행에 어떤 도움이 되고 있습니까?

    “도움이 되는 부분도 있고, 도움이 되지 않는 부분도 있고 그래요. 사실 연기자의 이미지를 벗어나려 해도 벗어날 수 없다는 건 당연합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연기자의 이미지는 장관직을 수행하는 데 별로 도움이 안 됩니다. 아무래도 사람들이 못 미더워하지요. 저 사람이 과연 뭘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잖아요. 연기자와 장관은 전혀 다른 분야니까. 그래서 저에 대해 믿음을 갖게 하려고 몇 배의 노력을 더 하려고 합니다.”

    인터뷰를 마무리할 무렵 유 장관은 그동안 자신의 발언이 불러온 파장들 탓에 마음고생도 적지 않았음을 내비쳤다.

    “뭔가를 잘못해서 야단치고 회초리로 맞는 것은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예 망하게 하겠다는 태세로 공격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그러니까 뭔가 한번 실수하기를 기다렸다가 그런 기미가 보이면 끝장을 보겠다고 덤비죠. 사실 실수도 별거 아니에요. 말실수죠. 그동안 언론이 민영미디어렙이나 언론정책 등을 문제 삼았지만, 저는 그동안 해왔던 방식을 고쳐서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자는 취지로 말한 겁니다. 더 나은 길을 찾아 고민도 하고 새로운 시도도 해보자는 겁니다. 그런데 과거의 것만 최선인 양 고수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유 장관은 ‘돈키호테처럼’ 좌충우돌하며 새롭고 ‘품격 있는 문화 강국’을 만들기 위해 분주하다. 그 과정에서 튀어나온 발언 파문들은 어쩌면 작은 문제들인지도 모른다. 특히나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움을 하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며, 잡을 수 없는 저 하늘의 별을 잡자…”와 같은, 이루기 쉽지 않은 목표를 향해 도전적으로 나아가는 그에게는 더욱 더. 앞으로도 재임 기간에는 늘 그의 행보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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