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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구니들의 큰 스승, 대전 복전암 경순(景順) 주지스님

‘너의 마음을 찾아라’ 스승 법문 새기며 참선, 70년

  • 백경선 자유기고가 sudaqueen@hanmail.net

비구니들의 큰 스승, 대전 복전암 경순(景順) 주지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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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구니들의 큰 스승, 대전 복전암 경순(景順) 주지스님

마애여래불상 앞에서 불공을 드리는 비구니 스님들.

함께 출가한 동생의 죽음

강원 졸업식 날 6·25전쟁이 발발했다. 1·4후퇴 때 어머니가 계신 대구로 피난을 가, 대구 정혜사에서 17명의 도반 스님과 함께 지냈다고 한다. 그러던 중 예산 수덕사 견성암에 있는 동생이 병을 앓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약국을 하는 오빠가 약을 한아름 싸줘서 짊어지고 수덕사로 갔지만, 동생은 사흘 전에 이미 입적(入寂)한 상태였다. 그때 동생 나이 23세였다. 그 이야기를 전해 들은 그는 화장터에 가서 밤새 울었다고 한다.

그 즈음, 그는 평생의 스승이라 여기던 고봉스님으로부터 편지 한 통을 받았다. 절을 구했지만 건강이 악화돼 치료를 받아야 하니, 와서 주지를 맡아달라는 내용이었다. 고봉스님이 그를 믿고 맡긴 절이 지금의 복전암이다. 그렇게 해서 그는 25세에 복전암 주지가 되었다.

“당시 민심이 흉흉했어요. 전쟁 상황임을 감안한다 해도 텃세가 무척 심했고, 거지와 건달패를 비롯해 일부 상이용사의 횡포까지 더해져 비구니 스님들이 생활하기가 어려웠죠. 그래도 부처님께 의지해 겨우겨우 탁발을 하고 배급을 받아 살아갔어요. 우리 스님들은 불이나 때고 쌀만 있으면 되잖아요. 다른 욕심이 뭐가 있겠어요. 그러니 어렵지만 그런 대로 살아갈 수 있었죠. 그러던 중 고봉스님이 비구니 스님 16명을 데리고 복전암으로 돌아와 식구가 30여 명으로 늘어났어요.”

이후 수많은 비구니가 복전암을 거쳐 갔다고 한다. 그의 상좌스님만 80명 가까이 되는데, 비구니계에서는 드문 경우다.



1975년부터 25년간 전국 비구니회 부회장직을 역임한 바 있는 스님은 복전암 스님이 아니더라도 비구니 스님들은 모두 한 식구라고 생각한다. 한번은 생면부지의 스님이 탁발을 나갔다가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런데 신분을 알 수 없어서 그냥 화장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물어물어 시신이 안치되어 있는 병원 영안실을 찾아갔다. 거기서 시체들을 일일이 다 확인해 스님의 시신을 찾아낸 후, 각고의 노력 끝에 신분을 밝혀내 가족을 찾아주었다. 얼마나 고생을 했던지 이후 사흘 동안 심하게 앓았다.

“저는 비구니 스님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해주고 싶었을 뿐이에요. 그래서 임자 없는 시신으로 그냥 두지 않고 어떻게 해서든 신분을 알아서 가족을 찾아주려고 노력했던 거지요. 스님은 스님네들이 서로 아끼고 위해줘야 합니다. 스님들이 양로원에 가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아파요. 제가 60대만 같아도 스님들을 위한 양로원을 하나 지어 운영해보겠는데, 지금 내 나이 여든이 넘었으니 그저 안타까울 뿐입니다.”

비구니들의 큰 스승, 대전 복전암 경순(景順) 주지스님
“너의 마음을 찾아라”

그는 “우리 비구니 스님들도 머리 볶고 화장하면 다들 예쁠 텐데, 머리 깎고 들어온 것은 모두 마음을 찾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성북동 청룡암에 기거할 적에, 20명 정도의 대중이 함께 살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가 초등학교만 나왔다는 이유로 대중의 외면을 받았다. 그가 먹지 않은 것도 먹었다 하고, 그가 깨지 않은 그릇도 깼다 하는 등 억울한 일이 종종 벌어졌다는 것.

그러잖아도 내내 살아왔던 적조암을 떠나온 것이 힘들었던 그는 혼자 서러움을 많이 느꼈다. 하루는 그 서러움에 못 이겨 큰스님께 “남의 마음속을 알고 싶다”고 말하자 큰스님이 “하루에 10만 독씩 ‘옴마니반메훔’을 10년 동안 부르면 된다”고 하셨다.

그 뒤 그는 매일같이 ‘옴마니반메홈’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렇게 7년을 보낸 후, 그는 평생의 스승이라 할 만한 고봉스님을 만나 ‘진정 남의 마음속을 알고 싶다면 먼저 자신의 마음을 알아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참선을 해야 한다는 것도 알았다. 그는 자신에게 깨달음을 준 고봉스님의 법문을 평생 가슴에 새기고 참선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차신불향금생도(此身不向今生度) 갱대하생도차신(更待何生度此身). 마음의 심월은 어디서 오는 것도 아니고 누가 주는 것도 아니다. 원래 있는 것이다. 칠팔월 장마에 운무가 잠시 흩어진 사이 보이는 빛이 여우빛이다. 그것이 심월인데 심월은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것이 여래의 빛이다. 개는 하늘의 달을 보라, 해를 보라. 해도 아래의 먹을 것을 찾는다. 삼척동자는 아버지가 달달 하면 손가락 끝의 달을 본다. 꼭꼭 숨어 있는 여래를 찾아라. 그것이 극락이고 도솔천이다. 반복적인 생활이 원칙이라 하더라도 인신난득(人身難得) 불법난봉(佛法難逢)이라 했다. 너의 마음을 찾아라.”

언젠가 스님은 교도소에 법문을 간 적이 있다. 그때 죄수들에게 ‘내 마음을 알면 세상을 알게 된다’는 이 같은 가르침을 주었다.

“저는 큰 형무소에서 왔고, 여러분은 작은 형무소에서 살고 있습니다. 간수들을 채근하는 법사라고 생각하십시오. 지금도 늦지 않았습니다. 조용한 시간에 꼿꼿이 앉아 내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찾으십시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칠흑통에 갇힌 마음을 발견하고, 바늘구멍을 통해서 광채를 본다면 문이 열립니다.”

인터뷰 말미에 그에게 물었다. “스님은 스님의 마음을 찾으셨습니까?” 그가 대답했다. “‘아가, 나는 니 아빠다’ 하면 아기는 알아들었을까요, 못 알아들었을까요. 모르죠. 아는지 모르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신동아 2008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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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경선 자유기고가 sudaquee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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