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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괴짜들 ⑫

지구 온난화가 반가운 ‘커피 농부’ 박종만

“우리 땅 지천에서 커피나무가 자라는 풍경, 상상만 해도 신나지 않나요”

  • 송화선│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pring@donga.com│

지구 온난화가 반가운 ‘커피 농부’ 박종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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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온난화가 반가운 ‘커피 농부’ 박종만
“춥고 눈 내리는 두메산골에서도 커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집 마당 한쪽에 커피나무를 심어 직접 수확한 커피를 마실 수 있게 되면 얼마나 좋겠어요.”

말하는 모습이 행복해 보인다. 그의 온실 중 한 곳에 들어가봤다.(박씨는 다양한 실험을 할 수 있는 온실 여러 개를 가지고 있다.) 성인 남자의 키만한 커피나무 수십 그루가 줄지어 선 사이로, 에어컨이 찬바람을 내뿜고 있다. 박씨는 “지난 겨울 영상 6℃의 추위를 이기고 살아남은 녀석들”이라고 자랑했다.

“원래 커피나무는 영상 15℃아래서는 못 살아요. 하루 이틀 사이에 다 죽지요. 그런데 ‘얘네’는 낮은 온도에 차차 적응해온 덕분에 버티는 겁니다. 아직도 상당수는 죽어나가요. 재작년 겨울, ‘영상 8℃’ 환경을 실험했을 때는 나무의 80%가 얼어 죽었죠. 그때 산 나무 중에서 이번 겨울을 또 견딘 건 10% 정도밖에 안 되고요.”

다행인 건 그래도 꾸준히 살아남는 나무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최고 기록을 가진 커피나무는 이미 한국에서 12번째 겨울을 넘겼다. 그 나무의 자식의 자식의 자식, 그러니까 4세대 커피 씨앗이 올해 싹을 틔웠다.

1989년, 일본



박씨는 “이런 종자 안에는 분명 원산지에선 존재하지 않던 추위 적응 유전자가 만들어졌을 것”이라고 했다. 그게 다음 세대로 전해지고, 점점 강해지면 언젠가는 한국 땅 어디서나 뿌리내릴 수 있는 커피나무가 생산될 거라는 얘기다. 30대 청춘이 50대가 되기까지, 긴 세월 커피농사에 매달린 끝에 그가 얻은 것은 이 확신뿐이다. 여전히 커피나무는 온실 속에 있고, 추위 적응 유전자가 언제 완성될지는 기약이 없다. 많은 사람의 생각처럼 커피 내한성 훈련은 끝내 실현되지 않은 채, 실패한 프로젝트로 끝날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그는 왜 이 승산 없는 실험을 계속하는 걸까. 도대체 무슨 이유로 한국형 커피 생산에 매달리는 걸까.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박씨와 마주 앉았다. 실험용 온실 바로 옆에 마련된 그의 사무실에서다. 미리 밝혀둘 게 있다. 박씨는 사람들에게 농부보다는 ‘관장님’ 혹은 ‘사장님’으로 더 많이 알려진 인물이다. 앞서 말한 북한강변, 그림 같은 장소에 그의 ‘커피 왕국’이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커피 전문 박물관이자 카페 겸 레스토랑인 ‘왈츠와 닥터만’이다. 그의 온실과 사무실은 붉은 벽돌로 지어진 이 건물 3층에 있다.

박씨가 커피 사업을 시작한 건 1989년. 일본 출장길에 ‘왈츠’라는 커피숍을 본 게 계기가 됐다. 당시 그는 인테리어 회사를 경영하고 있었다. 젊은 사업가의 눈에 일본식 커피하우스가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아직 우리나라에는 커피를 파는 공간이라면 으레 건물 지하에 자리 잡은 다방밖에 없던 시절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커피’라는 단어를 들으면 프림과 설탕을 듬뿍 넣은 인스턴트 커피를 떠올렸다. 그런데 ‘왈츠’는 환하고 깔끔한 실내에서 직접 볶은 원두커피를 팔고 있었다.

“그때 일본에서 세 가지를 눈여겨봤어요. 깨끗한 커피숍, 현대식 미용실, 프랜차이즈 빵집. 우리나라의 다방, 미장원, 제과점과 비교하면 확실히 경쟁력 있어 보였죠. 뭘 들여오면 가장 잘될까 이리저리 생각했어요.”

그중에서 커피숍을 하게 된 건 ‘왈츠’ 커피공장에서 받은 강렬한 인상 때문이다. 그곳에서 본 광경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50년 넘은 공장 문을 연 순간 커피 볶을 때 피어나는 자욱한 연기 사이로 짙은 커피향이 코끝을 휘감았다. 잘 볶아진 커피를 꺼내기 직전 요란하게 팝핑하는 소리, 사람들이 뛰어다니고 서로에게 소리치며 커피 나르는 소리가 오케스트라 연주처럼 웅장하게 들렸다. 커피가 그런 건 줄은 그때 처음 알았다.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도 접하지 못한 신세계일 것이 분명했다. “야, 이거 되겠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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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화선│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p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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