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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남자의 특별함 ⑦

빌 클린턴

미국인들이 너무도 사랑하고, 또 미워했던 한 남자

  • 전원경│주간동아 객원기자 winniejeon@hotmail.com│

빌 클린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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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클린턴

클린턴-힐러리 부부와 딸 첼시는 한때 이상적인 가족으로 일컬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클린턴은 힐러리와 결혼한 직후부터 여러 여자와 외도를 즐기고 있었다.

정책적으로는 성공한 대통령, 그리고 도덕적으로는 실패한 대통령. 이것이 클린턴의 모습이다. 그렇다면 대체 왜 그는 지킬박사와 하이드처럼 상반된 두 모습을 대중 앞에 드러낼 수밖에 없었을까? 이 비밀의 열쇠는 그의 유년 시절에서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클린턴은 남부 아칸소의 블루칼라 가정 출신이라는 보잘것없는 배경에도 명문 조지타운 대학에서 2년 연속 학년회장을 지냈으며 3학년 때는 상원 외교위원회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며 일찌감치 정계 진출을 꿈꾸었다. 대학 졸업 후에는 전 미국에서 32명만을 선발하는 로즈 장학생이 되어 영국 옥스퍼드 대학으로 유학하고 유학 후 다시 예일대 로스쿨에 입학하는 등 엘리트 코스에서 승승장구했다. 그가 이 세 명문을 거치며 사귄 친구들은 훗날 아칸소 주지사와 미국 대통령선거에 나설 당시 큰 자산이 되었다. 남부 사투리를 쓰는 덩치 큰 시골뜨기 클린턴은 동부 출신이나 명문가의 자제들이 다니는 조지타운과 예일 대학에서 놀라운 친화력을 발휘하면서 친구들을 자기편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클린턴에게는 친구 대다수가 잘 알지 못하는 비밀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알코올중독자인 양아버지의 폭력이었다. 클린턴은 자서전인 ‘빌 클린턴: 마이 라이프’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어렸을 때 나의 생활은 친구들과의 놀이, 지식 습득의 기쁨 등으로 충만해 있었다. 하지만 내 내면에는 불확실성과 분노, 그리고 폭력에 대한 두려움이 가득했다.” 어린 시절의 상처는 클린턴의 인생에 그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깊고 어두운 그늘을 드리웠다. 그리고 그는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이하며 영광의 절정과 고통의 맨 밑바닥을 롤러코스터처럼 오가야 했다.

남부 출신 시골뜨기

클린턴의 본명, 즉 윌리엄 제퍼슨 클린턴은 그의 진짜 이름이 아니다. 그의 아버지 윌리엄 제퍼슨 블라이드 주니어는 그가 태어나기도 전에 교통사고로 죽었다. 아칸소 주 호프에서 태어나 핫스프링스에서 자란 빌(윌리엄의 애칭)은 다섯 살 때까지 야채가게를 하는 외조부모의 손에서 컸다. 생계가 막막해진 어머니 버지니아 카시디가 아이를 떼어놓고 다른 도시에 있는 간호학교에 다녔기 때문이었다. 마취담당 간호사가 된 버지니아는 빌이 다섯 살 때 핫스프링스에서 자동차 대리점을 하는 로저 클린턴과 재혼해서 5년 후 빌의 이복동생 로저를 낳았다.

로저 클린턴, 즉 빌의 양아버지는 결코 좋은 아버지는 아니었다. 그는 구제불능의 알코올중독자, 도박중독자였으며, 술에 취하면 아내를 심하게 때렸다. 심지어 가위로 버지니아를 찌르려 한 적도 있었다. 이 때문에 버지니아는 이혼할 결심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도망 나오기도 했으나 결국 로저가 암으로 사망할 때까지 둘은 갈라서지 않았다. 열 살 아래의 동생을 무척 사랑했던 빌은 열네 살 때 어머니의 반대를 무릅쓰고 자신의 성을 블라이드에서 클린턴으로 고쳤다. 나중에 동생이 컸을 때, 형과 성이 다르다는 사실 때문에 혼란을 느낄까봐 걱정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름과는 달리 빌은 로저 클린턴을 자신의 친아버지로 인정하지 않았다. 폭력 속에 하루하루를 불안하게 살아가면서도,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참전용사였던 친아버지는 분명 더 나은 모습이었을 거란 믿음을 갖고 살았다. 그 믿음은 어린 빌에게 결코 작지 않은 희망이었다. 열두 살 때 외가에 놀러간 빌을 보고 지나가던 누군가가 말했다. “너 빌 블라이드의 아들이로구나! 아버지랑 똑같네.” 빌은 이 말을 듣고 며칠 동안 싱글거리며 다녔다. 아버지의 폭력을 경험하며 자란 형제였지만, 친아버지에 대한 믿음을 가졌던 빌과 아버지의 폭력성이 자신에게도 유전되었을 거란 두려움에 떨었던 로저의 인생은 180도 달라졌다. 훗날 빌이 아칸소 주지사를 거쳐 미국 대통령에 당선될 때, 로저는 코카인 밀매 혐의로 감옥을 들락거리고 있었다.

케네디 대통령을 만나다

고교 2학년 때 소년단원으로 존 F 케네디 대통령을 만난 클린턴은 이 잠시 동안의 만남에서 ‘정치가’로 자신의 진로를 결정짓게 된다. 이후 케네디 대통령을 비롯해서 로버트 케네디, 마틴 루터 킹 등 진보적인 정치가들은 그의 우상이 되었다. 고교 3학년 때 킹 목사의 유명한 연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를 듣고는 감격한 나머지 한참을 울기도 했다. 그리고 남부 출신으로는 드물게 동부의 가톨릭 명문인 조지타운 대학교 외교학부에 입학하는데, 학업 성적이 뛰어났던 그가 아이비리그 대학들을 외면하고 굳이 조지타운을 선택한 것은 이 학교가 미국 정치의 중심인 워싱턴 DC에 있었기 때문이다.

조지타운은 아칸소 출신에게는 영 어울리지 않는 대학이었다. 동급생들은 대부분 동부의 명문 사립고교 졸업생이었고, 외교관이나 상원의원 아버지를 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클린턴은 이런 환경에 겁먹거나 주눅 들지 않았다. 그는 입학하기 전부터 대학 기숙사에서 남부 출신이거나 민주당을 지지하는 학생들을 찾아내 모조리 친구로 만들었다. 그리고 이러한 친화력을 기반으로 해서 외교학부 1,2학년 학생회장에 연속으로 당선된다. 그로서는 최초의 정치적 경험이었던 셈이다.

유복하거나 좋은 환경에서 자란 것은 아니었지만, 클린턴이 밝고 활달한 성격으로 자라날 수 있었던 데는 어머니의 역할이 컸다. 아들이 자신의 잘못된 결혼으로 인해 피해를 봤다고 생각한 버지니아는 클린턴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쏟았다. 클린턴은 자신이 고3 때 신청했던 한 장학금 지원서류에서 어머니의 편지를 뒤늦게 발견한 적이 있다. 편지의 내용은 이랬다. “이 편지가 빌에 대한 저의 죄책감을 조금이나마 덜어주기 바랍니다. 직업 때문에 제가 빌에게 어머니 노릇을 제대로 한 적은 거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빌이 하고 있는 일, 그리고 빌이 앞으로 해내는 일에 대한 칭찬은 모두 빌 혼자서 받아야 합니다. 빌은 그야말로 ‘자수성가한’ 남자입니다.”

‘자수성가한 남자’라는 어머니의 평가는 정확한 것이었다. 그에게는 아무런 배경도, 또 경제적 풍요나 롤 모델로 삼을 만한 아버지도 없었다. 조지타운에 입학할 당시 양아버지는 암으로 인해 많이 쇠약해진 상태였지만, 클린턴은 어머니와 동생을 양아버지의 폭력 앞에 무방비 상태로 두고 떠나야 하는지에 대해 깊이 고민했다. 그리고 이 ‘자수성가한 남자’는 대학교 3학년 때부터 상원 외교위원회에서 일하며 ‘정치가의 꿈’을 향해 한발을 내디디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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