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하준 교수의 신간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는 출간된 지 열흘 남짓 만에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 1980년대에는 다섯 개 나라만 합의하면 환율로 인한 무역수지 불균형 해법을 내놓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20개나 되는 나라가 그와 같은 합의를 이뤄낼 수 있을까요?
“힘들 겁니다. 또 합의를 이뤄내더라도 누구도 큰 불만이 없을 만큼 일반적 수준에서 합의할 수밖에 없을 거예요. 플라자합의 같은 경우 발전 단계도 비슷하고 능력도 비슷한 나라들끼리 합의했기 때문에 의미가 있을 수 있죠. 그런데 미국과 인도네시아처럼 큰 차이가 나는 나라를 같은 기준으로 묶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되거든요.”
결국 장하준 교수와 G20 정상회담을 전망하는 대화를 나누고 돌아온 며칠 뒤 발표된 서울 정상선언은 그의 비관적 전망이 맞았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각종 외신들이 쏟아낸 분석 기사의 논조들이 이를 증명한다.
‘뉴욕타임스’‘월스트리트저널’ 등 미국 언론은 정상회의의 ‘성과’보다 무역 불균형 시정 조치를 ‘연기’했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췄다. 로이터 통신은 이번 정상회의가 가까스로 최소한의 기대에 부응한 수준이라고 논평했다. 영국 BBC는 한걸음 나아가 G20 정상회의가 동력을 상실한 것 아니냐는 의문마저 제기했다.
환율과 경상수지 이외에도 서울 G20 정상회의를 평가하는 또 하나의 잣대가 있다. 선진국들이 어떤 방식으로 후진국 개발 전략을 도와서 동반 성장을 추구해 나갈 수 있느냐다. 이런 개발 의제는 서울 정상선언의 부속서에 따로 담겼다.
▼ 한국 정부가 후진국 개발 의제를 제안해 정상들의 적극적 지지를 이끌어냈다고 하더군요. 논의되고 있는 의제들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한국이 내놓은 개발 어젠다를 보면 너무 ‘순한’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나라 과거 경제발전 과정을 보면 산업정책이나 토지개혁이 중요한 역할을 했거든요. 그런데 그런 것들은 너무 ‘센’ 것 같으니까 아예 얘기도 안 꺼내고 있어요.”
▼ 사실 이번 정상회의에서 이 문제가 처음 나온 것은 아니죠. 이미 지난번 토론토 정상회의에서 실무작업반을 구성하기로 합의해놓은 바 있고….
“물론 한국이 개발 의제에 대해서 목소리를 높인 공은 인정해야겠죠. 문제는 그냥 옳은 이야기들만 죽 늘어놓았다는 거예요. 사회간접자본 늘리고 교육 확대해야 하고. 누구나 다 동의하는 것들이잖아요. 마이크로 파이낸싱도 그래요. 작고 가난한 나라 돈 빌려주는 데 차별하지 말자는 것 좋은 이야기죠. 그러나 그렇게 해서 문제가 모두 해결됐다면 개발 의제는 아예 필요 없었을지도 몰라요.”
남아공에서 통한 ‘장하준 식 처방’
이른바 ‘동반 성장’에 대한 경제학자 장하준의 주장은 일관되고 명쾌하다. 후진국에는 일정 시점까지 보호무역을 용인해주고 유치산업(Infant industry) 보호 같은 국내 산업정책도 막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하며 시장개방 논리를 전도하는 선진국들이 실상은 죄다 그런 방식으로 오늘의 자리에 오른 것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이는 장하준 교수가 ‘사다리 걷어차기’부터 ‘나쁜 사마리아인들’을 거쳐 이번 신간까지 2, 3년에 한 번씩 (학술논문이 아닌) 대중용 서적을 세상에 내놓으며 사회적 발언을 이어가는 이유이기도 하다.