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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중년의 사랑’ 연기하는 배우 최명길

“나이 들어도 모든 걸 거는 사랑에 대한 꿈은 멈추지 않죠”

  • 황일도│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중년의 사랑’ 연기하는 배우 최명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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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에서도 그런 자세나 포즈를 유지하는 편인가요? 생활조차 캐릭터에 완전히 몰입해 지내는 연기자들도 있습니다만.

“아휴, 그렇게는 안돼요. 집에 가면 집에서 할 일이 기다리고 있는 걸요. 결혼 전에는 일상생활에서도 배역의 느낌을 놓지 않으려고 애썼는데,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그게 불가능하더라고요. 다만 이번 드라마를 하는 동안에는 전과는 또 달라요. 캐릭터가 묻어나는 모양이에요. 스태프들과 얘기하다가 문득 ‘아 내가 한명인으로 얘기하고 있구나’ 느껴질 정도로. 남편도 저보고 한 회장이라고 부르며 놀려요. ‘아 회장님 오셨습니까’ 하면서.(웃음)”

▼ 기억에 남은 장면 중 하나가 정확히 눈물이 흘러야 할 타이밍에 1초의 오차도 없이 두 줄기가 주르르 흘러내리는 장면이었습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한지 잘 상상이 안 됩니다.

“자로 잰 듯 계산하는 건 아니에요. 긴 세월 연기하다 보니 몸에 익은 거죠. 주인공에 몰입하면 대본 속의 리듬도 제 것이 돼요. 감정의 흐름을 거부하지 않고 거기에 나를 맡기니까 타이밍도 딱 맞아떨어지는 거죠. ‘대본대로 이쯤에서 화를 내야겠다’가 아니라 정말 그 지점에서 화가 나요, 정말 그 타이밍에 다리에 힘이 풀려 쓰러지고요. 작가의 리듬을 부정하면 저와 드라마 속 주인공이 따로 놀게 돼요. 좀 아니다 싶은 부분이 있어도 몸을 맡겨야 하는 거죠.”

‘권력에 어울리는 이미지’



▼ 근래에는 강한 캐릭터를 연기할 때 더 화제가 되고 주목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혹시 본인의 원래 성격과 관계가 있지 않을까요? (웃음)

“아니에요, 그런 얘기 들을 때마다 정말 미치겠어. (웃음) 잔잔하고 조용한 역할도 얼마나 많이 했는데요. 흔히들 센 역할, 강한 연기가 좋은 연기라고 생각하시기 때문에 그런 것뿐이에요. 사실 예전에는 도회적이면서도 따뜻한, 남자들이 기댈 수 있는 여성 이미지에 가까웠어요. 라디오 DJ를 워낙 오래 했으니까요. 적어도 저는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용의 눈물’을 하면서 그게 확 바뀌었죠. 전장(戰場)에서 위기에 빠진 남편을 구하기 위해 칼을 차고 뛰어나가는 여인이란 이전 한국 사극에서는 상상할 수 없었으니까요. 그 한 장면으로 지금의 이미지가 만들어진 것 같기도 해요.”

▼ 그렇지만 그런 캐릭터가 차곡차곡 쌓여왔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킹메이커 노릇을 하는 왕비랄지, 대기업 CEO랄지. 그것도 하나의 전략일 수 있지 않을까요. 이번 드라마의 담당PD가 “최명길 외에 다른 캐스팅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더군요.

“의도된 전략 같은 건 없어요. 다만 감사한 일이죠. 결혼 전에는 따뜻한 이미지를 가질 수 있었고, 이후에는 또 다른 모습을 가질 수 있었으니까요. 저는 스스로 이번에 제가 연기경력의 한 단계를 넘어서고 있다고 느껴요. 처음 촬영할 때만 해도 드라마상의 아들이 20대 후반인 게 와 닿지 않더라고요. 제 아이는 아직 둘 다 초등학생이니까요. 그런데 촬영하면서 그걸 뛰어넘었어요. 받아들이게 된 거죠. 한 사람의 연기자로서 혹은 한 사람의 여자로서 시간이 흐르는 걸 수용하게 됐다고 할까요.”

▼ 강하다는 건 다른 말로 ‘권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복수를 위해 주가를 조작하거나 하는 이번 역할이 바로 권력이겠죠. 기분 나쁜 말일 수도 있지만, 왠지 ‘권력에 어울리는 이미지’가 만들어진 것 같기도 하고요.

“본래의 저는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집에서 나고 자란,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성격이에요. 다만 선배님 한 분이 ‘그동안 네가 지내온 시간이 부지불식간에 이번 캐릭터에서 드러나는 것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여당 원내대표의 부인은 의원 부인들을 아우르는 역할을 해야 하는 자리잖아요. 장관 부인으로서도 챙겨야 할 일이 많았고요. 그렇게 십수년간 살아온 길이 연기에서도 보이는 거죠. 저는 정말 몰랐거든요.

그렇지만 한명인이라는 역할이 그게 전부는 아니에요. 그랬다면 제가 이렇게 몰입할 수는 없었을 거예요. 내면에는 상처와 슬픔과 외로움이 있는 인간적인 역할이잖아요.”

드라마 속 한명인 회장은 “오늘따라 아름다우십니다!”라는 중역의 아부에 “아직도 내가 여자로 보입니까?”라고 호통을 치는 ‘철의 여인’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젊은 시절 첫사랑에 실패하고 30여 년간 애정 없는 결혼 생활을 지속해온 쓸쓸함을 안고 있는 캐릭터다. 남편의 30년 외도를 알고 ‘처절하게 짓밟아주겠다’고 다짐하면서도 세상에 믿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에 오열하며 첫사랑을 그리워하는 두 개의 얼굴이 드라마를 이끌어가는 모티브다.

“사람들은 강하기만 한 건 좋아하지 않아요. 강해 보이는 사람들이 실제로는 굉장히 여리죠. 자기가 허하기 때문에 그 허점을 감추려고 더 독하고 집요해지는 거예요. 콤플렉스죠. 물론 어떻게 보면 그런 겉과 속의 괴리도 대중이 갖고 있는 이미지겠죠. 강한 사람에게 약한 면이 있기를 원하는 거라고 할까요. 언젠가는 원래의 제 성격에 맞는, 서민의 삶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연기가 하고 싶고, 또 제대로 할 기회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괴리 혹은 차이

▼ 그렇지만 연기하는 걸 보면 기싸움이랄까, 그런 측면에서 남다른 ‘재능’이 엿보이기도 합니다. 후배들이 시선을 맞추면 순간 대사를 까먹더라는 일화도 그렇고, 얼마 전 CD 사건도 그렇고.

(한 인터뷰에서 그녀는 “화내는 연기를 하면 젊은 후배들이 순간 대사를 잊어버려 다른 곳을 쳐다보고 연기한” 에피소드를 말한 적이 있다. 최근에는 패기만만한 젊은 앵커 최윤희(박예진 분)와 설전을 벌이는 장면에서 들고 있던 CD를 부러뜨리는 모습을 연기하다 파편에 손을 다치기도 했다.)

“예진이는 처음 기싸움하는 장면을 찍고 몸이 아팠다고 하더라고요. 저한테 저도 모르는 그런 포스가 있나 봐요. ‘대왕 세종’에서 함께 연기했던 김영철 선배님이 저한테 ‘내가 너처럼 기가 센 여자는 처음 본다’고 하셔서, 그게 좋은 말인지 나쁜 말인지 고민 되게 많이 했어요. (웃음) CD 일만 해도, 대본에는 부러뜨리라는 말이 없었는데 카메라가 도는 순간 감정의 흐름상 부러뜨리는 게 맞다 싶더라고. 생각보다 단단해서 잘 안 되는 걸 있는 힘을 다해 끝내 부러뜨렸죠. 그것도 분명 제 내면의 일부이긴 할 텐데, 카메라가 돌아갈 때만 튀어나오나 봐요.

평소에는 대단히 부드러운 편이고, 주변에서 인기도 좋아요. 스태프들이 절 얼마나 좋아하는데요. (웃음) 사람과의 관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믿기 때문에 항상 최선을 다하려 애쓰거든요. 연기할 때 전혀 다른 인물이 될 수 있는 건 배우로서 굉장히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결혼 전에는 잘 몰랐는데 요즘 그런 걸 많이 느껴요. 인생이라는 게 뭘까, 사랑이라는 게 뭘까, 평소에 그런 생각을 누가 하겠어요. 연기를 통해 그런 걸 진지하게 생각하면서 배우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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