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멀티미디어시대의 클래식 캐릭터 ⑥

희대의 독학자들, 길 위에 방을 만들다

버지니아 울프와 황진이

  • 정여울│문학평론가 suburbs@hanmail.net│

희대의 독학자들, 길 위에 방을 만들다

2/4
희대의 독학자들, 길 위에 방을 만들다

지적 공동체 ‘블룸즈베리’를 통해 명망있는 문학가로 성장한 버지니아 울프.

나의 눈길을 사로잡은 여성 아티스트 중에 황진이와 ‘맞장’을 뜰 수 있을 것 같은 내공과 매력을 지닌 여성은 단연 버지니아 울프다. 버지니아 울프와 황진이. 이 두 사람은 당대에 정규교육을 받지 못했기에 오히려 더 창조적인 사고를 할 수 있었는지 모른다. 이들을 만들어낸 것은 ‘제도’가 아니었다. 그들은 물론 끝없이 학문과 예술의 신기원을 추구했다. 그러나 그것은 ‘경전’이나 ‘권위’에서 우러나오는 지식에 기댄 것이 아니라 자발적인 탐구열과 끈질긴 독학의 힘이었다.

그녀들이 ‘남성들의 엘리트 교육’을 받지 못했다는 콤플렉스에 시달렸을 수도 있다. 특히 버지니아 울프는 엄한 아버지 밑에서 오빠들에게는 얼마든지 허락된 대학교육과 각종 엘리트 교육의 혜택이 자신에게는 돌아오지 않는 상황을 힘들게 견뎌내야 했다. 그 결과는 어떤가? 그녀들은 어떤 남성도 해내지 못한 독특한 문학세계를 일구었다. 그렇다고 그들이 스승을 찾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들은 제도와 정전(canon)의 시스템을 뛰어넘는 지식과 예술을 추구했다. 더욱이 두 사람 모두 ‘여성의 말하기와 글쓰기’가 철저히 억압되었던 상황에서 창작 활동을 해야 했다.

현대시조의 대가 이병기 선생이 황진이에게 보낸 찬사를 보면 황진이를 향한 ‘팬덤(fandom·열광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들 또는 그러한 문화현상)’은 비단 여고생들만의 것이 아니었다. 이병기 선생은 황진이를 통해 시조의 예술적 가능성과 시조의 현대적 부활 가능성까지 내다보고 있다.

지금까지 내가 본 시조 중에는 이만큼 형식으로나 기교로나 구성으로나 잘 짜인 것을 못 보았습니다. 황진이의 시조로 지금까지 전해오는 것이 오륙 수에 불과해도 그 오륙 수가 정말 주옥같은 것입니다. 고금을 통해서 이만큼 완성된 작품이 없지요. 그 기교란 무서우니까. 흔히 보면 공연히 글자 수와 형식에 사로잡혀서 꼭 판에 박아낸 것만 같아서 염증을 내게 합디다. 그러나 400년 전의 황진이의 시조는 실로 완벽을 이룬 것이지요. 이 정도에만 이른다면 시조로서 표현 못할 것이 없습니다.

-이병기, ‘나의 스승을 말함’, 동아일보 1931년 1월29일자



황진이의 몇 편 안 되는 시조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이토록 사랑받는 ‘공감의 원천’은 무엇일까? 황진이의 천재적 재능 덕이 크겠지만 그녀의 창작 환경에서도 뭔가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황진이의 작품은 창작하자마자 바로 ‘청중’에게(혼자 ‘묵독’으로 책을 읽는 독자가 아니라 여럿이서 술을 마시며 시조창을 ‘듣는’ 무리) 실시간으로 감상되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녀가 경험했을 창작의 공동체는 창작과 동시에 감상자의 반응을 곧바로 확인하고 공감할 수 있는, 공감각적(황진이의 목소리와 시각적 이미지, 심지어 체취까지 공유하고, 더불어 술맛과 주변 사물의 촉각까지 함께 하는 총체적 감각의 축제를 만드는) 교감의 공동체였다.

동시에 그녀는 이 책이 얼마나 팔릴까 하는 스트레스에서 자유로운 비상업적 텍스트를 자유자재로 창조했기에 어쩌면 독자와 출판사의 시선에 시달리고 흔들리는 현대의 작가들보다 훨씬 행복했을지도 모른다. 그런가 하면 청자(聽者)의 반응이 곧바로 몸으로 느껴지니 창작과정이 더욱 혹독했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 그녀의 글쓰기는 골방에 틀어박혀 자신의 내면을 토해내는 근대적 글쓰기와 근본적으로 다른 ‘소리의 글쓰기’였다. 고립된 근대인의 창작과 달리 ‘소통 지향적인’ (그래서 소수의 스타 지향적인 창작 환경과 구분되는 작가 지향적) 창작이었다고 볼 수 있다.

독자에게만 열린 ‘자기만의 방’

황진이의 지적·예술적 공감의 공동체는 그녀가 만나온 수많은 남성 지식인이었다. 반면 버지니아 울프의 지적 공동체는 영국 지식인들의 사교 모임 ‘블룸즈베리’였다. 블룸즈베리는 1899년 가을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출발한 젊은 지식인들의 모임이었다. 블룸즈베리에서는 연애 관계를 시작하고 끝내는 기술, 아주 싫어하는 친구의 책을 거짓말하지 않고 칭찬하는 기술, 연루된 세 사람 모두에게 고통을 주지 않으면서 삼각관계를 유지하는 기술 등 그야말로 ‘모두가 궁금해 하지만 누구도 감히 발설하지 않는 인생의 기술’을 자유롭게 토론하고 제안할 수 있는 느슨한 학술 공동체였다.

2/4
정여울│문학평론가 suburbs@hanmail.net│
목록 닫기

희대의 독학자들, 길 위에 방을 만들다

댓글 창 닫기

2020/06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