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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티미디어시대의 클래식 캐릭터 ⑮

죽음에 이르는 유혹, 그 비장한 매혹과 공포

롤리타 vs 살로메

  • 정여울│문학평론가 suburbs@hanmail.net│

죽음에 이르는 유혹, 그 비장한 매혹과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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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끝나지 않는 유혹의 메시지

롤리타, 내 삶의 빛이요, 내 생명의 불꽃. 나의 죄, 나의 영혼 롤-리-타. 입천장을 세 번 굴러 세 번째는 이를 톡 치는 혀끝. 롤. 리. 타.

-나보코프, ‘롤리타’ 중에서

죽음에 이르는 유혹, 그 비장한 매혹과 공포

R. 슈트라우스의 오페라 ‘살로메’의 한 장면. 이 작품에는 관능적이면서 동시에 광기 어린 공포가 가득하다.

소설 ‘롤리타’와 희곡 ‘살로메’엔 남성을 ‘세상 끝’까지 몰아간 팜파탈들의 이야기에서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아름다움이 또 하나 있다. 그것은 ‘비장미’다. 이는 존재를 파괴해야만 얻을 수 있는 사랑이 발산하는 비극적 아름다움이기도 하지만, 그녀들을 만나기 이전으로는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시간에 대한 애도에서 나오는 비장미이기도 하다. ‘롤리타’와 ‘살로메’의 문학적 성취 중의 하나는 부도덕한 사랑에 빠진 인간의 광기에 더할 수 없이 웅장한 비장미를 부여했다는 점이다. 이 춤만 끝나면 지금 이 순간 죽어도 좋을 것만 같은 비장미를 풍기는 살로메의 그림들 또한 마찬가지의 비극적 아름다움을 발산한다.

롤리타에 대한 험버트의 사랑은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고향(망명, 즉 정치적 죽음)에 대한 보상받지 못하는 그리움과 얽혀 있다. 기억 속의 첫사랑을 영원히 다시 찾을 수 없듯이, 그는 고향(망명 이전의 고향, 지금은 영원히 되돌릴 수 없는 곳, 그의 기억 속에서만 살아 있는 곳)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그 억압된 그리움의 심연이 깊어질수록, 험버트가 망명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고향과 과거의 존재 자체를 잊으려 할수록, 그는 아무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거대한 결핍을 채워줄 존재 롤리타에 집착하게 된다. 플로베르가 그려낸 살로메는 팜파탈을 향한 매혹과 희열을, 그녀를 보는 순간 자신의 정체성조차 잃어버리는 인간의 시선을 이렇게 묘사한다. 이런 ‘망아적 희열’은 팜파탈형 여성을 향한 전형적인 묘사로 자리매김했다.



눈꺼풀을 반쯤 뜬 그녀는 허리를 비틀어 꼬며 배를 넘실거리며 물결치게 하여 가슴을 출렁이게 만든다. 그녀의 얼굴에는 변화가 없고 두 다리는 멈추지 않았다. (…) 사방으로 몸을 뒤로 젖히는 그녀는 마치 비바람에 흔들리는 한 떨기 꽃과 같다. 그녀의 귀에 달린 장신구가 번쩍이고 등 뒤의 천은 아롱거린다. 그녀의 팔과 다리, 옷에서는 남자들의 가슴을 불타게 만드는 보이지 않는 광채가 용솟음친다.

-플로베르, ‘헤로디아’ 중에서

그러나 살로메를 ‘제대로’ 묘사하는 것은 영원히 불가능할 것이다. 남아 있는 성경에는 그녀에 대한 ‘정확한’ 묘사를 전혀 찾을 수 없다. 영원한 재현 불가능성 때문에 그녀는 더더욱 오래오래 새로운 예술작품의 뮤즈가 될 것이다. 그녀의 춤은 아직 추어지지 않았으며 그녀의 유혹은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을지 모른다. 살로메와 롤리타는 모든 금지된 것을 향한 불가능한 사랑을 함축하는 뜨거운 상징으로 살아 숨 쉬고 있다. 돌이킬 수 없는 모든 현실로부터 도피하고 싶을 때, 우리는 불가능한 사랑을 향한 갈망에 중독되는 것이 아닐까.

그녀는 나에게 혐오감을 불러일으키고, 나는 그녀를 찬미한다.

-로맹 롤랑, ‘일기(Journal)’ 중에서

신동아 2010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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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울│문학평론가 suburb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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