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호

스위스-아시아상공회의소(SACC) 부회장 우얼스 루스텐베르거

“한국에선 북한 핵실험보다 노조 파업이 더 무섭다”

  • 한상진│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greenfish@donga.com│

    입력2009-08-01 11: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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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위스-아시아상공회의소(SACC) 부회장 우얼스 루스텐베르거
    우얼스 루스텐베르거(50) 스위스-아시아상공회의소(SACC) 부회장은 1990년 초반부터 한국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다. 스위스 취리히 대학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은 뒤 변호사로도 활동해온 그는 1996년부터 스위스-한국상공회의소에서 활동했고 2000년부터 2005년까지 스위스-한국상공회의소 회장을 지낸 데 이어 2007년부터는 스위스-아시아상공회의소 부회장을 맡고 있다.

    현재 한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 동아시아 전역을 상대로 스위스 기업 진출을 돕고 자문하는 일을 맡고 있는 그는 1994년 자신이 직접 설립한 경영컨설팅-법률자문사인 Lustenberger Glaus&Partner의 대표를 맡고 있다. 17년 전 결혼한 한국인 부인과의 사이에 두 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 아내가 만들어주는 낙지볶음과 냉면을 좋아한다는 그는 한국을 ‘제2의 고향’이라고 부른다.

    1년에 두세 차례 한국을 방문한다는 루스텐베르거 부회장은 스위스 기업들에 대한 경영자문과 함께 스위스 정부를 대신해 국가 간 진행되는 경제협력사업에도 깊이 간여해왔다. 최근 그는 한국에서 진행 중인 한국-스위스 경제협력 관련 정부-기업인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9월에는 스위스 외교통상부 장관과 함께 한국과 일본을 방문해 정부 관계자들을 만날 예정이다. 6월23일, 기자는 서울의 한 호텔에서 그를 만나 한국 경제의 미래, 세계적인 경제위기와 한국, 한국과 스위스의 경제협력 가능성 등을 놓고 두 시간가량 자유로운 대화를 나눴다.

    ▼ 한국에는 자주 오시나요.

    “1년에 두세 차례 방문합니다. 한국 사람과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 기르고 있으니 저도 절반은 한국 사람인 셈입니다. 중요한 회의도 있었고 처남의 결혼식도 있었습니다. 한국에 특별한 애착을 가지고 있습니다.”



    ▼ 한국을 한마디로 평가한다면 어떤가요.

    “열정이 있는 나라입니다. 뭔가를 이루고 배우려는 자세가 강하죠.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보기 힘든 모습입니다. 하지만 약점도 많은 나라입니다. 옛날식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여전히 사회를 주도하고 있죠. 여당과 야당, 전라도와 경상도, 이런 것들 말입니다.”

    ▼ 세계적인 경제위기의 여파로 한국 경제가 좋지 않습니다.

    “미국과 유럽의 선진국들은 경제회복에 많은 시간이 걸릴 겁니다. 어쩌면 더 안 좋은 상황이 전개될 수도 있습니다. 반면에 아시아 국가들은 상대적으로 빨리 회복할 것 같습니다. 긴 U자형 성장 패턴으로 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한국은 아시아 국가들 중에서도 회복속도가 빠를 것으로 전망합니다. 1990년대 후반 IMF 경제위기를 겪은 후 미국에 대한 의존도가 낮아진 게 큰 이유이지요. 미국 경제로 인해 경제가 파국으로 가는 일은 최소한 없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이제는 미국보다는 중국이나 유럽과의 관계가 더 밀접해졌기 때문입니다.”

    ▼ 위기에 대처하는 한국 정부의 정책은 어떻습니까.

    “글쎄요. 좀 문제가 많죠. 한국에서는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많은 것이 바뀌는 것처럼 홍보를 합니다. 하지만 실무처리 단계에 가면 바뀌는 게 없습니다. 정치적인 변화는 격변 수준이지만 경제정책으로는 달라진 걸 느끼지 못할 정도라고 할 수 있지요. 한국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니까 그나마 경제가 발전하는 것이지 정치적인 도움으로 경제가 발전한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노무현 정권과 이명박 정권은 정치적으로는 사뭇 다르지만 실질적으로 경제정책을 다루는 단위로 가면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합니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소금을 좀 더 넣었다면, 이번 정부에서는 매운맛을 조금 더했을 정도라고 할까요. 이번 경제위기에 대처하는 모습도 비슷하다고 봅니다.”

    ▼ 그렇다면 지금 한국 정부에 가장 절실한 일은 뭐라고 봅니까.

    “대통령이 누구냐, 그의 경제철학이 무엇이냐에 관계없이 지금은 한국 정부가 경제에 적극 개입해야 할 시기라고 봅니다. 또 개입하되 불필요한 규제는 풀어야 하는 시기입니다. 정부의 정책이 한 분야에 치중되지 않고 산업 전반에 골고루 혜택이 가도록 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한국이 강점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하이테크 분야에만 치중한다면 경제의 균형이 무너질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야지요. 또 대기업에 치중된 정책이 너무 많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중소기업과 기초산업을 위해 고민해야 하는 시점입니다.”

    ▼ 언론보도를 보면 한국의 정치인과 관료들을 자주 만나시던데요.

    “사실 경제협력 제의를 여러 번 받았습니다. 많은 사람이 찾아와서 사진도 찍고 갔습니다. 그러나 실제 진행된 사업은 없습니다. 예를 들어 2년 전쯤 한 지방자치단체에서 찾아와 스위스-아시아상공회의소와 경제협력을 약속한 일이 있는데 그 후로 아무런 연락을 받지 못했습니다. 구체적으로 고민 중인 사업이 있다거나 정부와 진행 중인 사업이 있다는 얘기도 한 기억이 있는데 그 후로 만나지 못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스위스 정부와 기업들은 한국과의 협력을 언제든 환영하며 절실히 원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스위스-아시아상공회의소(SACC) 부회장 우얼스 루스텐베르거

    루스텐베르거 부회장은 한국 정부가 시장에 적극 개입하는 정책을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든 사례는 2007년 5월 박광태 광주시장을 단장으로 한 ‘2007 광주시 유럽투자유치단’의 스위스 방문이었다. 당시 광주시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보도자료를 만들어 언론사에 배포했다.

    “언론투자유치단은 스위스의 최대 상업 및 산업도시인 취리히에서 스위스-아시아상공회의소(SACC) 우얼스 루스텐베르거 부회장과 회원 60여 명을 초청, 투자설명회를 개최하고 한-EU 간 자유무역협정(FTA) 본협상 개시로 그 어느 때보다 한국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유럽의 상공인들에게 광주를 홍보하고 투자해줄 것을 적극 요청했다.”

    그러나 루스텐베르거 부회장은 그날 이후 광주시 관계자들을 본 일도 없고 어떤 연락도 받은 바 없다고 말했다.

    정부의 개입이 필요하다

    ▼ 조만간 한국과 EU가 자유무역협정(FTA)을 타결지을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과 유럽이 한층 가까워진다는 것을 의미하는데요. 유럽 기업인의 한 사람으로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한국과 스위스는 이미 2005년에 FTA를 체결했다).

    “아주 좋은 일입니다. 특히 한국에는 기회가 될 겁니다. 한국이 세계 무대에서 자리 잡을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한국과 EU는 정치적인 이해관계가 없습니다. 따라서 실질적이고 순수하게 경제적인 상호협조가 가능합니다. 정치적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한국과 미국의 관계와는 다르죠. 게다가 이미 한국은 유럽 상품의 경쟁력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유럽산 자동차, 유럽산 의류, 유럽산 가구 등이 한국시장에서 이미 자리 잡았습니다.”

    7월11일, 한국과 EU간 FTA 타결 소식이 언론을 통해 전해졌다. 협상을 시작한 지 2년2개월 만이다. 첨예하게 부딪쳤던 관세환급제도는 살아남았고, 원산지 문제도 원만히 해결됐다. 관세환급은 수출을 목적으로 상품의 원자재나 중간재를 수입할 때 부과했던 관세를 그 재료로 다시 상품을 만들어 수출할 때 되돌려주는 제도로 한국에 유리하다. 원산지 문제와 관련해 자동차의 경우 완성차에 대한 원산지 기준은 역외산 부품사용 비율 상한을 45%로 합의했다고 전해진다. 이로써 역외산 부품을 45%까지 사용한 완성차도 한국산으로 인정받게 됐다. 한-EU 양측은 의회 비준 절차를 거친 뒤 협정을 발효하게 된다.

    ▼ 하지만 한국에는 FTA에 반대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농민, 노동자들이 FTA에 반대하는 것은 어느 나라에나 있는 일입니다. 저는 그 이유를 ‘잘못된 정보가 제공됐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분명한 것은 장기적으로 볼 때 FTA가 많은 사람과 국가에 도움이 될 것이란 점입니다. 정부가 나서서 잘 계도하고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 오해가 없도록 해야 합니다. 스위스에서도 농민들이 거세게 반대했지만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 FTA를 위협이 아닌 기회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 FTA를 체결한 이후 한국과 스위스 간 경제협력은 어느 정도 진행되고 있나요.

    “아직은 초보 단계입니다. 논의를 거쳐 구체적인 실행으로 옮겨가는 단계죠. 한국과 스위스는 비슷한 조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원이 없다는 점이 우선 비슷합니다. 한국이 그렇듯 스위스도 자원이라고는 석회석밖에 없는 나라입니다. 현재 빠르게 진행 중인 분야는 산학협동 부문입니다. 이미 한국의 카이스트(KAIST)와 스위스 연방공과대학(ETH) 같은 연구기관 사이에 구체적인 논의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스위스의 수준 높은 기초과학을 이용해 한국에서 상품화를 준비하는 작업입니다. 한국은 연구·개발에서 상품화로 이어지는 속도가 세계 어느 나라보다 빠른 나라입니다. 반면에 스위스는 높은 기술 수준에도 불구하고 기술의 상품화 속도가 느립니다. 예를 들어 휴대전화로 TV를 보는 나라는 전세계에 한국밖에 없습니다. 한국 기업의 상상력과 도전정신은 따라갈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스위스는 그런 것을 배우고 싶어합니다.”

    핵보다 무서운 노조

    ▼ 핵실험 등 북한의 돌발적인 군사행동이 한국 경제에 걸림돌이 된다는 분석이 많습니다.

    “6·25전쟁 이후 서울은 줄곧 북한의 미사일 사정권 내에 있습니다. 당연히 불안하죠. 게다가 북한은 아주 이상한 정치행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불확실성이 커서 예측도 쉽지 않습니다. 김정일의 사망이나 권력공백도 예측되는 상황이고요. 그런데 사실 정말 무서운 것은 핵실험 같은 현존하는 위험이 아니라 불확실성입니다. 지금 같은 상황이 계속된다면 당연히 한국 경제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겁니다.”

    ▼ 북한 문제 때문에 외국 기업들이 한국에 투자를 꺼리는 것도 문제입니다.

    “지난 10년간 한국 정부는 햇볕정책으로 북한을 지원했습니다. 일단 저는 좋은 일이었다고 평가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너무나 오래, 그리고 너무 많이 퍼줬다는 점입니다. 이제는 북한이 남한의 원조를 가지고 장난을 치는 지경이 됐습니다. 제가 북한 사람들을 많이 아는데 그 사람들을 보면서 항상 느끼는 생각입니다. 이제는 좀 조일 때가 됐죠. 하지만 북한 문제는 한국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여러 변수 중 하나일 뿐입니다. 그것 때문에 한국 경제가 무너지거나 하지는 않을 겁니다.”

    ▼ 더 큰 변수가 있나요?

    “사실 비즈니스적인 측면에서만 본다면 북한보다는 노조가 더 큰 문제죠. 한국에서 기업의 생사 여탈권을 쥐고 있는 것은 북한이 아니라 노조의 습관적인 파업입니다. 노조 문제에 비하면 북한 문제는 사실 아무것도 아닙니다. 회사를 당장 문 닫게 할 수 있는 것은 노조 문제밖에 없거든요. 한국과 같은 강성노조는 세계 어디에도 없습니다. 예를 들어 전세계 기업 중 현지화에 가장 성공했다고 평가받는 다국적 기업인 네슬레가 사업을 포기한 유일한 나라가 한국입니다. 바로 노조 때문이었습니다. 아프리카 저개발국이나 심지어 공산국가에서도 없었던 일입니다. 당시 제가 네슬레의 경영자문을 맡아서 상황을 잘 알고 있습니다.”

    ▼ 해결할 방법은 없었나요.

    “정부 당국자들은 ‘한국식으로 해결하는 방법이 있다’는 말만 하더군요. 외국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방법이라면서요. 나중에 보니까, 비즈니스적인 해결책이 아닌 공권력을 동원해 해결하는 식이었습니다. 몇 년 동안 해결되지 않던 일이 장관의 말 한 마디에 해결되는 식이었죠.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 마지막으로 스위스 경제에 대한 얘기를 듣고 싶습니다. 특히 스위스 은행산업의 위기에 대한 생각이 궁금한데요.

    “스위스 은행의 비밀주의에 대한 질문으로 생각되는데요. 사실 오해가 좀 있는 것 같습니다. 먼저 스위스 산업에서 은행부문의 규모는 생각만큼 크지 않습니다. 오히려 화학과 섬유산업 등이 더 크죠. 스위스는 노바티스(제약), 네슬레(식품) 같은 세계적인 기업을 가진 나라입니다. 은행이 어려워졌다고 스위스 경제 전반이 흔들린다는 시각은 전혀 근거가 없습니다. 게다가 금융부문의 지각변동은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인 상황이죠.”

    ▼ 올해 초 스위스 은행의 전통인 비밀주의가 깨졌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미국에서 스위스 은행에 계좌를 가지고 있는 미국인 고객들의 정보를 알려달라고 한 일이죠. 그런데 스위스 내에서 벌어진 형사소송사건이 아닌 이상 개인정보를 알려줄 수 없는 게 스위스 법의 정신입니다. 스위스 법에 의해 형사적 사건으로 인정되는 경우에는 예전에도 개인정보를 내줬고요.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마치 대단한 변화가 있는 것인 양 전 세계 언론들이 보도했습니다. 분명한 것은 미국 정부가 스위스 은행에 개인정보를 요구하는 과정에서 절차를 지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국세청이 세무조사를 해서 탈세를 확인하고 그것을 검찰이 수사하고 그 과정에서 드러난 범죄를 확인하기 위해 개인정보를 요구하는 식이라면 스위스 은행들은 당연히 개인정보를 제공했을 겁니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절차를 지키지 않고 압박만 가했습니다. 스위스 법이 바뀌지 않는 이상 비밀주의 전통은 이어질 겁니다.”

    비밀주의로 유명한 스위스 은행이 고객의 정보를 미국 정부에 제공키로 했다는 논란이 인 것은 올해 2월이다. 스위스 최대 은행인 UBS가 탈세를 위해 UBS 계좌를 이용한 것으로 의심되는 미국인 부유층 고객들의 명단을 미 관계당국에 제출하는 데 동의했다는 보도가 미국에서 나왔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UBS는 미 국세청이 탈세관련 형사소송을 철회하는 조건으로 총 7억8000만달러의 벌금을 물고 고객 명단을 넘기기로 했다고 되어 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여러 언론은 “중세 이래 고객 비밀 준수의 원칙을 지켜오던 스위스 은행의 오랜 전통이 깨졌다”고 앞 다퉈 보도했다. “이제 아무도 스위스 은행 계좌의 철저한 보안을 신뢰하지 않을 것이고 돈을 맡기지도 않을 것이다”라는 보도도 잇따랐다.

    그러나 UBS가 고객의 개인정보 공개를 결정했음에도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고 있다. 스위스 정부가 거부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스위스 정부는 7월8일 “고객 명단을 넘기는 것은 스위스 비밀보장법을 위반하는 것이고 명단을 넘기는 UBS 임직원들을 사법처리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거부 의사를 분명히 했다. 또 고객 명단 제공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기 위해 명단과 정보가 담긴 서류를 압수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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